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D-29
소거되는 자들의 이야기에는 어떤 공백이 있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지영 지음
이북으로 읽어서 페이지를 모르겠지만,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 꽤 있더라고요.
그쵸, 그쵸. 생각나는 문장이 많은 소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입니다!!
한준의의 에세이 『수키에 대하여』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알래스카 늑대가 말하길, 나를 흥분시키는 피가 남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은 수키가 사라진 것을 두고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여겼다. 한준의가 늑대 일화를 인용한 것을 수키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들을 향한 비판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간과한 게 있다. 자살을 유도하는 사냥, 그것은 사실 인간에 의한 살해가 아닌가. 하여 ‘늑대의 자살’이란 표현은 명백한 기만 아닌가. 늑대의 말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고, 이곳에는 오역과 오해만이 남았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지영 지음
흰색은 색인가. 검은색도 색인가. 이름에 ‘색’을 달고 있으니 색이다. 유색의 반대는 무색無色이고, 무색은 문자 그대로 색깔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물리학적으로 볼 때 흰색과 검은색은 색깔이 없고, 일반적으로 투명한 색을 무색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유색인종의 반대인 백인은 피부색이 없는 투명한 이들인가.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투명한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지영 지음
마음은 이미 달아났고, 마음은 여전히 기다린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53p, 지영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번에는 76페이지부터 106페이지까지 '이름을 부르자' 챕터를 읽어보겠습니다. 이번 챕터는 하나인데 30페이지이니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의 다른 챕터들, 10페이지 가량인 챕터들보다 길어요. 그만큼 눈여겨 볼 필요가 있겠죠? 주된 내용은 수키 라임즈의 증상인 언어 교체가 어떤 경로로 발생했나, 특히 교체된 언어가 왜 한국어인가에 대한 추정과 추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주목할 것은 '국제분쟁'에 관한 서술이에요. 식민지 조선, 위구르, 아프리카 국경선, 파키스탄 등 분쟁지역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저자인 @소설쓰는지영입니다 님이 독자분들과 나누고픈 질문을 미리 몇 가지 주셨는데, 그 중에서 이 장과 관련한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벌써 열 번째 질문이네요. 10. '수키 증후군'은 분쟁이나 갈등 같은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모국어를 잃어버리고 정체성이 사라져 '사회적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입니다. 지금 현실에 수키 증후군이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요?
수키증후군은 언어는 원어민이지만 문화는 동화되지 않는 증후군이잖아요. 저는 현실에서 파키스탄 노만이 그런 케이스로 보였어요. 파키스탄 출신 노만은 5살 때 한국에 와서 청소년기까지 쭉 살았거든요. 그래서 국적은 파키스탄 사람이지만 문화정서적으로는 완전한 한국인이었어요. 그런 노만에게 비자가 나오지 않게 되어 미성년자신분이 끝났기 때문에 본국인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게 되는데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외모나 국적이 파키스탄인이어서 파키스탄 문화에서 부적응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dXyungmp0bA 마치 미국인이 한국에서 지내는 수키를 만나 인터뷰하는 느낌이에요
생각해 볼 케이스군요... 수키 증후군에 걸리지 않은 수키가 인도로 돌아가서 영어를 쓰는 상황과 유사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 이런 분이 계셨군요. 몰랐습니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네요...
아무래도 고려인이나...뭐...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하숙희가 되어서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 여기저기 시골 장터 같은데에서 방송하는 모습을 읽는데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고요. 미국인도 한국인도 인도인도 아닌 수키 또는 숙희가요..
그러게요... 원락 모어도 하면서 언어 하나 추가되는 거면 좋을 텐데... (그러면 소설적 상황으로는 긴장감이 풀어지겠지만요)
저도 우연히 유튜브로 접했던 파키스탄 청년이 생각났어요. 자란 곳은 한국인데 본의 아니게 파키스탄으로 복귀한 뒤에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며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본인에게 낯선 나라에서 애쓰며 살아가는 모습이 수키와 다르지 않은 점에서 비슷하게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정체성과 타인이 규정하는 정체성 사이의 괴리가 하늘과 땅 차이처럼 벌어진 사례인 것 같아요...
저도 유튜브에 본건데 백인 외국인인데 부모가 한국에 오래 살아서..태어나서 쭈욱 한국에서만 살아서 한국어를 아주 잘하고 영어는 학원에서 배워야 하는 언어처럼 낯선데..외모만 보고 한국어는 하는데 영어는 낯설어 하는 친구한테 .. 왜 영어 못하냐면서 계속 놀라는 거였는데..어느 정도 설정이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태어나고 쭉 산 곳은 한국이라 한국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외모는 백인이라 자꾸 주변에서 낯설어 하는 거나..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내가 느끼는 나와 남이 느끼는 나가 너무 괴리가 생기면 혼란할 거 같긴합니다.
저는 난민의 상황이 수키증후군에 걸린 사람과 겹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작스럽게 주변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안 되는 채로, 이해 받지 못하는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점에서요. 이런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집단 난민보다는 개별 난민, 혹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정치적 망명을 하는 사람의 처지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을 일종의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수키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은 비록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그들끼리는 ‘수키증후군’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았고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개별 난민'과 같은 개념으로까지 발전시키지 못했는데... 암튼 저도 개별 난민 신청 하고 싶습니다...(웃픔)
'난민'이라고 구체적인 상황을 짚어주신 것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망명의 통상적인 개념보다 조금 더 확장해서 '안정된 정체성'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떠나 표류하게 되는 상황인 듯해요.
좋아하는 평론가님에게 칭찬 들어서 어깨가 으쓱으쓱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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