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감는 새 연대기

D-29
직장생활 하며 열받아도 집에 와서 책상에 앉아 책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집중이 그럴 땐 더 잘 되어 한 3시간 읽으면 마음이 다시 가라앉는다. 내 소중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밤하늘의 별 한겨울 눈 온 날, TV도 없고 전기도 없던 시절에 아이들이 겨울밤에 나와 뛰논다. 등잔불도 아까워 집집이 불을 꺼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고 빛나는 거라곤 밤하늘의 별과 땅에 쌓인 흰 눈뿐. 하늘엔 그야말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대로 별이 너무나 많이 밤하늘에 모여 있어 전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아이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 저 멀리 아득한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신비한 별똥별, 엄동설한 땅에 쌓인, 눈이 시릴 정도의 희디흰 눈, 살아 숨 쉬는 그 세계 사이에서 우리는 그것들과 일체가 되어 뛰놀며 가슴이 벅차올라 그야말로 그 황홀함에 이효석이 말한 것처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보다 더한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세계가 또 있을까? 나는 그때, 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과 동화되었다. 인터넷 국어사전에서 ‘천지인’을 치면 예문으로 이렇게 나온다. “천지인이 하나가 되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자연의 질서이다.” 그 모습은 지금도 가만 생각하면 장관이다. 그러나 이젠 그 모습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지구가 미세먼지와 자동차 매연으로 오염됐고, 안 그런 곳에 가더라도 이젠 눈이 침침해 그 장관을 절대 죽기 전엔 다시 못 보고 이 인생은 종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릴 적 한 번이라도 본 게 어디야!”하고 스스로 위로할 뿐이다. 이런 밤하늘의 별은 사람의 마음을 마냥 들뜨게 하고 동시에 푸근하게 하는 걸 알기에 지금 아이들은 눈이 좋아도 볼 수 없어 내가 생각하기엔 불행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있었다고 하는 비교 대상이 사라져 버린 지금, 아마 제대로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분명 아이들에게 앞으로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인간의 한 조각 삶에, 풍성하고 신비롭고 황홀한 경험들이 사라져 가는 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루속히 기후 위기를 여기서 멈춰야 한다. 개발과 성장은 우리의 삶과 지구를 멍들게 하고, 보전(Conservation)과 재생(Recycle)만이 그 한겨울 밤의 별을 다시 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화가 난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화를 낸다. 협상할 때 그래서 밥을 먹은 후가 낫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배가 고프면 이젠 식량이 바닥나 나는 앞으로 위험에 처할 것이고 죽을 수도 있다는, 그리고 적과의 싸움에서도 승산이 줄어든다는, 그런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작용해 예민하게 구는 것이리라. 더 이기적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내 배가 고프고 이제 버틸 시간이 줄어들고 해서 남의 사정 같은 건 봐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코가 석 자인 것이다.
어느 연예인이 한 말로 들었는데, 일본은 이상한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그건 부러운 일이다. 그만큼 사회에서 그런 걸 허용하니까 그렇게 자유롭게 이상한 것이다. 이런 것에서도 우리는 일본에 뒤쳐져 있다. 생각의 자유로움에서.
나는 중앙, 한겨레, 한국, 경향신문을 매일 보는데 어제 투표 다음날이라 내가 매일 보는 신문이 다 팔리고 없었다. 나는 비판한다. 평소에 좀 신문 좀 읽어라. 반짝하고 읽으니까 문해력도 떨어지고 나같이 꾸준히 읽는 사람의 흐름만 꺾게된다. 하여간 책을 국민이 너무 안 읽어 큰일이다. 그리고 사실 또 깊이 있는 신문의 논평은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며칠 시간을 둬야 나오고 진짜 그게 제대로 된 논평인데 그 다음날에 갔더니 또 신문은 하나도 안 팔리고 있다. 나는 역시 사람들은 글자를 안 좋아함을 새삼 느끼는 날이었다.
글을 쓸 때 그냥 전체 줄거리와는 아무 상관 없이 그냥 지금 생각나는 것을 쭉 쓸 수도 있다. 이렇게 쓰면 뭔가 리얼리티가 느껴진다. 마치 더 심오한 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관련성이 별로 없을수록 더 그런 것 같다.
하루키 소설에서 섹스 장면을 보면 꼭 일본 AV에서 하는 걸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거 표절 아닌가.
