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4.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D-29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런 불가지론을 얼마나 엄격하게 견지해야 하는지는 조금 헷갈립니다. 사실 제가 아닌 다른 인간에 대해서도 그 사람들이 고통을 정말로 느끼는지 아닌지는 엄밀히 말하면 저로서는 유추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내가 고통을 받을 때 아프다고 말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니까 지금 아프다고 말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저 사람도 고통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할 따름이죠. 데카르트도 동물의 비명소리는 분명 들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은 움직이는 기계라고 여겼고, 같은 주장을 다른 인간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죠. 그 주장을 물리치는 게 충분히 합리적이지만 ‘통 속의 뇌’ 문제와 마찬가지로 아주 완벽하게 반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는 이런 종류의 불가지론을 아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할 거 같은데 타인을 대할 때와 동물을 대할 때 같은 수준으로 적용해야 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아 ㅠㅠ 안그래도 데카르트 읽을 때 그 점이 좀 답답했죠.. 실은 생리학 실험할 때 저도 그런 점이 너무 괴로웠어요(토끼가 소리지를 리 없는데 죄책감으로 토끼의 비명이 들리는 듯한 환청이;;) 그래서 그때도 아프다는 핑계로 땡땡이 치고 다행히 대학원 실험은 세균 등 미생물을 갖고 해서 이런 난관을 극복했지만 아마 비글이나 토끼 양 등을 갖고 실험했다면 대학원 진학 포기했을지도요;; 타인의 마음을 정확히 몰라도 상상할 수 있는 게 인간인 것 같아요..
아니요. 오히려 역으로 생각할 수도 있죠. (이건 사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도 유사한데요.) 지금까지 동물권을 둘러싼 논의는 인간과 얼마나 가까운지, 인간과 얼마나 교감할 수 있는지(인간과 감정을 얼마나 공유할 수 있는지) 등을 놓고서 진행되었죠. 그런데 동물권을 둘러싼 논의가 단지 반려동물이나 인간과 유전적 유사도가 높은 영장류나 포유류 보호를 넘어서려면 이렇게 인간을 중심에 놓고서 동물로 공감을 확장하려는 논의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배럿이 인간과 동물의 감정을 놓고서 전개하는 논리는 상당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 맞습니다. 인간이 공감을 느끼느냐에 따라 동물의 권리가 생기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건 아닐 테니까요. 다만 동물권이라는 개념의 대중적 호소력은 영향을 받기는 할 거 같아요. 연민에 호소하는 캠페인이 많으니까요. ‘그 연민은 근거가 불확실하답니다, 터무니없는 의인화일 수도 있습니다’라는 지적이 사람들의 마음을 식게 할 거 같습니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벽에 낙서하는 아이들에게 “벽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너무 아프다고 할 거야!”라고 훈계했던 게 기억납니다. 어린 저는 ‘벽은 그런 거 아파하지 않을 텐데?’ 하고 혼자 생각했었죠.) 12장이 점점 더 기다려지네요!
흥미롭게도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행복할 때 자진해서 미소를 짓지 않은 듯하다.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에 '미소'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미소짓기는 중세에 등장했으며, 이를 다 드러낸 채 크게 웃는 것은 치과의술이 더 저렴해지고 일반화된 18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유행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114 ch.3 보편적 감정의 신화,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최호영 옮김
이 부분이 흥미롭기도 하고 정말 그런가 싶기도 했어요. 고대 그리스 조각 중에 미소 지은 얼굴을 표현한 조각들은 꽤 있거든요. 아예 ‘아르카익 스마일’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입니다. 이게 간다라 미술을 거쳐 반가사유상의 신비로운 미소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안 그래도 이걸 제가 제대로 확인하기엔 라틴어 실력이 부족하고 다른 라틴어 전문가가 반박하겠지.. 했는데 Roland Mayer 교수님이 2017년에 쓴 글 “The Roman Smile”에서 이를 반박하네요. 스페인어에서 risa(laugh)와 sonrisa (smile)이 있고 대소와 미소가 있듯이 라틴어에도 rideo와 subrideo가 있었다네요. 그리스어는 확실히 있어요, 그것도 어원이 다른: laugh, γελαω, 그리고 smile, μειδιαω,
오! 이건 우리 저자 선생님께 전달해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
저도 놀랐습니다. 게다가 아들에게 쓴 편지에는 엄청 근엄한 척 진지충이더니 기타 지인들에 의하면 Cicero가 항상 웃음 가득한 캐릭터였다니;; (이런 배신이;;)
그런데, 엄청 진지한 사람이 조금만 웃겨도 대박으로 웃기게 느껴진다는 거 아시죠..ㅋㅋㅋ
혹시 키케로의 알려지지 않은 일면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조심스럽게 메리 비어드의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도 권해드립니다. (조심스럽게 권하는 이유는 이 책이 그렇게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은 아니어서입니다.) 로마를 다룬 책 치고는 특이하게 카이사르 이야기는 많지 않고 전반부 주인공은 키케로, 후반부 주인공은 아우구스투스입니다. 저자는 아우구스투스도 그리 좋게 보지는 않는데 키케로에 대해서는 거의 내내 ‘치사한 위선자’ 정도로 깎아내립니다.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에서 메리 비어드는 우리 스스로 로마와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다양한 제도와 원칙들이 사실은 얼마나 다른 전제와 맥락 속에서 시작되고 변화된 것인지를 추적한다.
