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GX] 1. 미셸 트랑블레처럼 일상 포착하기

D-29
@거북별85 반가워해주셔서 감사해요. 아침에 덧글 읽고 기뻤습니다.^^
“여기요, 여기! 빨리 좀 오세요. 빨리!” 선주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빨리요, 빨리!” 마치 내 행동이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하다는 듯이 연달아 불러대며 오른 팔을 들어 나를 향해 크게 손짓했다. 선주의 목소리가 야외임에도 상당히 크게 들려, 나는 부끄러운 감정이 솟아올라 멈칫 주위를 살폈다. “여기가 명당이에요. 명당!” 어느새 선주는 장미축제에 몰려든 인파를 뚫고 장미꽃으로 가득한 작은 화원 안으로 들어가 우뚝 서 있었다. 하루에 만보씩 걷는데도 갱년기라 그런지 계속 살이 찐다며 불평하던 선주지만, 몸놀림은 잽쌌다. “빨리 찍어요. 빨리!” 연신 불러대는 선주 때문에 나는 쭈뼛쭈뼛하면서도 그녀의 요구대로 하는 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임을 잘 알기에, 빨간색 케이스에 담긴 그녀의 휴대폰을 얼른 건네받았다. 사방이 장미꽃으로 둘러싸인 채 선주는 무릎을 약간 굽히고 상체를 구부정하게 숙이고는 양 팔을 겨드랑이에 붙여 팔꿈치를 구부린 후 나머지 손가락은 접고 검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겹쳐 양 손으로 하트 표식을 만들었다. 요즘 TV에서 연예인들이 툭하면 하는 그 포즈였다. 사진을 찍을 때는 고개를 살포시 숙여야 얼굴이 작게 나온다며 내 사진을 볼 때마다 조언했던 선주답게, 그녀는 고개를 살짝 아래로 향하게 했는데 그러자 두툼한 턱이 이중으로 겹쳐졌다. 선주는 분홍색 립스틱을 짙게 바른 입꼬리를 치켜올리고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눈짓으로는 나에게 어서 사진을 찍으라고 독촉했다. 빨간색도 아닌 그렇다고 자주색도 아닌 그 두 색을 섞은 듯한 등산용 점퍼를 입은 선주가 꽃분홍색 장미꽃에 둘러싸여 있으니, 마치 상체는 사라지고 그녀의 머리만 동동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선주는 어딜 가나 항상 채도 높은 등산복 차림인데, 등산복이 움직이기도 편하고 땀도 흡수가 잘 돼 가성비가 좋다며 일상복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애용했다. 오늘 입은 등산복은 올해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선주의 큰딸이 어버이날 선물로 사준 것이라고 일전에 자랑했던 그 옷이었다. “뒤로 멀리 가서도 찍으세요. 꽃 다 나오게. 멀리!” 내가 휴대폰의 사진 촬영 버튼을 누르자마자, 그 즉시 또 다른 요구가 이어졌다. 선주는 미소 띤 표정은 유지하면서도 턱을 까딱까딱 움직여, 나에게 멀리 가서도 찍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뒷걸음질 쳐, 그녀가 원하는 대로 전체 장미꽃 화원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 선주가 장미꽃밭에 폭 파묻혀 있는 광경이었다. “한 번만 찍지 말고, 여러 번 찍어요. 여러 번!” 사진 찍는 내 모습이 영 탐탁하지 않은지, 선주는 복화술하듯 또 다른 지시를 내렸다. 내가 약간씩 각도를 달리하며 여러 번 촬영 버튼을 누른 후에야, 동상처럼 있던 선주가 몸을 일으켜 화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보자 보자, 잘 나왔나 보자~.” 나를 향해 오른팔을 뻗은 선주에게 휴대폰을 건네자, 그녀는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여가며 사진을 확인했다. 선주는 휴대폰을 눈에 가까이 대고 사진을 살펴보더니 “이 사진 잘 나왔다. 잘 나왔어!”하며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사진 찍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그러더니 휙 장미 화원 쪽으로 몸을 돌려 “아이구 고마워라, 장미야 고마워.”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간혹 그녀가 10대 소녀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바로 이때도 그랬다. “장미 덕분에 인생샷 건졌네요. 호호”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 선주를 바라보며, 카톡 프로필 사진도 꽃밭에서 찍은 사진이더니 꽃을 좋아하거나 꽃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①그는 부자가 아니다. ②살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진 않는다. ③가끔은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나누어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④외모가 빼어나지도 않다. ⑤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다. ⑥덩치도 유달리 눈에 띄는 편도 왜소한 편도 아니다. ⑦얼핏 보면 나쁘지 않은 외모인가 싶다가도 때로 촌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⑧엄청난 권력도 없다. ⑨집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렇다. ⑩딱히 권력을 잡을 욕심도 별로 없다. 