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Beer Bookclub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X다자이 오사무X청춘>

D-29
<게사와 모리토> 자신의 심연, 그 깊은 굴에 들어가 기어이 발굴을 끝마치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 첫사랑을 읽을 때는, 나의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사와 모리토를 읽을 때는, 그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어느샌가 저도 그들의 심연 발굴 작업에 동참하고 있는, 꽤 탐험적인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고, 동시에 몸을 내어주는 게사의 비참함을 저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자지만 왜 게사에게 마음이 쓰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별안간 아내에게 더욱 잘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 읽고 나서, 고개를 푹 숙이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 울음이 나올 뻔했습니다. 게사와 모리토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이해가 되었다? 이는 사실 적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사실 그들과 내가 하나가 된 것처럼, ‘공감(동기화)’했습니다. 굳이 ‘이해’라고 표현하여 그들과 내가 다른 사람임을 드러내는, 저의 기만적인 모습을 확인합니다.). 고개를 들고, 잠든 아내를 봅니다. 오늘도 꽤 많이 인내한 듯, 미간에 세로 주름이 엷게 잡혀있네요. 아이들 시험 기간이라, 하루 종일 학원에서 전쟁을 치렀음이 분명합니다. 현실을 해결해 나가는 아내, 자기기만에 푸념하는 남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남편이 되기로(노력하기로) 결심합니다. 내일 아침에도 30분 일찍 일어나, 계란 프라이와 요거트(위에 유기농 블루베리 + 유기농 꿀까지), 게이샤 커피까지 준비하기로 다짐합니다. 그리고 오전 11시, 늘 아파트 헬스장으로 운동을 가는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쿠팡이츠로) 맛있는 점심을 차려 놓기로 계획합니다.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에, 정말 혹시라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이러한 저의 노력, 그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너무나 솔직한 말씀들을 남겨주셔서 @내로 님의 글을 읽으면서 깊게 몰입했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네요. 제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했고요(저는 아직 미혼이라). 내로님이 말씀하시는 '노력'을 아내분 또한 느끼고 계실 거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깊은 감상에 등장한 현실적인 단어들(쿠팡이츠라던가, 유기농이라던가) 덕분에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짝사랑> 있지만 없는 짝사랑의 속성. 오토쿠가 푸른빛 속에서 슬픔을 보는 대목에서 시무라가 건넸던 파란술이 중첩되면서 쓸쓸해졌어요.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오토쿠도 시무라처럼 달았겠죠. 사라져버린 건 대상이 아니라 그때의 마음이라… 취해서 넋두리를 해보지만 이제는 기억을 영화처럼, 그때의 마음을 바라보는 처지가 된 것 같아요. 오토쿠가 짝사랑 했던 건 어쩌면 화자였을까? 혹은 청자였을까? 중요한 건 사라져 없어졌지만 분명하게 있었다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여름날 오후에 전철을 탔다가 어스름이 깔릴 때 도착했다는, 이제는 클리셰처럼 여겨지는 설정도 1917년에는 꽤 신선했을 것 같네요. 덕분에 저도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었어요. 제 삶의 여름은 오늘처럼 주구장창 비가 내렸던 것 같지만요. ㅎㅎ
<짝사랑> 있지만 없는 짝사랑의 속성. 오토쿠가 푸른빛 속에서 슬픔을 보는 대목에서 시무라가 건넸던 파란술이 중첩되면서 쓸쓸해졌어요.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오토쿠도 시무라처럼 달았겠죠. 사라져버린 건 대상이 아니라 그때의 마음이라… 취해서 넋두리를 해보지만 이제는 기억을 영화처럼, 그때의 마음을 바라보는 처지가 된 것 같아요. 오토쿠가 짝사랑 했던 건 어쩌면 화자였을까? 혹은 청자였을까? 중요한 건 사라져 없어졌지만 분명하게 있었다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여름날 오후에 전철을 탔다가 어스름이 깔릴 때 도착했다는, 이제는 클리셰처럼 여겨지는 설정도 1917년에는 꽤 신선했을 것 같네요. 덕분에 저도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었어요. 제 삶의 여름은 오늘처럼 주구장창 비가 내렸던 것 같지만요. ㅎㅎ
처음이라… 어리버리하다가 중복해서 올라갔네요. ㅠㅠ 누가 삭제해줬으면 좋겠는데… 흑흑, 죄송합니다. ㅠ
저도 종종 이렇습니다. 그믐은 삭제가 안되지만 29분 내로 수정은 되어서요. 다음에 이럴 땐 빠르게 수정을 눌러서 다른 말을 해 두는 팁이 있습니다!
좋은 방법이신데요. 정 할 말이 생각 안 나면 그냥 쩜 하나 남기셔도 되구요. ^^
좋은 팁 감사합니다~^^
저도 그래서 제 헛소리가 후회될 때 문장수집으로 글 내용을 재빨리 바꿉니다.
