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한은형 소설가와 [위대한 개츠비] 함께 읽기

D-29
'신비'란 무엇일까?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어떤 것인데, 무척이나 좋거나 아름다워 보이는 것 아닐까요? 사랑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자신과 똑 닮은 사람보다는, 자신과 다른 이질적인 존재에게 끌리기도 하지요. 내게 없는 무언가를 채워줄 수 있다는 생각에... 결혼 후, 신비가 유지된다면 참 좋겠지만... 신비는 익숙해지면 사라지는 느낌인 것 같아요. 그게 사랑의 슬픔이 아닐까요?
결핍 요소들이 신비의 요소로 대상화되기 쉬운 거 같아요. 성별이 다른 이성이나 현실이 아닌 종교에 매혹되는 부분도 이런 점들이겠죠. 스마트폰으로 카메라가 일상화되면서 세상의 UFO와 요정, 귀신들이 사라졌는데 정량화되고 규격화된 카메라의 뷰파인더가 카메라 플레어 같은 현상을 '이해'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덕분일 거 같아요. 다른 면으로 연예인도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예전처럼 신비감의 아우라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시대가 된 거 같고요. 개츠비의 아이러니는 부라는 결핍의 요소를 어느 정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스스로 설정해놓은 경계 안에 자신을 가두는 부분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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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번째 날입니다. 오늘까지 8장을 읽습니다. (어제 제가 잘못 썼네요.) 여름에서 가을 사이, 수영장의 공기 매트리스 위에서 개츠비는 죽음을 맞습니다. 수영장의 물을 빼야 하는 시기에요. 튜브에 바람을 새로 넣고 그 위에 떠 있다가 총에 맞죠. 이제 추워져서 그런지 이런 디테일들이 더 들어오더라고요. 그가 죽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개츠비가 닉에게 그러지요. 운전을 한 사람은 데이지지만, 자신이 운전을 했다고 할 거라고. 머틀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거죠. 데이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남자. 사랑하는 대상이 헌신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상관없어요. 그저 끝없이 주는 것 뿐... 문득 죽음으로 개츠비는 자신의 사랑을 입증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츠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1920년대 저 세계에 들어가서 그의 관상이나 손금을 봤다면 저렇게 비명횡사할 팔자였겠구나 확인했을 거 같아요. 처음 닉이 촉이 좋았다면 그를 목격했던 장면에서부터 그의 인생의 이렇게 끝나겠구나 예감했을지도 모를 일이겠고요. 노자가 나뭇가지가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듯이 열망이든 집착이든 너무 강하면 결국 이렇게 부러지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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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번째 날입니다. 이제 마지막 장입니다. 개츠비가 죽고 나서 닉은 말합니다. 개츠비 편을 드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고요. 닉이나 개츠비 편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결국 닉은 개츠비가 죽었기 때문에 그를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과연 개츠비가 죽지 않았더라도 그를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소설 자체가 닉의 회고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을 보면, 개츠비가 실제 어떠한 사람이었는가와 무관하게 닉은 개츠비를 멀리 두고 감히 범접하지 않고 숭앙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개츠비가 데이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닉도 개츠비를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재밌게도 오늘 다른 책을 뒤적이다가 이런 대목을 만났습니다. "가장 중요한 글들은 이런 내용에 바쳐졌다. 너는 네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 너는 네가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 너는 있는 그대로의 네가 아니다. 그리고 그 역도 아니다."