내세울만한 능력조차 그다지 없다. ⑫하지만 그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한영그룹의 구내식당 메뉴는 5년 전 사업자가 바뀐 이후로 변함이 없다. 맛은 물론 성의조차 없는 음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쉴 새 없이 음식을 넘기고 있다. "맛있어요?" 숟가락을 뜨지도 않고 그가 물었다. "네. 그럼요. 전 너무 맛있는데요." 배시시 웃는 그녀를 보자 그도 신기한 듯 웃었다. "음식은 변함이 없는데 혜선 씨가 변했네요." 그녀는 쫓기듯 음식을 꼭꼭 씹으면서 말했다. "맛없는 걸 몇 달 먹었더니 식욕이 새로 태어나서 그래요." 그녀는 빙그레 웃고는 식판의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음식을 바쁘게 집어 먹었다. 그녀는 분명 식사 시간을 아껴 산책하려는 걸 테지. 같이 가자고 하려면 그 역시 서둘러 먹어야만 했다. 그녀는 6개월의 장기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 있어. 그는 그녀의 변화가 의아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장 옷차림만 입고 다니던 사람이 세련되고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입는가 하면, 생전 안 입던 짧은 치마를 입고 나타나곤 했다. 쉬는 시간마다 졸거나 아예 엎드려 잠들던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산책하러 다니기 바빴다. 지난주에는 회사 저녁 식사 모임에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 했다. 회식이든 모임이든 아무리 권해도 '집에 가요'하고 냉기를 날려대던 사람이었다. 음미한다는 과정을 생략하고 국에 밥을 말아 마신 덕에 그녀가 숟가락을 놓을 때쯤 그도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녀는 '잘 먹었습니다'하고 숟가락을 식판에 올리다가 그만 떨어뜨리고는 멋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요즘 내가 이래요. 덤벙거린다니까." 그는 그녀가 숟가락을 집어 올릴 때 유난히 야위어 보이는 손목 끝에서 떨리는 손을 보면서 말했다. "뒷길 쪽 아파트단지에 꽃핀 거 보셨어요? 산책 가실 거면 같이 갈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좋아요'하고 대답했다. 식판을 정리하고 구내식당을 나서자, 그녀는 품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내어 무언가를 끄적여 적고는 기분 좋은 듯 웃었다. 그는 휴가 전에 그녀가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매일 갈아입지만 색과 디자인이 비슷한 셔츠,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고무줄 허리의 슬랙스, 회사에서는 발이 편한 슬리퍼를 신고 출퇴근 길에는 스니커즈로 갈아신는 직장인 A씨.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라는 말을 자주 듣는 친숙한 외모를 가진 A씨는 남들보다 책을 조금 더 좋아했고,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어서인지 읽는 속도도 유독 빨랐다. 버스나 지하철을 20분만 탈 수 있으면, 책 한 권은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A씨는 항상 가방에 출퇴근 용으로 책을 두 권씩 넣어가지고 다녔고, 이북 리더기를 선물 받았지만 종이책을 더 선호한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백팩 속에 책을 넣어가지고 다녔다. 백과 사전을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책 두 권쯤이야 무겁지 않지. A씨의 입버릇이었다. 선물 받은 이북 리더기는 멀리 여행을 갈 때 챙겨다녔는데 종이 책을 열 권 넘게 들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누구는 일년에 책을 100권 읽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읽었으나 A는 100권을 목표로 책을 한 권 읽으면 영화를 한 편 보거나 SNS를 슥 보거나 했다. 대개는 SNS나 영화, 드라마 보는 시간을 줄여 책을 읽는데 A는 그 반대였다.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올해로 열여섯 살이 된 고양이 로니는 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로니로니~ 누나 왔다!” 언뜻 보아도 ‘누나’라는 호칭이 어색하게(누나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느껴지는 그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층이 많이 나고, 어두운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H는 익숙하다는 듯 곧바로 벽에 걸려있던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했다. “왔구나. 아유 오늘도 정신이 없었어.” 포스기 앞의 작은 원형 의자에 앉아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 모습은 마치 이어달리기에서 다음 선수에게 바톤을 넘기는 장면 같아 보였다. “오늘 많이 팔았나? 좀 쉬어.” H는 왼손으로는 앞치마를 정리하며 오른손으로 포스기의 ‘매출’ 버튼을 눌렀다. “화요일 이 시간에 21만원? 많이 팔았네?” 앞치마 정리가 끝나자, 이번에는 검은색 끈으로 머리를 낮게 묶기 시작했다. 