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소해의 장르살롱] 14. 차무진의 네 가지 얼굴
D-29

예스마담

하뭇
어버이날이네요~ 저는 이 책을 어버이날 선물로 받은 거였답니다.ㅎㅎ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선물은 책이라고...^^
근데 책보다 저 카드가 더 감동적이었어요. 작가님 죄송. 🤭 하지만 이해하시죠? ^^


꽃의요정
부럽네요~저는 본인이 먹고 싶어하는 초콜릿(저는 페레로로쉐 안 좋아하는데)을 주더라고요..보여주고 냉큼 냉장고에 갖다 넣던데~
여우의 계절 정말 강추예요~!

하뭇
아이가 아직 많이 어려서 그런 거 같은데요.ㅎ 저희 아이는 6학년이에요.^^

차무진
부모님께....여우의 계절....이 좋은 봄날에...스산한 겨울을 보여드려서 어르신께 송구합니다 ㅠㅠ

STARMAN
작가님, 질문입니다.
첫 장면에 "피가 흐르는 아내의 머리"를 들고 가는 동민의 모습으로 앞으로 펼쳐질 작품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인육을 먹기 위해 신체를 해체하고 죽은 시신들이 나뒹구는 세상.
하지만, 제게 제일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동민의 환각 속에 나타난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머리없는 아내가 동민의 등을 밀어주는 장면은 참으로 슬프고도 엽기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환각 속, 아내의 모습을 '얼굴'이 아닌, '머리 없는 몸'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환각 속이라면 살아 있을 때의 온전한 아내의 모습이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혹시 어떤 의도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뭇
저도 이 점이 궁금했어요. 환상인데 머리 없는 모습일 필요가 있을까.

차무진
동민의 의식은 약에 의존한 의식입니다. 동민이 그리움에 젖어서, 술에 취해 잠든 가운데, 사막에서 갈증에 의식이 혼미해서 아내 지연을 만난다면 지연은 아마도 천사의 모습이나 맑은 모습으로 나타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작중의 동민은 디엠티로 연명하며 아내를 만납니다. 약물이잖아요. 괴기스러운 의식의 재조합이 있었을 테고, 목 없는 아내가 다정하게 말을 거는 현상을 맞딱뜨리는 거죠. ㅎㅎㅎㅎㅎㅎ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아내의 머리를 제거했습니다. 또, 머리 없는 아내의 모습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신선해보이기도 했어요. 정리하면 우리는 약에 손을 대지 맙시다!!! ㅎ

STARMAN
말씀대로 동민의 의식이 혼미해져 아내를 만났다면, 지금 만큼의 애잔함이 덜했을 것 같아요. 현실의 우리는 약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하지만, 작중의 동민이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약을 통해 힘을 얻어 상황을 버텨나가는 것이 훨씬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하나 더 할께요.
책 소개에서도 나오듯이 <인 더 백>은 '부정(父情)을 슬프고 과감하게 녹여낸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가슴 절절하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을 통해 동민과 한결이 함께한 고된 여정이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착과 환각이었다는 결말은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반전 덕분에 <로드>를 비롯한 다른 작품들와 <인 더 백>이 확실히 차별화 되고, 신선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님께서는 <인 더 백>을 통해 부정이 아닌,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차무진
바로 보셨습니다. 인더백은 부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남자의 생존 사투를 이야기 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생존의 사투가 본인의 의지나, 신념 따위가 아니라 (신파이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과 아내와의 약속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작중에 아내 지연이 그런말을 하지요. '어쩌면 이 아이가 당신을 살린 것인지도 몰라(364페이지)' 부정을 녹아낸 작품이라는 표제는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요, 읽고나면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생존의 근원이었다는 생각을 해주기 바랐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의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남자든 여자든)은 자신의 생존이 책임져야할 대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죠. 굳이 사회상을 표변하고 싶지는 않지만, 동민 역시 자신의생존을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투영해서 움직였습니다. <인더백>은 부정 아래에, 생존이라는 주제가 있고, 그것이 한국 남자의 생존이라는 것이어서 그 당시 좀 주목을 받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뭇
아내에 대한 죄책감도 느껴져요. 아내가 자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게 된 것도 미안한데 결국 시계 때문에 죽게 돼서. 그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그 죄책감이 지나쳐서 속죄의 방법으로 아이를 살려야한다고 생각하게 됐을 거 같아요.
또다른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도 힘겨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일 때가 많으니, 아이를 지킬 수 있게 더 강한 자아를 만든 것 같아요.

차무진
네. 정확하십니다!!!!

