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해의 장르살롱] 13.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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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크리스티 작품을 새로이 창작하려고 해도 그 맛을 제대로 내려면 그 시대의 그 배경까지 가져와야 하니, 그게 새로운 창작을 하기 어려운 벽이 되는 듯합니다. 그 '라떼의 맛'(...)을 굳이 지금 다시 봐야 할 필요성을 찾지 못한다면(크리스티를 '재발견'하지 못한다면!), 크리스티 역시 탁월한 발상과 플롯, 기법만을 남기고 서서히 역사책 속에 박제되는 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물론 당대의 경쟁자들이 이미 박물관 수장고에 처박혀 잊힌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요?)
그것이 바로... 고전이죠... ㅎㅎㅎ 고전은 계속 리메이크 되고 부활합니다. 현대적으로 각색만 어려울 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마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크리스티 여사의 몇몇 작품은 계속 생명력을 발휘할 거라 생각합니다. :-)
그런 라떼의 맛을 찾아가는 것 또한 어쩌면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ozy mystery, cozy fantasy 장르 들이 팬데믹 시대에 다시 유행했던 것 또한 사회적으로 힘겹고 '갇혀'있던 세계에서 '예전'에 대한 향수가 가장 진했던 때여서 그런 게 아닐까요? 각색이 어려워도 또 그런 시대물을 좋아하며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서도 '경성'이나 기타 레트로 시대적 배경을 담은 소설이나 드라마 등이 인기를 받듯이..
옳소오오... 복고풍 유행은 계속 찾아옵니다. ㅎㅎㅎ
만약에 현대에 와서 코지 미스터리를 쓴다면, 좀 다르게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크리스티 여사 원작의 <쥐덫> 같은 연극은 기네스 기록을 갱신하면서 장기 공연 중이죠. 아직도 런던에서 공연 중일 걸요...
한계와 그 한계가 주는 매력. 그것이 크리스티 아닐까 합니다. :-)
<생존감각을 확보하는 법: 레이먼드 챈들러와 사르트르>에서는 초기 하드보일드의 거장 챈들러를 다루면서, 그의 작품 속 특이한 캐릭터들이 존재하는 법(?)을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드보일드가 좀 웃음벨(...?)에 가깝습니다. 하드보일드의 양식을 차용해 놀린 작품들을 너무 봐서, 오리지널을 접하는데 진지한 장면에서도 계속 키득거리게 되더라고요. 이 글에서 필립 말로의 캐릭터성을 분석하는 글을 따라가면서, 개인적으로는 하드보일드의 인물이 가진 불가해한 모습이 더욱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웃사이더 같은 특성이 결국 고독한 늑대를 연상케 하는 영웅으로 비춰지게 하는 요소인 것도 같았어요. 하지만 이는 거꾸로, 코미디적으로 놀리기 쉬운 부분이 되기도 하죠. 이 글을 다 읽으며 필립 말로(혹은 챈들러)의 성격?이 어떻게 하드보일드 장르의 정형성을 확립했는지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이 형식성은 점점 폭력적이고 퇴폐적, 통속적인 소위 '싸구려 삼류'로 달려나갈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지요.(결국 사회파 미스터리가 퇴조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고요.) 하지만 세상 사물이 언제나 그렇듯, 긴 강의 원류는 그 시작이 명쾌하지 않고 모호한, 깨끗한 물입니다.
ㅎㅎㅎ 하드보일드가 그 안에 퐁당 빠져 있을 때는 따라서 한없이 진지해지지만 그 밖으로 나오면... 객기스럽고 오바 같은 면모가 없지 않아 있지요. 세상 허무했던 20대와 30대 초반 시절에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악인이란 가장 사회적 인간이다: 추리소설가가 된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 파트는 사실 이 책에서 가장 긴장하며 읽은 부분입니다. 이름만 지나가듯 들었을 뿐인, 사실상 전혀 모르는 분이니까요! 심지어 철학자라고? 그래도 절반은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보다 더 무섭게 다가올 수밖에요! 그러다가 어떤 분이 제게,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스파이였잖아요."라고 하더군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검색해 보니 냉전 시기에 공산권에서 서방에 보낸 스파이였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고 하더라고요.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알 필요도 없겠지만, 그 때문에 갑자기 까닭 모르게 거리감이 좀 좁혀졌습니다. 이언 플레밍이나 존 르 카레를 연상해서일까요? 이런 주절거림을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백휴 평론가님의 글은 잘 읽었지만 정작 이분의 소설들을 못 읽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입니다... 그가 자신의 사유를 탐구하는 수단으로 추리소설을 썼을 거라는 짐작은 들었습니다만... 가장 짧은 글이지만 가장 긴장한 부분이었음을 다시 말하며 대충 마무리하겠습니다.
