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
1. 고맙습니다.
2. 혼자 조용히 가능한 짧은 문장으로 10문장만 쓰고 나오자.
3. 근육질 옆에서 배불뚝이로 있더라도 끝까지만 가자.
4. 비교하지 말자.
5. 일부러 과시하지도 말자.
6. 부끄러워하지도 말자.
7. 그냥 아무도 관심 안 가지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8. 뭐 그리 쓰고 있어요.
9. 이런 장이 마련된 것만도 어디에요.
10. 암튼 선생님도 열심히 쓰세요.
[WritersGX] 1. 미셸 트랑블레처럼 일상 포착하기
D-29

샛빛

그믐클럽지기
안녕하세요. @샛빛 님, 일일이 피드백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WritersGX 는 자전거나 수영을 연습하듯 실제로 글을 직접 써보면서 우리의 글쓰기 근력을 키우자는 생각으로 시도하고 있는 그믐의 또 다른 실험입니다. 다 함께 모여서 공원에서 매일 같이 운동한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미셸 트랑블레 작가의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 작품이 우리 글쓰기의 좋은 예시가 될 테니 책을 읽어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거에요. 감사합니다. ^^

샛빛
@그믐클럽지기
1. ~^^
2. merci
3. 압니다.
4. 좋은 시도 입니다.
5. 다음엔 더 정교해질 듯합니다.
6. 다만, 세발자전거 연습일까요?
7. 걷는 것처럼 두발 자전거도 연습하면 될 수도 있겠어요.
8. 수영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다고 하더군요.
9. 물장구나 치며 즐길까 합니다.
10. 다른 분들에 게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산강처럼
무료에서 뭘 바라세요? 이런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요. 유료 글쓰기 강의도 쓴 글 지도 안 해줘요. 해줘도 말로만 한두 번정도 코멘트 해줄까 말까 하죠. 다만, 저는 옆집 뚱보 아줌마라는 작품에 호감이 별로 안 생긴다는 게 문제네요. 끝까지 읽으면 호감이 좀 생기려나요? 그래도 가능하면 완주해보려고 합니다.

샛빛
@산강처럼
1. 독자가 한 명도 없을 줄 알았는데, 여러 명이네요.
2. 감사합니다.
3. 선생님은 더 많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4. 너무 사실적으로 썼나 봅니다.
5. 이리 반응을 보이시고.
6. 네.
7. 고맙습니다.
8. 전 바라지 않습니다.
9. 어차피 혼자 한다는 걸.
10. 세상이 그런 걸 표현했을 뿐입니다.

유니크
제가 늦게 알았네요. 다음을 기다리며 . . .

