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투는 나폴레옹이 패배한 전투인데요.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물론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다시 병력을 집결시킬 권력을 잃으면서 사실상 나폴레옹의 시대를 저물게 한 전투이기도 합니다. 나폴레옹이 왕위에서 내려오게 된 결정적 원인이기도 합니다.
[함께읽기]벌거벗은 세계사 : 인물편 / 벌거벗은 세계사 정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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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북카페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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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하면 떠오르는 것중 하나가 바로 '나폴레옹 법전'인데요.
성직자와 귀족의 특권과 여러 관습을 폐지하고 사유 재산을 인정하면서 프랑스 혁명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합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재산, 평등을 보장하는 내용 등 현 시점의 프랑스 법전 으로서 기능도 하고 있다고 하네요.
단, 여전히 여성 인권은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는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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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이후 부르봉 왕가가 무너지고 나서 제 1통령이 되었다가 프랑스 최초의 황제가 되려 합니다. 부르봉 왕가의 복귀 계획을 이용해 자신이 황제가 되어야하는 타당성을 주장하고 언론을 조작했지요.
최초로 프랑스 황제를 뽑는 투표에서도 이미 과반 찬성이 확정된 상태에서 투표 조작으로 99.93%의 찬성률 결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프랑스 혁명이 이루어낸 공화정은 막을 내리게 되었어요.
이런 투표 조작만 보더라도 나폴레옹이 그저 선의의 마음으로 황제자리를 오른 건 아니라는 게 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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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권력의 폭력 : 식민지 제국 건설을 위한 노예제 부활 추진. 스페인의 왕 폐위 후 자신의 형을 왕위에 올리려 함.
그는 권력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요.
→직접 기사 작성으로 자신을 미화
→언론 통제 및 검열
→시민 통제(20인 이상 모임 금지, 비밀 경찰 투입)
이런 것을 보면 그의 내면은 독재자의 것으로 가득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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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결혼한 마리 루이즈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해보자면
나폴레옹의 황후이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고모 할머니입니다.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막기 위해 오스트리아가 먼저 마리 루이즈를 결혼 상대로 내세우며 결혼을 추친했어요.
실제로는 나폴레옹이 러시아 제국과 결혼이 좌절되자 다음으로 점찍은 여성이라고 합니다. 청혼의 조건으로 오스트리아를 압박했는데요. 그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이 청혼은 거절할 수 없다
- 약혼은 내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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