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눔] 여성살해,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 필리프 베송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D-29
'여자와의 의사소통'이라니... 이걸 변명이라고 하는지, 참 기가막힙니다.
그때 나는 심각한 과실을 저지른, 타인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에게 가해진 충격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힘을 우리 안에서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난 나는 틀렸다. 그것도 나중에 알았다. 너무 늦게.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56,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그래서 레아와 할아버지와 나, 우리 셋은 아무 힘없이, 초라하고 무기력하게 하루아침에 들어갈 수 없게 되어버린 어린 시절을 보낸 집 앞에 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우리는 빈털터리로 거리에 던져졌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이 압수한 것은 우리의 주거지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의 삶과 기억을 압수하고, 우리의 일상이었던 것을 빼앗아버렸다. 어린 시절도 지워야 하는 것처럼, 더 거침없이 말하자면 우리는 개인 소지품과 옷도 빼앗겼다. 이 모든 것을 몰수당한 무례하고 어이없는 상황이 몇 달이나 이어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몰랐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41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가정폭력이 일어났을 때, 어떠한 일들이 '절차상' 이루어지는지, 그것이 얼마나 피해자 중심이 아닌 행정 중심적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위에 수집한 문장만 봐도 그렇죠. 특히, 사건 발생 일년 전 어머니의 신고에 대해 헌병대가 한 과실 그리고 그 과실이 밝혀진 현재 시점에서 그것을 변호하는 공무원의 처리 방식에 어이가 없어집니다. 또한 "남녀 관계는 당사자들만 아는 일이고, 문제가 발생해도, 이런 종류의 문제는 부부끼리 해결하는 거니까 끼어들면 안 된다"(154쪽)는 "보통사람들처럼 생각했을 뿐"(154쪽)이지 특별한 과실이 아니라는 안일한 태도가 가정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의 주된 시선을 잘 보여주네요.
때때로 우히 삶의 궤적은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76,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이번에도 우리어머니가죄인이었다. 충분히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죄, 멍과 상처로 뒤덮이지 않은 죄.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52,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동의하기 전, 그는 자신이 '이 모든 상황'을 원치 않았으며, 상황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며, 그것은 '끔찍한 사고'였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62,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읽을수록 화자(아들)에게도 분노를 느껴요... 대충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으면서도 엄마의 변화를 오직 엄마탓으로 돌리고 정신좀 차리라 하지를 않나... 파리로 도망가고 거리를 둔 이유에 그 넘 이유가 하나도 없었을까. 알면서도 자기도 선량한 피해자로 보이는 글이 거북해집니다...가면 갈수록 괜찮아지겠죠?
동생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이다. 그리고 무한한 애정이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래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72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은지 물었을 때 답이 없다면 그 사람은 괜찮지 않은 거야." 그러나 그는 다시 묻지 않았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77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이제 그는 '후회'하고 있었다. 끼어들지 않고, 추궁하지 않고, 어머니를 보러 더 자주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버지의 기분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을 후회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77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동생 레아를 위해 발레리노로서 앞길이 창창한 나가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결단을 한 것에 내심 놀랐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후 비로소 가족이 처한 상황이 매우 구체적으로 실감이 나, 주저함없이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나가 파트릭 아저씨를 만난 후, 그의 "소극성과 양심과의 타협"(178쪽)에 대해 "그건 바로 나의 것"(178쪽)이라는 성찰과 반성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간 가족의 일에 무심했던 고향을 떠난 자의 소극성과 이제는 레아 옆에 있어야 되겠다는 양심과의 타협이 파트릭 아저씨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져 자신을 대면하게 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사과했고,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이제 어머니를 의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믿어주는 척했다. 어머니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혼과 가정, 가족, 집을 지키려 했기 때문이리라.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 106,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어머니는 그때 멈춰야했다. 그게 진짜 가정을 지키는 거였다는걸… 너무 안타까운 순간
거친 말, 높아진 언성, 고함, 갑자기 세차게 뺨 때리는 소리, 그 뒤로 깊은 침묵.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10,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폭행하고 그럴 의도는 없었다며 사과하고 또 때리고 네가 자극해서 그런거라며 가스라이팅하고 가정폭력은 결코 해결되지않는거 같아요.
레아가 하는 말을 듣다 보니 비극은 어쩌면 사소하게 시작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협박을 하지 않았다면 화를 면했을지 모른다. 그러다 내 안에 자리 잡은 확신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죽였을 것이고, 결국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불이 붙기 위한 작은 불꽃이 필요 했을 뿐. 그리고 본심을 드러낸 그날 싸움이 그 불꽃이 되었다. 언제고 다른 불꽃이 있었을 것이다. 공포에 휩싸이면,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위로할 길을 찾는 법이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27 / p124,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우리는 빈털터리로 거리에 던져졌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이 압수한 것은 우리의 거주지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의 삶과 기억을 압수하고, 우리의 일상이었던 것을 빼앗아버렸다. 어린 시절도 지워야 하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을 몰수당한 무례하고 어이없는 상황이 몇 달이나 이어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몰랐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31 / p141,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비록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건 소설임을 상기하며 읽고 있습니다. 독서일정에 따라 끊어 읽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책장을 펼칠 때 마다 상황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살인사건 이후 아이들의 자책과 일상이 몰수된 환경, 장례식, 그리고 아버지와의 법정 싸움까지.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유족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동생을 공격하지 않았다. ("신이여,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감사드릴 신은 없었다. 신이 있다면 오히려 원망의 대상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25,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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