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4.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D-29
(1) 고대에는 파란색이 없었다? — 저는 ‘고대에는 파란색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는 주장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고대 국가에서 파란색 개념이나 단어가 없었고, 가장 늦게 나타난 색상 단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호머의 그리스 세계보다 훨씬 앞선 시기인 고대 이집트에서도 파란색 계열을 사용했었고, 더 결정적으로는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에서는 청색돌로 성벽을 두르고 그 유명한 이슈타르문까지 만들었거든요 (첨부 사진). 오히려 푸르른 에게해와 하늘이 곁에 있던 그리스인들이 파란색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게 너무 이상하죠. (2)파란색 관련 단어가 없는 아프리카 부족 — 나미비아 힘바족 (리사 배럿 연구팀이 찾아갔던 그 부족) 연구인 것 같습니다. 파란색 계열 단어가 없고 연두-녹색계열 단어가 많은 힘바족은 첨부한 사진 중 오른쪽 원에서 파란색을 구분하지 못하고 왼쪽 원에서 차이나는 색상을 더 잘 찾아냈다고 합니다. 대조군인 미국인 그룹은 당연히 오른쪽 원에서 파란색을 더 쉽게 고르고 왼쪽 원에서는 버버벅 (저도 왼쪽 원에서 버버벅) (3) 단어가 없으면 인식하지 못한다? — 이게 현재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언어학자, 인류학자, 문헌학자, 고전학자, 역사학자, 문화심리학자 등이 참전 중. 말씀하신 사피어-워프 가설 중 언어가 인식을 “결정”한다는 관점 (strong version)은 대체로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논쟁 중인 것은 언어가 인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가” (혹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가, 하는 weak version)이고, 읽어 보진 못했지만 위에 꽂아두신 기 도이처의 책도 이런 주장이라고 짐작됩니다.
와, 계속 이런 좋은 정보들 감사합니다. 그 시기 바빌론이나 이집트는 그리스보다 훨씬 더 선진 문명이었을 테니... 고대에는 문화 전파가 어려워 지역 간에 그런 문화 격차가 더 크지 않았을까요? 뭐 동북아시아만 봐도 한반도에서는 겨우 부족 국가가 생겨날 무렵에 중국 대륙에서는 공자가 관료로 성공하지 못해 좌절하고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그 바빌론이나 이집트도 초기에는 파란색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었을 수도 있고요. 혹은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오래 전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이슈타르의 문이 지어진 게 대강 기원전 6세기이고, 일반적으로는 호메로스를 기원전 8세기 사람으로 추정하는데, 바로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의 저자 애덤 니컬슨은 두 서사시가 그보다 훨씬 앞서 기원전 2000년 전 전후에 지어졌을 거라고 주장합니다(이 책 정말 재미있습니다). 파란색을 알고 그 색을 쓰면서도 파란색이라는 단어가 없는 상황도 상상해볼 수 있을까요? 그 색을 ‘짙은 녹색’이라고 여겼다는 식으로요. 이런 비유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썸’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도 젊은 남녀들은 썸을 많이 탔거든요. 그 관계에 대한 인식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에 ‘사랑과 우정 사이’ 같은 노래가 나왔을 때 ‘그게 무슨 사이야?’ 하며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피어-워프 가설이 옳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언어가 인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면 ‘썸’이라는 말이 나온 뒤 썸 타는 남녀가 급격히 증가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재미있는 생각이 드네요. ^^ 개인적으로는 언어와 인식이 서로 영향은 주고받겠지만 그렇다고 언어순화운동을 벌여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언어학에 대해 아는 건 없습니다만...
참, 그리고 와인빛 바다 이야기는 안 나옵니다만 호머가 언제 살았느냐, 한 명이나 여러 명이냐, 서사시가 어떻게 구전되는 거냐 등등 관련해서 이 책 아주 재미있습니다. 색상하고 상관없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 바다는 죽음의 상징이었다고 하네요.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 문학의 기원, 문명의 효시, 인생의 통찰을 찾아 떠나는 지적 여행10여 년간 호메로스에 얽힌 수수께끼와 의미를 밝히기 위해 온갖 관련 서적을 섭렵하고 유럽 전역을 탐사한 끝에 완성한 책이다. 저자는 '호메로스는 어디에서 왔으며, 왜 호메로스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문학이 탄생하고 문화가 태동한 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앗. 이 책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만하고 있었는데 추천 반갑습니다. 말 나온 김에 다음에 읽은 책으로 찜해놔야 겠네요.
