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눔] 여성살해,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 필리프 베송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D-29
내가 확신하는 단 한 가지는 우리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 상처의 깊이는 아직 가늠할 수 없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57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바로 그다음, 나는 만남의 우연과 던져진 주사위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외출하지 않았다면... 그날 밤 아버지의 눈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면.... 어리석은 가정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72-73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얇은 책이라 출근길에 들고와서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책은 가볍지만 내용은 무거웠습니다. 후루룩 읽히는 내용이자만 가볍게 읽을 수 없어서 한글자 한글자 꼭꼭 씹어서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 일본 소설을 한참 좋아했을때.. 그 소설에 와이프가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하는 설정이었는데.. 그렇게 도망쳐서 친정으로 갔지만 그 부모님은 어쩔 수 있겠냐며..남편 잘 다독거리면서 살라고 돌려 보내는 것을 보고.. 아...더이상 이 작가책은 못 읽겠구나..싶더군요. 그때의 착잡함과는 다른 것이지만. 읽는 내내 쓸쓸함은 어쩔 수 없네요. 담담한 문체가 더 마음에 쓰여요
저는 주말부터 따라잡겠습니다! ㅎㅎ 현재 읽는 책이 있어서 ㅎㅎ;;
모임에서 여러 분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책 제목이 자극적이고 시선을 많이 잡아 끕니다. 한편 제목 자체가 이야기의 너무 큰 스포일러 아닐까 생각했는데 책을 펴자마자 바로 이야기가 딱 나오네요. 저 개인적으로는 한국어판 제목을 굉장히 잘 지으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레모 번역가님께서 정하신 걸까요? 원제 바꾸실 때 좀 망설이셨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정하신 건지 궁금해요.
저도 제목이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이 한 문장이 여러 사람이 부서지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아서요. 원제 그대로라면 정말 멋진 번역이고 바뀐 거라면 원제가 뭔지 궁금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Ceci n'est pas un fait divers인데요, 우리말로 직역을 하면 '이것은 신문 사건사고란의 기사가 아니다' 혹은 '이것은 사건사고란에 실리는 부류의 사건이 아니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런 사건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를갖고 있어요. 하지만 해외 에이전시에 이 책을 소개할 때는 영어 제목을 'DADDY HAS JUST KILLED MUMMY'로 했고요. 그래서 작업을 하면서는 당연히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로 진행했는데요, 막상 출간을 앞두고는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제목이 너무 자극적인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이 제목만으로 누군가에겐 잊고 있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제목 때문에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읽고 싶어하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제목만으로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출간 후의 반응을 보면 다른 제목으로 했어야 했다는 후회도 들어요.
그러고보니 영문판 제목들이 훨씬 더 강렬하거나 자극적이거나 좀 직설적인 경우가 많더라구요..
출간 후에 우려하신 대로 누군가의 상처를 건드려 아프게 하는 일들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더 좋은 제목이 뒤늦게 떠오르셨을까요 제게는 이 제목의 강렬함이 주는 메시지, 깨워야 하는 상황이 느껴져 대단히 필요한 제목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아버지가 전형적인 것은, 정말 실제로 이런 특징을 갖고 드러내도록 교육받고 키워져 그렇지 않아 싶기도 해요 남자는 이래도 되고, 이 정도는 괜찮고, 이럴 수밖에 없음을 주입받는 부분도 있는 듯요...
책 제목으로 어떤 게 좋았을까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는데 말이죠, 참 결정하기 힘든 일이네요. 분명 "fait divers"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기에 불어 원제가 일리가 있지만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는 약하고, 말씀하셨듯이 지금의 제목이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 있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제목을 정하는 일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되네요.
저는 제목 덕에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읽게 되어서 제목이 좋았는데요. 별개로 이 책 제목을 말할 때마다 저희 형제가 움찔합니다. 제목이 불온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이 위험한 불안을 실제로 겪어서일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이 글을 쓰다보니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이 떠올랐네요. 책 소개를 가져와 봅니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첫 문장만으로 전 세계 독자에게 충격을 선사한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아니 에르노의 여덟 번째 소설이다. 나의 삶을 지배한 원체험에 대한 고요한 응시 “그날 이후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1952년 6월 15일, 아버지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낫을 든다. 이어지는 어머니의 비명소리.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모님은 식탁에 앉는다. 흔한 부부싸움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열두 살의 아니 에르노에게 ‘그날의 사건’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난한 노동계층의 외동딸로서 중산층 이상이 다니는 기독교 사립학교에 입학한 에르노에게 부모의 세계와 사립학교의 세계 사이에 놓인 간극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각인시켰다. 가난하고 천박한 부모가 부끄럽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기 존재의 뿌리라는 것. 1996년, 어느덧 중년이 된 에르노는 사십여 년 전의 기억을 다시 꺼냈다. 열두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 그날의 사건만큼은 결코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는 에르노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사로잡은 그 원체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1952년으로 돌아간다.
