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의 <그림자의 강> 읽기

D-29
19세기의 산업사회는 이런 존재들 - 전서구, 아메리카들소, 비버, 고래, 숲 - 을 완전히, 혹은 거의 멸종시켜버렸다. 생태계에서 사라진 것들이 상상 속에서 재등장했다. 풍경은 거실에 걸린 스테레오그래프나 원피스 꽃무늬에서, 인장이나 식기에서, 그리고 주머니 시계에 새긴 그림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02p,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이 책은 19세기 중후반의 미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장면들을 많이 묘사하고 있네요. 아메리카 원주민과 자연이 공종하던 공간을, 저자 리베카 솔닛은 유럽의 이민자들이 침입하고 강탈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종의 '실낙원'의 장면들을, 산업 사회로의 이행, 특히 철도를 중심으로 초반에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아 사라져버린 자연의 구성원들이, 이를 목격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백인들의 상상 속에서나 재등장하는 현실을 제시하고 있네요.
현대적 기업의 복잡한 동기화(同期化)가 이때 처음 나타났고, 대규모로 사람들의 삶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철도가, 그다음엔 자원이나 식량, 생필품의 보급망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을 체제 안으로 더욱 깊이 몰아넣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체제의 종업원이 되었다. 변경 지역의 독립성과 농부들의 자급체제는 점점 더 밀려났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03p,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트레인과 베른은 한때 무한했던 지구가, 탐험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어느정도의 비용만 있으면 일주해볼 수 있는 무언가로 축소되었음을 천명했다. 세계는 별다른 관심없이, 심지어 창밖을 내다보지 않은 채로도 일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소멸시킴으로써 거대한 도약을 이룬 것이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11p,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1872년 3월, (원주민과 기병대 사이의) 전투가 벌어진 곳 근처의 옐로스톤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13p,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미국 국립공원의 시작은 자연보호라는 미명 이면에 철도 건설과 자본의 논리가 전제되어 있음을 리베카 솔닛은 탁월한 시선과 글쓰기로 말하고 있네요.
뤼미에르 Lumiere 형제가 프랑스에서 최초로 상영한 영화는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 무리와, 관객들이 움찔할 정도로 진짜 같았던, 객석을 향해 달려오는 기차를 찍은 것이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15p,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스크린 위의 이미지, 영상이라는 매체를 처음 보게 된 사람들이 마주한 거대한 스크린에서 거대한 기차가 화면으로 달려오는 장면을 보았다면 혼비백산이 되어 영화관 밖으로 도망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뤼미에르의 기차영상은 상당히 상징적이기도 합니다. 솔닛이 이야기하듯, 시간과 공간의 소멸을 기차라는 도구가 상싱적으로 보여주고 있네요.
확실한 것은 1873년 4월 7일, 머이브리지는 스탠퍼드가 요구했던 작업을 해냈다는 점이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옥시덴트의 모습을 또렷하게 사진으로 찍어서 말의 다리와 발의 위치가 분명히 보였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22p, 4장 낭떠러지에 서서,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머이브리지가 남긴 사진술의 유산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이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자이기도한 스탠퍼드의 말 옥시덴트를 찍어낸 사건이 아닌가 싶네요. 빠르게 동작이 변하는 말의 모습을 연속 사진으로 찍어낸 일은 사진사에서 큰 분기점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약삭빠른 사업가이기도 했던 발명왕 에디슨이 머이브리지를 만나고 곧바로 영화 기술을 연구했다는 것만 보아도 뭔가 중요한 가능성을 알아차리긴 했겠네요.
1869년에는 천문학자이자 사진가였던 존 허셜 John Hershel 경이 다음과 같은 자신의 꿈을 밝혔다. "10분의 1초라는 짧은 순간의 사진을 얻고 싶다. 그런 사진이 있다면 어떤 동작, 전투, 논쟁, 장엄한 의식, 권투 시합, 추수감사절의 식사, 점심 같은 장면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25p, 4장 낭떠러지에 서서,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스팬퍼드에게 그 계획은 언제나 말의 동작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머이브리지에게 그것은 셔터의 작동과 필름의 속도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사진을 동작의 비밀을 드러내는 과학적 도구로 변모시키기 시작했다. (...) 망원경과 현미경이 보여준 세계가 거리와 공간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면, 사진의 세계는 시간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28p, 4장 낭떠러지에 서서,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요세미티에서는 물과 바위가 머이브리지의 주된 소재였다. 물이 변화와 지나가는 순간을 대변한다면, 바위는 견딞과 지질학적인 무한대를 암시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30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강은 언제나 눈앞에 있지만, 그 안의 강물은 영원히 움직이고, 영원히 변화하고, 영원히 새로워지는 어떤 것, 종종 시간에 대한 비유로도 쓰이는 영원한 순간성을 상징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30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사진 속 남자들은 마치 막 풍경을 발견한 것처럼 사진 전면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자연을 정복하여 문명을 만들어갈 것처럼 역동적으로 그 풍경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야생 속으로 질주하던 지치지 않는 진보는 머이브리지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듯하다. 그의 인물들은 그 풍경을 처음 본 것도 아니고, 그것을 정복하는 것도 아니며, 대중을 위해, 미국과 이성적인 정신을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모호하고, 서로 이어져 있지 않으며, 그 어떤 실용적인 목적과도 관련이 없다. 그리고 바로 그 모호함에는 미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했던 이민자 머이브리지와 미국인 동료 사진가들 사이의 간극이 숨어 있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36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페미니즘 작가로 주로 잘 알여진 리베카 솔닛의 역사학자, 그리고 사진 평론가로서의 예리함과 안목, 통찰이 드러나는 대목은 이런 부분인 것 같네요.
