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미로를 지나왔지만, 반짝거리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는 나를 공포와 혐오로 가득 채웠다. 미로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지어진 구조물이다. 즉, 과도할 정도로 대칭을 이루는 그 건축물은 그런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내가 어설프게 살펴보았던 이 궁전의 건축 구조는 아무 목적도 띠고 있지 않았다. 그곳에는 막다른 복도들, 결코 닿을 수 없는 높은 창문들, 독방이나 텅 빈 구멍으로 이끄는 웅장하고 화려한 문들, 층계와 난간이 아래쪽으로 매달려 거꾸로 된 믿을 수 없는 계단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거대한 벽의 한쪽 구석에 가볍게 걸려 있는 또 다른 계단은 두세 번 빙빙 돌다가 원형 지붕의 상단에 드리운 어둠 속에서, 그 어느 곳에도 이르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었다. ”
『알레프』 죽지 않는 사람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알레프'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1권. 20세기 현대 문학 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대표하는 열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 중남미 문학의 권위자 송병선 교수가 새롭게 내놓은 이번 번역은 작가 특유의 메마르고 절제된 문체를 생생하게 살리고 의도적으로 사용된 추리, 환상 문학 등의 장르 문법을 존중하여,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한 '21세기의 보르헤스'를 지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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