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눔] 여성살해,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 필리프 베송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D-29
느리지만 급진적인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시선, 즉 제3자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말에 밑줄을 긋고 싶네요.. 가정 폭력의 해법 중 가장 첫 걸음은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내는 이 제3자의 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딸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남편의 화를 돋우지 않으려고, 몰래 약을 삼킨 뒤 약이 담긴 주머니를 아무도 보지 못하게 약장에 넣고 급히 문을 닫고 심호흡한 뒤 욕조에 걸터앉아 있다가 화장실을 나서며 억지로 괜찮은 표정을 짓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만다. 어머니가 느꼈을 외로움과 혼란을 짐작해보니 동생의 말이 더욱 고통스럽게 메아리쳤다. 나는 한 번도 그 곳에 없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8 / p88,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함께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주인공과 몰래 약을 먹으며 괜찮은 척 애썼던 어머니, 그리고 이를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동생의 입장이 모두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고통이, 무기력함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군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프랑스 2~3일에 1명꼴로 가정폭력으로 여성이 사망한다는 기사를 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는 사실이라고? 믿기지 않았는데 실화를 이렇게 접하니 씁쓸하네요ㅠㅜ
바로 며칠 전 기사인데요 호주의 남성폭력도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 전년 대비 28퍼센트 증가했다고 나오네요. 거꾸로 가는 세상입니다. 국제적으로도 사안의 심각성을 좀 더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https://edition.cnn.com/2024/04/29/australia/australia-women-gendered-violence-intl-hnk/index.html
책장을 열고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더이상 그 낯설지 않은 고통을 회피할 수 없음을 온 몸으로 깨닫고 말았습니다. 책을 덮을 때까지 문장 하나하나가 맘 속으로 들어와 과거의 웅크린 나를 깨우고 들여다보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중요하지 않"다는 스스로를 부수적 피해자로 칭하는 그의 말에 부당하다며 "그는 중요했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서는 안 되었다."는 서문 속 문장이 화두처럼 남아 이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과 동생의 삶, 저와 가족을 사유하였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읽으며 좀 더 찬찬히 생각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이런 책을 같이 읽을 수 있는 장을 열어주신 레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원제는 딱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남은 사람들을 배려하며 축약시켜 놓은 것 같아요. 번역본 제목도 자극적인 기사들이 난무하는 요즈음 한 명의 이목이라도 더 끌어 관심을 가지게 하는 괜찮은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13-14장이 가장 읽기 힘든 구간이었습니다. 사건과 관련이 없는 제3자의 경우라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법한 내용 같은데, 나와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니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애쓰는 것 같아서요. 원망의 마음과 연민의 마음이 공존하는 듯해서 슬펐습니다. 상황을 목격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인물이고, 목격자인 동생을 돌보아야 하고, 또 이런저런 일들도 감내해야 하는 화자 '나'의 아픔이 너무 걱정되고 마음이 아파요. 할아버지마저 없었다면 '나'의 고통은 어떻게 발현되었을지 상상할 수도 없어 슬펐습니다.
나는 한 번도 그곳에 없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88,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정신없이 내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2~30대에는 부모님에게서 갑자기 떠나버리는 느낌이 든다는 걸 이 문장을 보고 새삼스레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에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친구들이랑 놀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면서 부모님과 멀어지고, 시간이 지날 수록 내 앞가림을 하기 바빠서라는 핑계로 부모님과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보는 내내 너무 안타깝고 답답했는데, 결국 그 무관심은 내가 만들어냈고, 그래서 그 책임이 나에게도 있는 것만 같아서 내가 조금 더 자주 들여다보고 같이 시간을 보냈더라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들어오는 느낌이었달까요. 보면서 그냥 부모님과 자주 시간도 보내고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유독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할아버지가 넋이 나간 채 절망감에 휩싸여 운전했을 그 길을 상상해보았다. 누가 할아버지와 함께 와주면 좋았겠지만, 너무 급해서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겪은 수난을 상상해보았다. 누구도 그런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되었다. .... 할아버지가 그날 저녁에 주차장에 있었다. 얼빠진 상태로. 완전 넋이 나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슬픔덩어리 그 자체였다. 25년 전 아내를 잃고, 이제 외동딸을 잃었다. 이보다 안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9 /p90,91,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그날 저녁, 나는 동생에게 모두 쓸데없다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앞으로 동생을 짓눌러 바닥까지 끌어내릴 무게를 생각하면, 지금 동생은 부질없는 것이나 빈껍데기에 매달릴 권리가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20 / p97,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외할아버지, 레아 그리고 나의 삶을 짓누를 만큼의 거대한 슬픔과 비통함이 느껴졌습니다.
때때로 우리 삶의 궤적은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리도 슬픈말이 또 있을까
그런 일을 감당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열세 살, 열아홉 살 아이들이 얼마나 충격과 공포었을지 …
“너 어디야” “부엌” “혼자 있어?” “엄마랑” 죽은 엄마 옆에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듯 동생이 통화하는 이 장면이 상상되며 너무 끔찍하고 마음이 아팠어요.
어쩌면 그 순간 아버지 노릇을 그만두고 손을 떼기를 내심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는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고 멀찍이 방관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최악인 건, 아버지가 진심인 것처럼 보였단 거야.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12,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저도 이 문장이 너무 기억에 남습니다. 애정(?)이 있었던 존재였기에 그가 보이는 모습의 일부가 진실이 아님을 은연중에 알면서도 다시 믿어보자라고 믿고 다시 그 파편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장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정말.... 알 것만 같지만, 그럼에도 아이들과 나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토대로 혹시 몰라 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하는 그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다시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들 특유의 순백의 확고함을 레아는 지니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아버지는 온갖 구실을 붙여서 싸움을 기습 공격을 했다. 그는 편집증, 질투, 나르시시즘의 화신이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범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13,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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