(3) [보르헤스 읽기] 『픽션들』 2부 같이 읽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남부~]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답게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역사적인 맥락으로 읽어도 흥미롭고 소설 그 자체로 읽어도 충분히 재밌습니다. 「남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아르헨티나의 근대화 기획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르헨티나 중앙정부는 근대화 과정에서 가우초를 동원해서 남부의 인디오들을 몰아낸 뒤 국경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그 빈 공백의 자리에 유럽 이민자들을 세울 계획을 세웁니다. 당시 중앙정부로서는 유럽식 문명화에 걸림돌이 되는 유목민으로서 가우초를 제거함과 동시에 야만을 상징하는 인디오를 몰아낼 최적의 방책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요하네스 달만의 역사적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후술하겠지만, 최은경 선생님의 논문에 따르면 '요하네스 달만'이라는 이름이 그의 출신과 핏줄을 이미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인디오를 토벌하는 데 앞장섰던 외조부와 '게르만의 피'를 지닌 친조부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가 달만입니다. 요약하면, 보르헤스는 백인들의 핏줄을 타고난 달만이 증조부가 물려준 남부의 별장에서 인디오와 가우초들의 손에 죽는 이야기를 쓺으로써, 근대화 과정에서 저지른 폭력의 역사를 서사적으로 뒤집고 있습니다. 「남부」는 앞서 다뤘던 단편 「끝」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할 만합니다. 「끝」이 인디오들을 몰아낸 가우초의 대표격인 마르틴 피에로를 죽음에 이르도록 묘사함으로써 그 근대성을 성찰한다면, 「남부」는 더 큰 함의에서 유럽의 이민자이자 중앙정부의 핏줄인 달만을 인디오와 가우초의 손에 죽게 만듦으로써 그 근대성을 서사적으로 성찰하고 있습니다. 남부로 향하는 길에서 달만이 탔던 기차는 남부의 야만을 상징하는 팜파스를 가로지르는 근대의 상징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위 내용은 고려대 최은경 선생님의 논문 〈보르헤스의 남부(El sur)속에 나타나는 아르헨티나 근대역사 다시쓰기: 환상문학 속 탈식민주의적 해방기획〉을 참고했습니다.
또한 기차도 변해 있었다. 그것은 이제 꼰스띠뚜시온 역에서 플랫폼을 뒤로 하고 떠나던 그 기차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평원과 시간이 스며들어 그것의 모습을 바꿔놓아 버렸기 때문이다. 차창 밖으로는 열차의 죽은 그림자가 길게 지평선을 향해 늘어뜨려져 있었다. 원초의 땅도, 부락들도,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리는 다른 흔적들도 그저 고요했다. 모든 것이 광활했고, 그리고 친숙했고, 일면 비밀스럽기까지 했다. (...) 고독은 완벽했다. 그리고 적의에 차 있는 것 같았다. 달만은 자신이 〈남부〉를 향해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과거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휩싸였다.
픽션들 279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고양이의 새까만 털을 쓰다듬는 동안, 그는 그 감촉이 꿈이며 자기와 고양이는 마치 유리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은 시간 가운데, 즉 연속성 가운데 살고 있지만, 마술적인 동물은 현재에, 즉 순간의 영원 속에 살기 때문이었다.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그는 자신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거나 꿈꿀 수 있었다면, 이것이 그가 선택했거나 꿈꾸었을 죽음임을 알았다.
픽션들 남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남부] 역사적 맥락을 모르더라도, 달만이 현실에서 출발하여 환상 공간으로 경사되는 흐름으로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만한 소설입니다. 저는 보는 동안 카프카의 「시골의사」도 떠올랐습니다. 마크 포스터 감독의 ⟨스테이⟩나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도 떠올랐구요. 카프카의 단편처럼 현실에서 꿈으로 경사되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것도 제겐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달만이 꿈과 같은 혼수를 누비고 있음을 암시하는 구절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병원 수술대에서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든가, 남부에 처음 도착해서 만난 주막의 주인이 요양소 직원과 닮았다든가, 결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주인이 달만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든가 하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달만은 흰 병실에 누워서 막연히 남부의 삶을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재밌게도, 달만은 꿈속에서 원치 않는 싸움에 휘말리게 되자, 언젠가 안락한 병실에 누워 남부의 삶을 동경하기만 하던 때를 다시 그리워하게 됩니다. 마치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나 자신이 나비의 꿈에 불과한지' 알 수 없다고 말했던 장자의 호접지몽이 연상되는 구조입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달만이 결투에 휘말리는 대목입니다. 주막 주인은 싸움을 말리면서 '달만'이라는 이름을 특정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주인이 달만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달만의 혼수 속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만, 여기서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맥락도 함께 부각되고 있습니다. 주인이 싸움을 말리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상 '달만'이라는 출신을 노출하는 이름을 주변에 공표함으로써 남부인을 자극하여 싸움을 부추겼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모든 단편이 끝났네요:) 모두 수고하셨어요.
스테이신경 정신과 의사 샘 포스터는 동료 여의사가 치료하던 환자 헨리 레썸의 상담을 맡게 된다. 부모를 죽였다는 극심한 죄책감속에 살고 있는 미술대학생 헨리는 자신의 생일날인 며칠 뒤 토요일에 자살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샘은 헨리를 돕기위해 그를 찾아 나서지만, 그때부터 샘의 악몽과 혼란은 시작된다.
최악의 하루늦여름 서촌의 어느 날, 배우 지망생 은희는 연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길을 찾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를 만난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이상하게 대화가 이어지는 료헤이와 헤어진 후 은희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를 만나러 촬영지인 남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같은 시간, 한 때 은희와 잠깐 만났던 적이 있는 남자 운철은 은희가 남산에서 올린 트위터 멘션을 보고 은희를 찾아 남산으로 온다. 오늘 처음 본 남자, 지금 만나는 남자 그리고 전에 만났던 남자까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 은희. 과연 이 하루의 끝은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프란츠 카프카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선. 최초의 단편집 『관찰』부터 『어느 단식 광대』까지 카프카 생전에 발표된 일곱 권의 책과, 잡지와 신문에만 발표된 글, 사후 유고집에 실린 단편을 포함해 총 78편을 담았다.
달만은 이제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달래는 언사가 되레 사태를 악화시킨 결과를 초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까지 농장 일꾼들이 걸었던 시비는 특정한 사람을 겨냥한 게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 누구를 향해 빵쪼가리를 던진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시비는 그를, 그의 이름을 과녁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도 명백히 그것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픽션들 283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최근에 누가 페인트를 칠한 뒤 닫는 것을 잊어버린 여닫이 창문의 모서리에 부딪쳐 상처가 난 것이었다. 달만은 일단 잠들 수 있었지만 새벽에 깨어났고, 그때부터 모든 게 끔찍한 맛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픽션들 남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저는 달만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는 계기ㅡ여닫이 창문의 모서리에 부딪힌 상처ㅡ가 흥미로웠어요. 예컨대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앵무새를 잡으러 사다리에 올라갔다 떨어져죽었다는 등의 설정이 생각났거든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사건을 계기로 현실에서 꿈으로 미끄러져가는 설정이 좋았습니다.
역사적 맥락을 잘 몰라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알려주신 사실들을 새기며 더 풍성하게 읽었습니다. 저는 지도앱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이름, 역 이름 등을 찾아가며 현장감있게 읽었어요. 끝까지 읽을 수 있게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렙에서 만나요~
와 멋진 독서법이네요:) 언젠가 아르헨티나에 한번 직접 가보고 싶네요. 모쪼록 대화 즐겁게 나눌 수 있어서 두 달 간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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