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글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그중 <법 앞에서>가 기억남습니다. 법 앞을 지키는 문지기를 두려워해 법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어리숙함이 현실의 나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문지기가 가지는 위력은 나의 두려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믐북클럽Xsam] 17. 카프카 사후 100주년, 카프카의 소설 읽고 답해요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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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서재
[2-1] <낡은 페이지>에서 다루는 유목민들과의 의사소통이 인상적이네요. 우리는 언어를 가진 우수한 민족이라고 말을 하는데, 상대가 다른 언어를 사용할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멸시하거나 오해하고 있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다를 뿐이라는 것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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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 인간들은 자유라는 말로 자기 자신을 너무 자주 기만합니다. 그리고 자유라는 것을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만, 참다운 것이 아닌 자유도 똑같이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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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인생은 놀랍도록 짧다. 지금까지 살아온 일을 돌이켜보면 모든 것을 통틀어 단 한 줌일 뿐이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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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피오카푸딩
“ 이와 같은 진보! 사방팔방으로부터 이와 같은 지식의 빛이 눈을 뜬 저의 뇌리 속으로 흘러들게 된 것입니다. 저는 기뻤습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고백합니다만 그 가치를 과대평가하지도 않습니다. ”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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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쏘
그들이 손을 내밀면 우리는 옆으로 몸을 돌리고, 모든 것을 그들의 뜻에 맡기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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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나
누가 뭐라 해도 저는 지금까지 많은 출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습니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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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닿늘
"이랴! 달려라!" 하고 나는 외쳤다. 그런데 말은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노인의 발걸음처럼 느리게 눈 덮인 벌판을 횡단했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p. 2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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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ein
“(…) 나는 징그러운 상처를 지닌 채 이 세상에 태어났지요. 그것이 내 모습의 전부였답니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시골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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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L
“ ‘그는 장차 어떻 게 될까’ 하고 나는 생각해보지만, 아무런 해답도 얻을 수가 없다. 그는 죽을 것인가. 죽는다는 것은, 모두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일종의 목적을 갖고 일종의 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몸이 닳아서 죽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드라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언제인가 내 자식들이나 손자들의 발길에 채여 실이 풀리면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게 될 것인가. 그가 어떤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죽은 후에도 그가 계속 살아남을 것을 생각하면, 나는 참으로 고통스럽다. ”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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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초록
설령 당신이 턱이 빠지도록 열심히 지껄이거나 양팔이 떨어지도록 열심히 손짓 발짓한다 해도 그들은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도 결코 이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낡은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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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레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이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소. 왜내하면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니까. 나는 이제 가서 이 문을 닫아걸겠소.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법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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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서재
[2-2] "나는 이 자초지종을 완전하게 생각할 능력이 없다. 발가벗은 채로 비참하기 그지없는 이 시대의 혹한 속에서 현세의 마차를 타고 초현세의 말들에게 이끌려서 늙은 나는 끝도 없이 돌고 또 돌고 있는 것이다. <시골의사> 중에서"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2-3. 카프카는 여러 면에서 복잡한 경계인이었습니다. 유태인이었지만 유태인 문화 속에서 자라지는 않았고,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어로 글을 썼습니다. 법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지만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지는 않았고, 보험회사에서 법률가로 일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카프카의 작품에서 법은 정의를 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거대한 무력감을 주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법 앞에서」는 「변신」만큼은 아니지만 인지도가 높은 카프카의 작품인데요, 신문 칼럼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국회나 법원 앞에서 좌절하는 시도들이 있을 때 소환당하는 글이지요. 사실 입법부와 사법부의 높은 문턱을 비판하는 소설로 읽어도 무리가 없습니다. 카프카 본인도 이 짧은 단편을 각별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이 단편은 며칠 뒤 저희가 함께 이야기하게 될 『소송』에 극중극 형태로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법 앞에서」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이 작품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해석을 들려주세요. 정답은 없습니다. 심지어 『소송』의 등장인물들조차 이 이야기를 두고 논쟁을 벌인답니다.

