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눔] 여성살해,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 필리프 베송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D-29
이 글을 쓰다보니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이 떠올랐네요. 책 소개를 가져와 봅니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첫 문장만으로 전 세계 독자에게 충격을 선사한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아니 에르노의 여덟 번째 소설이다. 나의 삶을 지배한 원체험에 대한 고요한 응시 “그날 이후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1952년 6월 15일, 아버지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낫을 든다. 이어지는 어머니의 비명소리.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모님은 식탁에 앉는다. 흔한 부부싸움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열두 살의 아니 에르노에게 ‘그날의 사건’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난한 노동계층의 외동딸로서 중산층 이상이 다니는 기독교 사립학교에 입학한 에르노에게 부모의 세계와 사립학교의 세계 사이에 놓인 간극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각인시켰다. 가난하고 천박한 부모가 부끄럽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기 존재의 뿌리라는 것. 1996년, 어느덧 중년이 된 에르노는 사십여 년 전의 기억을 다시 꺼냈다. 열두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 그날의 사건만큼은 결코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는 에르노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사로잡은 그 원체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1952년으로 돌아간다.
부끄러움"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첫 문장만으로 전 세계 독자에게 충격을 선사한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아니 에르노의 여덟 번째 소설이다.
이 책도 읽어 보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저 프랑크와 세실이던 시절, 함께 포토부스에서 찍은 즉석사진 넉 장이 시선을 붙잡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별 생각 없이 포토부스에 들어갔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연달아 찍힌 20대 남녀의 샐쭉한 얼굴에서 시작하는 이들의 천진함과 서로 붙어 있고 싶고,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사랑으로 살짝 바보가 되어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묻어 났다. 그래서 그들은 둘 다 아름다웠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4 / p71,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비극의 시작은 어디서 부터일까요. 이토록 즐거웠던 만남의 시간에 비극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던 프랑크를 알아보지 못한 세실의 잘못이었을까요? 관계의 비극은 한 가지 이유나 사건으로 촉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작고 사소한 일들의 축적과 회복되지 않고 멀어지는 관계 사이에서 불만과 불안이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아름다웠던 프랑크와 세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너무 궁금해 책을 덮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다음, 나는 만남의 우연과 던져진 주사위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외출하지 않았다면... 그날 밤 아버지의 눈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면... 어리석은 가정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72,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은연중에 복선으로 깔리는 신호들을 잘 읽지 못하고 후회하는 모습들이 드러나면서 너무나도 공감이 되는 문장이었어요. 깨진 걸 다시 붙이고 이어지게 만들고 싶어하지만 실제론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걸 다들 알면서도 후회하는 마음이 너무 잘 드러나는 문장이어서 강렬하게 다가온 문장이었습니다.
레아가 "오빠는 5년 동안 떠나 있었잖아."(87쪽)라고 한 말에 화자인 나는 "단두대 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87쪽)라고 표현하는데, 이 대목이 그 벌어진 비극에 대해 나가 얼마나 큰 죄책감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 죄책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네요. 즉, 함께 하지 않았다라는 자신의 부재에 대한 죄책감인 것이죠. 자신이 파리가 아닌 집에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또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레아가 그 비극의 유일한 증인이 되게 내버려두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말이죠. 또한 "나는 내가 그동안 알려 하지 않았고, 시선을 피했으며, 모든 경고를 무시해왔음을 깨달았다."(86쪽)라고 말하는데, 나가 어떠한 어린 시절을 겪어왔을지 충분히 상상이 되기에 그의 행동은 자기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당사자로서는 이 점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편, 나가 집을 떠난 시점은 5년 전 그러니까 열세 살인 레아가 여덟 살이었을 때라는 것인데, 그 어린 아이가 어떻게 일상을 견뎌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어 한없이 먹먹해집니다...
이런 경우들을 종종 들어본 것 같아요. 집안이 늘 시끄러워서 탈출하듯 그 공간을 빠져나온 사람들 이야기요. 아마 이 책의 화자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파리에 가서 공부할 수 있게 더 열심히 했을 것만 같아요. 이 소설 전체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탈출하듯 떠났을 때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게 하네요.