유니크
제일 먼저 3rd GX 입니다.//
별 생각없이, 아무런 기대없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서연이는 급식소로 발길을 향했다. 몇몇 아이들은 점심 메뉴에 대한 이야기, 전 수업시간 이야기 등으로 밝고 기대에 찬 표정이었지만 대다수 아이들은 일상적 무표정으로 줄을 서서 식판에 음식을 받고 있었다.
어디선가 팍팍, 탁탁, 큰 소리가 두번 들리더니 이어서 반복적으로 들린다. 누군가 숟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는 소리다. 인상 찌푸린 얼굴로 많은 아이들의 고개가 두리번거리다가 한 방향에서 멈춘다. 아성이의 자리다. 아성이는 장애학생으로 심한 자폐 성향이어서 늘 옆에 특수교육지도사 선생님이 함께 한다. 아성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드럼치듯 식탁을 힘껏 내리친다. 특수교육지도사 김길이 선생님은 아성이의 손을 잡지만 아성이가 더 힘이 쎈지 급식소 소음을 이기는 식탁내리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길이 선생님이 어쩔 줄 몰라한다. 다른 선생님들도 식사하다가 놀라서 고개를 뒤로 하고 있다. 이 소음의 주인공이 자신인양 난처해하는 길이 선생님에 비해서 아성이는 아주 평온하게 리듬을 찾으려 몸까지 흔든다. 길이선생님은 평소와 다르게 손을 잡아도 그치지 않은 아성이 행동에 당황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교장선생님까지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아이를 통제 못하는 무능력한 어른으로 보일까 엄청 불안해 한다. 하지만 아성이의 중증 장애 정도를 알고 있어서 짜증도 내비추기 쉽지 않아 참는다.
서연이는 줄 서서 지켜보는 지금 이 급식소 상황이 아주 어색하고 이상하다. 아성이는 가끔 교실에서 우는 모습은 보았어도, 지금 비교적 환하게 리듬타는 아성이의 모습은 생소하고 처음이다. 평소와 다르게 아성이는 매우 예쁜 얼굴이고 웃는 미소가 환하게 보인다. 결국 10번도 다 못치고 소리를 멈추었다.
처음 소리날 땐 급식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흔들린다. 그리고 곧 모두 한방향에서 멈춘다. 그것도 아주 짧은 순간이다. 바로 각자의 고개는 각자의 식판으로 되돌아간다. 주변의 아이들도, 선생님도 한번 쓱 쳐다보고 다시 자신의 밥 먹는데 집중한다. 아 . . 어떤 큰 소리도, 큰 사건도 그저 잠시의 관심만 끌 뿐, 참을만한 것이라면 찰나의 지나감일 뿐이군.
점심을 먹고 있던 아성이의 환한 얼굴을 처음 본 서연이는 내일부터 아성이를 다르게 보게 될 것 같다. 내일은 아성이에게 먼저 말을 걸어볼까 밥 먹으며 생각해본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4th. GX (7/6~7/9)
우리는 동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뭔가 욕망이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인간의 욕망과도 꽤 닮은 그런 욕망이요. 동물들도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영토를 차지하거나 지키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자기가 사랑하는 존재 곁에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189쪽에서 192쪽에서는 고양이 뒤플레시의 관점에서 뒤플레시의 생각과 행동들이 묘사됩니다. 미셸 트랑블레 역시 고양이들의 생각은 읽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뒤플레시의 ‘생각’과 ‘감정’들은 너무 생생합니다. 고양이들은 정말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생각할 것만 같습니다. 우리도 한번 흉내 내며 훈련해볼까요.
네 번째 과제입니다. 어떤 사건을 겪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생각을 10문장 이상으로 적어주 세요. 꼭 현실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주인 잃은 강아지이건 중국으로 돌아가는 판다건 창조주와 맞닥뜨린 인공지능 로봇이건 상관없습니다.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189~192쪽을 참고하세요.
저는 7월 10일에 찾아오겠습니다.
레몬레몬
역시, 카페는 지루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장에서 자신이 어떠한 공간으로 갈 지, 궁금해 했던 자신의 생각이 떠오른다.
한 때는 나무였다가, 다시 잘게 갈려지고 뭉쳐져서 서로가 다른 종의 나무였지만, 이젠 하나가 되어버려 어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은 꽤나 흥미진진하게 커플의 헤어짐을 지켜보고, 바라보고 엿들었다.
여느 커플과 같은 이유지만, 정확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이유로 이 커플은 헤어졌다.
조용조용했던 말들은 당사자들은 모르겠지만, 점점 목소리가 커졌고, 주위에는 다른 이들이 없는 듯이, 자신들의 무대를 만들었다가 이제는 그 막을 어느 한 사람이 떠나고서야 끝내버렸다.
조용히 공부하는 척 저 맞은 편에 앉아있던 학생도 두 사람, 모두가 떠나버리자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다시 자신의 공부를 한다. 그 학생이 앉아있던 책상이 무대가 끝났음에 다시, 지루한 학생의 책상의 역할을 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게 보여졌다.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탁자들 그리고 기물들이 숨죽여서 그 커플을 위한 무대를 순간 만들어주었다, 고 생각한다. 연극에는 무대가 따로 필요하지만, 일상도 충분히 누군가에게는 무대와 관객이 될 수 있다. 덕분에 카페에 있는, 자신을 포함한 탁자들은 오늘도 누군가의 사건에 있어 관객이 되어주고, 그저, 기물의 역할로 다시 되돌아 갔다.

