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로에스의 탐색~] 이 단편은 실존했던 무슬림 철학자 이븐 루시드, 라틴어로는 아베로에스로 번역되는 인물을 내세운 픽션입니다. 굳이 한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이 단편은 모든 번역에 내재한 실패 가능성('번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그럼에도 어떻게 실패로써 번역이 성공하는가?')을 탐구하는 단편입니다. 단편 그 자체로 꽤 복잡한 구성을 취하는 데다가 주해자(The Commentator)로서 아베로에스라는 인물을 잘 모르면 그냥 지나칠 법한 세부 사항도 많습니다. 차근차근 설명을 해보겠지만, 저도 그리스 철학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아니어서 틀린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코멘트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일보에 기고된 김정명의 [이슬람 문화기행]을 보시면, 이븐 루시드(라틴어로는 아베로에스)에 관한 배경 설명이 잘 나옵니다. 라파엘로 그림 ⟨아테네 학당⟩에서는 서양을 대표하는 지성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토론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중 한명으로서 무슬림 철학자인 이븐 루시드가 등장합니다. 그림에서 그는 피타고라스의 공책을 훔쳐보는 자로 묘사됩니다. 중세 유럽의 역사는 흔히 암흑기로 묘사되는데요, 이 시기에 유럽은 막강한 교회의 권위에 눌려서 이성(理性)의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그리스의 학문적 전통이 유럽에서 명맥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슬람 쪽으로 활로가 뚫렸습니다. 8세기 압바스 왕조를 기점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다양한 저서들이 아랍어로 번역된 것입니다. 번역이 활성화되면서 아랍권은 그리스 철학에 매료되었고 이후 12세기에 이르러서 이븐 루시드의 주해서로 절정을 이룹니다. 이븐 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에 주해서를 통해서 당대 최고의 연구 권위자가 되었고, 너무 유명해서 그를 간단히 '주해자'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라파엘로의 그림 속에서 이븐 루시드는 피타고라스의 공책을 훔쳐보는 간악한 이처럼 묘사됩니다. 비록 그가 주해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을지라도 그의 업적은 그리스 철학에 크게 의존하며, 그 업적을 베껴쓰고 주석을 단 것에 불과하다는 당대의 인식이 라파엘로의 그림에 투영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븐 루시드가 그리스의 업적에 기대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해자로서 그 위대함이 반감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차적으로 베껴쓰는 행위, 즉 원전을 필사하고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겨적고 해설을 다는 행위야말로 종교적인 찬양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 철학의 아랍 번역서와 이븐 루시드의 주해서 덕택에, 유럽인들은 암흑기 동안 잊혔던 그리스 철학을 훗날 회복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요. 그리하여 진정 유럽적인 것은 없으며, 오늘날 유럽인들 자랑하는 냉철한 이성에 바탕한 철학과 과학은 아랍적인 것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습니다.
한편, 이븐 루시드는 이성적 성찰을 목적으로 삼는 철학서와 계시의 내용을 담는 종교 경전이 동일한 진리를 추구하는 저서를 쓰기도 했다고 알려집니다. 철학서와 경전 모두 진리를 추구하되, 그것을 표현하는 양상에서만 차이를 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모든 진리의 원천이 종교적 계시 안에 있으므로 이성을 진리의 근본으로 삼는 것은 이슬람의 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는데요, 이에 맞서 이븐 루시드는 이성과 계시는 모두 동등한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는 진리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븐 루시드의 주장과 당시 보수적인 코란 학자들의 행태는 본 단편인 ⟨아베로에스의 탐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평생 코란만 들여다본 신학자들은 세계 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경이를 목격한 아불카심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은근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일보] 아테네 학당 속 이방인 철학자, 중세 유럽을 깨우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32120813237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