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한은형 소설가와 [위대한 개츠비] 함께 읽기

D-29
소주는 못 마시고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다가 요즘에는 와인을 마십니다. 위스키는 어렵더군요. 책맥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책을 읽으면서 술을 마시는 건 경험해보지 않은 영역이라 이게 어떤 감각인지 궁금하네요. 뭔가 좀더 성숙해져야 할 수 있는 스킬 같네요.
저는 오늘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맥주 한 잔을 했습니다. 성숙함이라는 덕목과 저는 거리가 멀지만요
자고 싶은데 잠이 오지 않는 밤 or 새벽에 책과 위스키로 잠 올 때까지 취중 독서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잠은 계속 멀어져가고 피로도 더해가고… 다만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때 음주욕구가 커지는 경험은 있습니다. 특히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다가 달리고 맥주 한 잔 하고픈 마음이 밀려왔어요. 만약 운동하려는데 계속 미루시는 분이 있다면(그리고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이 책 추천드립니다.
아웅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 음주욕구가 커진다는 '흥하리라'님의 말씀에 완전 공감! 제가 그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저자는 달리기 근육을 말하지만, 저는 글쓰기나 자기계발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부담을 늘리며 익숙해져가는 거죠.
단풍 산행 가셔야 하는 시간에 책을 읽고 계시군요!
저도 한밤중에 꼬냑응 마시면서 읽는 책 좋아합니다. 꼬냑과 어울리는 책을 좋아하는지도요.
한은형 소설가님 말씀대로 7장에서는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오네요. 진 리키로 시작해, 흑맥주를 마시다, 위스키를 챙겨갑니다. 술기운이 오른 데이지는 남편 앞에서 개츠비를 향한 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요. 톰은 개츠비에게 차를 바꿔타자는 제안을 합니다. 아, 왜 이리 아슬아슬하지요? 술을 안 마시기에 가끔 술자리에 가면 이런 기분이 듭니다. 술기운이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아슬아슬해요.
7장을 읽다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들이 설마하니 이 자리를 빌려 소동을 벌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특히 개츠비가 정원에서 대충 일러 준, 좀 비참한 그 소동 말이다.' 조금씩 나눠 읽다보니 이런 대목에서 곤혹스러워집니다. 음, 뭐라 그랬더라? 6장을 다시 읽어봅니다. '그는 그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가 되돌리고 싶은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 들어간,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졌지만, 만약 다시 한번 출발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모든 것을 다시 음미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 그러니까 개츠비는 데이지가 결혼을 하기 전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거죠. 불가능한 소망입니다. 마치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의 대사, '나 돌아갈래'를 보는 것 같아요.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잘 될 수 있을까요?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람들은 나중에 다시 만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회한이 커지는 것이겠죠.
화제로 지정된 대화
스물두 번째 날입니다. 닉과 베이커를 관중으로 둔 채, 데이지를 두고 톰과 개츠비가 신경전을 벌입니다. 그리고 개츠비는 패배합니다. 톰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톰에게 말하라는 개츠비의 요구에 데이지가 질려버렸죠.(그전까지는 분위기가 매우 좋았지만요.) 개츠비가 어떻게 행동했으면 데이지는 톰을 떠나 그에게로 왔을까요? 그들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이 대목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어요. “아, 당신은 너무 많을 것을 원해요!” 그녀가 개츠비에게 소리쳤다. “지금 난 당신을 사랑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과거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녀는 절망적으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 사람을 한 번쯤은 사랑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도 사랑했어요.” 연애를 시작한 남녀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질문 중 하나가 과거의 연애에 대한 것이라고요. 과거가 무슨 상관이에요, 지금 누구를 사랑하느냐가 중요하지. 개츠비는 5년 동안 내내 자신이 데이지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데이지도 그랬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정도에 있어 공평한 기준이란 없어요. 공평함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사랑은 흔들리는 거 아닐까요?
개츠비가 품은 이상에 걸맞은 사랑을 데이지가 줄 수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결국엔 파국이 예정돼 있는 관계처럼 보였어요. 처음엔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이 허황한 아메리칸 드림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연인의 눈동자에 비친 사랑에 빠진 내 모습과 사랑에 빠지는 나르시스트의 그것처럼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헛똑똑이의 관점이 아닌가, 달리 생각해 보게 돼요. 데이지는 누가 보아도 썩 괜찮은 사람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런저런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다는 개츠비가 대단하구요. 사랑은 바보처럼 하는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사랑에 빠진 바보가 될 수 있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고, 우리는 어느 정도 타인을 판단하면서 헛똑똑이처럼 살고자 하는 것 같아요. 그걸 보면 위대함은 어떤 맹목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예전에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쓴 에세이도 떠오릅니다. 위대한 운동 선수들의 에세이가 놀라울 정도로 상투어로 쓰여졌으며 별 볼 일 없다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위대함을 증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위대한 선수들은 자기 위대함에 대한 자각(판단)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극한의 퍼포먼스를 발휘해야 하는 스트레스 순간에 거리낌이 없이 망설임없이 신체를 활용할 수 있었다고요. (재밌게도 이런 통찰을 쓴 것은 언제나 생각의 겹이 너무 많고 사사건건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포스터 같은 사람이었죠.)
