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눔] 여성살해,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 필리프 베송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D-29
가정 내에 비극이 발생했을 때 남은 구성원들이 어떻게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지 그 일면을 보고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사건의 일차적인 당사자인 "어머니"나 "그"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레아와 나에 관해서도 알 수 있어 한층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느낌입니다. 레아가 어떤 학교를 다니는지,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는지 그리고 나는 왜 집을 떠나게 되었는지, 파리에서 무엇을 하는지 등을 알게 되니, 그들이 더욱 구체적인 인물로 다가와 그들이 겪게 된 비극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미소였다. 괴물이 아름답게 미소 짓지 말란 법은 없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84,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우리를 둘러싼 삶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멋지고도 끔찍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93,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22장까지 읽었습니다. 16장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요, '못났다 못났다 참 못났다'하면서 읽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소심한 성격과 단조로운 삶과는 정반대인 즉흥적이고, 불만과 짜증이 많고, 분노조절장애 수준의 폭발적인 남편을 두고 그들 사이가 서로 균형이 맞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순종했던 삶을 벗어나기 위해 일탈을 꿈꾸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고, 아마 그래서 남편의 첫인상이 꽤나 멋져 보였을 수도 있었겠다...라고 이해해보기도 했습니다. 소령의 질문 과정에서 화자는 여러모로 어머니와 동생에게 죄책감을 느낍니다. 아버지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어머니와 동생을 외면하고, 어머니가 우울증 환자였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며, 아무것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열세 살 동생이 혼자 짊어지게 방치했다는 것에 크게 자책했을 거 같아요. 이 대목도 참 아프더라고요. 사실 화자 역시 고작 열아홉 살이잖아요. 외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도 잠깐 나오는데요. 마음에 들지 않는 사윗감, 그럼에도 딸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했던 자신의 선택을 얼마나 후회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어머니가 2년 전 아버지와 별거했을 때 그대로 헤어졌어야지! 해는데, 과연 아버지가 순순히 이혼을 받아들였을까를 또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쵸.. 정말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정말 '못난놈'이란 생각밖에..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네요.
@borumis 읽으면서 점점 화나고 있습니다. ^^;
어쩌면 아버지라는 인물은 너무 전형적으로 그려진 것처럼 보여요. 아마도 주변에서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자들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레모 맞아요. 인물들 중에서 가장 익숙한 인물이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버지의 서사 중에 이혼 가정이라는 점은 조금 불편했습니다. 한부모 가정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화되는 것이 아닐까, 마음에 걸립니다.
이혼가정인 것보다는.. 이 아버지가 이혼하고 아예 아이들 삶에서 사라져 버린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보통 이혼해도 아이들하고는 계속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데 이 아버지는 일부러 그들 삶에서 사라진 듯.. 주인공의 아빠도 아이들의 삶에서 방관자같고 실제 양육은 엄마가 주양육자였죠..
@borumis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만 주인공 남매의 아버지처럼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어머니 혼자 양육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대신 아버지가 바뀌지 않는 한 가족으로부터 격리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소설 속 피해 가정이 가정폭력이 사회문제가 아니라 개인 각자가 해결해야 할 사적인 문제로 여겨지는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맞아요. 어머님이 조금만 더 일찍 아빠 곁을 떠났더라면.. 이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네요..ㅜㅜ 이미 어머니가 아이들의 양육과 가정의 일을 혼자 도맡아 하시고 아빠는 더이상 바뀌거나 나아질 일말의 희망도 없는데.. 왜 계속 있으셨나요..ㅜㅜ 헤유..
우리나라도 과거 이런 가정 폭력에서 여자가 참고 사는 게 미덕인 듯 보였죠. 그게 가정을 지키는 것처럼요. 그렇게라도 가정을 유지하는 게 아이들을 위해 좋은 것처럼.. '폭력'에서 가정을 지키는 건 사회가 함께 해야 할 일이 됐지만 아직도 가정을 사적 영역으로 한정해서 개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가정사가 밖으로 공개되는 걸 거부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가정폭력이 계속 이어지지 않나 싶네요.
그날 저녁, 나는 동생에게 모두 쓸데없다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앞으로 동생을 짓눌러 바닥까지 끌어내릴 무게를 생각하면, 지금 동생은 부질없는 것이나 빈껍데기에 매달릴 권리가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 97,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어머니는 남편의 구타, 가정폭력, 가스라이팅을 <그런일>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고백하지 않은 것이다. 동생은 어머니의 말에 수긍했다. 구렁텅이를 숨기면서 그런일이라고만 말한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14,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대부분의 가정폭력이 이런 방식으로 가정내에서 은폐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집안의 흉한일이 밖에 알려지는 것이 부끄럽고 싫어서 고통을 숨기는게 급급한 경우가 많다 보니 ... 가정폭력을 막기가 더 어렵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듯 합니다
그쵸.. 가정폭력 뿐 아니라 학교폭력 성폭령 등 여러가지 폭력이 잘못한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숨기려고 하더라구요..ㅜㅜ 왜 가해자가 더 당당한건지..
나는 깊은 곳에서 올라와 잔잔한 수면에서 터지는 기포들처럼 당시에는 무심히 지나친 일들을 시간을 거슬러 다시 유심히 살펴보며 모으고 있었다. 그러자 선명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15,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느리지만 급진적인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시선, 즉 제3자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말에 밑줄을 긋고 싶네요.. 가정 폭력의 해법 중 가장 첫 걸음은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내는 이 제3자의 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딸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남편의 화를 돋우지 않으려고, 몰래 약을 삼킨 뒤 약이 담긴 주머니를 아무도 보지 못하게 약장에 넣고 급히 문을 닫고 심호흡한 뒤 욕조에 걸터앉아 있다가 화장실을 나서며 억지로 괜찮은 표정을 짓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만다. 어머니가 느꼈을 외로움과 혼란을 짐작해보니 동생의 말이 더욱 고통스럽게 메아리쳤다. 나는 한 번도 그 곳에 없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8 / p88,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함께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주인공과 몰래 약을 먹으며 괜찮은 척 애썼던 어머니, 그리고 이를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동생의 입장이 모두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고통이, 무기력함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군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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