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눔] 여성살해,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 필리프 베송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D-29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은지 물었을 때 답이 없다면 그 사람은 괜찮지 않은 거야." 그러나 그는 다시 묻지 않았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77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이제 그는 '후회'하고 있었다. 끼어들지 않고, 추궁하지 않고, 어머니를 보러 더 자주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버지의 기분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을 후회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77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동생 레아를 위해 발레리노로서 앞길이 창창한 나가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결단을 한 것에 내심 놀랐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후 비로소 가족이 처한 상황이 매우 구체적으로 실감이 나, 주저함없이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나가 파트릭 아저씨를 만난 후, 그의 "소극성과 양심과의 타협"(178쪽)에 대해 "그건 바로 나의 것"(178쪽)이라는 성찰과 반성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간 가족의 일에 무심했던 고향을 떠난 자의 소극성과 이제는 레아 옆에 있어야 되겠다는 양심과의 타협이 파트릭 아저씨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져 자신을 대면하게 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사과했고,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이제 어머니를 의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믿어주는 척했다. 어머니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혼과 가정, 가족, 집을 지키려 했기 때문이리라.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 106,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어머니는 그때 멈춰야했다. 그게 진짜 가정을 지키는 거였다는걸… 너무 안타까운 순간
거친 말, 높아진 언성, 고함, 갑자기 세차게 뺨 때리는 소리, 그 뒤로 깊은 침묵.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10,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폭행하고 그럴 의도는 없었다며 사과하고 또 때리고 네가 자극해서 그런거라며 가스라이팅하고 가정폭력은 결코 해결되지않는거 같아요.
레아가 하는 말을 듣다 보니 비극은 어쩌면 사소하게 시작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협박을 하지 않았다면 화를 면했을지 모른다. 그러다 내 안에 자리 잡은 확신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죽였을 것이고, 결국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불이 붙기 위한 작은 불꽃이 필요 했을 뿐. 그리고 본심을 드러낸 그날 싸움이 그 불꽃이 되었다. 언제고 다른 불꽃이 있었을 것이다. 공포에 휩싸이면,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위로할 길을 찾는 법이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27 / p124,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우리는 빈털터리로 거리에 던져졌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이 압수한 것은 우리의 거주지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의 삶과 기억을 압수하고, 우리의 일상이었던 것을 빼앗아버렸다. 어린 시절도 지워야 하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을 몰수당한 무례하고 어이없는 상황이 몇 달이나 이어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몰랐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31 / p141,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비록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건 소설임을 상기하며 읽고 있습니다. 독서일정에 따라 끊어 읽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책장을 펼칠 때 마다 상황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살인사건 이후 아이들의 자책과 일상이 몰수된 환경, 장례식, 그리고 아버지와의 법정 싸움까지.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유족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동생을 공격하지 않았다. ("신이여,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감사드릴 신은 없었다. 신이 있다면 오히려 원망의 대상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25,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나는 다가가 동생을 품에 안았다. 마침내 이 포근함에 기댈 수 있었다. 아니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레아는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서 나무를 껴안는 것 같았다. 동생은 팔을 늘어뜨리고 나를 마주 안지 않았다. 이 무기력은 적대감이 아니라, 동생에게서 삶이 빠져나갔다는 뜻이었다. 어떤 움직임도, 어떤 감정의 가능성도 없었다. 생기를 잃고 껍데기만 남은 모습에서 동생이 겪은 폭력성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45,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사실 우리는 우리 부모가 부모이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좀처럼 알려 하지 않는다. (…) 마치 우리와 무관 한 듯, 그들이 지나온 길은 그저 그들만의 것인 듯, 관심 없다는 듯 말이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68,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그날 이후 나는 표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은 다른 기억들과 이어지거나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단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77,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기만적인 의문들이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나는 또 무엇을 놓쳤을까? 어떤 사실을 알게 될까? 내 발 밑에 뚫린 구렁텅이는 얼마나 더 깊어질까? 그런데 나는 어떻게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88,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한달 후,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는 데 동의했다. 무슨 이유로 부모님이 화해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사과했고,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이제 어머니를 의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믿어주는 척 했다. 어머니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혼과 가정, 가족, 집을 지키려 했기 때문이리라. 그랬던 어머니가 "다시 떠나기로 결심" 한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06,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해결책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머니는 아무죄가 없었기에 아버지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바로잡을 것도 없고, 내보일 증거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진짜 죄인이라도 된 듯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약속하고 맹세했다. 어머니는 그런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절대로 만족하지 않았고, 절대로 그만두지 않았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13,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나는 몸을 떨면서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남자를 더 좋아한다고 어머니에게 고백했던 날도 생각나." 어느 일요일 봄 날, 어머니는 거실에서 다림질을 하고 나는 한가로이 소파에서 시간을 보내다 불쑥 말해버렸다. "레오에 대해 얘기했던 거 기억나? 그 애를 사랑하는 것 같아." 물론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이야기였다. 사랑한다고 하면 커밍아웃이 더 잘 받아들여질 거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 어머니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허공에 다리미를 들고 있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다림질을 했다. 어머니에게는 몇 초면 충분했다. 어머니는 “사랑에 빠지는 건 좋은 거야"라고 말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30,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어머니가 감히 저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냈고, 얼마나 절망했고, 얼마나 두려워했을지 상상해보았다. 도움을 구걸하러 오기까지 말이다. 공권력에 기대어 시련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보잘것없는 종이를 손에 쥐고 결국 사형집행인에게 돌려보내진 어머니의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을 그리다가 나는 울음이 터졌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55,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은지 물었을 때 답이 없다면 그 사람은 괜찮지 않은 거야."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77,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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