에이프릴
이 이야기의 앞 부분을 읽었을 때는 “법의 문턱이 높다”라고 생각했어요. 시골 사내가 올라와서 문지기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말을 했지만 말직인 문지기는 본인을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홀을 들어갈 때마다 또 다른 문지기가 있으며, 그 위력은 점점 커진다라고 시골사내에게 겁을 줍니다. 시골사내에게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주며 기다리라고만 말해주는 문지기!
법 앞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보았죠. 시골사내에게 법의 문턱은 높아보였고 역시 법은 불평등하다고 생각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시골 사내는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알게되는 사실이 있었죠. 문지기가 지키고 있는 문은 계속 열려있었으며, 오직 시골 사내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다는 것을요. 많이 허망했습니다. 그럼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시골사내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요?
법은 열려있었고, 그 문턱을 두려워서 넘지 못했던 것은 시골 사내였습니다. 시골사내는 법의 문턱도 넘어보지도 못하고 법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문은 언제 열어주냐고 한탄만 하다가 본인의 인생을 허비했어요.
그렇지만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시골사내가 말직인 문지기를 지나쳐 법의 문으로 들어갔다고 한들 정말 다음 문지기의 문을 넘어가는 과정이 순탄했을까요?
시골 사내는 정말로 그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알면서도 문지기가 있어서 못 들어간다고 핑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과거에도 현재도 법은 항상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부조리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되었어요. 부조리에 용기있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만약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들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요?

타피오카푸딩
카프카의 글을 언제나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고 구체적이지도 않으며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도, 타당하게도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것 같아요. 난해하지만 그때문에 무슨 말을 하려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는 점에서 사유의 힘을 길러주는것 같습니다.
저도 법 앞에서을 읽으면서 소시민에게는 너무나 높은 법의 문턱, 문지기 또한 문지기이기에 자신도 들어가본적도 없는 법의 문앞에서 주인공을 기만하는 모습, 또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없는 참담함과 어리석음을 보았습니다. '권리위에 자는 자는 보호받을수 없다'라는 루돌프 폰 예링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문지기는 문지기일뿐인데 그 의 말만 믿고 문앞에서 여생을 다 해버린 주인공의 어리석음이 안타깝고 그게 우리 소시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신이나
처음 문지기가 다음으로 갈 수록 더 힘들어질 거라고 하는 장면에서 '벼룩 효과'가 생각났는데요. 그래도 또 다른 문지기를 계속 만나보려는 노력을 해보면 어땠을까요? 좌절만 하고 있기엔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고 또 좌절할 때 하더라도 무언가 끊임없이 할 수 있는 생각만으로도 또 살아가질텐데요.
물론 법이나 소송에서의 좌절로 치환하자면 계속 두드릴 수 있는 관문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조금의 여지만 있다하더라도 단지 문지기의 말만 믿고 있지는 않을 거에요.

은쏘
소송까지 다 읽었는데도 법 앞에서 라는 작품은 어렵네요. 크게 문지기는 법으로 대표되는 권위와 시골사람은 그 권위 앞에서 절망하는 소시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CTL
어쩌면 여기서 '법'은 '천국'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해요.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 그런데 마지막에 노인이 죽어갈 때 문지기가 이제 문을 닫아걸겠다고 한 것이 노인을 들여보내고 닫겠다는 것인지 노인이 죽으면 아무도 들어올 사람이 없으니 닫겠다고 한 것인지 좀 헷갈리는데, 아마 후자이겠지요.
결국, 법을 통해 정의를 얻고자 하는 각 개인은 결코 자신이 만족할 만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메세지 같아요. 법률가들은 그저 이루어질 수 없는 정의로 마치 이끌어줄 것처럼 하면서 문지기처럼 온갖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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