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필사 좋아하세요?

D-29
계절 이야기 나누시는 걸 찬찬히 보다가 <겨울 해변>이라는 시를 필사했습니다. '겨울 해변에 갔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을 보았다 여기까진 안 오는 구나, 여기까진 안 와/생각하며//그러다 손발이 모두 젖는다', '싫은 것과 무서운 것은/ 어떻게 구분할까(…)처음엔 무서워서 싫었다가/지금은 아주 싫어하게 된 것들', '긴 겨울/겨울 해변에 가고 싶었다//서랍을 열면/모서리가 얼마나 많은지' 종종 제가 무서워하고 있는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둘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 무서운 것을 싫은 것이라고 말할 때 어떤 사람은 해석된 채로 아무렇게나 놓여 있고 ' 그렇네요.. 싫은 게 아니라 무서운 것일 수도 있는데.. 사람은.. 함부로 해석할 존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도리 님과 같은 시집을 읽다 보니, 도리님께는 어떤 시가 닿았을까 궁금할 때가 있는데요. 이번 시도 그런 의미에서 너무 좋네요. 시집으로 읽고, 도리님이 직접 필사하신 글로 다시 읽으니 감상이 더 풍부해지는 느낌이에요. 제가 놓쳤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고요. 무서워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말씀에도 고개가 끄덕여져요. 저도 그걸 뭐라고 딱 나누기 애매할 때가 있더라고요. 제가 얼마 전에 읽었던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파주"라는 단편이 있는데요. 그 책에서도 비슷한 문장을 메모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살포시 옮겨봅니다.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10년 제정된 이래 해를 거듭하며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젊은작가상이 어느덧 15회를 맞았다. 저만의 문제의식과 치열한 언어로 문학의 지평을 넓혀온 데뷔 십 년 이하 작가들의 눈부신 발돋움을 조명하고자 마련된 젊은작가상은 지난해까지 모두 62명에 이르는 새로운 얼굴을 소개하며 한국문학에 생기를 더했다.
그건 미워하는 것보다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요. 근데...... 너무 무서워하다보면 미워지게 되거든요. 무서워하는 거랑 미워하는 마음이 나중에는 잘 구별이 안 가더라고요. 그게 그거 같고, 굳이 나눠야 하나 싶기도 하고......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파주』 김남숙, 김멜라 외 지음
안 그래도 이 책 수요일날 도서관에서 들었다가 놨는데요! 관심책에 얼른 넣었습니다. 감사해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리님이 남겨주신 "특별히 쓸모는 없지만 여기 그런 내가 있다고."라는 문장도 정말 좋네요. 저도 비슷한 마음으로 기록을 하고, 일기를 쓰고, 저를 키워가는 것 같습니다:)
이바라기 노리코 시도 필사했어요. 실제로 이런 조언을 들으면 흥! 하고 툴툴 거릴 거 같은데요. 마지막 행에 '바보야' 하나로 바로 마음이 사르르 풀렸습니다. 그래 내가 바보였지 싶어서요.
으앗, 이 시는 읽으면서 뼈를 맞는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허허허). 정신이 번쩍 드네요. 여기 바보 한 명 더 있습니다(저요, 저).
이바라기 노리코 여사님 시 중에 제일 좋아하는 시입니다. ^^ (저도 바보...)
오늘의 시는 <재구성>이라는 시입니다. 해본 적 없지만 말하고 나서 한번 해본다는 문장과 안내받지 못하며 자란 사람은 스스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는 문장이 유독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나에게 안내자가 되어준다"는 마지막 문장처럼, 누군가에게는 재구성의 시작이 온전히 자신의 몫이 아닐까 싶었어요. "옛날 일기를 읽으면 다 생각이 나니까 / 읽기 싫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저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었던 시기도,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또 하나의 기억으로 자리하기도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일기는 좋은 것 같습니다. 가끔 '내가 이런 걸 썼다고?'싶어 오글거릴 때도 있지만, 가감 없이 써 내려가는 일기장 덕분에 상황과 감정을 온전히 들여다보기도 하니까요. 다들 일기를 쓰시는지도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또 시와 전혀 관련없는 마지막 질문을 드리면서 저는 이만 출근하러!
