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 3

D-29
126번 <여행>은 막심 뒤캉에게 전하는 시인데요. 막심 뒤캉은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진가, 여행가로서 플로베르, 테오필 고티에, 보들레르와 교류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우주"만큼이나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떠"납니다. "참다운 여행자는 오직 떠나기 위해 떠나는 자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저 변덕스러운, 미지의 광막한 쾌락!" "사랑", "영광", "행복",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를 꿈꾸며 떠났으나, 발견하는 건 "암초", "숨은바위"뿐입니다. "진창을 밟으면서도, 코끝을 하늘로 쳐들고, 빛나는 낙원을 꿈"꿉니다. 진창을 밟으면서도 꿈을 꾸어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빠져 있지만, 그 중에는 별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우리의 삶은 너무 권태로우니 여행자들에게 "고결한 이야기를", "풍요로운 기억의 상자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여행자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도처에서 보았다네 ... 불멸의 죄악이 걸린 그 권태로운 광경을." 여행을 통해 이승에서는 권태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쓰디쓴 지식"을 얻습니다. "단조롭고 조그만 세계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언제나, 우리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권태의 사막에 파인 공포의 오아시스를!" 그런데 죽음의 사자가 찾아오면 "우리는 희망을 품고" "젊은 나그네의 환희에 찬 마음으로" "우리 가슴은 빛살로 가득차" 죽음의 세계로 떠납니다. 죽음을 이렇게 기쁘게 맞이할 수도 있군요. 보들레르는 이 시를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 막심 뒤캉에게 전합니다. 막심 뒤캉에게 화자는 이 세상 어느 곳을 가든 권태로 가득하다고, 자신은 권태로 가득한 이 세계를 떠나 죽음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거라고 말합니다. 여행의 차원이 다르네요.^^ <<악의 꽃>> 2판은 죽음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며 끝납니다. 이 시집의 첫 번째 시 <독자에게>에서 권태가 "하품 한 번에 온 세상을 삼킬" 거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시 <여행>에서 화자는 살아있는 한 끝나지 않을 권태로 가득한 이 세계를 떠나 "희망을 품고" "새로운 것을 찾아서" 죽음으로 향합니다. 화자에게는 "저 변덕스러운 미지의 광막한 쾌락"을 꿈꾸며 "새로운 것을 찾아서"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우리"가 "참다운 여행자"입니다. 보들레르가 죽음의 세계를 궁금하게 만드네요.
@borumis @borumis @ICE9 <악의 꽃> 번역이 황현산 선생님의 유고 번역 맞습니다. 그 직전에 번역 끝내신 것이 <말도로르의 노래>인데요, 황현산 선생님의 마지막 인터뷰를 제가 맡아서. 더 오래 남습니다. https://poetika.tistory.com/318
화제로 지정된 대화
https://poetika.tistory.com/309 이 링크가 인터뷰 읽기 편합니다.
연휴 잘 보내셨나요? 오늘 아침에는 ‘경고자’라는 시에 머물러 보았습니다. . 이 시는 ‘인간’이라는 이름에 주어지는 ‘무게’ 혹은 ‘역할’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인간이 바라는 욕망과 다르게 인간의 ‘이름’은 이 욕망을 억제하고 규제하기에 바쁩니다. . 사회는 제도와 규범을 만들어 이 욕망(혹은 인간 본연의 광기라고 할까요?)을 보이지 않는 강력한 손으로 통제합니다. . ‘사회적 인간’으로서 기대되는 역할의 무게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남자로서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예의바름, 행동 및 사고 방식 등등 모든 것이 이 보이지 않는 ‘경고자’의 시선 아래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출근 길에 출구로 향하는 거대한 사람들의 물결을 뒤에서 바라볼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날 것 같네요. .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시에 나오는 ‘이빨’이 제게 말하는 듯합니다. “너의 의무를 생각하라!”고요. . 시에서 ‘살무사’로 나오는, 이 보이지 않는 경고자의 존재를 느껴보면서 끄적거려봅니다. 인간은 이 경고자의 경고 없이 한 순긴도 살 수 없는 존재라고 끝을 맺는 시행에서 머뭇머뭇하고 있어요. 이게 우리 ‘인간의 조건’인가 하고요.... . 날이 활짝 개어 기분도 새롭네요~
이 견딜 수 없는 살무사의 경고를 받지 않고는 한 순간도 인간은 살 수 없다.
