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1829-1874)의 전기] 트록툴프트가 자신의 동족을 버리고 라벤나를 수호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은 자기 인생 전체를 걸 정도로 커다란 전환의 순간입니다. 그런 전환의 순간이란, 부분이 전체를 압도하고도 남는 비대칭의 지점이기도 합니다. 보르헤스가 이 소설에서 설득하려는 것도 바로 끄루스가 느낀 전환의 순간이고요.
언젠가 보르헤스는 자신의 책에서 단테의 신곡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쓴 적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인생의 어느 한순간에, 즉 우리가 자기 자신과 영원히 만나는 순간에 규정되고 맙니다." 오래전부터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변하거나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변화하거나 변화하지 않는 지점은 한 인물이 "자기 자신과 영원히 만나는 순간"을 보여주는데요, 생각해보면 소설은 그런 순간을 논리가 아닌 문체로 설득하는 장르가 아닌가 합니다. 거의 모든 소설에서는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든 그렇지 않든 그렇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 얘기를 좀 해보면,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는 젊었을 적에 가우초로 대변되는 야만의 세계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불가사의한 단절의 시간을 건너, 한 지방 경찰서의 경사로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는 그러지 않았지만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은 채로요. 그러다가 끄루스는 우연히 살인자 마르띤 피에로를 맞닥뜨리게 되고, 자기 운명 속에 잠복해 있었던 진짜 얼굴과 진짜 목소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끄루스는 영원히 자기 자신이 되어버리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때'란 전체가 부분으로 수렴하는 "단 한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보르헤스가 그 "단 한순간"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해당 대목이 재밌다고 생각되어서, 네 가지 버전을 모두 살펴보겠습니다. 차례로 황병하 선생님, 송병선 선생님, Andrew Hurley의 영역본, 보르헤스의 원문입니다.

말하는 보르헤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1994년에 첫 출간된 보르헤스 전집이 픽션 모음집이었다면 이번 전집은 보르헤스가 발표했던 논픽션을 모았다. 픽션과는 다른 매력의, 인간적인 보르헤스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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