이 책 완전 재미있겠는데요? 이렇게 많은 호메로스의 책을 알고 계시다니 혹시 다음 소설? — 개인적으로 문헌 기록이 부재한 역사의 빈 공간을 그린 소설, 진짜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요네자와 호노부의 <흑뢰성>
저도 좋아합니다. 차무진 작가님의 "여우의 계절" 추천합니다! ^^
여우의 계절 - 귀주대첩, 속이는 자들의 얼굴고려가 외세의 조력 없이 가장 완벽하고 극적인 승리를 거둔 유일한 전투인 귀주대첩이 벌어지기까지의 스무 날 동안 구주성(귀주성) 주변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을 그린다.
흥미로워보여서 검색했더니 책이 절판이래요 엉엉.
아이고, 전자책도 없네요. 21세기북스가 전자책 활발하게 만드는 출판사인데... ㅠ.ㅠ
저는 이 책 영어 전자책으로 갖고 있었네요. 제목이 Through the Language Glass (거울나라의 앨리스 패러디)여서 재미있어 보여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사놓고 썩혀뒀다는;; 읽어봐야겠네요.
일반화, 범주화는 지적인 작업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사고 행위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과정에서 대상의 여러 가지 개성을 생략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목적 하에 행하는 추상적인 작업과, 대상이 범주화되지 않는 여러 가지 개성을 가진 존재임을 계속 의식하는 게 저는 양립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이영희는 한국인일 수도 있고 여성일 수도 있고 비장애인일 수도 있고, 동시에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개성을 존중 받아야 하는 존재이고요. 일반화와 범주화 자체를 ‘폭력적이다’, ‘대상을 납작하게 만든다’라고 몰아붙이는 게 유행이 된 거 같은데, 허울 좋은 수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아무 것도 안 해도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유행이기는 하지요.
왠지 @장맥주 님도 '꼰대' 소리 좀 들으시겠는데요? (놀리는 것 아님. 꼰대 폄훼 아님.)
21세기가 시작하면서부터 들었던 거 같습니다. ^^
네 지능이 만들어지기에 필요한 과정이 범주화, 일반화이긴 한데... 개성이나 기타 미세한 granularity를 놓치며 지나치게 단순화시킬 수도 있죠. 양립가능하긴 하나 실제로도 많은 오류나 왜곡, 편견이 만들어지기도 하구요. 아마 그래서 일반화와 범주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부정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폭력적이거나 악용될 가능성 외에 부정확할 가능성을 일단 무시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우리가 Bayesian calculation에 의해 통계적인 사고를 한다고 해도 그 확률적인 basis 자체가 오류일 가능성 또한 무시 못하니.. 우리의 확신이나 범주화나 예측이나 결국 끊임없이 실제 현실에 비교하고 수정하고 업데이트할 필요도 있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우리의 사고가 이런 것을 받아들이되 이런 사고가 계산 오류도 편견도 생길 수 있는 생물인 것을 잊지 말고 경각심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네, 동의합니다. 범주화는 여러 가지 오류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사고 도구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사고 도구를 버리거나 미워할 게 아니라, 범주화를 하는 훈련과 함께 범주화의 오류와 부작용을 늘 인식하고 경계하는 훈련도 받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저는 최근에 책을 쓰느라 바둑 프로기사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한 기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인간 기사들이 배운 바둑의 정석과 격언들이 어떤 일반화의 결과인데, 그런 일반화 과정에서 버린 작은 요소들 때문에 인간의 바둑이 어느 선을 넘지 못한다고요. 그런데 인공지능은 보다 정밀하게 패턴 인식을 하니 정석 책을 보고 배운 인간 바둑기사 눈에는 말도 안 되는 수이지만 실전에서 강한 수를 둔다는 게 그 기사님의 분석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사고방식이 다르거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ㅠㅠ 범주화 일반화 과정이 덜 사회화 되어서 일까요... 실제현실에 끊임없이 비교하기 위해서는 감각자극에 의해 만들어지는 확인이나 범주화에 대해 의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현실에서 진짜 가능한 것일가요.