호오 그런 의혹을 받았군요. 하긴 저도 줄리아 크리스테바 이름만 들어보고 책은 추리소설도 문학평론 책들도 못 읽어봐서 가장 생소했는데 다행히 비잔틴 살인사건 및 다른 논픽션들이 많이 번역되어있더라구요. 그런데 정확히 여기서 나온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의 토대가 나온 논픽션들 어떤 책들을 참고한 건지 참고문헌 각주가 없어서 좀 아쉽네요.
문헌 각주가 없는 건 저도 좀 아쉽긴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 문헌들 다 찾아다니는 새로운 수렁(?)에 빠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ㅋㅋ
저도 다 찾아다니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작가분이 추천한 비잔틴 살인사건과 symbolique/semiotique에 대한 에세이들이 담긴 Desire in Language만 읽어보려구요. 그 외 다른 참고문헌과 작품들도 지금 당장은 못 읽어도 언젠가 읽어볼 수 있겠죠^^;;
나중에 백휴 평론가님이 여기 라이브채팅 오실 때 참고문헌 여쭤보시는 건 어떨까요? ㅋㅋ (근데 그게 라이브채팅에서 소화 가능한 분량일까는 걱정이 됩니다만...)
미리 사전 질문을 던져드리면, 라이브 채팅 때 스윽 꺼내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제가 라이브 채팅 며칠 전에 여러분에게 사전 질문을 요청드리려 합니다.
공부하면 읽느라 속도가 잘 안나가네요. 진찌 오랜만에 하나하나 찾아보고 공부하며 읽는데 요런 재미 오랜만에 느껴서 좋아요!! 읽으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더 많아졌어요. 아직은 인용된 책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나중에 다 읽어보고 읽으면 더 재미있을거 같아요
@gamja 님 합류를 환영합니다. 계속 함께해주세요. 저도 열공모드로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발견하는 새로운 추리소설을 독서목록에 올리며 읽고 있는 중입니다. :-) 활발한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요즘 다른 평론집을 한권 읽었는데 보르헤스에 대해 언급이 몇번 있다보니 1장은 자연스럽게 두 작가님이 다가왔어요. 검은 고양이를 TV에서 본지 50여년전이라 충격받았다는 말은 전에도 드렸는데 그때부터 어린 마음에 공포라는 개념을 심어주었던것 같아요. 이후에 전설의 고향 쯤은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봤으니까요. 이후에 책으로 읽고 여러 추리소설을 접했는데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였어요. 철학과 결부시킨 이유가 작가 자체가 소설가이면서 사상가라는 점이고 추리소설에서 철학할수있는 통찰력과 인생전반에 걸친 삶과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통해 유추할수 있다고 보여지네요.
장르 평론 자체가 드문 한국에서 철학과 추리소설을 결부시킨다는 건, 색다르고 파격적이며 가치 있는 시도입니다. :-)
<탐정은 기호학자다: 움베르토 에코가 앓는 형이상학적 질병>에서는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무척 재미있었을 거 같습니다. 그의 소설 말고도 기호학을 다룬 여러 글들이 불쑥불쑥 모습을 보이니까요. 저는 <장미의 이름>이 많이 언급될거라고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전날의 섬>과 <푸코의 진자>의 비중이 커서 좀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은 양립하기 어려운 입장이 부딪치는 갈등 양상을 주로 다루고 있었지요. '세상은 이렇다' 혹은 '세상은 이러해야 한다'라는 관념이 도전받는 여러 상황들... 이 글을 읽으며 새삼 그 점을 되짚어보았습니다. 세상을 자기 관점대로 해석하려는 인물이 마주하는 충격을 계속해서 탐구하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분석한 이 글을 읽다가 저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정체는 잘 모르겠군요. 어쩌면 저 역시도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부서지는 공포를 느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푸코의 진자>나 <전날의 섬>은 어렵게 읽은 사람으로서 이 장은 저에게 쉽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오히려 줄리아 크리스테바 파트가 쉬웠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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