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지기와 함께 읽기]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 <샤이닝>

D-29
저는 현재 30대 중반인데요. 제가 고른 하루가 여름의 하루가 아니라 겨울의 하루라고 생각되요. 해가 뜬 시간(젊은 시절)은 짧고 밤의 시간(노인의 시간)은 길어진 게 현재라서요. 그래서 저는 정오는 지나고 13~14시쯤이지 않나 싶습니다. 겨울은 17시만 넘어도 어둑해지니 벌써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네요ㅠㅠ 인생은 긴데 전성기는 짧아진 게 현대의 인간인 것 같습니다.
"인생은 긴데 전성기는 짧아진" 표현이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1장에서 막 태어난 요한네스가 2장 시작에 노인이 되어 있어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요한네스의 전성기도 책 1장의 끝과 2장이 시작되기 전의 간지 사이 만큼 짧은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10대 20대 때 막연히 내가 어른이 되면, 지금의 나는 허물을 벗어 내듯 없어지고 성숙하고 멋진 '참 어른'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나이가 들어 보니 나이는 그냥 먹지만 어른은 그냥 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10대 20대의 나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합니다. ps. 써 놓고 보니 왠지 부끄러워 이 글을 올릴까 말까를 한참 고민해봅니다. ㅜ.ㅜ
누구나 전성기는 다른법이죠ㅎㅎ 지금이 전성기라니 부럽습니다! 저도 금전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나름대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요ㅎㅎ 1장에서는 탄생을 2장에서는 죽음을 담아놓았는데, 1장의 젊은 시절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20대까지만 하더라도 하루의 길이가 길고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할 것도 많고,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고 말고를 떠나서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한 것도 없는데 하루가 끝났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1장과 2장의 사이가 지금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의 축적이 아닌가도 싶어요. 30대 40대(아직 겪진 못했지만)50대... 어? 하는 순간 사라져버리고 노인을 맞이하는 것처럼 이 책의 아침과 저녁 그 사이도 그런 느낌이 아닐까요ㅎㅎ
<샤이닝>을 읽을 때와는 달리 초반부의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는 게 상당히 힘들었는데, 아무래도 익숙했던 문장의 구분이 아닌 점, 리듬감을 살리기 위한 음절의 반복(에, 우 등등)등을 이성적으로 의미를 찾고 해석하려다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이해의 유무를 떠나서 의식의 흐름대로 쭉 읽어나가보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동의합니다. 원문인 노르웨이어로 읽으면 다른 느낌일까요? 저도 언어적인 다름 때문에 오는 이질감으로 초반 몰입이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중역을 했기 때문에 원서의 느낌을 잘 살렸다고 합니다. 초반에 해당하는 1부가 정말 몰입도가 낮긴 했죠. 일반적인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적인가 싶으면 개인적으로는 그렇지도 않다고 느꼈습니다. 원서는 시적 느낌이 잘 살아있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에르나는 가고 없는데 빨래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것이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아침 그리고 저녁 p43,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반려자를 잃었다는 상실감, 그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찾는 물건, 그 물건을 보며 느끼는 그리움. 담담하게 썼지만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문장이라 생각이 들어 적어봤습니다.
나의 죽음도 두렵지만, 그보다 더 큰 슬픔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먼저 보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별은 오래도록 가슴이 아려오는 상실감을 느낄테지요. 이 또한 삶에서 겪어야 할 일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가장 나중으로 제일 마지막으로 미루고 싶어집니다.
담담함에서 묻어나는 요한네스의 슬픔과 상실감이 제대로 전달되는 부분이었어요. 정말로 오랜시간을 함께 해온 소중한 사람의 상실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면 오히려 격렬함을 넘어선 공허함이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르나가 지금 여기 있다면, 어떤 예고도 없이, 그렇게 느닷없이 떠나야 했다니, 죽기 전날 저녁 그녀는 이 식탁 앞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무슨 얘기였는지는 더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오랫동안 그래왔듯 그는 거실 옆방, 그녀는 위층 다락방에서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녀는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지,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아침 그리고 저녁 p 41,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지금, 안나 페테르센이 다른 사람과 그렇게 되자마자 저 둘이 나타나는구먼,(중략) 저는 마르타에요, 한명이 말한다 그리고 저는 에르나고요, 다른 한 명이 말한다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하나의 사랑을 잃으면 세상을 잃은 것 같지만, 살다보면 다음 사랑이 자연스레 찾아온다는 부분 같았습니다.
1장에서 보면 늙은 안나와 어린 안나가 나옵니다. 아마 노인 요한네스가 만나지 못했던 안나 페테르센이 늙은 안나이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그 늙은 안나의 손녀(라고 추측)도 할머니의 이름을 이어받아 안나가 되었고, 태어나는 아이는 늙은 요한네스의 이름을 이어받아 요한네스가 됩니다. 한 개인은 사라지더라도, 그 개인의 일부 고유성은 계속해서 물려준다는 것을 여기서 볼 수 있었어요. 요한네스는 할아버지와 같은 어부가 되고, 안나는 할머니를 따라 산파가 되고요.
또하나 마르타가 요한네스의 친구인 페테르와 결혼하는 줄 알았는데, 올라이의 아내가 페테르로 나온 것을 보고 이 둘도 이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궁금하더군요ㅎㅎ 요한네스와 페테르의 대화 속에서도 페테르의 가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더라고요.
이런, 지금 요한네스가 바닷가에서 페테르를 만났습니다. 이 소설 혹시 태어난 날과 죽는 날, 이틀의 이야기 인 건가요? 다소 지루하게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1장은 탄생, 2장은 죽음으로 각각 하루씩 담겨있어요
요한네스는 가만히 서서 언덕과 들판, 산과 해안에 늘어선 집들을 둘러본다, 부잔교와 부표에 묶여 있는 그의 작은 노 젓는배, 그리고 보트하우스들과 거리 위쪽의 집들을 바라보며 그는 그 모든 것에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야생초들과 그가 아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그가 속한 자리다, 그의 것이다, 언덕, 보트하우스, 해변의 돌들, 그 전부가, 그런데 그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었다,
아침 그리고 저녁 p74,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아~ <아침 그리고 저녁>은 제가 최근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신박한 이야기였습니다. 책 표지에 "욘 포세 장편소설"이라고 써 있어서 의아했습니다. 분량으로 보아 장편이라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기발하게 인간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다니요. 장편소설의 장편은 원고의 분량이 아닌, 담고 있는 서사의 분량이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책의 띠지에 노벨문학상 선정의 이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다." 저는 '혁신'이란 단어에 방점이 찍혔네요.
욘 포세도 그렇고 최근에 핫했던 클레어 키건 작가님도 그렇고 '장편'의 개념을 깨부순 감이 있어요. 분량은 적어도 그것이 담고 있는 메세지는 어느 장편소설 못지 않게 거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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