이미 잡은 물고기처럼 내 것에 아무 흥분도 못 느끼는 것 같은 것을 여자가 갖고 있는 거 아닌가. 남의 것이, 훔친 사과가 더 맛있듯이 더 흥분되는 그런 거.
일본인처럼 섹스에 대해 많이 말하고 그것을 즐기는 국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인에게 누를 끼치다 폐가 되다, 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고 심지어는 도와주면 고맙다고 하는 대신 나를 당신이 돕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이런 누나 폐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게 아닐까. 우선 자기 입장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면 그 소문이 나서 왕따를 당할 수 있으니 미리 난 당신에게 어떤 폐도 끼치지 않았다고 미리 선언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일본은 지진과 태풍이 많다. 비가 한번 오면 거의 쏟아붓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자연 재해가 많으므로 피해를 당하는 것을 엄청 일단은 싫어하는데 타인, 사람까지 나에게 그러면 너무 세상 살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 자연재해도 심한데 타인에게 손해가 안 가게 서로 조심하는 것 같다.
후반전엔 정리를 사는 게 고통을 처리하다가 끝나는 것 같다. 뭐 하나 속 시원하게 마무리되는 게 없는 것 같다. 원래 인생이 그런 거라고 해도 중간 정리라도 안 하면 고통만 더 깊어지고 행복은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죽으면 끝이지만 사는 동안만이라도 속이라도 시원해야 하지 않겠나. 정리도 안 되고 혼란만 거듭하다 결국 깔끔하게 매듭도 못 짓고, 생은 흐지부지 어느덧 마감 직전에 와 있다. 생이 반복되고 계속되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끝나고 종점이 있으니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그거라도 안 하면 인생이 너무 허무한 것 같아서다. 그래 후반생엔 정리하는 작업을 일부러라도 해야 할 것 같다. 혼란과 어지러움을 생각이나 글로 정리를 꾸준히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음은 어차피 막지 못하니까 그냥 나름대로 정리도 못 하고 끝나버려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어 정리가 필요하고 그래야 뭔가 보람 있고 의미가 좀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후반전에 돌입하면 정리하는 작업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실제 현실에선 잘 없을 것 같지만 하루키는 여자들이 성적인 쾌감의 끝을 경험하는 게 많다. 더 이상 끝이 없을 것 같은 오르가슴을 몇번이나 느끼며 한 인간이 뭔가 이전과는 확 달라지는 그런. 그들은 그것을 하고 무엇을 얻었나 계속 소설을 읽어보자.
주인공의 고뇌 고리대금업에서 잉태된 천민자본주의 세계에서 기형적으로 배출된 사생아(Bastard)와 그 구조가 복잡해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까지 모호하다. 제대로 된 적이 없다. 그들의 모습은 선명하지 않다. 우리가 처단하고 나면 그들은 그 구조의 곁가지에 불과했다. 꼭대기와 몸통을 시원하게 깨부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그저 시킴을 당한 하수인에 불과했고, 뒤치다꺼리와 쓰레기나 치우는 꼬리에 지나지 않았다. 처단해야 마땅한데 그 실체가 모호하다. 이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근간을 쥐어짜 완전히 박멸하는 것을 궁리하는, 고뇌하는 인간들이 몸부림치며 오늘날의 소설에 등장한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피라미드 그 꼭대기에 있는 걸 잘라내 밑으로 굴리면서 그 구조까지 붕괴시키는 것이다. 현대인의 고뇌가 이렇게 모호한 적과 악을 겨냥해 그들을 부수고 혹시나 나도 그 부류들의 아류는 아닌지 생각 없는 나치의 아이히만처럼 그들에게 협조하고 참여하고 있는, 한 일원은 아닌지 자기반성을 끝없이 하는 게 오늘날 소설 주인공들의 주된 역할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고뇌(苦惱) 끝에 얻는 것도 분명 없지 않다. 그들을 찾아내 처단하는 끝없는 작업을 통해 자신들도 본래의 자신을 찾고 그들에게 잠시 물들었던 것을 반성하며 자신의 본래 역할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것이었다. 그 악의 구조(Axis of Evil)를 꿰뚫고, 거기서의 자신의 역할을 선명하게 분할 할 줄 알게 되었다. 결코 작은 수확이 아니었다. 그 작업은 또한 본디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한 순수하고도 위대하고 운명적인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오늘도 자신의 역할에 아주 충실하게 임하고 있다. 그건, 그 꼭대기(Monstrous Beast)를 스스로 사라지게 하고, 그 얼개를 흐트러뜨리고 새로 짜는 신성한(Sacred) 작업이다.
