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눔] 여성살해,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 필리프 베송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D-29
이번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일이야, 안 그래?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25,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나는 다가가 동생을 품에 안았다. 마침내 이 포근함에 기댈 수 있었다. 아니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레아는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서 나무를 껴안는 것 같았다. 동생은 팔을 늘어뜨리고 나를 마주 안지 않았다. 이 무기력은 적대감이 아니라, 동생에게서 삶이 빠져나갔다는 뜻이었다. 어떤 움직임도, 어떤 감정의 가능성도 없었다. 생 기를 잃고 껍데기만 남은 모습에서 동생이 겪은 폭력성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45,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12장 까지 읽었어요. 하지만 지금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완독할거란 확신이 드는, 거세고 강한 몰입감을 가진 소설이네요. 지금까지 읽은 것으로 유추하건데, 이 책은 스토리의 진행과 결말보다 화자가 이 일을 겪어내는 과정이 중요한 부분이 될 것 같아요. 어머니의 죽음, 살인자는 아버지로 예상되는 일생 일대의 폭력적인 상황에서 순간을 영원처럼 느낄 화자의 마음의 행방을 따라가며 읽어보려 합니다.
나는 완패한 사람처럼 비참해져서 내뱉었다. "왜 말 안 했어?" (동생이 감췄다는 사실 혹은 내가 놓쳤다는 사실이 이 모든 일이 가져온 절망보다 중요하다는 듯. 어쩌면 현실을 직시하지 않기 위해 핑계가 필요했는지도 모르지만) 내 질문에 레아는 동요하지 않고 설명했다(동생의 담담한 모습은 거친 비난보다 더 큰 상처가 되었다). "오빠는 5년 동안 떠나 있었잖아."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87p,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그날 늦게 나는 파트릭 아저씨의 소극성과 양심과의 타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건 바로 나의 것이기도 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78p,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동생 레아는 엄마와 가까이 있으면서 위태위태한 순간을 숨죽이며 지켜봤을 거예요. 그리고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고 그에 대한 트라우마로 악몽을 꾸고 일상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는 걸 보면 참 마음 아픕니다. 그런데 이럴 때 레아의 회복을 위해 개입하는 정도가 어느 정도까지여야 하나.. 참 고민이 많아져요. 오빠는 자기가 너무 오래 떨어져서 방관자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동생에게 적극 개입하지 못하는데 그 부분이 많이 아쉬움으로 남네요. 너무나 고요하게 지내려다보니 레아의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괴로움을 털어내는데 소극적이지 않았나.. 그래도 할아버지와 함께 눈을 돌려서 뭔가 새로운 생활에 도전해보거나 했다면 힘들더라도 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레아가 자해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이런 가정폭력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은 청소년들을 위해 우리나라는 어떤 치료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피해청소년 지원 체계가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어. 어쨌든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레아가 일부러 상처주려고 한 말은 아니지만, 내 귀에는 심판처럼 들렸다. 그들은 몰랐고, 그래서 나서지 않았을 거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리라. 하지만 내게는 비난과 고발처럼 들렸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20,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자책감에 빠진 주인공의 입장이 너무도 이해가 됩니다. 이웃은 무관심했고 가족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소설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기에 ... 읽는 이에게도 이 부분은 비난과 고발처럼 들립니다.
그는 아내의 생사에 대한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뿌리 깊은 확신을 품고, 그 확신에 이끌렸을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24,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연인 혹은 아내의 생사에 대한 권리를 가졌다는 착각, 상대방을 소유물로 여기는 태도... 너무 끔찍하네요 최근 뉴스에 보도된 데이트 폭력과 살해 사건들이 떠오릅니다ㅠㅠ
"그"로 지칭되는 아버지가 뿌리깊은 가부장제의 산물임을, 그래서 어머니를 그의 소유물로 보고 결국 그 비극을 저지르게 된 인물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을 아래에 문장 수집합니다. 그런 아버지이기에, 도망치다 잡혔을 때조차 "아, 아이들도 데려와주세요"(135쪽)라며 소령에게까지 "여전히 명령하고 요구"(135쪽)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겠죠. 자신의 가정의 일이고, 따라서 아이들에게까지 자신이 절대 권력을 갖는다고 여길테니 말이죠. 이러한 아버지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지점에 어머니가 있습니다. 특히, 화자인 나가 동성애자임을 밝혔을 때 나에게 보인 어머니의 태도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어머니의 태도를 보면서 가부장제가 긴밀하게 이성애 중심주의와 연동되는 지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말고,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131쪽)라는 판단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 갑작스러운 광기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바로 그 순간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아내의 생사에 대한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뿌리 깊은 확신을 품고, 그 확신에 이끌렸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었던 끈질긴 폭력이 그 증거였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24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그들은 몰랐고, 그래서 나서지 않았을 거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리라. 하지만 내게는 비난과 고발처럼 들렸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원서 제목이 궁금해서 불어전공 지인에게 물었거든요. 처음엔 어? 너무 다른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책을 읽으며 와 정말 대단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행복해보이는 5월에 이런 책을 만나 생각이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먹먹해요.
화자도 화자지만 저는 동생이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마음이 쓰여요.. 사건을 말로 들은 사람과 그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은 그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 아이가 평생을 그 끔찍한 순간에 갇혀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도 어머니가 죄인이었다. 충분히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죄, 멍과 상처로 뒤덮이지 않은 죄. 헌병대가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거나 도입부 진술만 기록한 것, 가장 기본적인 직감이 부족했던 것은 죄가 될 수 없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52,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제 부하는 남자라서 여자와 의사소통이 늘 매끄럽지는 못하죠. 또 남녀 관계는 당사자들만 아는 일이고, 문제가 발생해도, 이런 종류의 문제는 부부끼리 해결하는 거니까 끼어들면 안 된다고 제 부하도 보통 사람들처럼 생각했을 뿐이죠.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54,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여자와의 의사소통'이라니... 이걸 변명이라고 하는지, 참 기가막힙니다.
그때 나는 심각한 과실을 저지른, 타인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에게 가해진 충격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힘을 우리 안에서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난 나는 틀렸다. 그것도 나중에 알았다. 너무 늦게.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p156,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그래서 레아와 할아버지와 나, 우리 셋은 아무 힘없이, 초라하고 무기력하게 하루아침에 들어갈 수 없게 되어버린 어린 시절을 보낸 집 앞에 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우리는 빈털터리로 거리에 던져졌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이 압수한 것은 우리의 주거지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의 삶과 기억을 압수하고, 우리의 일상이었던 것을 빼앗아버렸다. 어린 시절도 지워야 하는 것처럼, 더 거침없이 말하자면 우리는 개인 소지품과 옷도 빼앗겼다. 이 모든 것을 몰수당한 무례하고 어이없는 상황이 몇 달이나 이어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몰랐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141쪽,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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