좋은 글을 두 번 읽을 수 있어 좋았는걸요. 신경 쓰이실 것 같아 같은 내용의 글 하나는 스포일러 지정으로 흐리게 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부턴 좀더 주의를 기울일 게요. ^^
<게사와 모리토> 사랑이라는 포장지가 벗겨졌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욕망의 추함, 천박함. 그것이 상대방이라는 거울에 비쳤을 때의 당혹감. 모리토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여자를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자기기만에 빠지고 게사는 자기환멸에 휩싸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같으면서 다른 면일 거에요. 게사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사악한 정욕에 대한 복수라고 하지만 혹시 사랑이었을까요?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의 불가항력에 파멸로 맞서는 게사의 모습이 못내 안타까워 허영이라 치부하고 싶지 않았어요. 모리토는 공포의 대상을 죽이게 될 테지만 더 큰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 것 같네요. 욕망을 위한 욕망은 다시금 욕망을 불러올 테니 말이에요. 사랑이든 아름다움이든, 놓으면 그만일 걸. 놓지 못하는 마음이 가여웠습니다.
게사가 지키고 싶었던 것, 끝에서 스스로 복수라고 말하지만, 한 마디로 정의하기에는 꽤 복잡해 보입니다. 어쩌면 @리타73 님이 말한 '사랑'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랑의 종류와 대상은 게사와 모리토 각자 다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청춘'과 연관 지은 작품들이니, 굳이 연결해 보면, 게사는 "자신의 청춘을 지키고 싶어 죽었다. (비슷한 의미로 자신의 청춘을 훼손시킨 모리토 때문에 죽는다.)"라고 저는 생각이 되는데,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동감합니다. 청춘을 대변하는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훼손되었다는 상실감은 게사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을 거에요. 오히려 훼손된 건 모리토의 시선인데… 게사가 자신을 믿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애증 또한 너무나 이해돼 마음이 아팠어요.
모리토의 훼손된 시선, 게사의 자신에 대한 믿음 부재. 며칠째 계속 씹고 있는데 아직 단맛이 나는 걸 보면, 정말 좋은 단편이네요. 모리토를 모히토라고 잘못 적었다가, 별안간 모히토가 먹고 싶어지는 밤이네요..
@내로 님과 @리타73 님의 글을 읽으니 아쿠타가와 작가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단편 하나로 이렇게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하다니.... 저작권 기한이 끝나서?인지 일본야후에서마저 쉽게 그것도 출판사 사이트 같은데, 원본을 구할 수 있어 '짝사랑'만 읽어 봤는데, 옛날 한자에 표현도 옛날 말투라 좀 어렵긴 했지만 묘한 분위기는 느껴졌어요. 두 분 글 보고 게사와 모리토 얼른 읽고 싶네요~(이젠 포기하고 한국어로 읽으려고요 ^^;;;)
@siouxsie 저는 게사와 모리토에 너무 공감한 나머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ㅠㅠ 꼭 공감 포인트가 있기를 바라요.
와우! 원본을 읽으셨다니… 그 능력이 엄청나게 부럽습니다.
저 일본어 공부한 이유가 원서로 읽고 싶어서였거든요~근데 한국책 읽는 것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서 이젠 한국어로 읽으려고요....에구 머리야...에구 내 눈
두 작품 모두 좋았습니다. 길이가 짧았는데도 일본문학에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몰라요(등장 인물들의 이름도 입에 잘 붙지 않았고요). <짝사랑>은 제목처럼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생각했는데요. 유명 연예인을 좋아해 본 적이 없어 주인공과는 조금 다른 결로, 제가 했던 짝사랑들(?)을 가만히 돌아봤어요. 우선 저는 이 감정을 매우 좋아하긴 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면서(물론 상대를 무섭게 해서는 안 되겠죠) 가만히 좋아하는 마음을 키운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편안하거든요. 아무것도 잃을 게 없고, 마냥 좋은 면만 좋게 바라보면 된달까요. 제가 먼저 상대에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는 영원히 제 마음을 알 수 없고, 그러면 거절당할 일도, 사랑 때문에 마음 아플 일도 없다는 점에서 짝사랑이라는 속성 자체를 좋아합니다. 연애를 하면서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이렇게 잘 만나다가도 언젠가는 서로가 미워지겠지? 그럼 차라리 이렇게 좋을 때 헤어지고, 평생 그 사람을 짝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이요.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싶은 저의 이상적인 욕심이죠. 궤변 같은데, 뭐 저는 대체로 이런 상상을 꽤 자주 하곤 합니다. 이건 상대가 싫다거나 헤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가장 좋은 순간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새드엔딩을 보고 싶지 않은 겁쟁이라서 그런 듯해요. 물론 꼭 새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자잘하게 부딪치는 지난함이 저는 좀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굳이 겪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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