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D-29
그녀에게 있어서 그는 늘 왠지 어떤 것에 사로잡힌 포로 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그 자신의 안이함의 포로. 안이한 삶의 포로 처럼. 그런데 지금 그는 더 이상 발버둥치지 않는, 반쯤 죽은 듯한 옆얼굴을 자신에게가 아니라 나무를 향해 돌리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 실내복 차림으로 경쾌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시몽을 떠올리고는 그를 원래의 그 자신에게로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를 영원히 보내 버림으로써 잠시 슬픔에 잠기게 했다가, 예상컨대 앞으로 다가올 훨씬 멋진 수많은 아가씨들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그에게 인생이라는 걸 가르치는 데에는 시간이 자신보다 더 유능하겠지만, 그러려면 훨씬 오래 걸리리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82-83,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현재 11장까지 읽었습니다. 로제의 매력은 무엇인가 ... 하면서 ㅎㅎ p.87에 적혀있는 '그는 애초부터 대화 같은 것과는 동떨어진 인상을 주는 만큼 언제나 새로운 분위기를 환기시켰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라는 문장에서 어떤 게 매력포인트라는 건지 와닿지가 않네요 저 상황이 뭔말인지를 모르겠습니다 ㅜ
사실 지난 열흘 동안 그녀는 가슴 아프도록 그가 그립지 않았던가. 끊임없는 그의 존재감, 그의 감탄, 그의 집요함으로 인해 감각 상의 습관 같은 것이 만들어져, 어떤 이유로도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녀 쪽으로 향해 있는 그의 얼굴에는 평소의 그 표정, 서른아홉살 난 여자를 정신적으로 만족시켜 줄 만한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달라진 얼굴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97,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그랬다, 그것은 차라리 '그들 두 사람'에 대한, 그들이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일종의 가학인 셈이었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이제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외쳤어야 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나 로제에게서 그런 반응이 나오기를 거의 절박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 사이의 무엇인가가 죽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런 계산과 헛된 희망 속에서 열흘을 보낸 그녀로서는 시몽에게 설복당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시몽은 전화로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직접 얼굴을 대하면 "저는 행복해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시몽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은 완벽한 어떤것, 적어도 어떤 것의 완벽한 절반이었다. 이런 일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야 완벽하다는 것을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오래전부터 줄곧 앞장서는 입장, 대개 혼자 애쓰는 입장이 되어 있었고, 이제 그 일에 지쳐 있었다. 그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시몽은 사랑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그 말이 유난히 특이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자신이 개입된 이 연애의 초입에서, 예를 들어 로제와의 관계 초기에 있어떤 흥분과 약동 대신 발끝까지 휘감은 거대하고 나른한 권태를 느꼈다. 모두들 나에게 분위기를 바꿔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애인을 바꾸게 되는군 하고 그녀는 서글프게 생각했다. 덜 성가시고 더 파리 지행 답고 너무나 자주 만나주는 애인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00-101,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많은 사람들이, 특히 자신의 친구들이 어조를 달리해 "혹시 사실이야, 폴?"이라고 하며 이 일에 대해 물어볼 것이라고 폴은 생각했다. 사람들의 험담이나 앞으로 강조되어 드러날 시몽과의 나이차에 대한 두려움 이상으로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모욕감이었다. 사람들은 얼마나 신이 나서 떠들어 댈까. 그녀 자신은 스스로가 늙고 지쳤다고 생각되어 약간의 위안을 얻으려는 것뿐인데, 그들은 그녀가 젊은 남자나 좋아한다며 요란스럽게 입방아를 찧어 대리라. 사람들이 자신에게 입에 발린 말을 하는 동시에 잔인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구역질이 났다. 그런 경우를 수없이 보아 오지 않았던가. 로제에게 배신당하자 그녀는 "가엾은 폴."이라고 불리는 한편 "지독히도 독립적인 여자"라는 말도 들었다. 그녀가 젊고 미남이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남편 곁을 떠났을 때에도 사람들은 비난과 험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번에 야기될, 경멸과 시샘이 뒤섞인 그들의 반응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리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02,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초반부터 이 권태를 어쩌면 좋을까요 ... 폴... 읽으면서 프랑스 소설이라 그런가 마크롱 대통령이 자꾸 생각납니다. ㅎ 폴과 시몽은 15살 연상 관계이지만 마크롱과 브리지트는 무려 24살 연상^_^ 검색하다보니 6부작 드라마 제작 중인가 보네요 전 문화부장관이 인터뷰한게 기사에 같이 실렸는데 ㅋㅋㅋㅋㅋ 라이언 고슬링과 줄리아 로버츠를 추천했어요^___^ 지인이 책 제목에 '브람스'가 들어가는 이유가 브람스와 슈만 그리고 그의 부인 클라라 슈만의 관계에 대한 암시도 있을거라 알려주네요. 읽기 전에는 진짜 클래식 음악이 소재가 되는 소설인가 했는데 이런 사랑이야기인지 몰랐어요 ㅠㅠㅠ 이 무더위에 !!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읽어도 뭔가 시원해지지 않는 소설입니다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06,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시몽은 때때로 자신이 힘들고 무용하고 승산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흐르는 시간이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없애야 하는 것은 로제와의 추억이 아니라 폴 안에 있는 로제 라는 그 무엇. 그녀가 집요하게 매달려 있는, 뽑아버릴 수 없는 고통스러운 뿌리 같은 그것이었다. 이따금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 이유, 줄곧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가 고통을 감수하는 그 한결같은 태도 때문이 아닐까 자문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36,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살고 있지 않은가. 마침내 그녀는 나이 차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 "십 년 뒤에도 그가 여전히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다. 십 년 뒤에 그녀는 혼자가 되거나 로제와 함께 지내게 되리라. 그녀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집요하게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거듭 속삭이고 있었다. 스스로도 속수무책인 그런 이중성을 떠올릴 때면 시 몽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배가되었다. " 나의 희생양. 나의 사랑스러운 희생양. 나의 귀여운 시몽!" 생전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불가피하게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데서 오는 끔찍한 쾌감을 경험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3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그녀는 로제를 가리켜 '그'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그들 두 사람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에게서 언제나 빠져나갔다. 이 애매한 싸움이야말로 그녀의 존재 이유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 .13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하지만 스무 살 때에는 지금과는 생각이 달랐어. 뚜렷하게 기억나. 나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했지." (....) 행복해져야 한다는 의지가 그녀의 머리위를 감돌고 있었다. 당시에도 장애물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 이제 그녀는 새로 개척하는 대신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직업을, 그리고 남자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추구해 온 그런 것들에 대해 그녀는 서른아홉 살이 된 지금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41,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그녀는 한 번 더 그를 품에 안고 그의 슬픔을 받쳐 주었다. 이제까지 그의 행복을 받쳐 주었던 것처럼. 그녀는 자신은 결코 느낄 수 없을 듯한 아름다운 고통, 아름다운 슬픔, 그토록 격렬한 슬픔을 느끼는 그가 부러웠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50,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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