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3. <앨버트 허시먼>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금요일(3월 22일)은 15장 '박해받는 남미의 동료들을 위하여(1971~76)'를 읽습니다. 15장을 읽고서 주말에는 또 뒤따라오는 분들을 위해서 쉬는 시간을 가집니다. 다만, 다음 장도 밀도가 높은 장이라서 미리 꼼꼼히 읽을 분들은 16장 '고전 경제 사상의 재해석(1972~77)'을 미리 읽기 시작하는 것도 권합니다. 제목이나 연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5장은 1973년 칠레의 9.11과 아옌데의 사망 같은 반동으로 남미의 개혁이 좌절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허시먼의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그 과정에서 마치 마르세유에서 그랬듯이 남미 독재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동료를 구하는 데에 앞장서기도 하고요. 『경제학자의 시대』에서 나왔던 아옌데의 대통령궁이 폭격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꼈던 칠레 '시카고 보이즈'의 태도와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해요.
15장에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의 좌파 신진 학자로 등장하는 허버트 긴티스(1940~2023)와 새뮤얼 볼스(1939~ )는 지금은 대가 대접을 받는 경제학자입니다. 1960년대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둔 경제학을 고수했고요. 하버드 대학교를 떠난 긴티스와 볼스는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에서 자리 잡고서 공동 연구를 계속했어요. 여러분도 제목만 들으면 알 만한 책들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책은 <Schooling in capitalist America: educational reform and the contradictions of economic life>(1976)입니다. 국내에서는 『자본주의와 학교 교육』(사계절, 1986)이라는 제목으로 1980년대에 번역이 되었고 교육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입장에 동의하든 안 하든) 꼭 한 번 읽어야 할 고전이죠(갈등주의 교육학이라고 하던가요?). 둘은 1986년에 <Democracy and capitalism: property, community, and the contradic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라는 책도 펴냈는데요. 이 책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백산서당, 1994)라는 제목으로 1990년대에 번역이 되었어요. 두 경제학자가 자유주의와 정통(?) 마르크스주의 모두를 비판하는 책이죠. 이 둘은 2000년대 들어서는 마르크스주의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게임 이론, 진화 이론을 융합해서 이타주의, 협력, 유전자-문화 공진화 같은 분야로 연구를 확장했어요. 이 성과를 알 수 있는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 2011년에 함께 펴낸 <A cooperative species: human reciprocity and its evolution>입니다. 이 책은 구할 수 있어요. 『협력하는 종』(한국경제신문, 2016). 이들과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문제의식을 함께 하는 학자가 바로 10월에 함께 읽었던 벽돌 책 『위어드』의 저자 조지프 헨릭입니다. 국내에서 긴티스, 보울스의 지도를 받은 경제학자로 최정규 경북대학교 교수가 있어요. 최정규 교수님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뿌리와이파리) 같은 책도 권하고 싶어요.
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람들. 세상은 이들을 ‘WEIRD(위어드)’라고 부른다. 과연 이 집단은 어떻게 이렇게 독특한 심리를 갖게 된 걸까?
이타적 인간의 출현 - 게임이론으로 푸는 인간 본성 진화의 수수께끼, 개정증보판국내 학자가 쓴 인간 본성 진화 해설서. 진화적 게임이론을 전공한 지은이는 인간이 이기적 존재인가, 이타적 존재인가 하는 질문에서 나아가 그렇다면 이타적 인간이 어떻게 이기적 인간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는지를 묻는다. 혈연선택, 반복 - 호혜성 가설 등 기존의 이론을 소개하고, 기존 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대안이론을 제시했다.
“미리 투사되지 않은 미래를 가질 권리” — 이 말이 너무 좋아서 원문을 찾아 봤어요. “the right to a non-projected future”. ‘열린 미래’ 이런 것보다 훨씬 근사하고 미래지향적인 느낌.
unpredictable이라는 말보다 훨씬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ㅠ & 일전에 올려주신 파일에서 작금의 우리 상황과 비슷하단 생각을 했어요. "Compare this marvel of gradualness and continuity with the violent ups & downs to which human societies have always been subject as "bad" government followed upon "good" and as strong or wise or good leaders were succeeded by weaklings, fools, or criminals." 6p, [Exit, voice and loyalty] (막 끼어들어 죄송^^;)
오, 저도 허시먼 이론 중에서 <이탈, 발언, 충성심>이 가장 흥미롭고 끌리는 부분도 있어서 좀 자세히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 중입니다. 끼어들다니요오오, 함께 읽기 모임에서 대화가 많아지면 좋은 일이죠. 안그래도 책 후반부로 갈수록 참여자 수가 급감하는 “적적한 구간”인데요…
반겨주셔서 감사해요~^^ 몇 가지 인상적인 문장이 있는데요. Recognition of this unpleasant truth has been impeded by a recurring utopian dream이라던가, 뒤에 커피 나오는 부분도 좋더라구요. 이를테면 coffee is incompatible with anarchy라던가요 ㅎㅎ 그리고 자꾸 petites idees 말씀하셔서 그런지 이 글의 헌정이 "자신에게 작은 생각들을 가르치고 그걸 자라나게 해준 이에게"로 되어있던데 소피아님 생각이 절로 났어요.
아니 이 무슨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랍니까! (격한 발언 죄송) 왜 거기서 제가 생각난답니까! (혹시 제 친구, 친인척 되십니까? ) 진지한 독서모임에서 이런 발언 투척하시면 곤란합니다 (단호).
