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Beer Bookclub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X다자이 오사무X청춘>

D-29
<짝사랑>은 읽으면서 아이돌이나 배우를 연모하는 요즘 사람들이 떠올라 재밌었어요. 심지어 만화나 게임 속 인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 감정들이 거짓이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작가가 무려 백 년 전 사람이라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도 아이돌 덕질, 배우 덕질은 본능인가 보다 싶었습니다.
오..독감님의 시대적 현상이라는 의견과 그것에 대해 본능이 아닐까라는 작가님의 생각에도 고개를 끄덕 끄덕 하게 됩니다. 더욱 그렇다고 느끼는 이유는, 후, 이것도 개인적인 이유인데, 지금까지 이상형이 어떻게 됨? 이라는 질문에 늘 막연하게 답변해왔던 것 같아요. 뉴진스 하니를 만나기 전까지. 그래서 사람들이 덕질을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되었던 것 같고, 덕분에 제 이상형까지 뒤늦게 알게 되었답니다.
<게사와 모리토>에 대해서는 본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감상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의 치열한 내적 갈등을 단 두 문장으로 잘 요약한 것 같습니다. 진정 인간의 마음이란 무명의 어둠과 다를 바 없도다. 그저 번뇌의 불길로 타오르다 사라질 목숨이로다. p.32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x 청춘
일본 문학은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읽힐까 궁금했습니다. 생각보다 좋더군요. <게사와 모리토>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짧은 단편에 두 인물의 오만가지 감정이 들어있는 게 신기하더군요. 배경 설화를 몰랐는데 찾아 읽어보고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면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이 두 권의 책을 읽어나갈 시간이 기대되는 시작이었습니다.
참 신기해. 남의 꿈 이야기와 연애 이야기만큼 재미없는 이야기가 없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p.14,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저도 이 문장에 제일 공감했어요 ㅋㅋㅋㅋ
<짝사랑>을 읽으면서 여름 계절 학기가 떠올랐어요. 누가 누구에게 고백했다더라, 사귄다더라. 그런 말랑한 소문이 퍼지던 봄과 달리 여름은 조용하거든요. 대부분은 학교를 떠나니까.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때부터 마음을 조용히 키워갔던 친구들이 꼭 있더라고요. <게사와 모리토>는 좀 어지러웠어요. 이게 무슨 감정인지 이해도 잘 안되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도의 차이지 남의 연애사가 다 그런거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위 문장을 뽑아봤어요.
이상하게 저는 일본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읽어 본 일본 작품은 겨우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다자이 오사무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자판으로 치는 데도 아쿠타가와는 어렵네요. 주말에 받아본 책은 매우 '청춘'스러웠습니다. 화사하고, 순수하고. 심지어 읽어볼 첫 작품이 <짝사랑>이라니, 마음이 한없이 몽글몽글해집니다. 하지만, <짝사랑>과 <게사와 모리토>는 풋풋한 청춘의 감성이 아닌 욕망과 삶에 지친 중년의 맛이 났습니다. 어릴적 친구의 짝사랑 여인을 술집여자로 만나 그녀의 짝사랑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지인에게 전하는 나의 모습이 왜 이렇게 애잔할까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옛 애인을 욕망으로 범하고 번뇌하는 남자와 남편을 죽이겠다는 애인에게 동조하고 자신이 죽기로 마음먹는 여자의 심정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저는 그만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저의 마음이 답답해서 우울해져 버렸습니다.
<짝사랑> 술술 읽었어요. 그 시기에도 이렇게 진심으로 덕질을 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당연히 실제 인물에 대한 사랑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저는 새삼 개념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덕질'이라는 단어가 있었다면 아쿠타가와도 그 단어를 썼을 텐데요. ㅎㅎㅎ
헉. 그렇네요. 그러면 제목이 짝사랑이 아니라 <덕질>이 됐을 수도.. ㄷㄷ. 느낌이 많이 다른데요. 시무라도 오토쿠를 덕질했다고 볼 수 있는가, 짝사랑과 덕질에 차이를 뭐라고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혼미해졌어요 허허허.
제가 진지하게 요즘 생각하는 문제 중 하나인데요, 덕후들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요? 미성숙한 유사 연애일까요? 일종의 페티시나 감정 중독일까요? 이 감정을 이용하는 비즈니스는 바람직한 걸까요?
(지하철에서 위 문장을 쓰고 있는데 옆에서 할머니 두 분이 헤어지면서 "내일 아침 티케팅 잘하세요" 하고 인사하시네요.)