대충 허겁지겁 묶은 탓에 몇 가닥은 바깥으로 삐져나와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라인더에서 곱게 갈린 원두를 포터 필터에 담아 적당한 강도로 탬핑을 한 뒤,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모습을 몇 초 동안 바라보았다. 에스프레소의 마지막 방울이 약간 끈적한 듯 떨어지는 모습이 그녀의 투명한 안경에 비쳤다. 그녀는 설거지가 끝난 그릇들 속에서 분홍색 텀블러를 집어 얼음을 가득 담고는, 냉장고에 있던 우유 중 유통기한이 가장 임박한 것을 찾아내어 텀블러에 우유를 따랐다. 그리고는 방금 전 작은 잔에 받아놓은 에스프레소 위에 ‘초코’라고 적힌 시럽통을 위치시킨 뒤, 정확히 세 번 눌렀다. 그녀가 스테인리스 재질의 길고 가느다란 숟가락으로 시럽과 에스프레소를 섞는 동안에는 주방에서부터 달콤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손님들이 찾아오기 전에 잠시라도 여유를 찾으려는 듯 H는 방금 자신이 만든 음료가 든 텀블러를 챙겨 원형 의자에 앉았다. 이 분홍색 텀블러와 짝이 되는 듯한 좀 더 진한 분홍색의 뚜껑 한가운데에 ‘OO쌤’ 이라는 라벨은 H가 예전에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빛바랜 나무 탁자 위에 왼손을 올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곧 숨을 내쉬는 소리와 ‘피식’하고 웃는 소리의 중간으로 들리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녀가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게 된 계기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피식’에 더 가까운 소리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올해로 마흔다섯 살이 된 H가 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어서 오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2nd. GX (6/28~7/1) WritersGX 첫 번째 과제를 잘 수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떠셨나요? 몸이 좀 풀리셨나요? 이제 조금 더 어려운 과제도 수행하실 수 있으신가요?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75~79쪽에서는 티 루 이모가 자신의 삶을 다섯 쪽에 걸쳐 이야기합니다. 사연 많고 힘든, 끔찍하기도 했던 삶입니다. 그러나 티 루 이모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일종의 자부심과 보람마저 느끼는 듯합니다. 티 루 이모의 이야기는 아주 세밀하지는 않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구체성이 있습니다. 특히 ‘이런 인생을 겪은 사람은 이렇게 느껴야 할 거야’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난 부분들이 그 이야기를 더 믿을 만하게, 더 흥미롭게, 그리고 보다 울림 있게 들리게 합니다. 두 번째 과제입니다. 한 한국 노인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10문장 이상으로 적어주세요. 그 노인이 자기 삶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해서, 하지만 구체적으로 써주세요.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75~79쪽을 참고하세요.
영옥은 거실 소파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커피는 벌써 식었다. 오늘은 영 움직이기가 힘들다. 괜히 옛날 팔팔하던 때 생각이 난다. 대학 3학년 때쯤인 것 같다. 경춘선 기차를 타고 써클 사람들과 어딘가를 갔다. 아니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모두 잠바가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나는 뒤집어쓰는 니트만 입고 있었다. 바지는 골덴이었다. 써클 선배가 춥지 않으냐고 물었다. 나는 하나도 춥지 않다고 대답했다. 정말 하나도 춥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집안은 가세가 기울어 엄마는 내게 코트를 사줄 형편이 안 되었다. 그런나 그런 이유로 추위를 안 느낀 것은 아니다. 그때는 내가 아주 건강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가장 건강했던 시기는 대학교 시절이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항상 아팠고, 대학원을 다닐 때도 아팠다. 그 이후로도 자주 컨디션이 다운되었다. 그렇다고 무슨 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와 무기력증이었다. 그런데 대학 때만큼은 그게 없었다. 아마도 세상이 너무 만만해보여서 그랬을 것이다. 철이 없어도 너무나 없던 시절이었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왜 그렇게 모든 것이 하찮아보였는지. 그래도 그덕에 스트레스는 없었고 그래서 인생을 통틀어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그래서 추위도 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에는 무릎 아래로 내려가는 코트를 안 입으면 외출할 수가 없다.
