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필사 좋아하세요?

D-29
오늘의 시는 <엉망>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고 제 마음이 살짝 엉망이었는데요. 어린 개가 점점 자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씁쓸하게 그려낸 것 같았거든요. 개뿐만 아니라 사람이 자라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느껴졌습니다. 어린 개는 신발을 물어와 방 한가운데 두고 구름을 잔뜩 풀어헤쳐 놓으면서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두지만, 그만큼 천진난만하게 밝고 맑아요. 근데 그 어린 개가 자라버린 거죠. 세상을 서서히 알아가고, 주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방을 어지럽히지 않고, 얌전히 기다리는 법을 알게 돼요. 그렇게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다 여길 때, 비로소 개의 하루는 엉망이 되어가는 과정. 모순적이지만 현실적이기도 해서 더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마냥 해맑고 순수했던 어릴 때의 제가 있다면, 지금의 저는... 글쎄요. 그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어릴 때에 비해 어른스러워 보일 수 있으나, 그만큼 감내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포기하는 법도, 침묵하는 법도 배우고 말이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 / 개의 하루는 엉망이 되어갔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릴 때보다 겁이 많아진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가 참 와닿아요. 아무리 애써도 자꾸만 뭔가를 놓치는 듯한 기분이 자주 들거든요. 내가 가진 생각도, 행동도, 선택도, 옳다고 믿은 것들도 다 엉망진창인 것 같고요.
공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도리 님. 정말 그래요. 나이를 먹을수록 생략하는 말도 많아지고, 이해(라고 쓰고 외면이라고 읽는) 하는 부분도 많아지는 것 같은데, 여전히 헷갈려요. 이게 좋은 게 맞나, 놓치고 사는 건 아닌가. 또 가끔은 제가 뚝심 있게 믿어온 가치관이 흔들릴 때도 있는데요. 그때의 허무함이란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이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다 엉망진창인 것 같은 기분이 가끔, 아주 가끔 듭니다. 나이가 들수록요.
가끔이셔서 다행이에요. 저는 빈번하게 후후 오늘도 조졌군 이런답니다. 껄껄껄. 제 인생이 뭐 그렇죠 뭐! 와하하 엉망진창 룰루랄라!(?)
이번 한 주의 상호작용을 시작하며..☆
오와오와, 세상에...! 저 이 책 좋아합니다. 처음 이 책을 제목으로만 접했을 때는 사람, 장소, 환대의 순서가 헷갈렸는데요. 읽으면 읽을수록 헷갈릴 수 없는 나름의 기준이 잡히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물론 한번 읽어서는 제 이해력으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책이지만요.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가 무거웠습니다. 한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자격, 위치, 관계 등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졌던 책이었어요.
사람, 장소, 환대현대의 지성 시리즈.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꼭 종이책으로 읽고 싶어 아껴두고 있는 책이에요.
제가 필사한 시는 <순간적>입니다. '억지로 만든 표정은/얼룩덜룩하다', '왜 흔들리는 목소리를 갖게 됐을까', '중간까지 갔다가/자주 되돌아왔다' 이 행들이 와닿았고요. 마지막 행 '부서지거나 전부 녹는다 해도/물이 되면 그만이다'는 그럴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와... 도리님의 글씨로 제가 필사했던 시를 만나니 다시 또 반가운 마음이 올라옵니다. 저는 이 시가 어려웠는데, 도리님의 감상을 읽으면서 조금 더 고개를 끄덕였어요. 저는 마지막 행이 가장 좋았는데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는 도리님의 문장과 살짝 비슷하게(아니려나요),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 생각했답니다. 이번에도 시간까지 꼼꼼하게 기록해 주셨네요:)
시간을 기록하는 점 알아주셔서 감사해요! 일기를 연습하고, 책을 메모하면서 구축된 제 습관이에요. 어릴 때부터 하루에도 내가 너무 많다고 느껴서요. 감정이 요동치는 저 같은 사람에겐 하루 안에 슬픈 나, 기쁜 나, 화가 난 나, 질투하던 나, 안도하던 나...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루보다 그 순간을 짚는 게 더 정확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년도와 달을 쓰면 계절을 알 수 있고, 시간을 쓰면 구체적인 풍경이 그려지고요. 그 밤은 외로웠구나. 낮에는 들떠 있었는데 저녁 땐 쓸쓸했구나. 이런 식으로요. 흐흐. 사실 기록하고 다시 들춰 보진 않는 편인데요.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할 때 맘이 편해요. 그 날의 여러 감정을 하루의 감정으로 퉁치지 않다고 느껴져서요. 저 같은 이랬다 저랬다 인간한테는 이렇게 기록해야 신뢰가 간달까요?
