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 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 읽기 1

D-29
드디어! 혼자다! 들리는 소리라곤 이따금 뒤늦게 지쳐빠져 돌아가는 승합마차의 바퀴 소리뿐이다. 몇 시간 동안, 우리는 휴식은 어닐지언정 고요를 소유하게 되리라.
파리의 우울 28p, 10.새벽 한시에,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시인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끔찍한 삶! 끔찍한 도시!”라고 묘사한 ‘낮의 시간‘을 살아내고 혼자 ’밤의 시간‘을 맞은 듯합니다. 혼자가 되어 하루를 복기하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네요. ’모든 인간이 한심하고 내 자신이 한심‘하다고 말하면서도 회복의 시간이 되기를 바리는 마음도 엿보입니다. 황현산 선생님이 말하셨던 ’밤이 선생이다‘는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위한 ’회복의 시간‘이기도 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늘상 지니고 다니는 전화기가 ’야간모드‘로 바꿔면 안도감이 드는 저의 모습도 시인의 마음과 비슥하지 않을까 싶고요.
냐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영혼이여, 내게 힘을 주시라, 나를 붙들어주시라, 세상으ㅔ 거짓과 부패한 증기를 나에게서 멀게 하시라. 그리고 그대, 주 나의 신이여! 아름다운 시를 몇구절이라도 지어내어 내가 인간들 가운데 가장 하등한 자가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치들보다 더 못난 놈에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증명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시라.
파리의 우울 29p, 10. 새벽 한시에,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시인은 자기 멋대로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하고 남이 되기도 하는 이 비할 데 없는 특권을 즐긴다. 저 육체를 찾아 헤매는 혼들처럼, 그는 마음 내킬 때마다, 어느 사람이건 그 사람 안에 들어간다.
파리의 우울 12. <군중>,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예술가의 고해기도>에서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통하여 생각한다. 아니 그것들을 통하여 내가 생각한다"라며 자연과 합일을 이루었는데, <군중>의 화자는 도시의 군중 속에서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하고 남이 되기도 하는"군요. 도시 생활에 적합한 시인이네요.
시인은 시시로 자기 앞에 나타나는 온갖 직업과 온갖 기쁨, 온갖 비참함을 자기 것으로 동화한다.
파리의 우울 <군중>,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보들레르는 <이중의 방>에서 몽상의 방과 현실의 방을 감각적으로 그려냅니다. "몽상을 닮은 방"에는 "신비와 고요와 평화와 향기에 둘러싸여" "그지없는 행복"이 있고 "시간은 사라"지고 "영원", "열락의 영원"이 있습니다. "시간이 군림하"는 현실, "이 누추한 방, 이 영원한 권태의 거처"에서는 "달랠 길 없는 삶",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화자가, 아마도 보들레르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몽상에 빠져 있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 인상적이었어요. 영화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차례 무섭고 무거운 타격이 문을 울렸다. 지옥의 악몽에서처럼, 나는 곡괭이로 위장을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그러고는 유령이 하나 들어왔다. (...) 그 모든 마법이 난폭하게 휘두른 유령의 일격에 사라져버렸다." 현실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유령"이라는 시어를 쓴 것도 재미있습니다. "유령"은 삶에서 생기를 앗아가는 권태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권태에 빠진 사람은 유령처럼 죽은 듯이 살아있죠. 이 시를 읽고 《악의 꽃》에 실린 <파리의 꿈>이 떠올랐습니다. <파리의 꿈>에서도 꿈의 세계를 그리고 난 뒤 현실로 돌아옵니다. 시간이 지배하고 근심이 끊이지 않고 끔찍한 누옥이 있는 현실로.
악의 꽃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완역판이 난다에서 출간되었다. 유려하고도 정확한 문장, 원문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프랑스문학을 소개한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이 번역을 맡았다.
불꽃 가득한 내 눈을 다시 열고, 내가 본 것은 내 누옥의 끔찍함, 정신을 다시 차리고, 느낀 것은 저주받은 근심의 칼끝. 벽시계는 음산한 억양으로 정오의 종 난폭하게 치고 하늘은 암흑을 퍼붓고 있었다, 마비된 이 슬픈 세상 위에.