@russist 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몇번씩 다시 읽으며 곱씹어보게 되는 말씀이네요. 위대한 선수들의 에세이가 상투어로 쓰여졌다는 얘기도 확 와닿고요. 무언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쉬운 말로 간결하게 설명하고요. 괜히 어렵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잘 들어보면, 제대로 모른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전달을 잘못한 건가 싶긴 한데, 포스터는 해당 에세이에서 약간 위대한 선수들의 에세이를 까는(?) 의미로 쓰기는 합니다. 하지만 글은 읽히기 위해서 쓴다는 큰 맥락에서 미키타임님 말에 동감합니다. 저도 좀 베베 꼬아서 말하는 편이라서 반성하게 되네요. 의견 감사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린 내용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알마 출판사)에서 '트레이시 오스틴이 내 가슴을 후벼판 사연'이라는 에세이입니다.)
아, 그렇군요. <끈이론>도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올려둡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모든 것을 원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가 자신에게 한 번도 톰을 사랑한 적 없다고 말하라고 요구하자 곤란해 합니다. 미키타임님이 인용해 주신 “아,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원해요!” 그녀가 개츠비에게 소리쳤다. “지금 난 당신을 사랑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과거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녀는 절망적으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 사람을 한 번쯤은 사랑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도 사랑했어요.”이라는 구절을 보면 데이지는 개츠비의 생각처럼 톰과 이혼하고 개츠비와 새출발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이혼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한때 사랑했던 톰에 대한 애증의 마음도 아직 정리가 다 안 되었을 테고, 지금 현재 아무리 개츠비가 성공했고 화려한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톰의 부유한 집안과 출신 성분(계급)을 포기하기도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개츠비가 어떻게 행동했더라도 데이지에게 있어 개츠비는 결국 톰에게 있어서의 머틀 정도의 존재밖에 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기 전에 이 책을 읽기 꺼려졌던 이유가 개츠비가 데이지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인데요. (책을 읽지 않아도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보아 도 데이지는 맹목적인 사랑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 것 같지 않은데 개츠비는 왜 그렇게까지 데이지를 사랑했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1. ‘그녀는 그가 처음 만난 ‘상류층’ 여자였다.’ ‘개츠비는 부가 가두어 보호하는 젊음과 신비를, 그 많은 옷이 선사하는 생동감을, 그리고 데이지를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안전하고 오만한 그녀를.’-> 상류층에 대한 동경과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 2. ‘게다가 다른 많은 남자들이 데이지에게 목을 메고 있다는 사실도 그를 흥분시켰다. 그의 눈에는 그녀가 점점 더 가치 있는 존재로 보였다.’ -> 아름다운 데이지의 외모와 생동감 있고 오만함에 가까울 만큼 자신만만한 데이지의 성격에 매력을 느낌, 예쁜 여자를 가졌다고 생각할 때 남자들이 느끼는 우쭐함 3. ‘그는 열일곱 살짜리 소년이 만들어낼 법한 제이 개츠비란 인물을 창조했고, 끝까지 그 이미지에 충실했다.’ ->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는)는 자신에 대한 도취감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지금 8장까지 읽었는데 아직까지도 이 사랑이 뭐가 그리 대단하고 의미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저희 남편 말로는 9장이 진짜라고, 9장을 읽고 나면 이 작품이 왜 대단한지 알게 될 거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지 궁금하네요.
책과 사람의 공통점...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나랑 코드가 안 맞는 사람/책도 있더라는 거죠. 반대로 사람들이 다 욕을 하는 사람도 내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거고요. 그런 점에서 '기행'님이 소설이 꺼려지는데도 끝까기 읽겠다는 그 태도는 존경스럽습니다. 온라인 독서 모임이라는 '구속'의 힘일까요? 9장까지 읽고 나신 후의 느낌도 궁금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스물세 번째 날입니다. 오늘부터 사흘 동안 8장을 읽겠습니다. 그러면 9장에 다다르고, ‘위대한 개츠비’ 읽기가 끝나겠어요. 시간이 벌써…… 8장에서도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을 사랑한 적이 없었을 거라며, 닉에게 계속해서 말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개츠비를 사랑했던 것과 별개로 톰을 사랑할 수도 있고, 자기와 헤어진 이후의 일인데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하고요. 톰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하면 자기에 대한 절대적 사랑이 증명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자기와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걸까요?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저도 이 대목에서 많이 안타까웠는데요. 생각해보니 저도 스무살 적에는 그랬더라고요. 사랑이 상대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인줄 알았던 시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나이를 먹고 나니 요즘은 바뀌었어요. '음... 변할 수도 있지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너그러워진 게 아니라... 나이가 들고 나니 사람도, 사랑도 완벽할 순 없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완벽한 사랑을 요구하는 순간 숨막힌다는 것도요.
심지어 그 뒷부분에 개츠비가 신혼 때는 톰을 잠시 사랑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도 역시 나를 더 사랑했다고 강조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더군요.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해서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다시 집착하는 개츠비의 일면이 느껴졌습니다. 신경증적이고 일그러져있지만 이런 게 사랑이라는 감각이 가지는 속성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데이터사이언티스트가 쓴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행복한 연애의 조건만큼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해석 불가한 미지의 영역 때문에 다들 매혹되는 거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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