저희 가족이 자식이 3명이고 제가 둘째인데요. 요즘 제 생각엔 k-장남, 장녀 하듯이 첫째에게 가부장적 역할이 주어진다고 느껴져요. 상대적으로 많은 기대와 지원, 권력이 주어지나 스스로 부담감이 크고 버거움을 느끼고요. 어떤 무력함도 보이고요. 둘째인 제가 첫째에게 가지는 불만이 가부장적인 현상에서 나오는 불만과 비슷하다고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저희 집의 첫째가 무심하고 문제가 닥쳤을 시에 회피하는 성향, 책임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서 질려하고 사실 어리광쟁이이다.. 라는 것 등등이요. 둘째인 저는 대체로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대화를 시도하고 싸우고 화해하고도 남아있는 쌈닭 포지션이고요. 최근에 <더 커뮤니티>라는 정치 서바이벌 시리즈물을 재밌게 보고 사상테스트도 해봤는데요. 의외로 첫째가 스스로 인식하는 가정 내 경제조건 점수가 저보다 높더라고요. 저는 더 어려운 시기에 첫째가 태어났으니 저보다 더 안 좋은 점수가 나올 줄 알았거든요. 다시 곱씹어보니 첫째에게 우선 배급되는 자원과 먼저 성인이 되어서 탈출하듯 원가정을 떠났기에 지금 남아있는 저와는 다르게 인식하는 듯 하더라고요.
맞아요 저도 단두대 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하는 문장에서 감정히 고스란히 느껴지더라고요
어머니를 여의고 의도치 않게 엄마가 된다는 게 모진 운명에 맞서 승리를 거둔 것 같기도 하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75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그날 이후 나는 표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은 다른 기억들과 이어지거나 서로 연결될때 비로소 단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77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책을 펼치기 까지 손에 잡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잡으면,, 다시 접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책입니다. 전, 그 누구보다도 레아가 마음에 걸려요. 어린 나이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상황을 누구에게도 특히 오빠에게도 말할수 없는 상황과, 무너저 가는 엄마를 어쩔 도리 없이 보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 그리고 그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랐을 무력함,, 거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자리는 내 주었던 상황에서 이제는 아빠가 송두리체 처참한 자리로 니버려져야 하는 상황까지.. 얼마나 큰 충격일까 상상도 가지 않는 처지라서..마음이 너무 쓰이네요.. 베르디에의 뻔뻔함과 무력하게 집으로 돌아갔음 엄마의 뒷 모습을 상상하면 그 등이 얼마나 시렸을까... 생각하니. 화가나고 슬퍼요.
그렇게 어머니가 내지른 구조의 외침은 '놓치는 일'이 됐다. 나는 "폭행당한 여자보다 길 잃은 개나 부서진 차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라고 물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 153,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가장 순진하게, 그래서 가장 잔인하게 레아가 대꾸했다. "그럼 당신들이 제대로 일했다면 우리 어머니가 죽지 않았을 거라는 뜻인가요?"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 154,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 가정 폭력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생각을 하니.. 무겁기도 하고.. 행복해야 할 가정이 왜 이리 폭력이 난무한 곳이 됐는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레아는 다시 입을 뗐다. "아버지가 찌르는 걸 봤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소리도 들렸어요. 엄마의 비명 소리가 아니라, 칼로 찌르는 소리요. 그런 소리가 나는 줄은 몰랐어요." 나는 소령과 눈이 마주쳤다. 동생보다 나를 더 염려하는 눈빛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54p,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내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는 좌절하고 분노하며 비난하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79,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우리를 둘러싼 삶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멋지고도 끔찍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93,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이렇게 쓰는 게 그 사람을 위한 변명거리를 찾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 어떤 변명도. 나는 어떤 설명을 찾았던 것 같다. 때때로 그것은 질식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81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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