악의 꽃 시 ‘경고자’에서,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경고자’를 다시 읽어보다 지나친 대목이 있어요. 마지막에 ‘이빨’이 말하는 대목인데요, “네가 오늘 저녁에도 살아있을까?“를 묻는 대목입니다. . 항상 제가 품고 사는 질문인데 왜 처음에 안보였을까 싶습니다. 시에서 ‘이빨’은 ‘진실을 말해주는 존재’일까요? 인간 존재의 유한성, 그리고 삶의 취약성을 한 문장으로 일깨워줍니다. 그렇다면 시에서 나오는 ‘이빨’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경고자’였던 걸까요. . 누군가에겐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소중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요!
오늘 아침은 [레스보스]라는 긴 시를 읽습니다. 전체가 15연인 이 시의 특징은 각 연이 5행으로 되어 있는데 첫 행과 마지막 행이 반복되는 형식적인 특징이 있네요. 그런데 몇 개의 연에서는 첫 행과 마지막 행의 마지막 단어/서술어에 약간의 변형을 동반합니다. 이를테면, 12연에서 첫 행과 마지막 행이 이렇게 변주됩니다. “연인이자 시인, 사내같은 사포의 시체, (...) 연인이자 시인, 사내같은 사포의 눈!“ 혹은 14연에서 “그 신성모독의 날에 죽은 사포! (...) 그 신성모독의 날에 죽은 그녀!“ 이런 식입니다. 서양에 이런 형식의 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첫행과 마지막 행을 맞추는 형식적인 제약을 유지하면서 쓰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네요. 그리스보다 튀르키예에 더 가까이 있는 레스보스 섬은 시인 사포의 고향이기도하고, ‘레즈비언’이란 용어의 유래가 된 섬으로도 알고 있어요.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연구가 이루어진 장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리아스>에서 그리스 함대가 튀르키예의 트로이 지역에 상륙하기 전의 전초기지가 되는 여러 섬들 가운데 하나라고 상상해보고 있어요. 시인 사포에 대해서는 많은 시를 썼지만 조각조각 남은 시 외에 온전히 남아있는 시는 단지 몇편에 불과하다고 기억합니다. 시를 보니 사포의 마지막 날이 순탄치 않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사포의 사상이 당대의 규범이나 가치관/통념과 충돌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시인 사포에 관한 이력이나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 시인 사포에 관해 쓴 짧은 서평을 폴란드 시인 보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에서 읽은 것 같습니다. 아주 짧은 글인데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 주목해보는 지점은 이 시가 1857년에 법원의 판단 하에 수록이 금지된 시라는 점입니다. ‘신성모독’이라는 표현도 여러 번 등장하는데, 어떤 죄목(?)일지 궁금해지네요.
읽거나 말거나 - 쉼보르스카 서평집<끝과 시작>의 시인 쉼보르스카의 서평집. 1967년~2002년까지 30여 년 동안 폴란드의 신문, 잡지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문학칼럼 562편 중 137편을 골랐다. 요리책이나 여행안내서, 자기계발서와 실용서부터 식물도감, 특정 주제와 관련된 소백과사전, 전기까지 서평의 소재는 가히 전방위적이다.
