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란 것이 결국 '사회'의 합의된 기호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니까, 언어 교체에 대한 탐색은 개인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사회 정체성'에 대한 인식 과정으로도 여겨집니다
집단을 구별하고, 또 반대로 구별된 집단을 동일시 하거나 차별화 하면서 내집단 편향 같은 것도 나타나고요...
역시 @전승민 평론가님의 심도 있는 의견을 들으니, 함께 읽으면서 깊이 읽기까지, 너른 범주로 수북클럽이 진행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D-29

최영장군

김혜나
“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때의 영상을 돌려보고, 돌려본다. 그리하여 그날이 언제나 옆에 달라붙어 나를 괴롭히지만 그렇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싶기에 나는 어제를 보내지 않는다. 아직은 보내지 않을 것이다."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130p, 지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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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 이미 달아난 마음이 여전히 기다리는 마음 옆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 마음들이 만나서 엮어 가는 서사는 전과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놓치고 만 마음은 언젠가 본 한 마리의 늑대를 떠올렸다. 결국 선택받지 못한 늑대만이 홀로 남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을 땐 초원을 함께 달리던 이들은 사라진 후였다. 그곳은 동물원의 차가운 철창 안이었다.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73p, 지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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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소설 속 ‘이하리’처럼 저도 태국에서 5년을 일하며 살았거든요.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제발!! 부탁하는 게 있었어요. 태국인 한국어 학습자의 경우 ‘경험을 하다’를 ‘경험을 받다’라고 표현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태국어에서 경험은 받는 것이고, 모국어 간섭이 일어난 거죠. 왜 경험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건지는 사는 내내 궁금했는데 명확한 답을 구하진 못하고 돌아왔어요.
제가 17년 10월에 태국에 갔는데 라마 9세,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고 1년이 지난 때였어요. 그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면(궁금하지 않았으나 교재에서 다루는 주제여서...) 대다수의 학생이 푸미폰 국왕을 말했어요. 우리의 위대한 왕이 자비를 베풀고 선정하여 국민이 평화롭게 산다고 말하는 학생이 꽤 많았어요.
또 제가 교탁 앞에 있고 학생이 질문을 하러 올 때가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서부터 무릎을 꿇은 채로 다가오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뭐하는 거냐고 물어 보니 학생은 학생대로 당황하고요. 학생들이 태국 문화라고 설명해줘서 아... 알았어요 하고는 그 학생을 일으켜 세웠거든요. 그리고 보강을 해야 해서 시간을 정하는데 의견을 물어도 답하는 학생이 없더라고요. 여러분이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하니 당황해 하고요. 그게 이제까지 보강은 선생님이 원하는 시간을 정해서 통보하고, 학생들은 어떻게든 스케줄을 정리해야 하는 거였더라고요.(모든 선생님들이 그러는 건 아니고, 또 태국을 디스하자는 건 아니고요ㅎㅎ 저 태국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문화를 존중하지만 저에게까지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두 발로 걸어서 나오세요, 라고 했고, 또 무언가를 결정할 일이 있다면 선택지를 주고 여러분끼리 투표와 상의를 해서 결정하고 알려주세요, 라고 했죠. 일하는 동안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최종 결정은 무조건 학생 몫이었어요.
제가 보기엔 지나치게 수동적인 학생들이 많은 사회였어요.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애초에 묻지 않고 통보하는 교수진-학교의 태도도 자주 느꼈고요. 5년 동안 살면서 논의가 아니라 통보로 일이 진행되는 것들을 종종 봤고, 제가 살아온 사회에 비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을 낯설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한국도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사회는 아니지만요.)

꽃의요정
지인 중에 태국에서 한국어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그 분 태국 사는 것만 부러워 했었는데, 사실 작가님이 말씀하신 여러 문제들은 저도 많이 주워 듣긴 했어요.
근데 사실 각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봤지만, 한국에서 지역적으로 가까운 나라 기준으로 태국 학생들이 가장 한국어 학습에 곤란함을 겪더라고요. 태국어를 모르니 선생님들도 답답해 하시고요.
그 와중에 한국어 정말 잘하는 태국 학생들을 몇 아는데, 그 학생들은 역시나 어렸을 때부터 국제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한국어를 배운 게 10대 중후반부터이기도 하고요. 여기서도 나는 빈부격차 ㅜ.ㅜ
전 아직도 일본분들의 '화장실 좀 빌려도 될까요?'가 적응이 안 됩니다. ^^;;

소설쓰는지영입니다
@siouxsie 미군에서 영어를 기준으로 배우기 쉬운 언어와 배우기 어려운 언어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파병과 관련하여 조사했던 걸로 기억해요) 영어와 태국어는 가까운 그룹이었고, 한국어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언어의 여러 측면에서 볼 때 굉장히 다른 언어인 거죠. 태국인 학습자가 한국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것 중 하나는 '조사'인데 그게 태국어에는 조사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제가 만난 한국어에 능숙한 학생들은 대개 목표가 분명했어요.^^ 어떤 목표인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꽃의요정
어! 저도 그 목표가 있는 학생들이 젤 잘했는데 ㅎㅎㅎ
목표도 목표인데, '애정'이 필요하더라고요. 뭐가 됐든 하나라도 좋아하면 되는데, 그게 없이 무작정 공부는 하는데 안 느는 학생들이 젤 안타까웠어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맞아요. 목표와 더불어 '애정'! 무언가를 좋아하는 힘이 이루더라고요, 뭐든.

새벽서가
언어적인 표현이 문화에 기반을 둔 사례네요? 경험을 누군가로부터 받는다니! 저는 미국에서 살면서 여전히 동의 못하겠는 표현이 새 이가 날때에요. 우리는 아기의 새이가 났어! 라고 표현하는데, 영어에서는 새이가 들어왔어 (a new tooth came in) 라고 하거든요. 잇몸에서부터 나는게 아니라 입안으로 들어온 거라는 그 표현에 당황했는데, 이건 문화적인 배경도 아닌것 같아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하고, 다른 언어들에는 이렇게 문화적인 영향을 받은 표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새벽서가 흥미로운 표현이네요! '이가 나다'와 '이가 들어오다'라니... 치아 요정이 가지고 들어온 걸까요?

새벽서가
관점의 차이인것 같아요. 우리는 이와 잇몸의 입장(?)으로 보는 것같고, 미국에선 입안의 입장에서 보는거 같아요. 어떤 이유에서든 재밌긴 해요.

독갑
제가 모임에 너무 늦게 참여한 데다, 쌓여있는 글들을 아직 다 읽지 못했고, 또 책도 이제 겨우 4장까지 읽은 상태라서 질문을 드리기가 참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중복질문이거나 책에 나와있는 내용을 물을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태국에서의 경험에 대해 공유해주시면서 '모국어 간섭'에 대해 말씀하셨죠. 저는 요즘 외국인 선생님과 영어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영어를 참 한국인처럼 말하더라고요. 한국어를 영어로 단순 치환해서 말하다보니, 영어권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을 자꾸 하는 거죠. 마치 '경험을 받다'처럼요. 그건 제 인식의 체계가 한국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키는 한국어를 정말 한국사람처럼 구사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수키 증후군'은 인간의 인식의 체계마저 바꿔놓는 것인지, 그래서 아예 사고 자체를 그 이전과는 다르게 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