ㅋㅋㅋ 안그래도 키케로의 글 읽으면 대부분 케사르 등 기타 정치인들 뒷담화가 너무 많아서 이 사람 성격도 만만치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메리 비어드는 케사르 팬이었을지도요..;;
그런 것 치고는 신기할 정도로 카이사르 이야기가 적더라고요. 다 읽고 키케로는 쪼잔하고 치사했구나, 아우구스투스는 속이 시꺼먼데 똑똑했구나 그런 감상이 남았어요. ^^;;;
@borumis @YG @장맥주 정확한 게 아니라 좀 조심스럽긴 한데요. 어디선가 읽은 바로는, old latin이랑 classical latin이랑은 약간 다르다고 했던 거 같구요. 그리스어 부분도, 리사 배럿은 고대 그리스어를 말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 원정에서 발견한 로제타 석에 쓰여진 그 고대 그리스어.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하긴 하네요.
오 이것 또한 새로운 지식이네요! old latin과 classical latin의 구분도 있군요!
Old Latin 과 Classic Latin 에 대해서 조금 더 앍고 싶으시다면 Blackwell's Companion to the Latin Language 챕터 14장 참고해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
앗 전 그 책 없는데..^^;; 혹시 새벽서가님이 보셨다면 여기서 smile 이란 단어가 Old Latin/Classic Latin 중 어느 것에서 썼고 어느 쪽에서 없던 걸까요? 저는 보통 문법이나 철자 정도만 차이 있는 줄 알았는데 단어도 이렇게 다른가보네요. 보통 우리가 Cicero나 Virgil에서 읽는 라틴어는 클래식 라틴일 것 같은데.. 메리 비어드가 말한 건 어느 걸지 모르겠네요.
음.. “아르카익 스마일”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던 입꼬리 당겨짐, 양 볼의 근육 긴장 같은 것을 후대의 미술사가들이 이름 붙인 거잖아요. 마치 “백제의 고졸한 미소”를 후대 사람들이 이름 붙였듯이. 그런데 과연 고대 그리스 조각상들은 정말로 미소 짓고 있었던 것일까란 질문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를 두고도 과연 모나리자가 미소 짓고 있었을까란 의구심이 생겨나듯이. 아르카익 스마일이나 모나리자의 미소는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덧씌워 네이밍한 게 아닐까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 중에, 아르카익 미소 —> 헬레니즘 —>간다라 미술 —>(중국) —> 한국, 일본 : 이 경로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요?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려고 불상들을 시대별로 늘어놓고 전시하는 박물관도 있고, 오디오 가이드에 그런 것들 설명해주는 박물관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잘 모릅니다. ^^;;; 분명히 그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거 같고요. 그래도 돌에 그냥 평평한 입술을 조각하는 것보다 미소 지은 입술을 조각하는 게 더 어려웠을 거 같은데 미소 지은 입술을 조각한 건 ‘미소를 표현하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외한 수준에서 드네요. 헬레니즘→간다라→한국, 일본까지는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학교에서 배웠던 거 같은데 아르카익→(그리스 고전기)→헬레니즘은 잘 몰라서 저렇게 적었어요. 반가사유상을 다룬 칼럼 한두 곳에서 아르카익 스마일을 언급한 내용을 본 게 전부였어요. 유산이 당연히 있기는 있었겠지만... 만약 아르카익→(그리스 고전기)→헬레니즘→간다라→한국, 일본이 맞다면 왜 그리스 고전기와 헬레니즘 조각에서는 미소가 보이지 않다가 이후에 다시 나타났을까 하는 의문도 좀 들어요. 역시 문외한의 생각이었습니다. ^^;;;
문득 궁금해져서 웹서핑하다가 이런 글도 찾았습니다. 간다라 미술 전문가인 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강연 일부입니다.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 《저를 제일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이 석굴암 불상이 간다라 영향을 받았느냐는 겁니다. 교과서에 그렇게 많이 쓰여있죠. 하지만 거기에는 무리한 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 얼굴이니까 비슷해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비교해 보면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간다라 미술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심리 이면에는 우리가 간다라 미술을 훌륭하다고 여기는 정서가 심리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석굴암 불상의 높은 가치를 적절히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원류가 간다라에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모든 불상의 뿌리가 간다라에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양식으로 말하자면 석굴암 불상은 오히려 당나라 불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당시에는 살지고 푸짐한 게 복스럽고 원만한 모습이라 생각했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66/0000276700?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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