아린
내 이름은 경화다. 가족을 소개하자면 엄마인 강춘남씨와 아빠인 이진주 그리고 누나인 이수지다.
우쭈쭈쭈 우리 강경화 산책가자..라고 말하는 수지누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순간 펄쩍 뛰며 꼬리가 흔들린다.
하...자존심도 없는 나란 강경화...그래도 수지누나가 최고다.
아침에 나갔다 밤이 되어야 돌아오는 엄마와 아빠는 우리 경화 잘 있었어?라고 쓰담하고는 오늘도 피곤했네..라며 소파에 철푸턱 누워 일어나지를 못한다.
아무리 그 앞에서 깨갱거려도 낑낑거려도 어른들은 그 소리가 안 들리나 보다.. 방안에서 인강을 듣던 수지 누나가 그 소리가 불쌍했는지 방안에서 힐끔 거실을 살핀다.
사실 내 이름은 엄마가 지어준 거다. 춘남씨의 인생 히트작인 이형접합제에서 따왔다고 한다. 나중에 딸이면 수지(resin) 아들이면 경화(hardener)라고 이름을 짓겠다고 했는데, 정말 딸에게 수지라는 이름을 나에게는 경화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게다가 성까지 본인 성을 붙여서 강경화라고 해 주었다.
하지만 수지가 외로울까봐 쓸쓸할까봐가 내 목적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외롭고 쓸쓸해졌다.
그래도 경화는 이름 덕분에 수지누나와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게 늦게 퇴근하는 엄마아빠의 빈자리의 그 시간을 서로 메꾸면서 지내고 있다.
수지누나랑 이차방정식 인강을 같이 들으며 꾸벅꾸벅 조는 삶, 이 또한 이만하면 충분하지 라고 생각한다.

Henry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피해 아파트 화단을 가로질러 관리사무소 뒷편의 음식물쓰레기장 뒷쪽 비스듬한 처마 아래로 향하는 고양이 무리들. 그곳은 얼마 전 다시 만들어진 나름 그들의 아지트였다.
최부녀 무리가 한바탕 해코지를 해버린 지난 아지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캣맘이 더 튼튼하게 만들어준 곳. 아무래도 음식물쓰레기장이라라야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거나 통과해서 지나치지 않는 곳이라는 지정학적으로도 유리했고 공간적으로도 비를 피할 수 있는 형세를 가지고 있어서 캣맘의 눈엔 길 고양이들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진작 낙점을 받은 터였다. 그럼에도 밤새 가져다 놓은 사료와 물이 준비된 아지트에서도 고양이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듯 교대로 식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연히 퇴근 길에 그 모습을 보게 된 수진은 식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거리를 두고 멀찍이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아 우산을 받치고 고양이들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봤다. 낌새를 차린 몇몇 고양이들은 인사라도 하듯 그녀에게 다가와 등을 부비고 주변을 도도하게 맴돌았다. 손 내밀어 고양이들의 등을 쓸어내리니 기분 좋은 듯 실눈을 뜨고 온전히 자신들의 몸 전체를 내어 맡기기라도 한 듯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가 쨍 하고 다시 그녀를 맴돌았다.
"수진아, 얘, 너 여기서 뭐하고 있니?"
최부녀의 코맹맹이 소리였다. 마침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왔다가 코를 막고 비닐 봉지를 둘둘 말아 구석 쓰레기 통에 집어 넣으며 눈에 뜨인 딸 수진을 향해 예의 큰 소리로 다그치듯 물었다.
"그 도둑 고양이들 가까이 하지마. 병 옮아, 얘. 누가 또 이렇게 여기 도둑년놈들 집을 지어준거야? 아이고.." 금새라도 다가가 고양이들의 새로운 아지트를 부서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어르렁거렸다.
"엄마. 그만 좀 해. 얘네들도 살아야지. 그렇게 우리도 더불어 같이 살아 가는 거지. 자꾸 쫓아내고 부서버리고 그러면 얘네들은 어떡해!"
수진의 댓구에 최부녀는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시집을 안가서 그렇지, 어려서 부터 수재 소리 들으며 자란 수진은 최부녀의 자랑이었다. 좋은 대학 나와서 분당에 있는 대한민국 둘째 가라면 서러울 IT 대기업에 다니는 고분고분한 수진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라 더욱 그랬다.
"얘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고 그러니? 이 집 값 떨어지는 이게 다 너희들 재산이 줄어드는거야. 뭐 나 좋자고 그러는 줄로 착각하나 본데.."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모녀의 모습이, 비오는 날의 음식물쓰레기장의 한켠에서 벌어진 동물보호론자와 집단이기주의자의 토론장이 되어버린 그 순간이 재미있는 듯 두 사람을 오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지켜보는 고양이들은 아지트에 몸을 숨긴 채 내내 그렇게 멈춰 있었다. 자신들의 아지트를 정성스레 지어주고 매번 사료와 물을 가져다주는 수진을 응원이라도 하듯.
GoHo
꼿꼿하게 일자로 쭈욱 뻗은 늘씬한 다리!
투명한 듯 빛이 나는 매끄러운 몸매!
그리고 날선 도도함!
이몸은 언제나 고귀하게 모심을 받는 분이라구.
아니, 분이었다구...
끔찍하게 네발로 기어다니는 네 녀석이 나타나기 전에는 말이지.
어라! 어딜 또 뽈뽈뽈 달려 들려고?
우웩! 저 늘어지는 타액. 하나 밖에 없는 그 이빨로 날 잘근잘근 씹어 먹기라도 할텐가?
제발 저리가! 난 호락호락 먹히는 네 녀석의 먹거리가 아니란 말씀이야.
어, 이번에는 뭐야? 갑자기 왜 방향을 바꾸는거야?
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안돼!
제발! 그.. 그 공격만은 안돼!
우웨웩!
"안돼! 아빠가 이발 가위를 떨어뜨리셨구나. 아휴! '유'야 이런 건 위험한거야. 그래도 입으로 안 가져가고 엉덩이로 깔고 앉아서 다행이네!"
"이크! 욘석! 큰일 날뻔 했네. 아빠가 미안. 근데 우리 '유' 기저귀 갈아야 겠는걸. 끙아 냄새가 나는데."

