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보르헤스 읽기] 『알렙』 후반부 같이 읽어요

D-29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정성스런 각주네요.
언어를 또는 문화를 가로지르는 이해understanding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아베로에스가 바로 창 밖에서 아이들이 이슬람교의 아잔을 흉내내는 놀이를 하는것을 보았음에도 - 이것이야말로 아불카심이 저녁시간에 들려주는 '연극/공연'이라는 것과 유사한데 말이지요 - 아불카심의 설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놀이를 보기 전에 "우리가 찾는 것은 아주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역설적이었어요. 우리 언어나 문화에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과연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은 할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저작을 연구하는 아베로에스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가 쓴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저작을 연구하는 아랍인에 대한 소설을 한국어로 읽고있는 제 자신이 겹쳐보였습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내 마음대로 소설을 읽다가도 어디선가 한 군데 이 언어와 시간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구절이 하나라도 있으면 기뻐지는 것이 소설읽기인 것 같습니다.
오, 저는 이 댓글 읽으면서 아이들이 노는 놀이를 다시 보게 되었어요. 충분히 연극/공연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움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버튼이 언급했던 그 신, 그러니까 황소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들소를 만들었던 그 신이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을 느꼈다. 나는 이 작품이 나를 비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나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내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것을 쓰고 있는 동안 과거에 나였던 사람의 상징이라고 느꼈고,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내가 그 사람이 되어야만 했고, 내가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를 써야만 했으며, 그렇게 무한히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내가 아베에로스를 믿는 걸 그만두는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사라진다.)
알레프 130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보르헤스의 단편집들을 꾸준히 읽어나가면서 느껴진 어떤 답답함의 실체는 뭔가 했는데, 대화가 거의 없다는걸 자각했습니다. 대부분 화자 한 명이나 고립된 존재, 주석, 어딘가에 쓰인 글들로 두 명 이상의 대화가 거의 등장하지 않더라구요. 오랜만에 대화를 만나 청량함을 느꼈습니다.
청량함이라는 멋진 표현에 동의합니다😃 아마도 보르헤스의 소설은 다른 소설들과 달리 인물을 설득하기보다는 세계관 자체를 설득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한 인물이 말하는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인물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이라는 말에 비춰보면, 대화체를 쓴다는 것은 한 사람, 나아가 한 캐릭터를 직간접적으로 설득하는 일이니까요. 보르헤스의 단편들에서는 캐릭터를 앞세운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메타 구조에서는 언제나 배면에 존재하는 화자의 존재가 더 드러나게 마련이니까요. 이런 점이 호불호를 불러오는 게 아닌가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자히르~] 연속해서 아름다운 단편입니다! 본문에서도 보듯, 자히르(zahir)는 아랍어로 '눈에 보이는', '분명한'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코란에서 알라신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시며, 눈에 보이시며(zahir), 숨겨진(batem) 분"이라고 묘사된다고 합니다. 송병선 선생님은 이 두 가지 속성이 코란을 해석하는 두 가지 방법을 의미한다고 썼습니다. 말하자면 자히르는 신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모습, 그 구상(具象)인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의 광대한 말씀이 예수의 몸을 입고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자히르 역시 단 하나임과 동시에 모든 것의 표면으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노시스학파가 말했던 형용모순으로서 '전체를 뒤덮은 부분'인 것입니다. 재밌게도 자히르는 역사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보르헤스는 쓰고 있는데요, 모르긴 몰라도 자히르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맞춤한 모습을 입고 오는 듯합니다. 보르헤스에게는 바로 '동전'입니다. 동전으로서 자히르는 보르헤스적인 세계관에 꼭 부합합니다. 동전은 한번에 하나의 표면을 나타내는 동시에 앞뒷면으로 나뉘어 있으면서도 전체로서는 하나의 단일체를 이룹니다. 절대적인 하나로 이어지는 여러 입구로서 자히르. 동전의 한쪽 면에는 '살다'가 씌어져 있고, 다른 한쪽 면에는 '꿈꾸다'가 씌어 있다고 보르헤스는 말합니다. 그러나 보르헤스도 인정하듯이, 두 가지는 모든 점에서 동의어입니다. 한 강연에서 보르헤스는 기이하고 초자연적이며 환상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한 청중의 질문에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차라리 '당신은 왜 사랑 또는 달에 관심을 기울이는가’라고 묻는 게 나을 거예요. 난 거기에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물론 uncanny(기이하다)라는 말은 게르만어에만 존재하죠. 로망스어를 쓰는 사람들은 그 단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요. 하지만 난 그 필요성을 느낀답니다. 부분적으로 내 몸에 영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 거예요. 나는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감수성이 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죠. 스페인어에는 그런 단어가 없기 때문이에요. 스코틀랜드어에는 eerie(괴상한)이라는 멋진 단어가 있는데, 이 역시 라틴계 사람들은 느끼지 않는 어떤 것을 나타내지요.