저번에 이사 준비하다보니 초등학교때 썼던 일기가 빽빽하게 남아있더라구요. 다시 펴서 읽어보면서 그때의 간질거림을 느껴보는게 부끄러우면서도 재미있더라구요.ㅎㅎ
으아, 부럽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들을 다 버린 게 너무 아깝더라고요. 중학교 때 썼던 일기장들은 버리지 않아 부모님댁에 있지만요. 그때의 간질거림을 느껴보는 게 부끄러우면서도 재미있다는 말씀도 정말 공감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썼던 일기만 다시 봐도 오글오글하더라고요. 그래도 그때의 제가 떠올라서 좋고, 괜히 짠하기도 하고 그래서 결론은 재미있습니다:)
작은 사람에게 말했다 안내받지 못하며 자란 사람은 스스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고 해본 적 없어요 말하고 나서 한번 해본다 곁에 아무도 없는 작은 사람이 보였다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재구성, 안미옥 지음
저도 이 부분이 아프네요. '해본 적 없어요'랑 '곁에 아무도 없는/ 작은 사람이 보였다'까지요..
저도요, 도리님ㅠㅠ 해본 적 없다고 말하고, 한번 해봤는데, 곁에 아무도 없어 작아지고 마는 느낌. 하지만 그 작은 사람은 다시금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희망하고 싶어집니다. "나는 나에게 안내자가 되어준다"는 마지막 문장처럼요. 그 작은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말없이 토닥토닥해주고 싶었어요.
엇 연해님이랑 저랑 묘하게 다르게 읽은 거 같아요! 저는 '작은 사람'과 '나'를 분리해서 봤는데요. '작은 사람'이 마치 부모처럼 느껴졌어요.(작음이 보잘 것 없고 쇠약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은 사람에게, 안내 받지 못하며 자란 사람은 스스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고. 난 해본 적 없다고. 원망하듯 말하고 나서 직접 해보니 곁에 아무도 없었던 작은 사람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매번 그렇거든요. 구조보다 구조에 끼여 사는 사람을 미워하고 한심해 하다가 그곳에 놓였을 때야 그 사람의 분투와 외로움를 알아채서요. 그래서 저에게 마지막 행 '나는 나에게 안내자가 되어준다'는 희망보다 의지였어요. 이제는 구조를 알았으니까, 그러면 그것대로 살아남자는 의지. 연해님의 작은 사람은 화자와 화자 안에 작은 사람을 투영해서 보신 거 같은데 제가 이해한 게 맞을까요? 같은 시도 각자의 몸을 통과해서 각자의 버전의 시가 되는 거 같아 신기하고 재밌어요. 도리ver, 연해님ver!
으아, 세상에. 이렇게 정성스러운 설명이라니, 감동입니다. @도리 님! 저의 해석은 도리님이 말씀하신 것이 맞아요. 제대로 이해해 주셨습니다. 이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리님의 말씀을 읽고 보니 제가 놓친 부분도 눈에 들어오네요. "구조보다 구조에 끼여 사는 사람을 미워하고 한심해 하다가 그곳에 놓였을 때야 그 사람의 분투와 외로움를 알아채서요."라는 문장에서 특히 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마지막 행이 희망보다 의지였다는 말씀, 구조를 알았으니 그것대로 살아남자는 의지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참 귀하게 읽힙니다. 도리님 말씀처럼 같은 시도 각자의 몸을 통과해서 각자의 버전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시의 매력이 아닐까 싶고,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다시 돌아볼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에요:)
옛날 일기는 읽으면 다 생각이 나니까 읽기 싫었다 무거워서 시작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그만 깊어지고 싶지 않아요 영원을 본 적 없어요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재구성, 안미옥 지음
이 부분도 와닿네요 ㅎㅎ. 그 전에 기록한 걸 다시 들춰보진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이렇습니다. 다시 보려면 조금 많이 지나야 되더라고요. 그때의 내가 잊혀져야 보고 싶어져요.
저는 일기를 매일매일 쓰진 않고, 다이어리는 매일매일 꾸민답니다! 일기는 다이어리를 꾸미고 더 쓰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쓰곤 합니다 :) 초등학생 때는 숙제로 일기를 많이 쓰곤 했는데, 얼마 전 그때 일기를 다시 보니 먹는 얘기밖에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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