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 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 읽기 1

D-29
4번 <장난꾸러기>. "새해의 폭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을 "폭발"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새해 첫날이 크리스마스보다 더 큰 명절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옷을 잘 차려입고 가족이나 친구들을 방문하고 선물을 주고받았다고 해요. https://shannonselin.com/2017/12/new-years-day-paris-1800s/ "탐욕과 절망이 들끓는 진흙과 눈의 혼돈". 진흙과 눈이 뒤섞여 지저분한 거리, 수많은 사람들의 "탐욕과 절망이" "진흙과 눈"처럼 뒤범벅이 된, 혼란스러운 대도시의 거리가 마음속에 그려집니다. 이 시구에 감탄하면서 프랑스어 원문을 찾아보았습니다. 원문에서는 진흙과 눈으로 뒤섞인 거리를 먼저 그립니다. 그 위로 마차가 지나가고, "장난감과 봉봉과자가 번쩍거리고", 그 위에 수많은 사람들의 "탐욕과 절망"을 잔뜩 뿌려놓습니다. 원문에서는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 입체적인 그림을 세우는 느낌이 들어요. 황현산 선생님의 번역에서는 "진흙과 눈", "탐욕과 절망"이 뒤범벅이 된 "혼돈"이 강조되는 느낌이 들고요. "들끓는"이라는 시어는 프랑스어로는 grouillant(우글거리는, 붐비는, 들끓는)입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들끓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한곳에 여럿이 모여 수선스럽게 움직이다, (2) 기쁨, 감격, 증오 따위의 심리 현상이 고조되다. "탐욕과 절망이 들끓는"이라는 시구는 '대도시의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그들의 탐욕과 절망의 감정이 끓어오르는'이라고 중의적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아요. 150여 년 전 프랑스 시인이 쓴 시에서 현 시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빈부의 차이, "채찍"에 시달리는 "나귀"처럼 구속과 억압에 시달리며 "종종걸음을 치"며 살아가는 사람들, 타인에게 과시하려고 "넥타이로 끔찍하게 목이 조여, 완전 신품 양복 속에 감금당한 멋쟁이 신사"처럼 스스로 노예가 된 사람들, "탐욕과 절망이 들끓는" 도시 거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탐욕과 절망이 들끓는 진흙과 눈의 혼돈
파리의 우울 <장난꾸러기>,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숨쉬는초록 혼자 읽었을 때는 무심히 넘어갔던 시구가 선생님의 해설을 읽으니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혼자다! 들리는 소리라곤 이따금 뒤늦게 지쳐빠져 돌아가는 승합마차의 바퀴 소리뿐이다. 몇 시간 동안, 우리는 휴식은 어닐지언정 고요를 소유하게 되리라.
파리의 우울 28p, 10.새벽 한시에,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시인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끔찍한 삶! 끔찍한 도시!”라고 묘사한 ‘낮의 시간‘을 살아내고 혼자 ’밤의 시간‘을 맞은 듯합니다. 혼자가 되어 하루를 복기하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네요. ’모든 인간이 한심하고 내 자신이 한심‘하다고 말하면서도 회복의 시간이 되기를 바리는 마음도 엿보입니다. 황현산 선생님이 말하셨던 ’밤이 선생이다‘는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위한 ’회복의 시간‘이기도 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늘상 지니고 다니는 전화기가 ’야간모드‘로 바꿔면 안도감이 드는 저의 모습도 시인의 마음과 비슥하지 않을까 싶고요.
냐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영혼이여, 내게 힘을 주시라, 나를 붙들어주시라, 세상으ㅔ 거짓과 부패한 증기를 나에게서 멀게 하시라. 그리고 그대, 주 나의 신이여! 아름다운 시를 몇구절이라도 지어내어 내가 인간들 가운데 가장 하등한 자가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치들보다 더 못난 놈에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증명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시라.
파리의 우울 29p, 10. 새벽 한시에,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시인은 자기 멋대로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하고 남이 되기도 하는 이 비할 데 없는 특권을 즐긴다. 저 육체를 찾아 헤매는 혼들처럼, 그는 마음 내킬 때마다, 어느 사람이건 그 사람 안에 들어간다.