호디에
오늘도 저 멀리에서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온 밀림에 울려퍼진다. 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 질수록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친구들 모두 공포감이 커져간다. 도망조차 가지 못하는 우리는 숨죽여 운명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와 인간의 얘기를 듣고 전해주는 새들에 따르면 우리를 밀어버리고 이곳에 아보카도를 심을 예정이라고 했다. 어떤 나라에서는 집을 짓기 위해 숲과 산을 깎아낸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 전에 국제환경연구 단체에서 다녀갔지만,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인간들은 돈이 되지 않는 존재는 쓸모가 없다고 여긴다. 그들은 우리를 '나무'가 아닌 '목재'로 여긴다. 우리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간과한다. 인간들은 참 이상하다. 납득할 수 없는 많은 양의 비가 오고, 가뭄이 계속 되고, 그로인해 그들 종種이 죽어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평생을 한자리에서만 살고 있는 내가 봐도 지구는 정상이 아닌데,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베어낸다. 눈에 띄게 푹푹 쓰려져가는 나무들, 얼마 안 있어 나도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은 힘없이 쓰러진 나를 어떻게 할까.

greeny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날 깨워주는 너. 날 깨워주는 아이는 이 집의 하나뿐인 딸이다. 이 아이는 나를 저녁마다 깨워준다. 주로 평일날 나의 앞에 앉아 혼잣말을 하는 걸 듣다가 나를 깨워 나에게도 말을 건네준다. 그 아이가 하는 말은 '아, 오늘 뭐해야하지.', '힘들어', '귀찮아' 밖에서 꾹꾹 눌러참았던 말이다. 매번 그리 힘들어보이는 삶이 안타까워 나의 빛으로 조금은 더 따뜻하게 밝혀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 닿았을까. 요즘은 전보다 웃는 날이 많아진 것 같다. 핸드폰을 보며 웃기도 하지만, 혼자 책을 읽다가, 일기를 쓰다가도 미소를 그리는 일이 더 생긴 것 같다. 다행이다. 아이에게 나말고도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존재가 있어서.

