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의 <그림자의 강> 읽기

D-29
스팬퍼드에게 그 계획은 언제나 말의 동작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머이브리지에게 그것은 셔터의 작동과 필름의 속도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사진을 동작의 비밀을 드러내는 과학적 도구로 변모시키기 시작했다. (...) 망원경과 현미경이 보여준 세계가 거리와 공간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면, 사진의 세계는 시간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28p, 4장 낭떠러지에 서서,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요세미티에서는 물과 바위가 머이브리지의 주된 소재였다. 물이 변화와 지나가는 순간을 대변한다면, 바위는 견딞과 지질학적인 무한대를 암시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30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강은 언제나 눈앞에 있지만, 그 안의 강물은 영원히 움직이고, 영원히 변화하고, 영원히 새로워지는 어떤 것, 종종 시간에 대한 비유로도 쓰이는 영원한 순간성을 상징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30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사진 속 남자들은 마치 막 풍경을 발견한 것처럼 사진 전면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자연을 정복하여 문명을 만들어갈 것처럼 역동적으로 그 풍경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야생 속으로 질주하던 지치지 않는 진보는 머이브리지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듯하다. 그의 인물들은 그 풍경을 처음 본 것도 아니고, 그것을 정복하는 것도 아니며, 대중을 위해, 미국과 이성적인 정신을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모호하고, 서로 이어져 있지 않으며, 그 어떤 실용적인 목적과도 관련이 없다. 그리고 바로 그 모호함에는 미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했던 이민자 머이브리지와 미국인 동료 사진가들 사이의 간극이 숨어 있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36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페미니즘 작가로 주로 잘 알여진 리베카 솔닛의 역사학자, 그리고 사진 평론가로서의 예리함과 안목, 통찰이 드러나는 대목은 이런 부분인 것 같네요.
솔닛의 글을 읽으니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대자연의 풍광을 담은 사진들에서 서구 백인들의 정치적 시선을 읽어낼 수 있겠네요. 그들이 밀어내어 요세미티의 숲 속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원주민들에 대한 무시와 폄하와 더불어, 자연에서 원시성, 새로움을 찾으려는 백인들의 열망이 오버랩되는 듯합니다. 애초에 이 땅은 '아무도 없었으며, 우리 백인이 찾아내 차지한 땅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이런 시선이 요세미티를 비롯한 자연 풍광을 담아내고 선별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이지만 강력한 프리즘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한편 캘리포니아 자연의 새로움과 원시성은, '타락하고 쇠퇴해가는 유럽의 분위기'와 비교하여 미국인들이 느끼는 '문화적 열등감'이 아니라 우월한 '도덕적 가치'를 상징하는 지표로 활용되었다는 점입이 흥미롭습니다. 이런 주제를 자연스럽게 한 사진가의 삶과 교차하는 글에서 녹여내는 솔닛의 글쓰기에 또 한번 반하게 된 읽기였습니다.
그들(미국인들)은 인류사에서만큼은 캘리포니아가 완전히 새로운 곳이 되기를 원했고, 따라서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왔던 이들, 즉 원주민이나 스페인 정착민의 역사는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새로움은 미국의 정체성에서 아주 두드러지는 특징이었다. 스스로를 에덴동산 같은 갓 태어난 풍경 속에서, 무한한 자원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이제 막 시작하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의 새로움이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41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그런 새로움에 대한 환상의 초기 단계에서, 아메리카원주민의 존재는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었고, 보통은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야 할 짐승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그 땅이 그대로 지켜지기를 바랐던 쪽은 오히려 원주민들이었고, 도끼를 휘둘렀던 아담들은 개발에 장애물이 된다는 이유로 원주민들을 몰아냈다. 그다음 단계에서 아메리카원주민들은 말 그대로 삭제되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42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작품 구성과 대상의 해석에서 매우 독창적인 비범함을 볼 수 있고, 그의 요세미티는 다른 사진가들이 찍은 요세미티들과는 추분히 구별되기 때문에 거기서 그의 성정과 취향을 알 수 있다. 그는 복잡한 표면을 좋아했다. 물과 바위, 그리고 텅 빈 광활한 공간을 좋아했다. 표지가 될 만한 유명한 장소들보다는 풍경 자체의 효과를 택함으로써 노골적인 상업적 주제들을 피했고, 해당 지역의 위험과 잔해를 강조함으로써 자연 안에 온화한 신을 넣고 싶어했던 빅토리아 시기의 보편적인 열망에도 저항했다.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154p, 4장,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머이브리지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잘 포착한 솔닛의 평가입니다. 다른 풍경 사진가들과는 상당히 다른 시선을 지닌 지점을 간파한 것이죠. 솔닛은 이렇게 말합니다. "머이브리지의 요세미티는 외롭고, 불안하고, 조금은 괴로워 보인다."(154)
2주간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머이브리지라는 사진사의 선구자를 다루는 이 글에서 리베카 솔닛의 역사학자이자 사진연구가, 사진 비평가로서의 면모와 놀라운 통찰이 촘촘하게 엮여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철도 건설을 중심으로 서구 백인이 자행한 원주민 학살과 동물 학살에 대한 주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선과 부조리한 관계, 식민주의/제국주의의 문제 등의 문제가 보입니다. 소수자/타자에 대한 서구 사회의 지배와 폭력적 시선이 한 인간과 사진의 역사와 더불어 층층이 교차하고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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