부끄러움"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첫 문장만으로 전 세계 독자에게 충격을 선사한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아니 에르노의 여덟 번째 소설이다.
이 책도 읽어 보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저 프랑크와 세실이던 시절, 함께 포토부스에서 찍은 즉석사진 넉 장이 시선을 붙잡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별 생각 없이 포토부스에 들어갔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연달아 찍힌 20대 남녀의 샐쭉한 얼굴에서 시작하는 이들의 천진함과 서로 붙어 있고 싶고,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사랑으로 살짝 바보가 되어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묻어 났다. 그래서 그들은 둘 다 아름다웠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4 / p71,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비극의 시작은 어디서 부터일까요. 이토록 즐거웠던 만남의 시간에 비극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던 프랑크를 알아보지 못한 세실의 잘못이었을까요? 관계의 비극은 한 가지 이유나 사건으로 촉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작고 사소한 일들의 축적과 회복되지 않고 멀어지는 관계 사이에서 불만과 불안이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아름다웠던 프랑크와 세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너무 궁금해 책을 덮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다음, 나는 만남의 우연과 던져진 주사위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외출하지 않았다면... 그날 밤 아버지의 눈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면... 어리석은 가정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72,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은연중에 복선으로 깔리는 신호들을 잘 읽지 못하고 후회하는 모습들이 드러나면서 너무나도 공감이 되는 문장이었어요. 깨진 걸 다시 붙이고 이어지게 만들고 싶어하지만 실제론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걸 다들 알면서도 후회하는 마음이 너무 잘 드러나는 문장이어서 강렬하게 다가온 문장이었습니다.
레아가 "오빠는 5년 동안 떠나 있었잖아."(87쪽)라고 한 말에 화자인 나는 "단두대 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87쪽)라고 표현하는데, 이 대목이 그 벌어진 비극에 대해 나가 얼마나 큰 죄책감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 죄책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네요. 즉, 함께 하지 않았다라는 자신의 부재에 대한 죄책감인 것이죠. 자신이 파리가 아닌 집에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또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레아가 그 비극의 유일한 증인이 되게 내버려두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말이죠. 또한 "나는 내가 그동안 알려 하지 않았고, 시선을 피했으며, 모든 경고를 무시해왔음을 깨달았다."(86쪽)라고 말하는데, 나가 어떠한 어린 시절을 겪어왔을지 충분히 상상이 되기에 그의 행동은 자기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당사자로서는 이 점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편, 나가 집을 떠난 시점은 5년 전 그러니까 열세 살인 레아가 여덟 살이었을 때라는 것인데, 그 어린 아이가 어떻게 일상을 견뎌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어 한없이 먹먹해집니다...
이런 경우들을 종종 들어본 것 같아요. 집안이 늘 시끄러워서 탈출하듯 그 공간을 빠져나온 사람들 이야기요. 아마 이 책의 화자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파리에 가서 공부할 수 있게 더 열심히 했을 것만 같아요. 이 소설 전체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탈출하듯 떠났을 때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게 하네요.
저희 가족이 자식이 3명이고 제가 둘째인데요. 요즘 제 생각엔 k-장남, 장녀 하듯이 첫째에게 가부장적 역할이 주어진다고 느껴져요. 상대적으로 많은 기대와 지원, 권력이 주어지나 스스로 부담감이 크고 버거움을 느끼고요. 어떤 무력함도 보이고요. 둘째인 제가 첫째에게 가지는 불만이 가부장적인 현상에서 나오는 불만과 비슷하다고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저희 집의 첫째가 무심하고 문제가 닥쳤을 시에 회피하는 성향, 책임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서 질려하고 사실 어리광쟁이이다.. 라는 것 등등이요. 둘째인 저는 대체로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대화를 시도하고 싸우고 화해하고도 남아있는 쌈닭 포지션이고요. 최근에 <더 커뮤니티>라는 정치 서바이벌 시리즈물을 재밌게 보고 사상테스트도 해봤는데요. 의외로 첫째가 스스로 인식하는 가정 내 경제조건 점수가 저보다 높더라고요. 저는 더 어려운 시기에 첫째가 태어났으니 저보다 더 안 좋은 점수가 나올 줄 알았거든요. 다시 곱씹어보니 첫째에게 우선 배급되는 자원과 먼저 성인이 되어서 탈출하듯 원가정을 떠났기에 지금 남아있는 저와는 다르게 인식하는 듯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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