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전혀 생각지 못한 답변인데요!!
포인트 바로 드리겠습니다~ㅎ
[📕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D-29

최영장군

전승민
오, 있어요! 제가 일본어를 모르는데 한 밤중에 일본분이 지하철 환승에 대해서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저는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영어로 시도했는데 그분은 할 줄 모르셔서 서로 난감해 하다가 지하철 노선도 어플을 펼쳐놓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그리고 몸짓 ㅎㅎ 으로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이...
재밌었던 건, 둘 다에게 공통적인 언어가 없는 상황에서 그 어떤 때보다 소통을 위해 절실해지더라고요. 어떻게든 말하려고 하고,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너무나 강하게 와닿았던 기억이 있어요. 언어가 없는 불편한 상황에서야 말로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남김없이 내보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꽤 오래전의 기억인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최영장군
호모 사피엔스가 왜 언어를 혁명적으로 고도화시켰는지 알 것 같습니다ㅎ 언어 없는 상황에서 진심 내보이기!! @전승민 평론가님께도 포인트 드리겠습니다~

장맥주
올 초에 베트남에서 한 달 머물렀어요. 베트남어는 인삿말 정도만 알고요. 그런데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 앱 덕분에 식당에서 음식 주문하거나 쇼핑하는 정도는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

최영장군
베트남도 맥주 종류 많다던데... 왜 가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ㅎㅎ
번역기의 발전을 가만 보면 인류 진화를 축소해 놓은 것 같습니다 별 진전 없어 보이다가 어느 순간 팍, 하고 터지는....

장맥주
마트에 가서 모르는 맥주 다 주워 담고 피자집에서 수제 맥주도 많이 마셨습니다. 세계맥주대회에서 수상했다는 유자맥주가 아무 맛있었고, 카메라로 찍으면 순식간에 번역해주는 기능이 정말 놀라웠어요. ^^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장맥주 메뉴판 번역이 될 때의 짜릿함이란! 살았다...먹을 수 있는 걸 시킬 수 있겠구나!! 라는 마음이 들죠. 근데 저는 구글번역기와 파파고 앞에서 좌절했던 경험도 꽤 많아요. 일을 하면서 태국어를 마주해야 할 때가 많았는데 번역기를 돌리면 이게 무슨 말인가 고민하다가 '태국어->영어'나 '태국어-일어'의 번역 과정을 거치기도 했어요. 그럼 좀 알아 먹을 수 있게 번역이 되더라고요. 더 많은 정보가 축적되어야 무리 없이 번역이 되겠다 싶어요. 아, 태국도 베트남만큼은 아니지만 맥주 인프라가 늘고 있던 것 같아요!

장맥주
아... 지영 작가님처럼 전문적으로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겠죠...? 저도 메뉴판 번역 보면서 뜻은 얼추 알겠는데 표현이 엉성해서 웃은 적 많았는데요. 베트남에서 태국을 비롯한 다른 동남아 국가 맥주들도 많이 마셨습니다. 종류가 많은 것도 좋았지만 가격이 굉장히 싸서 입이 찢어졌습니다. 주세가 낮은 거 같았어요. ^^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장맥주 사실 전문적으로 외국어를 하진 않아서 괜히 멋쩍습니다.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늘 공백이 많은 채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졌다 싶으면서도 커다란 벽 앞에 설 때가 있더라고요.

장맥주
저에게는 영어부터가 40년째 커다란 벽입니다. ^^;;;

꽃의요정
제 동생이 캐나다로 이민 간 대만/홍콩 남자랑 20년 전에 결혼했는데, 그때 제부 쪽 부모님과 여동생이 한국에 2주 정도 머문 적이 있어요. 저도 그땐 영어가 듣기밖에 안 될 때라....아주 조용히 시댁 어르신들과 제주도에 여행도 가고, 식사도 하고...그리고 홍콩 가서 피로연도 하고.....계속 조용하게 지냈어요.
시댁과의 갈등 없이, 평화로운 가족간의 모임이었습니다. 동생하고 제부도 아주 중요한 것 외에는 디테일은 알아봤자 분란만 일으킨다며 통역 안 해주더라고요.
그리고 전 결심했습니다. 한국어 못하는 사람과는 결혼 못한다며....ㅎㅎㅎ 다행히 한국인과 결혼했습니다.

최영장군
ㅎㅎ 배우자는 한국말 되고, 시가나 처가는 한국말 안 되는 구성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ㅋ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제 경우도 오히려 공통의 언어가 없으면 표정과 몸짓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인도 최북단 라다크 지역을 여행할 때의 일인데요. 어쩌다 '스쿠르부찬'이란 곳으로 누군가의 사진을 전달하러 갔었어요. 정확한 주소도, 이름도 모르고 딸랑 사진 한 장만 들고 가서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 사진을 내밀며 묻고 물어서 이름을 알아내고 집도 알아냈어요. 지도도 없고, 번역기도 없던 시절이었고, 게다가 게스트하우스도 없는 곳이었는데 영어도 통하지 않아서 어느 순간 저는 한국어로 말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결국 하룻밤 머물 방도 구할 수 있었고, 점심 초대도 받고 몇 년 후에 만나자는 약속도 하고, 초등학교도 방문하고, 마침내 사진의 주인공을 찾아 사진도 전달하고... 어떤 만남은 언어보다 마음이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수키를 떠올리니 그건 일회성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서로에게 필요한 오해로 채워진 대화였을 수도 있고요.

최영장군
용감하신 분~~ㅎ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최영장군 용감보다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로 할게요ㅎㅎ

새벽서가
9. 그런 경험 당연히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 끝내고, 일년 계약으로 멕시코에서 일을 했었는데, 스페인어를 1도 모르는 상태에서 갔었거든요. 회사에서야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는데, 회사밖에서는 그게 안되잖아요? 1990년대 후반이니 지금처럼 스마트폰 앱을 사용할 수도 없고… 그래도 스페인어를 익히기 전까지는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살아남았던 기억 있습니다.

최영장군
오~~ 수키 증후군 걸리면,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 교체 가능성을 보여 주실 것 같습니다 언어 교체 후보군이 많네요~

윈도우
꽤 오래된 얘긴데, 베트남의 어느 도시에 갔었던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그곳에선 영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 심지어 호텔에서도 아주 기초적인 대화만 가능했습니다 - 손짓발짓 소위 바디랭귀지로 겨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깨닫게 되었어요. 손짓발짓에 겯들여지는 단어식 영어조차 불필요하다는 것을요. 저는 이후로 그냥 편하게 한국말로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피차 상대 언어를 이해 못하는데 어떤 언어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 때 느낀 그 홀가분함이란!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신기하게도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한편 동시에 아라비아 숫자가 진정한 세계 공통어라는걸 깨달았습니다. 외국어는 못해도 모두 아라비아 숫자는 알고 있었고 따라서 피차에게 중요한 계산 (그리고 흥정)은 펜으로 쓰면서 전혀 문제 없었다는 얘깁니다.

최영장군
댓글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ㅎㅎ 포인트 드리겠습니다!!

아린
아마 대부분 외국인과의 만남일 텐데요..
전 딱히 외국을 많이 나가본 적은 없고...해서.요.
대신 첫회사 입사하고 첫 팀 회의때 생각이 났어요.
분명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라서..
노트에 한 글자도 못 쓰고 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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