보르헤스의 말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윌리스 반스톤 지음, 서창렬 옮김
보르헤스의 말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세계 문학사와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노년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으로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예전에 나는 동전의 앞면을 상상했고, 그런 다음에 뒷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동시에 양면을 본다. 그런 일은 마치 자히르가 유리로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일어날 수 없다. 한쪽 면이 또 다른 면과 겹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마치 나의 시각이 구체 형태로 되어 있고, 자히르가 중앙에 있는 것 같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알레프 14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이게 뭔 소리야 싶어서 황병선 역을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송병선 역 140쪽에 나오는 ‘니벨룽의 보물들’에 이어 황병선 역에선 ‘시구르(지구르트)’가 ‘지그프리트’라고 역주를 달아주셨네요. 니벨룽겐의 반지 혹은 절대 반지 ㅋㅋ 를 대입하니 이해가 조금 더 편해집니다. 이건 그냥 든 생각인데요. (뭐, 오독이라해도 괜찮습니다. 상상은 자유 ㅎ) 이 작품에서 테오델리나 비야르의 역할이 뭘까 고민해보게 됩니다. 보르헤스가 자히르를 얻게된 경위만을 설명하기 위한 역할로는 분량이 상당하잖아요. 테오델리나에게는 동전의 형태라기 보단 패션과 유행선도, 셀럽의 삶을 추구하는 어떤 무형의 삶의 방식이 동전보다 장기간 지속된 자히르로 작용한 건 아닐까 혼자 상상해보게 되네요…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럼 테오델리나는 자히르가 아니라 batem에 사로잡힌 것인가…? 그만 하겠습니다. 테오델리나의 여동생인 훌리아는 확실히 동전 형태의 자히르로 아마도 죽어가는 듯 해서 의미심장하네요. 그나저나 보르헤스 정말 해박하고요. 가짜를 섞어 구축한 세계관을 펼쳐 풀어놓는 방식에 제발트가 참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 싶어 더 읽을 제발트의 작품이 없음이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제발디언으로서 제발트 모임 놓친 게 못내 아쉬운)
지금 생각하니까 헛다리를 짚었네요. 이 책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책을 마치기 전에 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헛다리야말로 책읽기의 묘미죠!
후훗!
저도 테오델리나 비야르의 역할이 이 소설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보르헤스가 동전에 그토록 몰두하는 것도 그녀의 죽음을 회피하기 위함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면 테오델리나 비야르야말로 동전의 이면임과 동시에 이 작품 전체에 이상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또 자히르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발트는 언젠가 다시 한번 읽을 수도 있지요! 또 읽는 것처럼 재밌는 일도 없으니까요.
그녀는 플로베르처럼 절대적인 것을 추구했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만 지속되는 절대성이었다. 그녀는 모범적인 일생을 살았지만, 내면의 절망은 끊임없이 그녀를 갉아먹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려는 것처럼 끝없는 변신을 시도했다.
알레프 13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보르헤스가 연상과 기억에 대한 테마를 깊게 생각하고 있는가 싶었던 소설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이야기에서, 어디까지 기억해야 모든 것일가를 흥미롭게 풀어놓는걸 보았을 때와 같은 주제 잡음이 느껴졌어요. 살면서 성서적인 '분명함'이란 무엇인가, 그걸 경험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흥미롭게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여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알라신의 두 속성 중 하나인 자히르를 단순히 알라신이 아닌 만사에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반-성서적인 인상도 느껴집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히르는 20센타보짜리의 평범한 동전이다. ...(18세기 말 구자라트에서 자히르는 호랑이였다. 자바에서는 신도들이 돌을 던졌던 수라카르타 이슬람 사원의 장님이었다. 페르시아에서는 나디르 샤가 바다로 던져 버리라고 명령했던 천체 관측기였다. 1892년경에 마흐디 감옥에서는 루돌프 칼 폰 슬라틴이 만졌던 터번 주름 속에 싸놓은 조그만 나침반이었다. 초텐베르크데 따르면 코르도바의 유대교 회당에서는 청니백 개 기둥 중의 하나에 있던 대리석 돌결이었다. 그리고 테투안의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는 어느 우물의 밑바닥이었다.