하루 안에 여러 감정의 내가 있어, 하루보다는 그 순간을 짚는 게 더 정확한 느낌이 들더라는 말씀이 마음에 콕 들어왔습니다. 기록을 다시 들춰 보지 않으시지만 그때의 감정과 생각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다는 건, 스스로를 그만큼 들여다보고 아껴준다는 느낌도 들어요. 저도 재작년인가? 감정일기라는 걸 썼던 적이 있었는데요(지금도 제방 한 편에는 감정달력이). 생각보다 현대인들이 그때그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들여다보고, 인정해 주고, 기록하는 것만으로 해소가 되기도 한다고. 도리님은 이미 그 모든 걸 하고 계셨네요! 기록을 하면 그날의 여러 감정을 하루의 감정으로 퉁치지 않다고 느껴진다는 말씀도 너무 인상 깊습니다. 시간을 기록하는 것에 이토록 깊은 의미가 담겨있을 줄은 몰랐어요. 기록하는 도리님을 조심스럽게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연해님의 답변 매번 감동입니다. 이제는 습관처럼 하는 행동인데 이렇게 설명할 수 있어서 좋네요. 오해 없이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나 벅찹니다. 시간과 분까지 기록하는 게 저에겐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때의 나를 내가 오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때의 나를 나라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요. 연해님의 응원 너무 감사합니다. 제 순간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정말 기뻐요. 영광입니다!
아니이ㅠㅠ 이렇게 다정한 답글이라니요. 저야말로 정성스럽게 말씀 담아주셔서 너무 감사한걸요. "그때의 나를 내가 오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때의 나를 나라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 도리님의 그 마음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야말로 그믐에서 도리님을 만나게 되어 기쁘고, 영광입니다:)
와! 부럽고 대단한 습관이시네요 ^^이렇게 매순간을 기록한다면 이를 읽으며 나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보통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막연한 이미지나 다른이들의 평가로 나를 판단하고 행동하잖아요? 이런 습관을 가지신다면 나의 소중한 기록물 보관은 어떻게 하시는지 그리고 아무래도 감정 폭팔이나 주관적이고 즉흥적인 사고와 선택은 덜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매순간을 기록하진 않고요. 기록할 때 그게 순간이라는 걸 인지하는 정도입니다 허허. 노트나 네이버 메모장 이용하고 있어요. 소중하게 잘 보관하진 않고 그냥 써두네요 허허. 감정 폭팔이나 주관적, 즉흥적은 좀 덜 할까요. 그냥 그 마음들을 다 긍정하는 게 포인트였어요. 사실 그럴듯하게 썼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고 남기고 싶은 마음인데요. <하루의 책상>이라는 책에서 '특별히 쓸모는 없지만 여기 그런 내가 있다고.' 라는 문장을 메모했었는데 이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하루의 책상
오! 좋은 책 추천과 기록에 대한 팁 감사드립니다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를 잘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지요?^^;; 그래서 선택과 행동도 오류도 자꾸 범하게 되구~ 그런데 도리님처럼 기록과 사유를 통한다면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지도가 멋지게 만들어질거 같아요 좋은 팁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부지가 또 필사 사진을 보내줬습니다. 이번엔 안 시켰는데요...(???) 60대 남성픽 입니다. 아빠 발췌으로 버전 읽는 재미가 있네요. 또 보내 달라고 해봐야겠어요.
미세 좌절의 시대‘미세 좌절’은 장강명이 새롭게 고안해낸 조어이다. 국가가 장기 경제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기업은 여러 경영 방식을 택하지만 정작 시민 개개인은 그러한 체계 속에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실패를 겪는다. 이 만연한 실패의 감각을 작가는 ‘미세 좌절’이라고 명명한다.
으앙...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
우와, 아버님의 필체 다시 등장! 세상에나, 제가 다 감사합니다. 아버님도 이 공간에서 같이 호흡하며 필사하고 계신듯한 느낌이 들어요. 힘 있고 선명한 글씨체로 이 구절을 다시 만나니 느낌이 또 새롭습니다. 이 책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아 더더 기쁘고요. 저도 다음 버전을 두근두근 함께 기다리고 싶어요:)
오늘은 나희덕 시인의 시 <휠체어와 춤을>을 적어 봤습니다. 휠체어가 이러한 눈물의 흐름과 특별히 어우러지는 게 무엇일까 하고 잠시 생각을 해 봤습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과 춤을 추기 위해 화자는 몸을 아래로 굽혀야 할 겁니다. 그렇게 춤을 춘 이후 그 사람과 화자는 멀어지게 됩니다. 눈물은 아래로 흐르다가 화자에게서 떨어집니다. 화자는 그 눈물의 흐름에 따라가듯 몸을 아래로 굽히며 춤을 추고, 끝에선 눈물과 이별하게 됩니다. 둘 모두 화자를 끌어당기면서도 화자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거죠. 필연적인 이별을 맞이하며 흘린 눈물이 그 자체의 속성과 어우러진다는 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 시인선' 442권. 1989년 등단 이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 간명하고 절제된 형식으로 생명이 깃든 삶의 표정과 감각의 깊이에 집중해온 나희덕 시인이 <야생사과> 이후 5년 만에 펴낸 일곱번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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