닐스
이 자리에 머문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다. 처음 도서관의 신착 도서 자리에 있을 적에는 항상 누군가의 가방에 담겨 처음 보는 방 책상 위, 침대 위, 차 안, 카페의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을 거친 지금 살짝 어두운 책장 구석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게 된지 꽤 되었다. 나는 무슨 내용일까? 책은 스스로가 책인 것은 알아도 내용은 미처 알 수 없었다. 주변 책들의 느낌이나 분위기를 봤을 땐 소위 베스트셀러로 분류 됐었던 종류같긴 한데 아직도 가끔씩 사람들의 손에 뽑혀나가는 다른 책들이 아직 자기는 읽히고 있다며 으시댈 때는 조금 부러우면서도 우습기도 했다. 자기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면서도 저렇게 잘난 체 할 일인가? 그리고 그렇게 으시대던 주변 책들이 새로 들어온 책들에 밀려 다른 칸으로 밀려날 동안 그저 머물러 있던 책은 기억 속의 책들을 읽던 사람보다 조금은 어려 보이는 사람의 손에 들려 책장을 뽑혀나간 것이다. 분명히 책장이 찢어져서 돌아올 거야. 부러움이 섞인 시기 어린 소리에 움찔했지만 그래도 다시 처음보는 책상 위에, 침대 옆에 놓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은 드문드문 어린 사람이 읽어주는 문장들을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고 재미가 없었던 터라 베스트셀러가 된 게 신기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이런 내용을 쓰고 읽는 거지? 그래도 책은 책장으로 돌아가면 당분간은 이유를 생각하느라 예전보다는 덜 심심할 것 같은 느낌에 약간 즐거워졌다.

독갑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으르렁조차 하지 않고 물어버릴 수 있을 만큼 난폭해지는 한여름날이었다. 짐승이 아니라 사람마저 축축 처지는 더위 속에서 누렁이는 등을 익혀버릴 기세로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해 제 집에서 늘어져 있었다. 그때였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는데, 누렁이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익숙한 냄새가 공기 중에 실려 왔다. 평소 같으면 불쾌감만 유발했을 그 꿉꿉한 공기가 누렁이에게는 마치 최고의 향을 내는 향수와도 같았다. 냄새를 감지한 순간 누렁이의 꼬리가 자동적으로 붕붕 돌아가기 시작했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나 들리지 않는 귀를 쫑긋 세웠다. 관절염 따위 아랑곳 않고 누렁이는 달려나갔다. 차르륵.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누렁이의 목이 꽉 조였다. 누렁이의 영역은 겨우 말뚝 반경 일미터 밖에 되지 않았다. 그치만 이 냄새를 맡을 때마다 누렁이는 그 사실을 잊었다. 영자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아직 문을 열고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마당 한구석에 선 누렁이는 컹컹 짖으며 꼬리가 떨어져 나가도록 흔들어 댔다. 그 소리를 듣고 현수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우, 시끄러. 저 개새끼." 현수는 누렁이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누렁이는 현수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윽고 영자 할머니가 대문으로 들어섰다. 누렁이는 자세를 낮췄다, 섰다, 바닥에 굴렀다, 난리를 치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할머니 뒤로 영우가 보였다. 올해 열 살이 된 영우는 누렁이가 작년에 봤을 때보다 키가 훌쩍 자라 있었다. 영우가 들어오고 나서 할머니가 대문을 닫는 걸 보니 이번엔 영아는 오지 않은 것 같았다. '할머니! 여기, 여기! 여기 봐요!' 