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미로에서 죽은 이븐 하캄 알 보크하리~] 저는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의문 부호라는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잠시 샛길로 새자면, 소설의 재미도 바로 거기있는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열린 결말이라는 말은 의문부호가 지닌 성격과도 닮았습니다. 잠정적인 결론을 맺어가면서 특정한 논증 구조로 설득해나가는 글들도 재미있지만, 소설은 끄트머리가 느슨하게 풀려 있는 것을 보는 재미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론물리학자들이나 수학자들을 참 좋아하는데, 그들이 왜 동서고금의 소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머리 겔만이 고안한 '쿼크'라는 단어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서 빌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소설 얘기를 해보자면, 이 단편은 '개연성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처럼 읽혔습니다. 개연있는 이야기란 무엇인지 그 의문을 간직한 채 읽어가다 보면, 신화나 전설과 현대 소설의 차이를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정확히 같은 세부사항을 가진 이야기를 그 순서와 말하는 방식만 조금 바꾸어도 전혀 다른 개연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니까요. 이 소설은 그 프레임이 투명해서 속에 들어 있는 부품이 들여다보이는 아름다운 기계장치 같습니다.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게 아니라 형식이 내용이고 내용이 형식인 소설 말입니다. 이런 소설은 줄거리를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잠시, 중간에 등장하는 '쇠홀', '쇠로 만든 홀(笏)'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이 단어가 무엇인지 몰라서 원문을 찾아보았습니다. 'cetro de hierro'인데요, 영역으로는 'iron scepter'입니다. 화려한 장식이 달린 지팡이처럼 생겼고 철퇴 모양을 띠기도 합니다. 이 '셉터'는 보통 서구권에서 국왕의 권위를 지닌 의장물을 칭하는 것으로, 한역본에서는 흔히 '왕홀(王笏)'로 옮겨집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홀'은 그 의미와 형태가 '셉터'와는 달라서 꼭 맞는 번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홀'이라함은 국가 의례에서 신하들이 손에 드는 것으로서 상아나 나무로 만든 좁고 긴 판을 의미합니다. 반면 왕가에서는 '규(圭)'라고 해서 홀에 비해서 위로 솟은 부분이 좁고 뾰족하고 재질도 다릅니다(첨부 사진에서 왼쪽이 '규', 오른쪽이 '홀'입니다). 이 셉터를 한국어로 옮길 말이 적절치 않으므로 적당히 '왕의 철퇴'라는 의미의 왕퇴(王槌)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디아블로라는 게임에도 이 셉터가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