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지기와 함께 읽기]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 <샤이닝>

D-29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 초반 진도를 넘어서면 작품의 진면목이 나오는 건가요? 초반 몰입 실패로 덮어 두었는데, 다시 시도해 봐야겠네요.
담담한 부분이 있어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읽다보면 엄청나게 흡입됩니다!
죽음의 과정이 요한네스의 그것과 같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마중을 나오는 죽음이라니요. 이보다 더 죽음을 따뜻하게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싶습니다. 사는 동안 이렇다 할 성공도 업적도 없었지만, 가족들과 이웃들과 친구들과 따뜻하게 지내온 요한네스의 삶은 죽음 이후에도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습니다.
어디로 가는데? 요한네스가 묻는다 아니 자네는 아직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먼, 페테르가 말한다 목적지가 없나? 요한네스가 말한다 없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한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위험하지는 않아,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하다는 것도 말 아닌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아픈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하지만 영혼은, 영혼은 아프지 않단 말인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아침 그리고 저녁 p131,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저도 이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구절입니다. 어떤 종교적 구원이라든지, 과학이 제시하는 자연으로의 회귀 라는 것보다 오히려 가장 마음을 따듯하게 했던 죽음의 묘사였습니다.
얇지만 절대 쉬이 넘어가지 않았던 책 <아침 그리고 저녁>이었네요. starman 님과 주고 받는 이야기만으로도 제가 몰랐던 부분, 또 알았지만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남겨봅니다. 요한네스가 페테르를 통해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깊었는데요. 죽음 이후 모든 것이 상실되는 것, 먼저 상실된 것들과 다시 만나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할 것 같나요?
저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적 의견에 더 힘을 싣는 쪽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같은 것도 없고 다 분자로, 원자로 쪼개져서 자연을 떠돌게 될 거라고요. 애초에 비생명체로 가득한 우주에서 생명체라는 특이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했던 것일 뿐, 죽음을 통해 다시 일반적인 상태(비생명체)로 돌아간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떠난 소중한 이가 마중나와 그냥 죽음 이후라는 게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라고 위로를 건넨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을 인생에서 만났었다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습니다." 작가 유시민이 고 노회찬 의원의 추모제에서 낭독한 편지의 일부분 입니다. 죽음 이후를 갔다 온 사람이 없으므로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으니 그저 기대를 해 볼 수 밖에요. 우리가 죽으면 먼저 간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으리라 말입니다. 이건 죽은 사람을 위한 기대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위안과 희망이겠죠.
저도 더 나아진 미래가 있다면 죽음 이후 다음 생을 희망할 것 같네요ㅎㅎ 멀리서보면 인류는 더 나아지고 있다는데, 현재의 연속은 어찌 점점 더 나빠지는 것처럼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ㅋㅋ
아~ 최근 받아 본 질문 중 난이도가 가장 높습니다. ㅜ.ㅜ
오늘부터 <샤이닝>으로 한 번 넘어가보겠습니다.
저의 경우 <샤이닝>을 욘 포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읽었었는데요. 그래서 이 작가의 글쓰는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꽤 잘 읽힌다는 느낌을 받았었어요.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기 전까지는요ㅋㅋ ㅠㅠ 아직 두 작품밖에 읽지 못했지만 두 작품 모두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를 참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샤이닝>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나오지만 결국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혼자라는 주관적 해석을 해봤어요. 빛이 나는 사람이든,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주인공과 만난 부모든 결국 그 경계에서 죽음으로 발을 딛는 건 혼자만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는 곁에서 계속 기다려주며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주변인들이 있었지만, <샤이닝>의 산속에서는 그들조차 이곳에 왜 있는지 모르지요. 심지어 나가는 방법도 알지 못하고요. 그래서 죽음으로 건너는 것은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다, 라고 해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샤이닝을 읽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보다는 '잘 읽힌다'는 말씀에 희망을 가지고 첫 책장을 넘겨봅니다. ^^
즐독하시길 바랍니다. 두 책 모두 읽으신 분들 대부분이 <샤이닝>이 가독성이 좋다고 하더라구요ㅎㅎ
욘 포세 작가님, 참 쉽지 않은 분이시네요. 분명 가독성은 있으나 고구마를 입에 물고 읽는 느낌입니다. ㅜ.ㅜ 이 사람 숲을 빠져나오기는 하나요? 이 사람은 전화기도 없고, 자동차 보험도 안 들었나요? 지금 '순백의 빛을 발하는 존재'와 헤어지고 달을 만나 말을 거는 부분을 읽고 있습니다. (p38)
앗 STARMAN님 T셨군요ㅋㅋ 저도 진짜 주인공이 산길에 고립된 상태일 때 왜 저렇게 답답하게 행동하냐 싶었거든요ㅋㅋㅋ
주인공을 순백색 속으로 떠나 보냈습니다. <샤이닝>을 읽으며 제가 T라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 ㅋㅋㅋ 완독을 했으나 얼른 해설을 들춰봐야겠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진 온갖 은유적 표현을 제가 제대로 이해했나 모르겠습니다.
세상일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 그렇다, 이것 또는 저것. 어머니 또는 아버지. 순백색의 존재 또는 검은색 양복의 남자. 내가 이 숲속에 머물든지 또는 이 숲에서 빠져나가든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 내 차도 그 자리에 계속 처박혀 있든지, 아니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세상일은 그런 것이다.
샤이닝 p7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샤이닝2023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의 최신작 『샤이닝』은 작가 데뷔 40주년 2023년 발표한 소설로, 본문 길이가 채 80쪽도 안 되나 1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걸작 ‘7부작Septologien’의 결정적인 압축판으로 평가받는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다. 이건 이해가 아니라 단지 경험만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른다.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 말이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고 단지 경험만 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은 어떤 면에서는 실제고, 우리는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저기엔 순백색의 존재가 빛을 발하며 서 있고, 그 존재의 뒤쪽에서 옆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맨발로 눈 위에 서 있으며,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와 순백색의 반짝이는 존재 사이에는 나의 부모님,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손을 잡고 서 있기 때문이다.
샤이닝 p73,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반짝이던 그 존재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지금 그 존재는 더 이상 순백색 빛을 발하지 않지만, 그렇다,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고 있다, 반짝인다는 말, 순백색이라는 말, 빛을 발한다는 말의 의미도 사라진 것 같다, 마치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다, 의미라는 것, 그렇다, 의미라는 것 자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모든 것은 단지 거기 있을 뿐이고, 그것들은 모두 의미 그 자체다,
샤이닝 p79,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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