누렁이는 혀를 길게 빼 물고 헥헥대며 재롱을 떨었지만 할머니는 "아이고, 누렁이 오랜만이네!" 인사 한 마디만 남긴 채 현수, 영우와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누렁이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가 손주들을 봐주기 위해 서울로 떠난 지 벌써 십오 년이 지났지만, 누렁이는 하루도 할머니를 잊은 적이 없었다. 이웃집 개였던 어미에게서 겨우 젖만 떼고 영자 할머니네 마당으로 이사 온 후의 일 년은 누렁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그 일 년이 지나기 무섭게 누렁이는 말뚝에 목줄이 매였고 할머니는 떠났다. 그 후로 십오 년 동안 집에는 영자 할머니의 넷째 아들인 현수 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일 년에 한두 번 시골집에 잠시 들를 뿐이었다. 그래도 누렁이는 현수와는 영 가까워지지 않았다. 오직 할머니, 영자 할머니만이 누렁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다시쓰다
내 이름은 에루웬. 나는 오래된 참나무다. 수 세기 동안,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많은 사람들, 동물들, 그리고 숱한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이제, 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나는 어린 새싹일 때, 부모가 있는 이곳으로 나의 형제들과 함께 심어졌다. 우리는 햇빛과 비를, 그리고 사랑을 나누었다. 작은 동물들이 내 밑을 지나가고, 새들이 내 가지에서 서로의 노래 솜씨를 뽐내었다. 이곳은 평화로웠고, 나는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점점 자랐다. 가지는 하늘을 향해 점점 뻗어 나갔고, 뿌리는 점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나의 몸은 누구보다 강해졌고, 나는 숲의 중심이 되었다.
어느 날, 인간들이 숲에 들어왔다. 그들은 내 친구들을 베어내고 길을 만들었다. 내 형제들과 부모를 베어내 마을쉼터를 만들었다. 그 중심에 있던 나 하나만 남겨놓고 나를 마을의 ‘수호 나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내 가족을 다 죽여놓고 나더러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인간들의 이기심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그 끝에 대해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말 그대로 그건 재미있는 혹은 교훈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실제로 일어나는 ‘현실’이었다. 그들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안다. 다만 아직 그때가 아님도 나는 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새로운 변화를 느낀다. 봄에는 새싹이 돋고, 여름에는 푸른 잎이 무성하다.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눈이 내려 내 몸을 감싼다. 이 모든 순간이 매우 소중하다. 어리석은 인간들 때문에 이것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이 더더욱 소중하다.
아주 오래전, 나는 인간들에게 수호는커녕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럴 능력이 없었다. 다행히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들 스스로 조금씩, 그리고 점차 빠른 속도로 망가져 가고 있는 모습을, 그들 덕분에 제일 좋은 자리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에루웬. 벌거벗은 숲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증인이다. 나는 여기서 너희들의 멸망을, 그때를 지켜볼 것이다. 나는 그때가 머지않았음을 알고 있다.