@ICE9 @borumis @숨쉬는초록 열심히 읽고 계셨네요! 저는 학기 중 강의와. 원고 마감. 으로 여기에 글, 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5월 15일부터 21일까지는, 앞부분 놓친 시와 함께 제3판, p281. <처벌당한 책을 위한 에피그라프>부터 p.299 <낭만파의 지는 해>까지 천천히 읽으시면 될 듯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은 에두아르 마네가 그렸다는 스패인 무희 ‘롤라 드 발랑스’의 초상에 대해 쓴 시를 읽어봅니다. 보들레르가 그림에 관한 글을 여러 편 쓰기도 했다고 하던데 그림과 관련한 시를 읽게 되었네요. 찾아본 자료는 https://www.manet.org/lola-de-valence.jsp 이구요, 부채를 들고 비스듬하게 서서 정면을 바라보는 무희의 모습이네요. 발레리나이지만 스페인 전통의상을 입은 모습을 그린 것 같네요. 원래 있던 가는 눈썹 위에 그려넣은 듯한 짙은 눈썹과 굴곡이 있는 듯한 콧들, 뾰족한 코는 집시 풍의 강한 같은 인상도 줍니다. 검은 바탕에 붉은 색 테두리와 장미가 수놓인 듯한 치마는 짙은 눈썹처럼 분명한 이목구비에 또렷한 인상을 남깁니다. 아래는 보들레르가 친구 모네의 이 그림을 보고 쓴 문장이라고 하고요. “My friends, among so many beauties, Desire, I conceive, may hesitate; But in Lola de Valence see scintillate, Surprise! A charming jewel of black and pink." 보들레르의 시는 짧아서 어떤 생각을 하며 썼을까 더 알쏭달쏭해딥니다. 다만 무희의 초상에서 “욕망이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것”을 읽어내는 시인은 롤라 드 발랑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을까요. 뮤즈처럼 보이는 여인에 대해 인간적인 고뇌를 읽어내었던 것일까요.
p. 292. <어느 이카로스의 한탄>. 이 시의 화자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자신이 태양 가까이 날아가다 날개가 녹아 심연으로 추락한 "이카로스"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이카로스"는 불가능한 것을 욕망하는 인간을 나타내는 알레고리입니다.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는 크레타의 미노스 왕에 의해 감금됩니다. 다이달로스는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깃털을 모아 실로 엮고 밀랍을 발라 날개를 만듭니다.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주의를 줍니다. "이카로스야. 나는 네가 적당한 높이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너무 낮게 날면 습기가 날개를 무겁게 할 것이고,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이 날개를 녹일 테니까. 내 곁에만 따라오면 안전할 것이다." (토마스 불핀치, 손길영 옮김, 《그리스 로마 신화》20장) 날아가던 이카로스는 기쁨에 들떠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날아갔다가 태양열에 날개의 밀랍이 녹아 바다에 추락해 죽고 맙니다. 이 시에서 지상의 현실에 발을 딛고 먹고 사랑하며 몸의 감각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상의 행복을 누립니다. 하지만 화자는 결코 도달할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구름", "태양", "아름다움"에 닿으려다가 두 팔이 부러지고 두 눈이 불타고 날개가 부서집니다. 그는 이카로스처럼 "부질없이 저 허공의 끝과 중심을 찾으려다가, 알 수 없는 불꽃의 눈에 부딪혀 날개가 이렇게 부서지"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다가 불타버"려 "심학"으로 떨어집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불가능의 영역에 도전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사람들, 시인, 작가, 예술가는 모두 "이카로스"가 아닐까요?
오늘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감옥의 타소>에 대해’라는 제목의시를 읽습니다. 화가 들라크루아의 그림에 대한 지지와 옹호가 느껴집니다. 이 그림과 시, 동시대인이었던 들라크루아와 보들레르의 관계에 관한 글이 있어 링크 남깁니다. https://m.blog.naver.com/sonwj823/222010885945 타소라는 이탈리아 시인이자 몽상가를 지저분한 지하감옥에 가두는 네 개의 벽, 현실의 벽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상상해봅니다. 이 상상의 ‘벽’이란 인간의 삶이 복잡해지고 정교해질수록 점점 더 다양한 모습으로 규정하고 통제하는 장치들도 떠올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
@ICE9 보들레르는 1845년 미술 비평으로 시인보다 먼저, 미술평론가로 데뷔했습니다. 들라크루와에 대한 비평 포함한 미술 비평은 <화가와 시인>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88067&start=slayer 참고하시면 됩니다.