솔닛의 글을 읽으니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대자연의 풍광을 담은 사진들에서 서구 백인들의 정치적 시선을 읽어낼 수 있겠네요. 그들이 밀어내어 요세미티의 숲 속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원주민들에 대한 무시와 폄하와 더불어, 자연에서 원시성, 새로움을 찾으려는 백인들의 열망이 오버랩되는 듯합니다. 애초에 이 땅은 '아무도 없었으며, 우리 백인이 찾아내 차지한 땅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이런 시선이 요세미티를 비롯한 자연 풍광을 담아내고 선별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이지만 강력한 프리즘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한편 캘리포니아 자연의 새로움과 원시성은, '타락하고 쇠퇴해가는 유럽의 분위기'와 비교하여 미국인들이 느끼는 '문화적 열등감'이 아니라 우월한 '도덕적 가치'를 상징하는 지표로 활용되었다는 점입이 흥미롭습니다. 이런 주제를 자연스럽게 한 사진가의 삶과 교차하는 글에서 녹여내는 솔닛의 글쓰기에 또 한번 반하게 된 읽기였습니다.
그들(미국인들)은 인류사에서만큼은 캘리포니아가 완전히 새로운 곳이 되기를 원했고, 따라서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왔던 이들, 즉 원주민이나 스페인 정착민의 역사는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새로움은 미국의 정체성에서 아주 두드러지는 특징이었다. 스스로를 에덴동산 같은 갓 태어난 풍경 속에서, 무한한 자원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이제 막 시작하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의 새로움이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41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그런 새로움에 대한 환상의 초기 단계에서, 아메리카원주민의 존재는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었고, 보통은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야 할 짐승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그 땅이 그대로 지켜지기를 바랐던 쪽은 오히려 원주민들이었고, 도끼를 휘둘렀던 아담들은 개발에 장애물이 된다는 이유로 원주민들을 몰아냈다. 그다음 단계에서 아메리카원주민들은 말 그대로 삭제되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42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작품 구성과 대상의 해석에서 매우 독창적인 비범함을 볼 수 있고, 그의 요세미티는 다른 사진가들이 찍은 요세미티들과는 추분히 구별되기 때문에 거기서 그의 성정과 취향을 알 수 있다. 그는 복잡한 표면을 좋아했다. 물과 바위, 그리고 텅 빈 광활한 공간을 좋아했다. 표지가 될 만한 유명한 장소들보다는 풍경 자체의 효과를 택함으로써 노골적인 상업적 주제들을 피했고, 해당 지역의 위험과 잔해를 강조함으로써 자연 안에 온화한 신을 넣고 싶어했던 빅토리아 시기의 보편적인 열망에도 저항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54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주단/책증정] 장원석 제작자 추천, IMF 비화를 담은 장편소설 《밀》 함께 읽기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천천히 읽어요
[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웰다잉 오디세이 2분기의 여정
[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4.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나누고 싶은 책 이야기 by 꼬모
편지들이 알려주는 먼 시절의 인생역정낙담과 희망이 뒤섞인 사우디 아라비아 이야기편안하게 명랑하고, 평범해서 비범한 일상과 성장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김빠지는 시리즈 신간추리로 양념 친 러브스토리 연작집
조선과 한국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
[김영사/책증정] 다니엘 튜더 소설 《마지막 왕국》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어크로스/책증정]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과 함께 진짜 한국 탐사하기!
우리 아버지는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4. <아버지의 시간>[도서 증정] 《아버지를 구독해주세요》마케터와 함께 자유롭게 읽어요~! <책방지기의 인생책> 좋은 날의 책방과 [아버지의 해방일지] 함께 읽기
한 출판사에서 나온 이토록 다양한 책들의 향연, 오늘 당신이 고를 이야기는?
[김영사/책증정] 쓰는 사람들의 필독서!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함께 읽기[김영사 / 책 증정]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편집자 & 번역가와 함께 읽기[김영사/책증정] 무작정 퇴사하기 전에, <까다로운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 함께 읽기[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김영사/책증정]수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세상은 아름다운 난제로 가득하다》함께 읽기
같이 연극 보실 분들, 구합니다.
[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그믐연뮤번개] 2. [독서x관극x번역가 토크] 인간 내면을 파헤치는 『지킬앤하이드』[그믐연뮤번개] 1. [책 읽고 연극 보실 분] 오래도록 기억될 삶의 궤적, 『뼈의 기록』
우리의 노동 일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5. <쇳돌>[그믐연뮤클럽] 6. 우리 소중한 기억 속에 간직할 아름다운 청년, "태일"[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일을 즐기고 있나요?[그믐밤] 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기 @국자와주걱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한국 희곡 낭독이 이렇게 재밌다니!
<플.플.땡> 4.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플.플.땡> 3 당신이 잃어버린 것 2부<플.플.땡> 2. 당신이 잃어버린 것플레이플레이땡땡땡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8.신의 화살,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7.더 이상 평안은 없다,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