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보르헤스 읽기] 『칼잡이들의 이야기』 2부 같이 읽어요

D-29
하지만 내가 자네에게 어떤 단어나 문장을 빼버려도 좋다고 한 적이 없고, 더 나아가 새로운 문장을 삽입해도 좋다고 허락한 일은 더더욱 기억이 나지 않는다네. 특히 추가된 문장과 관련하여 그 모든 문장을 삭제해야 한다고 여기서 강력히 주장하는 바일세. 특히 내가 가장 경건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추모하는 작고한 여왕 폐하에 대한 문장은 반드시 삭제해야 하네. 나는 지구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선왕을 더 숭배하고 공경했다고 자부하는 바이지만 말일세.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걸리버 선장이 사촌 심슨에게 보내는 편지⟩ ,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풍자문학의 대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걸리버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통해 당대의 정치사회와 인간 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스위프트는 “이 작품의 의도는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브로디의 보고서] 브로디의 보고서는 브로디 본인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적은 보고서 형식으로 돼 있지만, 그 용어들이 픽션적으로 오염돼 있다는 사실은 '픽션'을 이해하는 우리 정신의 독특한 측면을 반영합니다.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우리는 늘 구체적인 현실을 살아간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실제로는 무수한 허구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작게는 산타클로스나 조상신이라는 개념에서부터 넓게는 화폐 개념까지 모두 허구적 구성물입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뱀이나 도마뱀을 보고서 자연스럽게 '이무기'에 빗대거나 '용'에 빗대는 것을 보세요. 우리는 "뱀이 마치 이무기 같다"라고 하거나 "도마뱀은 마치 드래곤 같다"라고 표현해도 별 다른 이상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 직유에서 보조관념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달리 실체가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현실에 없는 '이무기'나 '드래곤'처럼 허구적 구성물로 대체해도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는 데 별달리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에서부터 허구가 얼마나 구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브로디의 보고서에 등장하는 '믈크(Mlch)'라는 종족도 마찬가집니다. 브로디는 이렇게 씁니다. "나는 독자들에게 그들의 짐승 같은 본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또는 그들의 원시적 언어에는 모음이 존재하지 않아 음가를 정확하게 옮길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야후'라고 부르겠다." 그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지 않거나 확립되지 않은 대상을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픽션에 나오는 어떤 이름으로 부를 때,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정신의 놀라운 측면입니다. 우리는 꼭 만질 수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더 잘 상상할 수 있어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브로디의 보고서⟩는 ⟪걸리버 여행기⟫ 1부에 대한 오마쥬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브로디의 보고서⟩가 ⟪걸리버 여행기⟫와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왕'이 사지가 잘려나간 장님 똥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절대 권력을 갖췄으며, 그 주변의 네 명의 마법사에 의해 조종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만 봐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또 완전히 풍자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그들의 독특한 숫자관, 시간관, 언어관, 문학관에서는 ⟨틀뢴⟩의 그것이 읽힙니다. '야후'라는 허구적 이름으로 지칭되는 '믈크'는 단순히 문명 이전의 야만을 지칭하는 명사가 아니라, 문명 이후의 몰락한 야만을 지칭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브로디가 설명한 "신의 예언적 기억"에 부합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선형적인 시계열로 배열되지 않고 어떤 순환된 형태를 갖춥니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당장의 모호한 '내일'보다 시간상으로 훨씬 먼 '유태인들이 홍해를 건넌 기억'이 더 가깝고 명료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책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개인적인 일정으로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다음 모임은 일주일 정도 쉬는 시간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들 종족이 가진 또 다른 풍습이 있다면 그것은 시(詩)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 대개는 수수께끼 같은 예닐곱 개의 단어들이 차례로 떠오르게 된다. 그는 땅에 납작 엎드려 원을 만들고 있는 마법사들과 일반 사람들의 중앙에 서 있게 된다. 그는 참지 못하고 그 말을 소리쳐 외친다. 만일 그 시가 사람들의 흥분을 자아내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시인의 단어들이 자신들을 엄습하면 그들은 신성한 공포에 사로잡혀 조용히 그에게서 물러난다. 그들은 영혼이 그 시인을 범접했다고 받아들인다. 따라서 아무도, 심지어 그의 어머니조차도 이제 그와 얘기를 나누지도 않고, 그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신이고, 누가 됐건 간에 그를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만일 원한다면 그 시인은 북쪽의 사막지대에서 자신의 피난처를 찾을 수가 있다.
칼잡이들의 이야기 19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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