대개는 오빠에겐 이해를 못 받고 공감을 못 받는다. 언니에게 주로 이해와 공감을 받고 서로 말이 통하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여자들에게 있어 남자들은 주로 삼촌들에게 이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작가가 아끼는 인물(5) 인생엔 몇 가지 진리가 있는 것 같다. 삶은 고정된 게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것. 자기 인생이 운명지어지는 게 싫으면서도 불안해서 그걸 알고 싶어 하는 모순. 그중에서도 인간에겐 그가 겪은 것이나 자기 기질이나 그런 것이 작용해 각자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은 이걸 거들떠도 안 본다. 그는 껍데기이고 생명이 없는 돌멩이다. 그런데 남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바로 상대도 그걸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자는 내게 돌멩이 같은 존재다. 이러니 인간이 얼마나 상대적인가. 이처럼 인간은 오직 자기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는 있는데 남은 대개 자기와는 다르니까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 나는 그의 생각과 행동을 대개는 껍데기라고 생각해 버린다. 요즘 세상에 진영이 갈려 더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인간 각자는 자기만 중요하지, 자기만 알맹이고 남은 다 돌멩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작가는 그나마 아끼는 것 같다. 실은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절대적인 건 절대로 없으니까 그건 고쳐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시작은 그 잘못을 자기가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부터 시작이니까 적어도 이걸 아는 사람을 작가는 아끼는 것 같다. 그걸 알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것이다. 자기만 알맹이고, 남은 껍데기에 불과한. 작가는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사람을 아낀다. 우리는 대개 누가 뭘 하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한다. 자기가 봐서 그게 못마땅한 것이다. 모두 전문가들이다. 물론 그 상대가 상식이나 원칙대로 안 하고 엉뚱한 짓을 하면 훈수를 둘 수는 있다. 훈수라는 것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정도껏 해야 한다. 축구에 대해 훈수를 두지만, 사실 그는 현장에서 뛰는 축구선수보다 축구를 잘하지도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한다. 약자를 돕는 일에 현장에 나가서 시위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특기인 글로 약자를 돕는 글을 계속 끝없이 써나가면 그도 나름대로 약자를 돕는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업무분장이 필요한 것이다. 실은 그가 내향적이라 현장에 나가 글은 안 쓰고 시위만 주로 하면 강자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을 그 때문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제대로 못 쓸 수도 있다. 그의 주 업무는 글쓰기이지 시위가 되어선 안 된다. 탱크를 모는 육군이 공군의 전투기를 주로 몰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나? 주특기대로 싸워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특기를 십분 발휘하는 게, 즉 자기 본래 역할에 충실한 게 더 잘 그 목적 달성에 부합할 수 있다. 이렇게 작가는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이런 안배를 잘하는 관리자를 아낀다.
홍상수 영화에서 강간을 당해 몸이 더렵혀진 여자를 자기와 섹스를 함으로써 깨끗하게 씻어주고 정화시켜준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마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일 것이다. 여자가 진짜 남자의 미래인가. 그 말은 남자는 여자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보수 언론은 야비하다. 나는 주말에도 신문을 본다. 텍스트 맹신자이기 때문이다. 토요일자 신문을 보는 사람은 더 적지만. 그런데 보수 언론들은 평일엔 정권에 우호적이다가도 토요일자엔 약간 정권 비판적인 글을 싣는다. 대놓고는 못하고 숨어도 욕을 하는 것이다. 하여간 정권의 힘으로 커온 보수 꼴통 언론답다. 야비하고 비열하다.