앗;; 저도 좀 주변 눈치안보는 (아니 실은 눈치없는;;) INTJ로 만날 울 공감능력 뛰어난 딸이 '엄마, T야?'하고 되묻는데;;; 제 범주화에 의심을 좀 갖는 경각심이 필요한가봐요;;;
ㅋㅋㅋㅋㅋ . 티이~~~
그리고 이번 부분 그리고 다음 부분도 확실히 부모로서 자녀 양육에서 참고해야할 부분이 많네요. 남편에게도 얘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남편은 독서를 전혀 안 하지만;;; 내가 읽은 뇌과학 책이나 논문 내용 요약은 듣기 좋아하고 저희 애들 키울 때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5장에서 리사 배럿은 뇌가 신속하고 자동적으로 범주화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아기들도 감정에 대한 개념체계를 형성해나가며 그 체계 안에 범주화 활동을 한다고 제시합니다. 리사 배럿은 5장에서만 이 “범주화”라는 단어를 총 47회 언급했습니다. 모두가 “신속하고 자동적으로 범주화”한다고 이렇게 쉽게 일반화 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범주화” 혹은 “패턴 인식”이라는 것은 지극히 서구 중심적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심리학자 리차드 니스벳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서양인이 독립적인 존재로서 사물과 사물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패턴)을 발견해서 범주화하고 분리, 분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면, 동양인은 상호의존적인 사회에 살면서 세상을 모두 연결된 존재로 인식하며 관계 중심으로 이해한다는 게 니스벳 이론의 핵심입니다. 동양인, 특히 동아시아인은 “범주화”에 서양인처럼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양인이 서양인처럼 감정을 잘/자주 만들어내지 못할까요? 비록 동, 서양인 뇌에서 비슷한 뇌활동이 벌어진다해도, 모두 뭉뚱그려서 “범주화”라고 이름 붙이고 일반화시키는 것이 맞는 지 모르겠습니다. 동양인에게 그 뇌활동은 범주화가 아니라 “연결“ ”결합“ 또는 다른 무엇일텐데요. 리처드 니스벳의 연구는 EBS 여러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되었고, 그의 연구는 우리나라 예능에서도 몇 번 소개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생각의 지도>를 정말 흥미롭게 읽었고, 논문도 몇 개 찾아봤구요. https://m.youtube.com/watch?v=f6H5SUCLUA8&pp=ygUh64-Z7ISc7JaRIOyCrOqzoOuwqeyLnSDssKjsnbQgZWJz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동.서 사고방식의 차이를 논증하는 책. 문화심리학자인 저자는 여타 학문에서는 인지하고 있지만 심리학적으로 생소한 동.서양인들의 심리적 차이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 학문의 측면에서 이론화했다. 동양은 전체를 종합하는 반면 서양은 분석하는 경향을 보이고, 동양은 경험을 중시한다면 서양은 논리를 중시한다.
그런데.. 서양인이 좀더 유사성에 의해 범주화하는 반면 동양인이 좀더 사회적 연관성에 의해 범주화를 하는 것도 결국 동양인도 그 범주화의 기준이 다를 뿐 범주화는 맞지 않을까요? 안그래도 우리 말의 친인척 관계나 호칭 등의 복잡함에서 영어에서는 그냥 cousin, uncle, aunt라고 하는데 우리는 사촌 오촌 육촌 팔촌까지 따지고 이모 고모 숙모 외숙모 등 참 복잡하다고 생각해왔는데..(전 아직도 그 개념들을 헷갈리는;;) 그리고 다양성이 표준인 것은 자연 속의 이야기인데 인간은 그 다양성이 표준인 실제 자연에 반해 자기가 구성하고 범주화한 '내면에서 구성된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즉 인간의 인식 속에서는 다양성을 줄이고 단순화하려는 범주화가 내재된 게 아닐까요? 공부할 때도 뭔가 기억하려고 할 때도 우리는 대부분 비슷한 것끼리 묶고 분류하고 단순화하고 정리하는 것처럼 인간의 기억 및 인식 능력에 범주화는 지능을 위해 내재된 능력이 맞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게 도덕적으로 옳거나 실제적으로 세상을 정확히 반영하지는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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