나는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다. 7남매 중에 셋째로 태어난 나는 유독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이었는데, 우리집은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농사를 짓지 않는 집이었다. 선생 댁 딸이라고 동네에서 나름 대우를 받았는데, 그것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얘기다. 내가 열두 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떡장사를 나서면서 동생들 돌보고 살림을 사는 건 오빠와 내 몫이었다. 맏이인 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시집을 보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사는 게 녹록치 않아서 줄줄이 형제가 많은 집은 자식들 한두 명쯤은 식모살이를 보내곤 했는데,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우리 어머니는 재혼도 하지 않고 우리 형제들을 다 끌어안고 사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대학 간 동생 뒷바리지를 할 겸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스물일곱 살에 결혼했다. 그때로 따지면 내 결혼은 늦어도 한참 늦었는데, 사무질 직원 친구인 남편을 만나 1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어머니가 결혼 전 나에게 한 당부는 하나였다. "아비없이 컸단 소리 듣지 않도록 해라." 어릴 때부터 손이 야무지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는데, 일복은 타고 난다더니 시집간 집도 대식구였다. 시할머니, 시부모, 시동생까지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시아버지와 남편의 벌이가 좋아 돈 걱정 없이 살았다. 심통스러운 시어머니와 밉살스러운 시누이도 남편과 시할머니가 다정해서 견딜만 했는데, 남편 사업이 잘못되면서 계속 불운이 겹쳐졌다. 그 긴 세월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누가 물어도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참 열심히 살았다고, 부끄럽지 않다고. 내가 미안한 사람이라면 사는 게 바빠서 한창 사춘기일 때 신경을 써주지 못했던 내 귀한 딸하고 아들. 사실 이제야 손주들 보니까 사춘기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지, 그때는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왔다. 어쨌든 한 번도 속 썩이지 않고 잘 커준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지금 원망도 여한도 없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고 있으니까. 남편이 살아서 같이 하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지.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건강하다가 자식들 크게 애먹이지 않고 가고 싶다. 그게 단 하나의 바람이다.
※ 노년의 '나'에 대한 이야기 '나'는 갇혀 있다네. 누군가 '나'를 서서히 때로는 급격히 좁아지는 기억의 방에 가두어버렸지. 나를 가둔 누구라는 존재는 시간이라네. 하루에 하루를 더하며 무료할 정도로 성실히 살아온 '나'는 그렇게 치매라는 이름으로 하루씩 잃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네. 아, 숨이 차오르면서 기침이 나는군. 칠십 넘는 나이가 되니 숨이 부족해 종종 말을 멈추어야만 한다네. 몇 해 전이라면 숨 한 모금으로 내 살아온 이야기를 전부 꿰어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차오르는 기침을 내뱉는 것조차 힘에 부칠 때가 있지. 게다가 기침을 할 때면 이제는 내 몸과 기억의 일부가 재가 되어 푸스스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이제까지의 내 삶은 늘 제시간에 출발하고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늦지 않게 도착하는 열차처럼 선로를 벗어날 이유가 없었지. 무진에서 진군해 온 듯한 안갯속으로 짙게 삼켜지는 지금의 내 모습은 낯선 날 아침 문득 처음으로 마주한 거울 속의 '나'처럼 생경하다네. 자라온 이야기를 해보자면 부모님은 전쟁이 비켜간 고향 현촌에서 유일한 이발소를 운영하셨지. 덕분에 시대에 비해 누추하지 않게 살면서 현명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이름에 부합한 기대와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 부모님은 내가 공부해서 당신들 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네. 이발사가 아니라.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대학을 나오고 어린 시절 마을에 나타났던 승용차에 마음을 빼앗긴 덕에 자동차 회사에 취직해서 한평생을 다했지. 저 뒤 책장 한가운데 금색 명패가 퇴직할 때 받은 공로패라네. 아내는 직장 생활하며 오가던 농협에서 일을 했는데 치아가 다 보이도록 시원하게 웃는 함박웃음이 얼마나 빛나던지. 그 빛을 항상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에 한 발씩 다가가 청혼을 했지. 그렇게 아내는 무던한 내 인생에 들어와 오롯이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빛이 되어준 특별하고도 깊고 고마운 사람이라네. ‘나'는 그런 아내를 정말이지 눈 감는 날까지 내 기억에 담아둘 거라네. 스스로 내는 눈부신 빛에 반짝이듯 늘어나는 흰머리와 주름 한결 까지도 내 마지막 기억에 새기고 싶다네. 하나뿐인 딸아이는 그런 엄마를 닮아 '나'의 두 번째 빛이 되어주었지. 아빠 딸! 사랑하고 사랑한단다! 이제는 점점 '나'의 시간이 아내와 딸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고 있다네. ​ 기억의 방에서 어느 날의 '나'는 지천명의 시간을 살고 있지.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해 막 봉오리를 터뜨리듯 설렘 가득한 딸아이를 '나'와 사이에 두고 아내는 커다랗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지. '나'는 지그시 그들과 눈을 맞춘다네. 