15장.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더 적은 이탈과 더 많은 발언을 위한 정확한 균형점, 즉 '푼토 데 엔쿠엔트로punto de encuentro(만나는 지점)'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 이런 게 허시먼의 강점 같아요. 사례마다 서로 다른 접근법으로 솔루션을 도출해 내는 방식.
“ 허시먼은 대화중에 영수증을 뒤집더니 그래프를 하나 그렸는데, 다른 이가 얻는 보상에서 얻는 즐거움과 자신이 얻는 보상에서 얻는 즐거움 사이의 "배열순서"에 대한 그래프라고 했다. 점심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온 허시먼은 노란 노트에 훗날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이 될 생각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 논문의 주제는 "사람들이 불평등을 어디까지 참을 것인가"였다.” ==> <경제학자들의 시대> 읽을 때였나 래퍼 곡선 나왔을 때, 그게 래퍼가 식당에서 냅킨에 그리면서 나온 거라고 하고 그 냅킨이 박물관에 전시되었다는 걸 읽고 뜨악 했는데, 허시먼 선생님도 영수증에 그래프를? ㅠㅠ 다들 왜 이러십니까? 밥 먹으면서도 일에 대한 생각을 ㅠㅠ
한쪽에는 더 급진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 쪽에는 변화란 무용하고 자기패배적이며 위험하다고 주장하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허시먼은) 중간적 위치를 지지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단호해져 있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15장,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15장 읽다가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들어서 잠시 멈췄습니다. 생각해보니, 12월 벽돌책 <어떻게 살 것인가> 15장에서 인상적이었던 몽테뉴의 공적 임무에 대한 태도와 허시먼의 태도가 매우 유사합니다. “(몽테뉴를) 전형적인 '정치파' 즉 어느 편에도 동조하지 않는 사람으로 본 사람들도 있었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몽테뉴는 그 점을 숨김 없이 인정하였다. 다만, 차이는 반대파들이 그런 점을 나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를 비롯하여 근대 스토아주의자나 회의주의자에게는 그런 점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스토아주의는 슬기롭게 모든 일에 초연하라고 권하며, 회의주의자들은 신조에 따라 어디에도 동조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중 15장 “(몽테뉴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의 피론주의 신조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 귀를 빌려주되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인품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중 15장
오! 맞아요. 저도 깜박 잊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허시먼은 현장 노트에서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였다. ‘연결을 지을 것!’ 정치와 경제 사이에, 신념과 행동 사이에.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15장,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1960년대에는 좌파 극단주의가 ‘혁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제는 우파 진영에서 극단주의가 더 위협적으로 발휘되고 있었다. 정통 경제학이 산티아고에 자리를 잡고서 급진적인 시장주의적 해결책으로 모든 것을 바꾸려 들고 있었다. 시카고학파의 교수들과 시카고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 칠레의 고위직을 차지하게 된 사람들은 ‘충격요법’을 써 가며 ‘신경제질서’를 이식하려고 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15장,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우선, 허시먼은 그런 정책들이 필요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카고 보이스는 옛 모델이 손쓸 수 없는 불균등 때문에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며, 따라서 “자유주의적인 경제 원리”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래도록 불균등을 주장해 온 허시먼이 보기에 이는 모델이 잘못되어서가 아니었으며, 정책들 사이에서 “기어를 변속하기가” 어려워 생긴 문제들에 대해 모델 탓을 하는 주장에 불과했다. 진짜 문제는 정책 결정자들이 가진 사고에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점이었고, 이것은 사회과학자도 마찬가지였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15장,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왜) 단 하나의 일만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옳은 답을 내릴 것이라고 믿는지 묻고 싶었다.왜 우리는 한 번에 새로운 열쇠를 꼭 하나씩만 가져야 하는가?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858,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요일 예고한 대로 오늘 월요일(3월 25일)은 16장 '고전 경제 사상의 재해석(1972~77)'을 읽습니다. 16장은 책 전체에서도 내용의 밀도가 높은 장이라서, 사회과학 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분은 조금 힘들 수도 있겠어요. 이해가 선뜻 안 되는 곳은 그대로 읽어나가시길 권해드립니다. (저는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은 대목에는 빨간색 포스트 잇을 붙여 둬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번 주는 조금 바쁜 일정입니다. 내일 화요일(3월 26일)은 아주 분량이 짧은 17장 '건강한 신체가 내뿜는 우아한 매력'과 18장 '정치와 경제를 관통하는 집합행동 이론(1977~82)'을 함께 읽습니다. 그런데 18장도 16장만큼 내용의 밀도가 높습니다. 수요일(3월 27일)은 19장 '풀뿌리 현장에서 일궈낸 손주들을 위한 사회과학(1979~85)'을 목요일(3월 28일)은 20장 '좌우 극단주의에 맞선 마지막 외침(1985~91)'을 읽습니다. 목요일(3월 29일)에 '맺는 글'과 '후기'를 읽으면서 마무리하는 일정입니다. 보통 평전의 뒷 부분, 특히 허시먼처럼 거의 100년을 살았던 경제사상가의 60대 이후의 이야기라면 밀도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어떻게 된 게 이 책은 후반부가 전반부는 물론이고 중반부를 압도할 정도로 밀도가 높습니다. 그건, 허시먼이 노년에도 특히 70대에도 현역처럼 활동했기 때문인데요. 조금 힘들지만 허시먼의 노익장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해보시죠!
1971년 상파울루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텍사스대학의 사회학자 할리 브라우닝이 어떻게 그렇게 눈길 끄는 제목들을 생각해낼 수 있느냐고 묻자, 허시먼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언제나 플로베르를 읽거든요.”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16장,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인상깊은 허시먼의 제목짓기 비결은 역시 플로베르, 그러니까 고전이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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