아-! 말씀해주셨던 내용을 잊고 있었는데요, 오히려 처음 데뷔한 것은 미술 평론이었군요. 시인보다도 먼저... 감사합니다! 너무 어려운 글에 아니면 좋겠네요^^
오늘 아침은 <어느 말라바르의 처녀에개>를 읽습니다. ‘말라바르’라는 지명은 <마르코폴로 여행기>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인도 남부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요, 특히 앞바다에서 진주 조개가 많이 나서 유럽인들이 많이 가져간 지역으로 기억합니다. 당연히 일찍부터 무역도 성행하던 곳이었구요. 지금 다시 찾아보니 인도 남서부였습니다. 인도 남부인들도 피부색이 아주 어두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여기 “네 거대한 눈은 네 살보다 더 검다”라는 표현은 아마도 이런 정황애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인도지역은 영국이 지배하기 전에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가 들어와 있었겠지요. 말라바르 지역에 지내는 화자(주인)과 아마도 집에서 시중을 들었을 말라바르 처녀가 프란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보이자 백인의 자의식을 가진 화자가 자기 문명의 모습을 반추하고 처녀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또는 죄책감 어린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걸까 싶습니다.
이제야 생각이나 올려주신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번역에 대한 말씀은 아직 시 읽기가 부족하니 좀 더 익숙해지면 이해가 될 듯하네요. <악의 꽃>번역을 마치시고 ‘주석을 달려니 힘에 부친다’는 말씀에 안타깝게 남았습니다. 인터뷰 자료르루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심코 읽어가다보니 시집을 읽기는 다 읽었는데요, 후반에는 시인의 삶에 대해 좀 더 이해와 맥락이 필요할 것 깉습니다. 다시 앞 부분을 훑어보다 <알바트로스>라는 시에서 멈추었습니다. 제게 알바트로스는 문학에 나오는 새의 이미지로만 있습니다. 멜빌의 <모비 딕>에는 피쿼드 호의 선원들이 쉽게 붙잡는 순한 새의 이미지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성장한 이후 대부분을 하늘에서 보내는 새인만큼 언제나 지치고 무기력해 보이는 이미지가 있어서일까요... 이 <알바트로스>에서도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서투르고 무력한가!“라고 말하고 있네요.
저도 앞부분의 시를 읽고 있었어요. ^^ 지난 번 <어느 이카로스의 한탄>을 읽어서인지 @ICE9 님처럼 <알바트로스>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화자는 시인이 사람들에 의해 억지로 지상으로 끌어내려진 알바트로스와 다를 것 없다고 합니다. 알바트로스는 하늘에서 "폭풍 속을 넘나들"면서도 땅 위에선 "거인의 날개"로 인해 걸음거리가 서투릅니다. 시인도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데, 시인의 정신, 상상력이 현실을 살아가는 데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 된다고 합니다. 창공을 누비는 "거인의 날개"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누비는 시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얼마나 서투르고 무력한가!"에서 "무력한가"라는 시어는 지상의 현실에서 느끼는 권태, 무력감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어느 이카로스의 한탄> 에서처럼, 이 시에서도 시인은 날개로 인해 지상의 삶에는 무척 서투릅니다. <어느 이카로스의 한탄> 에서는 지상의 삶에 서툰 것에 그치지 않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다 불타버"려 날개가 부서지고 "심학"으로 떨어지지만.
<상승>은 비상하다 추락하는 <어느 이카로스의 한탄>과 대비되는 시입니다. "못을 넘어, 골짜기를 넘어, 산을, 숲을, 구름을, 바다를 넘어, 태양을 지나, 에테르를 지나, 별 박힌 천구의 경계를 지나," 1연에서는 멀리, 높이 날아오르며 공간이 무한히 확장됩니다. 읽는 제 마음도 고양되고 가슴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고요. "힘찬 날개로 날아갈 수 있는 자" 라는 시구에서 한계에 부딪히지 않고 "무한대를" 자유로이 누비는 시인의 정신이 느껴집니다. "꽃들과 말없는 것들의 말을 애쓰지 않고 알아듣는 자"는 인간의 언어와 틀에 갇히지 않고 언어로 말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시인을 뜻하겠지요.