악의 꽃 <파리의 꿈>,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그 끄트머리에, 바라크의 대열 맨 끝에, 마치 부끄러워서 이 모든 찬란함으로부터 자신을 추방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련한 곡예사 하나가, 허리가 굽고 시들고 늙어빠진 인간의 폐허 하나가, 자기 오두막의 말뚝 기둥 하나에 등을 기대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가장 몽매한 야만인의 오두막보다도 더 비참한 오두막 하나, 그 궁핍을 두 도막의 촛불이, 촛농을 흘리고 연기를 피우면서, 너무나도 환히 밝히고 있었다.
파리의 우울 14. <늙은 곡예사>,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얼마나 깊고 잊지 못할 시선을 그는 군중과 불빛 위에 던지고 있었던가! 그 움직이는 파도가 그의 메스꺼운 빈곤의 몇 걸음 앞에서 멈춰버리곤 했다.
파리의 우울 14. <늙은 곡예사>,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내가 방금 본 것은 일찍이 자신이 찬연한 인기를 누리며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세대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늙은 문인의 영상,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자식도 없는, 자신의 빈곤과 대중의 배은망덕으로 퇴락하여, 잊기 잘하는 세상 사람들이 이제 그 바라크에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 늙은 시인의 영상이었구나!
파리의 우울 14. <늙은 곡예사>,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네 머리칼의 냄새를 오래오래 맡게 하여다오. 목마른 사람이 샘물을 마시듯, 그 속에 내 얼굴을 고이 담그고, 향기로운 손수건처럼 그 머리칼을 이 손으로 흔들어, 가지가지 추억을 공기 속에 털어내게 하여다오. 네 머리칼 속에서 내가 보는 모든 것을 네가 알 수만 있다면!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내가 듣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의 혼이 음악을 타고 여행하듯이, 내 혼은 향기를 타고 여행하지!
파리의 우울 17. <머리타래 속의 지구 반쪽>,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도서 증정 이벤트] 김봉중 교수 강력 추천! <한 권으로 읽는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다산북스/책 증정] 인간 본성의 불편한 진실!『다정함의 배신』을 함께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웰다잉 오디세이로 계속 이어집니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천천히 읽어요
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
안 노란 책을 찾아라!
안노란 책 리뷰 <지금, 그리고 그때>안노란책 리뷰 <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안노란 책 리뷰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 > 앤 드 마르켄안노란 책 리뷰 <메데이아> 에우리페데스안노란 책 리뷰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하임 마이어호프
새벽엔 느낌 좋은 소설로 하루 시작해요
[느낌 좋은 소설 읽기] 3.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느낌 좋은 소설 읽기] 2. 오버스토리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
아티초크의 멋진 책!
[아티초크/책증정] 세계 여성 시인선 100『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와 함께해요.[아티초크/시집증정] 감동보장!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아틸라 요제프 시집과 함께해요.[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
‘인생 록 음악’ 추천!
[그믐밤] 49. 국제 암석의 날 기념, ‘인생 록 음악’ 추천해주세요[김영사/책증정] 대화도 음악이 된다!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함께 읽어요[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새폴스키의 책을 읽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6.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8. <행동>
동구권 SF 함께 읽어요!
[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3) 프랑켄슈타인[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3권의 책 종류
『육식의 종말』완독 하기! (책 증정)[김영사/책 증정] 장안의 화제! 노화과학을 다룬 <우리는 왜 죽는가>를 함께 읽어요 [인플루엔셜/책증정] 진정한 앎은 무엇인가? <지식의 탄생> 읽고 함께 이야기해요!
청명하다, 꾸준히 읽는 중
독서기록용_웍과 칼독서기록용_필요의 탄생독서기록용_제자리에 있다는 것독서 기록용_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
삼국지를 가슴에 품다
삼국지 전권독파 - 요시카와 에이지 버전으로[모집] 평생의 숙제 인간관계, 삼국지의 영웅들에게 답을 묻다 (w. 『최소한의 삼국지』)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