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박물관 덕후로서 다년간 보고 읽은 것들이 좀 되기때문에 장맥주님이 제기하신 의문에 어설프게나마 뇌피셜 가미된 답변을 해보겠습니다. (뇌과학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분들께 죄송-)
1. 미소를 표현하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 양정무의 <난처한 미술이야기> 2권 (그리스 미술 입문용으로 추천. 깊이를 원하신다면 다른 책으로)에 따르면, 그리스 고전기 바로 앞 시대, “선-고전기”에 그리스 미술은 전성기를 누렸고, 그때 미술가들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기술이 엄청 발전하고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100여년동안 쿠로스 (그리스 청년 입상)가 정말 확확 바뀝니다. 조각가들이 “나 이것도 가능해”라고 자랑질 펼치는 수준. 그 수많은 다양한 시도들 중 아르카익 미소도 있었구요. 하지만 “미소를 표현하겠어”라는 정확한 의도가 있었는지는 현재의 우리가 알 길이…
2. 그리스 고전기와 헬레니즘 조각에서 미소가 사라진 이유-
위의 책에서 강조하던 것 중 하나가 그리스 미술 전성기가 민주주의가 시작되기 전인 참주정 시기라는 거였어요. 민주주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싹트기 전에 이미 예술에선 에너지가 충만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후에 조각상들이 파괴되고 수준이 떨어지는 모습을 (밋밋하거나 단순하게) 보이는 데, 양정무 교수는 원인으로 페르시아 전쟁을 언급합니다. 저는 스토아 학파의 득세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그리스 조각 대부분은 로마에서 복제한 거라고.
3. 석굴암/반가사유상은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았나 - 석굴암이 지어진 시기와 혜초가 인도에 다녀와 왕오천축전국전을 쓴 시기가 (8세기) 거의 비슷해요. 하지만 당나라 유학생 혜초는 정말 완전 예외적인 경우이고, 인도 방문 후 신라에 되돌아오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인도에 가기 시작한 것은 빨리 잡아야 9세기 이후가 아닐까 합니다. 또, 교토 어느 유적지에서 오디오 가이드 설명을 듣다가, 일본의 경우 10세기 전후로 인도를 다녀온 승려 도공에 의해 실물과 비슷한 형태의 사자가 조각된 걸 알게 되었어요. 종합하자면, 9-10세기 이전 한국, 일본 미술이 간다라 영향을 “직접” 받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아, 훨씬 이전 김수로왕과 결혼한 인도의 허황후를 문화교류의 예로 반박하면 유구무언^^;;)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인도 및 이슬람과 활발히 교류하던 당나라와는 우리도 교류가 많았으니, 당나라를 통해 간다라 미술을 “간접적으로” 접했을 거라 추측합니다 (어느 정도 중국화된 간다라가 아닐까 싶음). 그래서 제가 앞 포스트 플로우에 간다라 미술 —> (중국)—> 한국, 일본, 이렇게 중국을 가운데 넣었어요.

난처한 미술 이야기 2 -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 : 인간, 세상의 중심에 서다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은 물론 미술에 담긴 역사, 정치, 경제, 예술의 흐름을 쉽고 재미있게, 또한 깊이 있게 다룬 책이다. 2권은 지금까지 서구 사회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이 어떻게 성장하여 꽃을 피웠는지 그 과정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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