차무진
오늘까지 [인더백]읽기 인 듯해요.
제가 드린 질문이 있었죠. 동민의 아이가 죽은 존재임을 알리는 가장 큰 복선. 첫번째 반전에 관해 여러 복선을 수없이 깔아두었고, 그게 독자님들께 지뢰처럼 하나 밟혀서 터지길 바랐어요. 짜잔, 하고 속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자연스레 속일 수 있는 노련함이 진짜인 것 같아요) 다만 제가 다소 독자님들꼐 속이고 싶었던 점이 있다면 두번째 반전트릭이고요, ㅎㅎㅎ 아무튼 첫번째 반전의 복선을 다소 노골적으로 드러낸 지점은 바로 144페이지와 145페이지 윗부분입니다. 놀이터 터널놀이기구에, 죽은 아이가 들어가면 동민이 꺼내야 하는데, 자신의 덩치가 커서 화를 내는 장면이죠. ㅎㅎㅎㅎ
[인더백]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 리고, 저로서는 매일매일 황공하고 부끄럽고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STARMAN 님 @하뭇 님 @거북별85 님 @siouxsie 님 @장맥주 님, @Henry 님, @여름섬 님 @미스와플 님, @나르시스 님, [인더백]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11일까지는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 이군요. 그 책을 읽으신 분들과, 또 위의 분들 모두 계속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저는 요즘 그믐이 있어서 참 즐겁습니다. 그간 작품 만들면서 고독하고 외롭고 서러웠던 기분들이 싹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하뭇
어머! 저 그 부분 혹시나 했었는데! 진짜요!
근데 역시나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의심과 인정의 선' 때문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네요.
아... 아까비...

꽃의요정
엇! 그 장면 생각도 못 했는데 오늘 다시 읽어 봐야겠어요~
빌런작법서도 낼부터 읽을 거예요!
작가님책이 밀란 쿤데라 님의 책처럼 르네마그리트같은 화가의 그림으로 양장본 세트가 나오길 기대합니당~~

장맥주
작가님의 설계에 완벽하게 걸려든 사람입니다. 첫 번째 반전을 어느 정도 눈치 챘던 것 역시 작가님의 의도였네요. 덕분에 더는 반전이 없겠지 하다가 두 번째 반전에서 호되게 놀랐어요. 그런데 사실 눈에 불을 켜고 책을 다시 읽었는데 144~145쪽이 복선이라는 걸 몰랐어요. 말씀 듣고 찾아본 뒤 ‘아!’ 하고 이마를 쳤습니다.
관련해서 한 가지 질문이 (또) 있습니다. 사실 『여우의 계절』 북토크 때 박산호 작가님이 물어보신 질문의 반복인 거 같기도 합니다만...
최근에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을 읽었어요. 차분히 시간을 들여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들이 줄고 ‘콘텐츠 소비’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영상물이 점점 쉬워지고 설명이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캐릭터의 표정이나 배경 화면을 보고 관객이 유추했어야 할 정서나 상황을 등장인물이 직접 독백 등으로 설명해주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현상이 도드라진다고 했습니다.
저는 책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거든요. 젊은 독자들의 문해력도 낮아지고 있고, 또 책을 그렇게 집중해서 읽는 것 같지 않습니다. 특히 장르소설에서 그런 현상이 더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듯해요. 이런 세태에 정교한 복선이나 암시 같은 기법이 얼마나 유효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작가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조금 뚱딴지같은 질문입니다만, 작가님의 소설은 굉장히 흡인력이 있지만 웹소설 호흡과는 많이 다르다고 느껴지는데, 웹소설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욕구는 없으신지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없이 그대로 옮겨야 본다. - 빌런은 사절. 착한 캐릭터만 나오길 원한다. 본래 영화는 ‘영화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제작자가 만든 대로 시청하는 수동적인 콘텐츠였다. 하지만 텔레비전과 OTT를 통해 자유롭게 영화를 건너뛰면서 보거나, 빨리 감기로 보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영상을 직접 편집하여 10분 내외의 짧은 영화로 만든 콘텐츠를 즐기기도 하고, 인터넷 사이트의 해설을 수시로 참고하면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을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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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전 예전부터 추리소설(특히 일본추리소설) 읽을 때 맨 마지막에 범인 잡히고 나서 범인이 본인이 깔아놓은 함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부분을 못 참겠어서 읽는 걸 멈춘 1인입니다. 그래도 가끔 읽는데 아직도 이러네...그러고요.
그래서 그런 설명 안 해주고, 갑자기 형광등 퍽 나가듯이 끝나는 차무진식엔딩 기법 너무 좋습니다. 머리 한 대 맞은 느낌으로 끝나서요.
그리고 '김유신의 머리일까?'와 '여우의 계절'은 요새 잘 읽히는 소설들에 비해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정말 끝까지 매달려서 읽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문장과 단어 선택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것 같은 느낌이라 저도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읽었고요. 계속 그렇게 써 주세요!! (본인의 만족을 위해 작가님에게 강요하는 나쁜 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