우주먼지밍
4th.
M은 또 책을 사 왔다. 내가 가진 선반에 책을 다 꽂지 못하자 바닥에 쌓기 시작했다. M은 표지를 펼치지도 않은 책이 있음에도 새 책을 부지런히 사 왔다. M은 종종 이해 못 할 행동을 한다. M은 평소 책을 읽을 때 연필이나 색연필로 줄을 거침없이 긋는다. 그래서 항상 손에 무언가 쥐어져 있는 편이다. 그런 M은 때때로 갑자기 펜을 내려놓더니 책을 덮고는 책을 천천히 가슴으로 가져가서 소중한 무엇인가라도 되는 마냥 꼬옥 끌어안기도 한다. 내 관찰로는 M은 몇 년째 연애를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외로웠던 것일까? 책이 무엇이라고 저렇게 껴안고 있담?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M은 종종 내 선반에 내려앉은 먼지도 털어주고 장마철이 되면 제습기를 틀어놓은 채 출근을 하기도 한다.

오호로B
“어? 목련이 있네. 안녕?!”
‘어... 안녕!’
김선생님을 처음 본건 꽃을 피우기 며칠 전이었다. 김선생이 몇 번째지? 내 키가 2층 교실을 넘겨 본지 30년쯤 되었으니... 얼추 잡아도 열번째는 넘을 것 같았다.
나는 처음 본 날부터 김선생이 좋았다. 일찍 창문을 열고 나를 찾는게 좋았고, 꽃이 피기 전에도 이름을 불러주는게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줘서 좋았다.
김선생은 창문 앞에 크고 작은 화분을 많이 길렀다. 거기에는 김선생님과 20년 넘게 학교를 옮겨다닌 테이블야자도 있고, 골목에 버려졌다 김선생을 만나 새 인생을 시작한 알로카시아도 있었다. 젓가락 굵기의 굴참나무는 도토리 시절 숲에서 김선생을 만나 서울살이를 하게 됐다고 했다.
3주전쯤, 김선생은 뿌듯한 얼굴로 공룡 모양 작은 화분을 창가에 내려놓았다. 등부분에 작은 식물을 심을 수 있고, 얼굴에 달려 있는 부직포 혓바닥으로 물을 빨아들이는 교육용 화분이었다. 아이들도 앙증맞은 혓바닥에 연신 물을 뿌리며 공룡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후부터 여린 잔디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달라진 화분 볼 마음에 아침이 기다려졌고,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화분을 살피는 김선생을 보는게 더 기다려졌다.
긴 장마를 지낸 오늘 아침, 손바닥 위에 공룡 화분을 올려놓고 김선생은 생각에 잠겼다. 부직포 혓바닥에 곰팡이가 핀 것이다. 덥고 습한 날씨에 창문까지 닫아두었으니.
‘저걸 어쩌나, 빨면 없어질까? 등에 있는 화분이 분리가 될까? 적당한 세제가 교실에 있을려나? 내가 빛을 너무 가려서 그런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실을 굽어보던 그때,
김선생은 끝이 뾰죡한 가위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아주 세심한 손동작으로 공룡 혓바닥을 잘랐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에 달려 있는 그 작고 여린 혓바닥을. 조금도 어긋나지 않겠다는 다짐이나 하듯 가늘게 뜬 눈으로 정확하게 잘랐다. 장마가 끝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이들 수만큼. 그렇게 김선생은 혀를 잘랐다.
공룡이 혓바닥을 잃은 날 나는 심장을 잃었다.
줄 맞춰 공룡을 내려놓는 김선생이 웃고 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김선생이.

도리
4st. GX/24.7.15
이제야 숨을 쉴 것 같다. 바깥으로 나와 쏟아지는 빗물을 맨몸으로 맞으며 공기를 들이마신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물벼락에 숨 쉴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비가 급작스럽게 쏟아진다. 예전에는 비가 서서히 땅에 스며들어서 들이칠 때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는데 말이다. 세상이 요지경이다. 숨도 못 쉴 만큼 비가 퍼붓는다. 나는 튕겨 나가듯이 바깥으로 밀려 나간다. 빗방울이 따갑다. 매서운 비다. 더 무서운 건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비가 금방 그친다. 그리고 해가 뜬다. 아까는 빗방울이 따가웠는데 순식간에 햇볕으로 따끔하다. 느린 몸뚱이를 이끌고 그늘을 찾아 나선다. 언제 이렇게 밀려났는지 모르겠는데 흙이 없다. 매끈한 아스팔트는 끝없어 보이고 피부가 바싹 익어간다.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햇살이 뜨거워서 최대한 꿈틀거려도 자꾸 더디다. 아직은 그래도 물기가 있는데 급변하는 날씨에 마음이 불안하다. 그때 한 나뭇가지가 배 쪽으로 쑥 들어온다. 그리고 몸이 들린다. 어지럽다. 다급하게 온몸을 꿈틀거린다. 바닥으로 찰싹 떨어졌다. 정신이 없다. 고소공포증에, 멀미에, 추락 통증에, 몸은 부서질 것 같다. 웬 꼬맹이다. 겨우 숨 쉴 만했더니 이제 어린애 장난감으로 쓰일 운명인 건가. 이렇게 죽을 바엔 차라리 밟혀 죽었으면 좋겠는데. 다시 나뭇가지가 몸통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몸을 움직이기가 어렵다. 아까의 통증이 남아있다. 몸이 나뭇가지 하나로 들려서 접힌다. 속이 울렁거린다. 아까 내가 뭘 먹었더라. 곧 게워 낼 거 같다.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뚝 멈췄다. 나는 잡초가 무성한 축축한 흙바닥에 놓였다. 꼬맹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자리를 떴다. 아직 남아있는 추락 사고와 멀미 후유증에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뜨거운 햇살이 아니라 그나마 살 만하다. 훅 졸음이 몰려온다. 나는 흙을 조금 뒤적이다가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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