파리의 우울 12. <군중>,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예술가의 고해기도>에서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통하여 생각한다. 아니 그것들을 통하여 내가 생각한다"라며 자연과 합일을 이루었는데, <군중>의 화자는 도시의 군중 속에서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하고 남이 되기도 하는"군요. 도시 생활에 적합한 시인이네요.
시인은 시시로 자기 앞에 나타나는 온갖 직업과 온갖 기쁨, 온갖 비참함을 자기 것으로 동화한다.
파리의 우울 <군중>,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보들레르는 <이중의 방>에서 몽상의 방과 현실의 방을 감각적으로 그려냅니다. "몽상을 닮은 방"에는 "신비와 고요와 평화와 향기에 둘러싸여" "그지없는 행복"이 있고 "시간은 사라"지고 "영원", "열락의 영원"이 있습니다. "시간이 군림하"는 현실, "이 누추한 방, 이 영원한 권태의 거처"에서는 "달랠 길 없는 삶",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화자가, 아마도 보들레르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몽상에 빠져 있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 인상적이었어요. 영화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차례 무섭고 무거운 타격이 문을 울렸다. 지옥의 악몽에서처럼, 나는 곡괭이로 위장을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그러고는 유령이 하나 들어왔다. (...) 그 모든 마법이 난폭하게 휘두른 유령의 일격에 사라져버렸다." 현실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유령"이라는 시어를 쓴 것도 재미있습니다. "유령"은 삶에서 생기를 앗아가는 권태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권태에 빠진 사람은 유령처럼 죽은 듯이 살아있죠. 이 시를 읽고 《악의 꽃》에 실린 <파리의 꿈>이 떠올랐습니다. <파리의 꿈>에서도 꿈의 세계를 그리고 난 뒤 현실로 돌아옵니다. 시간이 지배하고 근심이 끊이지 않고 끔찍한 누옥이 있는 현실로.
악의 꽃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완역판이 난다에서 출간되었다. 유려하고도 정확한 문장, 원문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프랑스문학을 소개한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이 번역을 맡았다.
불꽃 가득한 내 눈을 다시 열고, 내가 본 것은 내 누옥의 끔찍함, 정신을 다시 차리고, 느낀 것은 저주받은 근심의 칼끝. 벽시계는 음산한 억양으로 정오의 종 난폭하게 치고 하늘은 암흑을 퍼붓고 있었다, 마비된 이 슬픈 세상 위에.
악의 꽃 <파리의 꿈>,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그 끄트머리에, 바라크의 대열 맨 끝에, 마치 부끄러워서 이 모든 찬란함으로부터 자신을 추방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련한 곡예사 하나가, 허리가 굽고 시들고 늙어빠진 인간의 폐허 하나가, 자기 오두막의 말뚝 기둥 하나에 등을 기대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가장 몽매한 야만인의 오두막보다도 더 비참한 오두막 하나, 그 궁핍을 두 도막의 촛불이, 촛농을 흘리고 연기를 피우면서, 너무나도 환히 밝히고 있었다.
파리의 우울 14. <늙은 곡예사>,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얼마나 깊고 잊지 못할 시선을 그는 군중과 불빛 위에 던지고 있었던가! 그 움직이는 파도가 그의 메스꺼운 빈곤의 몇 걸음 앞에서 멈춰버리곤 했다.
파리의 우울 14. <늙은 곡예사>,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내가 방금 본 것은 일찍이 자신이 찬연한 인기를 누리며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세대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늙은 문인의 영상,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자식도 없는, 자신의 빈곤과 대중의 배은망덕으로 퇴락하여, 잊기 잘하는 세상 사람들이 이제 그 바라크에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 늙은 시인의 영상이었구나!
파리의 우울 14. <늙은 곡예사>,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네 머리칼의 냄새를 오래오래 맡게 하여다오. 목마른 사람이 샘물을 마시듯, 그 속에 내 얼굴을 고이 담그고, 향기로운 손수건처럼 그 머리칼을 이 손으로 흔들어, 가지가지 추억을 공기 속에 털어내게 하여다오. 네 머리칼 속에서 내가 보는 모든 것을 네가 알 수만 있다면!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내가 듣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의 혼이 음악을 타고 여행하듯이, 내 혼은 향기를 타고 여행하지!
파리의 우울 17. <머리타래 속의 지구 반쪽>,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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