알다가도 모를 여자들 마른 여자는 옷을 입었을 때는 거의 아무 옷이나 어울린다. 그래서 여자들이 그렇게 죽어라 몸을 말리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들은 대개 11자여서 볼륨이 없다. 벗은 모습은 못 봐줄 정도다. 너무 밋밋하다. 그걸 보면 젓가락이 연상된다. 그러나 너무 볼륨 있는 여자들은 어울리는 옷이 한정되어 있다. 주로 콜라병 모양으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원피스나 청바지 같은 게 어울리는데 이들은 차라리 벗은 게 입은 것보다 나을 때가 더 많다. 마른 여자는 옷을 입은 게 낫고, 볼륨 있는 여자는 옷을 벗은 게 더 나은 것 같다. 여자 중엔 이런 여자도 있다. 여리여리하게 생겼다. 금방 부러질 것 같고,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으면서, 실제 걸어갈 때는 약간 공중에서 떠 가는 것 같다. 하늘거리는 옷이 다리를 가려 그렇다. 실제 바람에 날아가는 옷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강단이 있다. 의외로 성깔이 세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물리적인 볼륨이라는 게 있으니까 윤곽이 흐릿하고 골격이 가늘다. 슬렌더하다. 그런 여자들을 보면, 나는 바로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여자가 죽어 땅에 그대로 묵히면 뼈가 가늘고 연해 금방 땅의 흙이 되겠지, 하고.
작가가 아끼는 인물(3) 작가가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물론 남에게 좋은 사람이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겠지만, 그보다도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을, 가장 으뜸으로 아끼는 것 같다. 자기 잣대로 상대를 재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그를 존중한다. 그러나 그게 절대 쉬운 게 아니다. 누구나 편견(Prejudice)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기준으로 남을 평가해 버린다. 그 사람 본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자기 잣대로 그를 진단해 버린다. 사람은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없으므로 그렇게 되면 상대는 고칠 게 당연히 많은 사람이 되고 만다. 상대는 자기 진가를 잃고 그걸 발휘하지 못한다. 그의 타고난 기질(Nature)이 죽는다. 그렇게 되니 그런 재단은 남의 재능을 갉아 먹는 행위다. 훈계와 충고는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봐서 그런 것이다. 그런 자신의 잘못을 알고 그걸 넘어서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그의 타고난, 그가 고유하게 가진 것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러지 않고 그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는 기가 빨리지 않고 자기의 타고난 본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작가는 바로 상대를, 편견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최고로 아낀다. 이런 인물은 보기 드물고, 그래서 진귀(珍貴)하면서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사람은 꼰대 소릴 들을 리 만무하다. 자기만 아닌 남도 살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면 꼰대는 자기와 자기 편 자랑으로 끝나는 사람이고, 결국 남에게 해로운 사람이다. 작가는 학폭에서도 가해자, 성폭행 사건에서도 가해자보다는 피해자(Sufferer)를 분명히 더 아낀다. 그들의 말에 더 귀 기울여 경청하려고 애쓴다.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보면, 내가 가한 건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처 입은 건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어느 날, 가해자를 찾아가 “너, 그때 왜 그랬어?” 하면 “내가 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기억조차 없다. 난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넌 아무렇지 않다? 일본이 우리를 침범해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그들은 가해자고 우리는 피해자여서 우리가 그것에 대해 더 할 말이 많은 것이고, 그들은 또 아이러니하게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기 소설에서도 언급했지만, 소련과의 전쟁에서 한번 패한 1939년 노몬한 전투를 그들은 희한하게 잊지 못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에 패한 미군이 인간 살육 병기, 실베스터 스탤론의 람보 시리즈를 내세워 그 전쟁을 보복한 것만 봐도 안다. 진 경험이 없어 충격에서 벗어나기 더 어려워, 영화에서나마 대리만족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쭉 자해자였어도, 당한 건 이렇게 쉽게 잊을 수 없나 보다. 인간은 자기가 가한 것보단 당한 것에 대해 그때의 심정을 더 토로하려 하는데, 작가는 이런 어쩌다 피해자인 강자가 아니라 거듭 당해온 피해자들에게 관심이 더 많고 그들의 말을 아껴 들어주려 한다. (가해자인 미국과 일본은 전쟁을 했어도 아군과 적군이 본토에서 서로 죽고 죽이면서 아이, 노인, 여자가 주로 희생되는 전쟁으로 국토가 유린된 적이 없기 때문에 국민은 직접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전쟁 같은 건 나라에서 하는 일이지 자기와는 무관한 일이라 여기기까지 한다.) 작가가 진정 더 아끼는 인물은 이런 진짜 피해자들이고, 작가는 언제나 그들 편에 서서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 그들의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언제나 귀를 기울인다.
상처가 있어 작가가 되었고 그걸 멈추라는 내부의 목소리와 외부의 목소리가 있는데 나는 이걸 멈출 수 없다. 내 운명이고, 내 삶이고, 내 생명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다. 계속 써야 나는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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