보들레르의 시 중에는 '구름'이 나오는 시들이 있습니다. 시인도 그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이 구름의 왕자,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알바트로스> 중) 우연이 구름으로 만들어내는 풍경의 저 신비한 매력 (126번 <여행> 중) 나로 말하면. 구름을 껴안으려다 두 팔이 부러졌다. (<어느 이카로스의 한탄> 중) "구름을 사랑하지요...흘러가는 구름을...저기...저...신기한구름을!" (<이방인> 중, 《파리의 우울》, 황현산 옮김) 구름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흘러갑니다. "우연이 구름으로 만들어내는 풍경"이라는 시구에서처럼, 구름이 흘러 어떤 풍경이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흘러가며 시시각각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그래서 "신기"하고 "신비"롭게 보입니다. 또한 구름은 지상의 세계에서 보이고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만,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세계, 또는 지상의 세계와 그 너머의 경계에 걸쳐 있습니다. 지금은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날아가고 초고층건물이 구름에 닿습니다만, 보들레르가 살던 당시 구름은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세계에 속했지요. 지상의 세계에서 권태를 느끼는 보들레르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구름'을 보며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걸까요?
파리의 우울낭만의 대명사 '파리'도 19세기에는 급속도로 변화하는 괴물과도 같았다. <파리의 우울>은 근대화의 폭력성을 혐오하면서도 파리의 몰골을 사랑한 보들레르의 혁명적인 산문시 50편이 실린 시집이다.
지난 시즌 102번 <파리의 꿈>을 처음 읽었을 때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시구는 "불꽃 가득한 내 눈을 다시 열고, 내가 본 것은 내 누옥의 끔찍함"이었습니다. 《악의 꽃》뒷부분의 시들(비상했다 추락하거나 죽음의 세계로 가자고 노래하는 시들)을 읽기 전이어서, 권태에서 벗어나려고 꿈, 상상,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보들레르의 시를 읽으면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면 끔찍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화자는 꿈속에서 자기 멋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꿈속 그림은 1850,60년대에 시행된 파리 재개발 사업으로 근대화하는 파리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들쭉날쭉한 식물을 몰아내"어 도로 폭을 넓히고, 상하수도망을 정비해 "물"이 흐르게 하고, 가스 가로등을 설치해 밤을 "빛"으로 밝히고, 철조 건물을 세워 "금속과 대리석과 물"로 만든 세상을 만듭니다. 그것은 "바벨탑"처럼 하늘까지 다다르고, "수백만 리를 마다 않고 이 세상 경계를 향"합니다. 금속, 대리석, 물은 모두 빛을 "반사하는" 특성이 지녔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제가 반사하는 모든 것으로 눈부신 광막한 거울!"이 됩니다. 그런 세상에선 실체를 보지 못하고 반사하는 빛만 볼 수 있겠지요. "인간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런 무서운 풍경"이라는 시구로 볼 때, 화자는 근대화로 인해 파리가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ICE9 님 소개하신 데이비드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뒷표지의 소개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근대적 기획이 만든 널찍한 대로와 스펙터클 뒤로는 환기도 되지 않는 더러운 골목이 즐비하다." "내가 본 것은 내 누옥의 끔찍함"이라는 시구는, "파리의 꿈", 빛으로 가득한 스펙터클에 가려진 파리 빈민의 비참한 실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어요. 이 시는 콩스탕탱 기스에게 보내는 시입니다. 보들레르는 1863년 콩스탕탱 기스를 소개하는 미술 평론을 연재했는데, 기스가 현대 도시의 동시대 사람들을 생생하게 그려낸 현대 화가라고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 평론은 《현대 생활의 화가》라는 책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콩스탕탱 기스는 그림으로 동시대 도시 사람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고 하는데, 보들레르는 권태에 빠져 비참하게 살아가는 동시대 파리 시민의 모습을 시로 그려냅니다.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5599&cid=42636&categoryId=42636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 자본이 만든 메트로폴리스 1830-1871현대의 고전 13권. 19세기 후반 파리라는 도시의 변화를 지리학자의 눈으로 관찰해 모더니티 성립의 정치경제학적 과정을 드러낸 책으로 건축, 도시학, 지리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문학 방면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치며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아 왔다.
보들레르의 현대 생활의 화가무명의 화가에 투영한 보들레르의 자화상. 보들레르의 「현대 생활의 화가」를 연재할 당시 콩스탕탱 기스는 환갑을 갓 넘겼고, 보들레르와 알고 지낸 지는 4년이 되었다. 실명으로 거론되기를 극도보들레르의 이 글에서는 줄곧 ‘G씨’로만 거명되는 기스는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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