픽션에서는 개츠비에 공감가는 부분이 있을 거 같지만 현실에서 '개츠비의 편에 서기'는 건 한 개인이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네요. 이런 게 픽션이 주는 안전 장치 같기도 하고요. great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쨌든 이 정도의 유니크한 인물이라면 그레이트를 붙이기에 충분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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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번째 날입니다.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그의 아버지, 하인들, 호기심으로 온 사람, 목사, 그리고 닉 정도가 참석합니다. 제가 갔던 장례식장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내가 죽고 난 후에 대해서, 또 나의 장례식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예전에 결혼식을 올릴 때, 혼수 장만이며, 가전 마련이며, 예식 준비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더군요. 똑같은 여행 상품도 허니문은 더 비싸고요. 똑같은 가전도 신혼 살림이라 하면 가장 비싼 옵션을 보여줍니다. 예비 신랑 입장에서 '좀 더 싼 걸로 보여주세요.'라고 하기가 힘들더군요. 그때 속으로 생각했어요. '다들 신혼부부들 삥 뜯어서 먹고 사나?' 정작 유교의 가르침은 따르지 않으면서, 유교가 남긴 '관혼상제'라는 예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다고 느꼈습니다. 아이들 돌잔치는 가족 모임으로 대체했고요. 나중에 제 장례식도 최소한으로 치르게 하고 싶습니다. 결혼이며 장례절차가 더 간소화되었으면, 하고 바랐는데요. 코로나가 터진 후, 절로 그렇게 되는 분위기네요.
장례식은 나의 사후에 벌어지는 일이다보니 통제 불가능하다는 게 큰 거 같아요. 그래서 생전 장례식 같은 것도 고민하게 되고 그런 거겠죠. 화장 등 저 자신의 소멸 절차는 최대한 간결하게 진행해서 마무리하고 손님들은 육개장 나오는 좌식 식당이 아니라 등받이 있는 의자가 있는 조명 밝은 식당에서 와인이나 드래프트 비어와 그에 페어링되는 안주들을 제공하고 싶네요. 술 마시는 동안 심심하니까 한 시간에 한번씩 개인적으로 썼던 물건이지만 어쩐지 버리기 아까운 아이패드나 괜히 예매해둔 여행 티켓 같은 물건들을 경품으로 추첨해서 제공합니다. 물론 조의금은 없고요. 그런데 이렇게 하기엔 이런 예외 케이스의 장례식을 운용해야하는 저의 사후에 남아서 장례 진행해야할 사람들이 너무 귀찮을 듯. 반려 고양이가 아프면 최대한 주인과 멀리 떨어져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무리 집단에 나의 효용 가치가 사라진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조용히 보이지 않게 사라지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사람이다보니 어렵네요. 태어나는 일도 난제지만 죽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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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번째 날입니다. 함께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요. 개츠비가 위대하게 느껴지시나요? 위대하다는 건 뭘까요?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게서 위대함을 느끼시나요?
위대함으로 감각되는 것들의 속성에는 '짧음'의 속성이 따라붙는 거 같아요. 알렉산더 대왕이나 정조 그리고 개츠비도 짧게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이에 콘트라스트가 더해져서 위대함의 색채가 더 강하게 부각되는 거 같고요. 개츠비가 아무 일 없이 72세까지 장수했다면 오래된 연애의 끝자락처럼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씁쓸했을 거 같습니다. 마지막 날이네요.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의 여진이 계속되는 날인데 그믐 로그인 옵션에 카카오로 로그인을 선택했더라면 로그인 불가로 끝 인사를 못 남겼을 거 같습니다. 덕분에 한달 간을 1920년대에 머물러 지냈습니다. 여러분 모두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과거 속으로 밀려나더라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하루하루 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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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마지막 날입니다. 이 책의 번역가 김욱동 선생님의 역자해설에 따르면, 개츠비적 Gatsbyseque 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낭만적 경이감에 대한 능력이나 일상적 경험을 초월적 가능성으로 바꾸는 탁월한 재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면서요. 저는 단어에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개인적 의미를 부여하는, 자의적 단어 사용이 어느 정도 언어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개츠비적'도 그렇게 저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개츠비적이다'라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정의들이 궁금합니다. 개츠비적이다라는 말에서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위대한 것이 무엇인지, 낭만적인 것이 무엇인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에 대해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같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2022년 10월 16일 한은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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