알레프 131-13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보르헤스 말만 듣다가 처음 읽는데, 낯선 인물, 낯선 지명, 낯선 역사가 너무 많아 따라가기가 버겁네요. 이런 단어들을 하나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에 자괴감도 들고요. 어떤 마음으로 읽어나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
단언컨대 처음 읽으면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요? 여러 번 천천히 읽어보시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3일에 한 편 읽는 일정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긴 합니다. 그리고 단어를 찾아가면서 읽는 것은 저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스페인어를 모르면서 스페인어와 한국어 번역 대해서 아는 척 하고 있잖아요...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혼자 읽는 미식가들
그렉 이건 <잠과 영혼> 하드SF의 정수생명, 경계에 서다 - 양자생물학의 시대가 온다마음의 그림자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로저 펜로즈의 양자역학적 의식 연구
since 1966년, 좋은 책을 만듭니다
[문예출판사/책 증정]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 불복종』 마케터와 함께 읽기[문예세계문학선X그믐XSAM] #02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함께 읽기[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문예출판사 / 도서 증정] 뮤리얼 스파크 <운전석의 여자> 함께 읽기[문예출판사] 에리히 프롬 신간 <희망의 혁명> 함께 읽기
웰다잉 오디세이 2분기의 여정
[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4.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 그림책 좋아하세요?
벽돌책 사이, 그림책 한 칸 (부제: 내가 아는 29가지 기쁨의 이름들)[그믐밤] 27. 2025년은 그림책의 해, 그림책 추천하고 이야기해요. [도서 증정] 《조선 궁궐 일본 요괴》읽고 책 속에 수록되지 않은 그림 함께 감상하기!"이동" 이사 와타나베 / 글없는 그림책, 혼자읽기 시작합니다. (참여가능)
우리 아버지는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4. <아버지의 시간>[도서 증정] 《아버지를 구독해주세요》마케터와 함께 자유롭게 읽어요~! <책방지기의 인생책> 좋은 날의 책방과 [아버지의 해방일지] 함께 읽기
부처님의 말씀 따라
나의 불교, 남의 불교[책 증정] <이대로 살아도 좋아>를 박산호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당신과 함께 이 저녁, 이 밤, 이 시대
[엘리/책 증정] 장강명 극찬 "벌써 올해의 소설" <휴먼, 어디에 있나요?> 함께 읽기[엘리/책증정] 2024 젊은사자상 수상작 <해방자들> 함께 읽어요![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SF 함께 읽기] 두 번째 시간 - 숨(테드 창)
메롱이님의 나 혼자 본 외국 작품
직장상사 길들이기웨폰만달로리안 시즌3데어데블 본 어게인 시즌2 성난 사람들 시즌2
같이 연극 보실 분들, 구합니다.
[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그믐연뮤번개] 2. [독서x관극x번역가 토크] 인간 내면을 파헤치는 『지킬앤하이드』[그믐연뮤번개] 1. [책 읽고 연극 보실 분] 오래도록 기억될 삶의 궤적, 『뼈의 기록』
미국 문학의 고전
모비 딕모비 딕 상·하 <모비 딕> 함께 읽기 모임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우리 입말에 딱 붙는 한국 희곡 낭독해요!
<플.플.땡> 4.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플.플.땡> 3 당신이 잃어버린 것 2부<플.플.땡> 2. 당신이 잃어버린 것플레이플레이땡땡땡
하이틴에게 필요한 건 우정? 사랑?
[책증정-선착순 10명] 청선고로 모여라!『열여덟의 페이스오프』작가와 함께 읽기[청소년 문학 함께 읽기] 『스파클』, 최현진, 창비, 2025[문학세계사 독서모임] 염기원 작가와 함께 읽는 『여고생 챔프 아서왕』[북다] 《위도와 경도》 함윤이 작가와 함께하는 라이브 채팅! (4/9)[북다/라이브 채팅] 《정원에 대하여(달달북다08)》 백온유 작가와 함께하는 라이브 채팅!
위기의 시대에 다시 소환되는 이름
[세창출판사/ 도서 증정] 편집자와 함께 읽는 한나 아렌트가 필요 없는 사회 [문예출판사 / 인증 미션] 한나 아렌트 정치 에세이 <난간 없이 사유하기> 함께 읽기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