일을 하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었지. 또 다른 날의 '나'는 어쩌면 예닐곱의 어린것이 되어 고향집 이발의자에 앉아 새하얀 보자기를 두르고 아버지의 섬세한 가위질 뒤에 따르는 쇳조각의 지릿한 간지럼을 참고 있거나, 쪽진 머리가 단아 했던 어머니와 하얀 망초꽃들을 헤치며 포르르 잡힐 듯 잡힐 듯 살랑이는 나비를 쫓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숨이 버거울 정도로 좁은 기억의 방에 갇혀 있지만 하늘을 유영하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행복하다네. 어느 기억의 시간을 흐르고 있던지 사랑받고 사랑하던 사람들과 행복하거든. 언젠가 그 모든 날들이 소실점을 향해 기억에서 사라져 가겠지만 괜찮다네. 이만한 삶이면 되었지. 이젠 기억할 시간이 아니라 기억되어질 시간이니까... 아내와 딸아이도 안다네. 잊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나'에게 새겨져 가는 것이라는 걸.. ​
최부녀. 사실 그녀를 볼 때면 경비원 현씨는 자꾸만 사별한 아내 정임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아내와 현씨는 강원도 정선 토박이였고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고향 선후배로 만나 결혼까지 한 경우였다. 현씨는 일찍부터 어르신들의 뜻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일사천리로 합격했고 그 첫 임지가 고향인 정선군청이었다. 아내는 학창시절부터 육상부로 발탁되어 고등학교도 육상부로 유명했던 강릉으로 유학을 갔던 꿈나무였다. 그렇게 전국체전을 휩쓸던 단거리 스프린터 정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선 대학진학 대신 강릉시청 소속 육상팀에 스카웃되는 쪽을 선택했고 결혼할 때까지 시청소속으로 달렸으나 예전 같은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되어 강릉시청 사무직으로 전환했고 또 기회가 되어 고향 정선군청으로 지원해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물론 현씨와의 결혼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좋은 선후배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 관계였는데, 현씨가 정임의 거의 모든 경기를 찾아다니며 응원하는 모습에 격려가 되는가 했는데 다른 감정이 조금씩 싹트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동네의 큰 잔치의 주인공이 되어 부부의 연을 맺고 이듬해엔 어린 날의 정임을 꼭 닮은 딸, 수린이도 낳았다. 강원도의 건강한 환경과 부모의 사랑을 덤북받고 자란 딸은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현씨에게는 정임과. 결혼하고서의 그 몇해가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로 눈부신 시간이었다. 딸 수린이 발달장애로 진단받기 전까지. 딸의 치료와 교육을 위해서 정임은 공무원일을 그만둬야 했고 또 도시로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옮겨간 곳이 서울 강서구청이었다. 근처 집값이나 여타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조만간 공립 특수학교가 근처에 생긴다는 것이 서울 강서구로 지원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게 낯선 서울로 이사온 세식구는 그래도 함께 여서 좋았고 모든 것이 잘 될거란 희망 하나로 감사했다. 다섯살 수린이가 다닐 특수학교도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여덟살엔 완공될 터였다. 그런데 공청회에서 문제가 생겼다.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해당 특수학교를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다른 무수한 행정절차들이 당연히 밟는 수순이었고 거의 형식적인 절차였다. 그런데 벼르고 벼르던 지역주민대표단의 거친 저항과 분노의 웅변장으로 변해버린 공청회장은, 그렇게 예정에 없던 3차에 걸쳐 진행되었고 끝끝내 공립 특수학교 설치안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 특수학교 같은 혐오시설은 이 동네에 설치해선 안된다는 강경한 주장이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마지막 공청회가 있던 날 현장에 있던 현씨와 정임은 청천벽력 같은 이 상황에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정임은 굳게 다문 입술과 회색 낯빛으로 퇴장하는 주민대표들 앞을 가로막고 무릎을 꿇었다. “제발 아이들을 위해.. 제발 한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특수학교는 혐오시설이 아니예요…“ 무릎꿇은 정임을 대부분 피해지나 갔으나 유독 한 사람, 그 앞에 대고 소리소리 질렀다. 주민대표였다. ”아이들 팔아서 그렇게 그런 시설을 만들고 싶으실까. 우리 애들은 어쩌라구? 우리 동네 물흐리고 집값 떨어뜨리고 우리 애들도 옮으면 어떡해요!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요. 딴데 가서 알아봐요. 아실만하게 생긴 분이 왜이러실까, 참나!” 그렇게 한가득 교양있는 욕 같은 말을 한가득 쏟아내고 지나가는 그녀의 발을 잡고 매달리는 정임은 그렇게 서러웠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선 안되는 마지막 병참 저지선처럼 정임 뒤를 이어 무릎꿇은 장애아이들의 부모들을 아우르며 주민대표에게 매달려 끌려가다시피 하며 피가 나는지도 모른채 아랫입술을 하염없이 깨물고 깨물었다. 구청 공무원인 현씨는 현장을 진행하는 위치인지라 그렇게 또 주먹을 움켜쥐고 아랫입술을 깨문 채 고개숙일 수 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이 떠올랐습니다. 지인들과 보고는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글로 읽으니 또 새로운 감정이 듭니다.
네. 저도 그 영화 봤습니다. 그 사건을 떠올리며 끄적여본 겁니다. 아. 그 사건을 뉴스로 처음 접하고서 황당함과 분노가 묘하게 교차했던 기억이 너무 강렬했고요.