저보다 좀 더 덕후인 친구에게 맥주님 질문을 물어봤습니다. 팩트로 아프다고 하네요. 저도 보면서 그냥 다 납득했습니다. 근데 뼈를 맞아 좀 아픈... 바람직한 비즈니스 같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티스트 범주를 넘어선 거 같고요... 덕후들의 사랑의 감정을 제가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허헝. 제 나름 생각한 덕후 문화가 심해진 원인은 젠더 갈등이 심해져서 그런 거 같아요. 이건 제 이야기인데요. 제가 청년 여성으로 살면서 연애보다 덕후로 사는 게 안전하고 행복하더랍니다. 하하. <게사와 모리토>처럼 여성이 결국 자기혐오로 죽기 쉽고요. 그거 말고도 그루밍 성범죄에 데이트 폭력과 연인에게 살해 당하는 범죄율도 높고요. 그런데 욕망은 욕망대로 있고 (안전하지 못한 세상에 불안 증세 첨가된 꼬인 욕망) 쉽고 활발한 SNS 활용해서 덕질로 유사연애하면서 환상만 키우고 페티쉬도 때려넣고 감정중독에 빠져 살다가 꼬이고 꼬여서 한 발 미끄러지면 사생팬 되고 그런 거 같네요..
덕후 문화가 젠더 갈등 때문에 생긴 건 아니지만 둘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는 거 같기는 합니다(그 외에 2010년대 즈음에 덕질을 긍정적으로 서술한 서사들이 여러 매체에서 오르내린 것도 한 요인인 듯해요). 남성 덕후도 있지만 아이돌판은 거의 여성 팬들이 먹여 살리는 거 같고요. 그런데 자신보다 어린 여돌 덕질하는 여덕들의 심정은 무엇일까요? 유사육아적인 감정일까요?
말씀을 듣고 나니 덕후 문화의 시발점이 궁금해졌어요. 자신보다 어린 여돌 덕질하는 여덕들의 심정. 말씀하신 '유사육아적인 감정'도 부정할 순 없겠어요. 안 그래도 그 전부터 제 주변엔 유독 여성들만 같은 성별 아이돌의 팬인 게 의아했는데요.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여자로 살아가면서 더 강요된 미에 대한 동경과 집착, 탐나는 마음을 떠올렸어요. 내가 직접 될 순 없으니까 그런 인물을 소유하고 키워내고자 하는 마음 같은 거요. 이렇게 쓰고 나니 어릴 때 많이 했던 바비인형 꾸미기 현실판 같네요...
현실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인 걸까요. 그러고 보니 저는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도대체 저게 뭐 하는 게임이지?’ 하면서 이해를 못했었어요. 아이돌 팬덤에서 ‘자아 의탁’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은근히 잘 만든 조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건 현실판 롤플레잉 게임인 걸까요?
두 분의 대화가 흥미로워 스리슬쩍 합류해 봅니다(마치 처음부터 함께 했던 것처럼, 헷). 저는 어릴 때 프린세스 메이커를 좋아했었는데요. 이건 단순히 '키운다'의 점에서 좋았어요. 더 정확히는 '내가 잘 아는 성별을 키운다'는 관점에서 좋았고요. 그리고 덕질과 유사연애의 감정은 잘 모르겠지만, 현실판 육성 시물레이션 게임을 말씀하시니까 문득 아이돌을 육성하는 서바이벌 예능들이 떠오르는데요. 평소 서바이벌 프로그램 자체를 즐기지 않는데도(경쟁하는 걸 피곤해합니다) 제가 오래전에 유독 챙겨 봤던 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라고, 시즌 4까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이 프로그램을 즐겨 봤던 게 그들에 대한 동경과 집착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고 그냥 신기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여성인데, 저와 다르게(?)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분들에 대한 미의 표현 방식들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매 시즌이 거듭될 때마다 시끌시끌했었지요. 짜여진 각본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실제로 그 프로그램을 계기로 인지도를 넓혀서 모델로 활약하고 계신 분들도 있어요. 다만 위험할 정도로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하면서 스스로를 질책하고 검열하는 모습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많았죠. 그들의 모습이 상품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보게 되는 은근한 매력이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추천드리지는 않아요.
저는 육성 시뮬레이션보다 더 괴상한 게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같아요. 흔히 미연시라고 하는 그거요. 실제가 아닌 게임 캐릭터들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모니터 안에서 선배 사랑해요 어쩌고 하는 게 그렇게 좋은가. (써놓고 보니 아이돌 팬덤과 참 닮았네요.) 저도 오은영 선생님이 마음 아픈 아이들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눈물 훔치곤 하는데, 혹시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를 보면서 출연자들을 응원하는 시청자들의 마음도 그와 비슷한 것일까요? ‘유사 육아’라고 비꼬아봤는데 그런 게 아니라 순수하게 ‘리얼한 서사’를 즐기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어요. p. s. 저는 아이돌 멤버를 뽑는 서바이벌 예능 정말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발표무대에서 오들오들 떠는 어린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걸 소재로 단편소설을 써볼까 했는데 취재를 못해서 못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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