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사색하는 책 읽기 1

D-29
저도 얼마 전 황석희님의 에세이 <번역; 황석희>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황석희님은 영상번역가이지만, 에세이를 읽으며 번역 작업의 고충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가끔 저도 번역된 책을 읽으며 원작을 읽어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번역이 너무 좋을 때도, 또는 형편없을때도요. 영어는 더러 찾아보기도 하지만, 다른 외국어는 읽어낼 능력이 없으니 번역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번역을 굳이 프랑스어 번역가가 아닌 철학자 김진영님을 통해 중역 한 이유는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가 단순한 언어적 번역이 아니라 철학적 의미를 담은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번역이라는 것이 텍스트만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니 필요에 따라 중역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밀씀대로 이 책은 원전에서 번역하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바르트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게 더 중요했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용인된 중역이지 싶습니다.
애도와 책에 대한 대화는...언제쯤....^^::
네 지금쯤...^^ 좀 늦었나요? 독서가 좀 진행돼야 이야기 나누기가 가능할 거 같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롤랑바르트의 책은 처음인데, 인상깊게 다가와서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했어요^^ 저도 번역의 질을 신경쓰는 편이긴 한데 전문적으로는 잘 몰라서 대화의 어떻게 끼어 들어야 되나 눈치만 보고 있었네요 ㅎ하지만 호기심은 생겨서 댓글은 다 읽어 봤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바르트의 애도와 관련해 나눠보고 싶은 이야기 하나입니다. - 뒤표지에도 인용된 말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1978. 3. 20 )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예민함만이 사라질 뿐이다... 차이가 뭘까요?
저도 그 문장이 인상 깊었는데요, 경험에 비춰보니 어느정도 알겠더라고요. 말로 표현하려니 좀 어렵긴 한데... 저도 수년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그 슬픔은 사라지는게 아니거든요. 처음에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고, 세상이 원망스럽고 등등. 슬픔이 몰려올때마다 그 슬픔에 예민하게 반응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저 슬픔 자체를 받아들인다고나 할까요. 여전히 생각할 때마다 슬프지만, 이제 전처럼 그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아요. 그 감정의 양이 줄어든게 아니라 예민함 혹은 그에 대한 반응이 무뎌진거라고 생각해요. 말이나 글로 푸는게 어렵네요ㅎㅎ
@Dalmoon 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 거 같아요. :)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가 차별점일 수 있겠네요.
저도 @Dalmoon 님처럼 아버지가 9년 전에 돌아가셨요. 지금도 겨울을 제외하고 계절마다, 1년에 한 번씩 가는데요, 아버지의 부재는 여전히 슬픕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눈물이 수도꼭지 터지듯이 나오지는 않거든요. 제 경험으로 누군가 비슷한 슬픔을 겪는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고, 유년 시절의 추억이 더 새록해지고, 기일이면 가족들과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웃으면서 나눠요. 그럼에도 어느 순간 문득 아버지의 부재가 느껴지는 때가 오면 울컥합니다. 가끔 느닷없이 찾아오는 그 진한 슬픔이 반갑기도 하고요.
'반가운 슬픔'이라는 표현이 참 인상 깊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가슴이 아려오네요.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맘 속 어딘가 있다가 문득, 울컥하고 나오는 걸까 싶기도 하네요.
말씀하신 문장을 읽고 이 책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흔히들 '시간이 약이다'라며 큰 슬픔이나 어려움을 견디라고 말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하는데, 저는 사실 이 말이 탐탁지 않습니다. 해결되지 않고 덮어버리는 느낌때문이었는데, 롤랑 바르트의 이 표현이 제게 탁 와 닿았습니다. 이미 벌어진 슬픔의 원인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죽음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죠. 하지만, 그 슬픔에 대한 나의 반응이 시간이 흘러 무뎌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에 슬픔 속에서도 살아남은 인간은 또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죠.
그렇죠. 슬픔의 원인, 여기서는 죽음이 없어지지 않는데 슬픔이 없어질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말씀대로 무뎌지는 거라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네요.
글을 단 분들이 부모를 잃으신 분들이라 덧글을 달기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저는 외국살이에서 부모님만큼 의지했던 지인을 6년 전에, 제가 우윳병 줘가며 키웠던 반려묘를 2년 전에 잃었어요. 둘을 잃은 직후에는 잠도 오지 않고, 밥도 넘어가지 않고, 무기력해지고 세상 사는 재미를 다 잃은 느낌이었어요. 그 상실감과 슬픔은 제가 책에서 경험한 것돠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더라구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떠올리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어요. 그들을 잃은게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는 그 당시만큼 예민하게 떠올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올려주신 문장에 크게 공감가서 저도 밑줄 그어놓았어요.
그들을 잃은 게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여전히 슬프다. 이게 바르트와 같은 경험일 거 같습니다.
내 슬픔은 삶을 새로 꾸미지 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내 슬픔은 사랑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사랑의 단어들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아주 자명해진 내 슬픔의 이유......
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1977.11.6,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이 구절을 발췌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 경우는 읽으면서 바르트와 마망의 관계는 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사랑,이라는 관계가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 구절이 납득이 되었습니다. 통상 부모의 죽음이 상실의 슬픔을 가져오겠지만 그 슬픔이 반드시 사랑의 상실에 기인하는 건 아닌 것도 같은데 바르트는 틀림없이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이 되네요.
바르트와 그의 어머니는 특별한 관계였던 만큼 사랑의 말을 서로 자주 했겠지만, 전 반대의 이유에서 이 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상실의 슬픔 이후 사랑한다는 말을, 사랑의 단어들을 제대로 전달한 적이 없었다는 자책과 후회가 저를 많이 괴롭혔었고, 그 이유로 많이 슬펐으니까요.
아 충분히 공감되는 이유입니다.. 마음을 충분히 전달하면 좋을 텐데 그게 쉽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바르트는 정말 충분히 전달했을 거 같은데, 꽤 드문 경우인 거 같아요. 아버지의 부재가 모자 관계를 특별하게 한 건가 하기도 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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