재순의 넋두리는 늘 아주 갑작스러운 순간에 쏟아져 나왔다. 대체로 그 넋두리는 그의 살가웠던 엄마로 시작해 이기적인 외가 식구들을 거쳐 그의 무능한 남편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밭에서 콩을 따다가도, 가족들과 둘러 앉아 밥을 먹다가도, 가까운 유원지로 나들이를 가서도 재순의 회고사는 불현듯, 마치 교회에서 방언 터지듯 터져나오곤 했다. "우리 어무이만 살아 있었어도 내가 국민핵교는 졸업했을 것인디... 우리 어매가 돌아가실 때 유언이 그거였거등. 재순이 아부지, 우리 재순이 학교는 꼭 보내주시오. 울어매가 돌아가시기 전에 옥양목을 떠다가 내 시집 갈 때 주라고 옷도 만들어 놓고 갔다 아이가. 근데 그걸 그 욕심 많은 여자가 어찌나 탐을 내등가... 하이고 내가 마 그냥 주삤다! 그 여편네가 아주 욕심이 끝이 없어가, 그저 지 배로 낳은 자슥밖에 모르고... 그러니 내가 학교를 우예 갔겠노." 여기서 욕심 많은 여자는 물론 재순이 열한 살 때 생모가 돌아간 후 재취로 들어온 재순의 새엄마를 뜻한다. 재순은 그를 '어무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한 번도 돌아가신 진짜 엄마를 잊어본 적이 없다. "내가 참 그때는 길을 걷다가도 우리 어무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무너져가... 시물다섯인가 내 양장점에서 일할 때, 그때 일 마치고 캄캄한 밤에 하숙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울 어무이가 어찌나 보고 싶었는지 모린다... 아주 엉엉 통곡을 하면서 길을 걸었어야..." 재순은 이제 그런 이야기도 모두 웃으면서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재순은 야무지고 독한 표정으로 집안일도, 밭일도, 동생들 돌보기도 이악물고 해내던 단발머리 여자애가 눈 앞에 그려진다. 고 가스나 참, 욕도 많이 먹고 고생도 많았지.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엔간히 살았다 아이가. "그것도 다 지난 일이재... 그래도 참 내 인생이 아주 헛것은 아이여. 하나님이 늘그막에 복을 다 내려주셨다 아이가. 자식들 다 잘 살고, 먹고살 걱정 없고, 이만하면 된 거 아이가? 이제 그냥 죽을 날만 기다리면 돼야... 너무 오래 안 살고 적당히 죽어야 할 틴디. 내가 이제 하나님한테 기도할 일도 그거 하나뿐이다." 재순은 이런 말을 하며 옆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딸의 등을 쓰다듬는다. 딸은 하도 자주 들은 말이라 이제 재순의 그런 말을 해도 딱히 반응도 없다. 그래도 재순은 막내딸의 등을 토닥인다. 단발머리 재순이 엄마~!! 부르며 도도도도 뛰어가는 게 보이는 것 같다. 언젠가는 울어매 만날 수 있것지...? 그때는 어무이 손 붙잡고 엉엉 울어야지. 울어매, 나 두고 가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나 학교도 못 다녔다고... 그래도 아이 셋 낳고 키우면서 한없이 행복했다고. 울어매는 그거 다 못 하고 갔으니 얼마나 불쌍하노. 에그, 내가 울어매 안아줘야겠네... 재순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입속말을 한다. 어매요...
오늘도 전화로 물건을 주문했다. 홈쇼핑채널에서. 티비 속에서는 예쁜 언니들이 열심히 물건에 대해서 설명한다.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다 문득 과거에 열심히 일했던 내가 생각났다. 나의 젊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나도 예쁘게 꾸미고 돈을 벌기 위해서, 비록 공장이었지만 나도 잠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있다. 다들 궁금해하지도 않아서 이 이야길 자세히 하기도 어렵겠지만, 나도 나만의 시간이 있었다. 지금 아이들이 힘든 것처럼 나도 처음 경험해본 사회생활이 버거웠다. 그래서 공감해줄 수 있었다. 상황은 달라도 마음은 비슷할 거니까. 그런데 아무도 나의 말을 들어주진 않는다. 아아 서럽다. 나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도 서러운데 그 누구도 나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지 않는다는 게 서럽다. 그래, 안들어주면 산으로 가서 나무랑이라도 이야기해야지. 으어, 몸이 쑤셔 그려. 해 떨어지기 전에 얼른 나가벼야지.
B씨는 요즘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날이 따뜻해졌으니 산책이라도 좀 하라는 손주며느리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며느리도 아니고, 손주며느리라니.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벤치 앞 잔디밭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보면서 B씨는 생각에 잠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제대로 된 뽈도 없었지. 그럼 뭘 차고 놀았느냐고? 들으면 깜짝 놀랄텐데? 돼지 알지? 돼지 오줌보를 차고 놀았지. 그게 무슨 공이냐고? 동그랗고 찰 수 있고 굴러가면 그게 공이지 뭐야! 이 얘기를 처음 했을 때 자지러지게 웃던 손자를 떠올리던 B씨는 이제 겨우 기어다니면서 보이는 무엇이든 입에 넣기 시작하는 증손자를 기억해낸다. 집에 있는 어른들을 모두 따라다니게 만들면서 입 안에 있는 걸 빼내면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하지. 우리 때야 입에 흙이나 넣고, 풀이나 넣었지. 그렇게해도 많이 아픈 애들이 없었어. 아토피? 알레르기?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흔하지도 않았지. 애들은 면기저귀나 하나 차고 흙마당에서 기어다니고 그랬어. 물론 열병 같은 게 걸리면 덜컥 죽었지만서두… 그런 큰 병 아니면 잔병치레도 잘 안했지 무어. 모든 것이 풍족한 삶을 살면서 부족하기만 했던 삶을 그리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B씨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예전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형제 중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 천 노인은 웅크리고 있던 상체를 곧추 세우면서 말했다. 목주름이 가득한 목을 기린처럼 위로 쭉 빼는 자태가 자못 스스로를 대견해 한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때 말이야. 온 마을에서 난리가 났어. 천가네 막내아들이 일냈다고 말이지. 내가 결국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는 마을 잔치까지 했다니까. 그 자린고비 우리 아버지가 돼지 한 마리를 잡으셨지. 그래서 어머니가 가마솥 뚜껑 엎어놓고 마을 잔치를 벌인 거야. 우리 가게 앞에서 말이지.” 천 노인이 “내가 말이야~”라고 말을 시작할 때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족히 서, 너 시간은 이어질 그의 어린 시절 레퍼토리가 시작된다는 뜻이니까. 천 노인은 백정들이나 한다는 도축업자의 다섯 아들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먹고 살기 팍팍한 시절이라, 아들이었어도 학교 가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다. 두 살 터울 씩 차이가 나는 위의 네 명의 형들은 걷고 말귀 알아듣는 네, 다섯 살이 되었을 때부터 모두 천 노인의 아버지 일을 도와야 했다. 학교를 가야할 나이가 되었어도 일손을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 아들들은 학교 대신 도축장을 드나들어야 했다. 일 년에 딱 두 번 명절날이면 유일하게 도축장이 문을 닫았는데, 명절은 대목이라 전날까지 며칠을 밤새워 일을 한 후에야 설과 추석 명절 당일 하루씩 쉴 수 있었다. 명절날 아침에는 어머니가 가마솥에 끓여 놓은 뜨거운 물로 아들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목욕을 했는데, 형들이 말끔하게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는데도 피비린내는 가시지 않았다며 천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나만은 도축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안 그러면, 내 자식들도 피비린내 내며 살아야 한다고. 형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도축장에 가기 싫었다. 그래서 죽어라 공부한 거야. 형들이 그래봤자 말짱 도루묵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나중에 내가 서울대 가는 거 보고 셋째랑 넷째 형님은 야학 다니고 그러셨지. 내가 공부해서, 그것도 서울대 가서, 내 아들딸 선명이 선주는 고생 안하고 살 수 있었던 거야.” 천 노인의 옆에서 참외를 깎으며 잠자코 있던 선주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찬 공기가 노인을 감싼다. 노인은 추운 날씨에 움직임이 둔해진 걸 느끼며 서둘러,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큰 차이가 없는 속도로 카페안으로 들어섰다. 딸랑, 울리는 종소리가 노인을 반겨준다. 노인은 카라멜 마끼아또, 라는 이제는 입에 익숙해진 메뉴를 부르고, 계산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곧 커피가 노인 앞에 올 것이다. 노인은 커피를 기다리면서,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추운 겨울엔 노인에게 항상 일이 일어났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느 계절이든 좋은 일나 나쁜일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노인에게 겨울은 유독 특별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졸업하기도 하고 뭐, 대부분 아이에 관한 일이긴 하군. 하고 노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가 어떻게 생각하든, 노인에게 아이는 큰 존재이며 기쁨이었다. 증오와 애정이 함께 존재하는 존재.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런-, 원초적인 감정이 드는 존재. 그게 노인의 아이였다. 이제 그 아이는 다 장성해서 자신의 가족이 있다. 노인이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는 건, 아마, 그 아이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노인은 그런 씁쓸함을 달달한 커피를 마시면서 호호 불어 넘겼다. 자신의 모습과 삶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건 가장 어리석은 일이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란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하다가도, 아이의 삶과 자신의 삶은 분명히 달랐지. 하고 다시 자신의 삶을 괘종시계의 추가 되돌아가 듯, 되돌아보았다. 음.. 여전히 자신의 삶은 아등바등, 버텨내는 일들이 많았어. 하고 노인은 다시 달달함을 찾았다. 달달하지만, 끝이 씁쓸한게, 꼭 자신의 삶 같기도 했다. 좋은 일이 그 쓴맛을 대신하는 지도 모르지. 하고 노인은 혀가 단맛에 아려올 때 쯤 찾아오는 쓴맛의 조화가 참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 어매가 저그 미국 할아버지 낳고 삼칠일만에 돌아가싰어. 우리 아버지가 참 엄전한 분이셨는디 각시 없이는 안되것는지 새마누래를 금방 보시대. 근데 새어매가 자기가 낳은 애들은 다 핵교를 보내주는데 나는 핵교를 안보내줘. 그래도 미국 할아버지는 보내준게 나까지 보내도라고도 못하고 헐 수 없이 ‘니 오늘 뭐 배웠냐?’ 물어보고 한글 공부했지. 스무살 묵어서 시집을 왔는디 집이라고 발로 콱 차버리면 옆으로 팩 넘어가것더라고. 막내아덜 귀하면 살림이나 좀 떼주지 자기 가찹게만 둬가지고 밤이고 낮이고 식구들 드나들고, 솥뚜껑 열어보고. 어이그... 그래도 양반집 자손이라고 느그 할아버지가 구장도 하고 그랬어야. 남덜은 구장하면 쌀도 남고 비료도 남는다더만 집마다 똑같이 비료 나누면 우리꺼는 항시 모지라. 우리 비료 어딨냐고 물어보면 저그 누가 급허게 필요하다고 해서 쬐끔 더 줬댜. 환장허지. 내가 애기 업고 다님서 떡 팔고 잔치집 가서 품 팔고 바듯이 살았지. 지금은 큰길로 버스 댕기지? 근디 옛날에는 00국민핵교 뒤에 공동묘지 있었거든. 거기 뒤로 혀서 새벽마다 일허러 읍내 갔는디 혼자 가면 그렇게 무서. 근디 걸음마도 못하는 애기라도 같이 가면 훨씬 덜 무서. 신기허지? 느그 어매 시집 올 때부터 얼매나 더 살꼬 싶었는디 여태 산다잉? 느그 할아버지는 벌쌔 죽었는디 나는 너거들 크는 것도 다 보고 대통령한티 장한 어머니상도 받고. 나는 청와대 가면 뭐 맛있는거 주는 줄 알았더만 칼국수 주대? 큰 접시에 반찬은 시알꼽대기만큼 놓고? 쪼매 더 주지. 그래도 맛은 있더라.
"난 어릴 때부터 운이 좋았어. 운수 대통의 경아가 나라니까?" 그녀는 커피에 시럽을 넣어 티스푼으로 금 테두리가 쳐진 찻잔을 휘저으며 말했다. "사실은 대학은 나오질 못했거든. 집에 돈이 항상 부족했으니까. 그래도 한 번도 불행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어. 항상 뭔가가 잘될 것 같았거든. 내 첫 직장도 단번에 붙었어. 그때 면접보러 갔을 때 기다리던 사람이 열 명도 넘었다니까. 그중에 한 명만 채용했는데 뽑힌 게 나야." 기분 좋은 듯 웃던 이웃 이모는 그녀가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던 금테 찻잔보다 더 빛나 보였다. "면접 볼 때 부장님이 있었는데 나랑 말이 잘 통했어. 시원시원하고 성격이 밝아서 맘에 드셨다고 했어. 그리곤 다음 주에 바로 나오라고 하시더라." 벌써 세 번째 듣는 이야기지만 형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을 청했다. "그런데 그 직장은 왜 나오시게 된 거랬죠?" "그러니까. 운이 너무 좋아서 탈이라니까. 같이 일했던 친구가 있는데, 일을 그만두고 대기업으로 취직했거든. 나랑 죽이 진짜 잘 맞았었는데 그 뒤로는 연락이 뜸해진 거야. 그러다가 갑자기 연락해서는 '야 너 진짜 좋은 자리 났는데 지원해 보지 않겠냐'구 하는거야. 마침, 나 계약이 끝나갈 때쯤이었거든. 그래서 회사에 말 안 하고 조용히 가서 면접을 봤다? 어떻게 됐겠어? 당연히 뽑혔지. 그것도 대기업에 말이야! 고졸이 한 번에 붙었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 없지?" 그녀는 쥐고 있던 찻잔이 물결치는 것을 깨닫자, 손을 떼고는 형준의 반응을 살폈다. "당연히 들은 적 없어요. 아마도 면접 장소에서 이모님만큼 빛나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겠죠." 그제야 경아는 다시 커피를 마시며 얼굴을 빛냈다. 형준은 그녀가 홀로 베트남에 와 생활하고 있는 사연을 기다렸지만, 이어지는 딸 자랑을 마치고 나면 전처럼 이야기는 끝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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