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

D-29
체호프를 예시로 들었지만, 현재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거의 모든 단편소설들에 대한 정확한 특징 묘사인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모호하고 딱히 결말이랄 것도 없는 작품" 이라는 표현이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형태가 얼마나 새로운 것이었을지도 새삼 짐작해 봅니다. 전 장인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읽었던 독서법에 대한 내용도 연관지어서 생각해 보게 되네요.
역시나 체호프를 포함한 러시아 문학을 읽어보고 싶게 만듭니다.
영국이나 일본처럼 왕조시대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국가에서 집권자의 교체시기를 문화의 전환기로 보는 인식이, 사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꽤 낯선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규칙적인 선거를 통한 대통령 교체와는 전혀 다른, ‘언제 시작되고 끝날지 알 수 없는’ 시대의 전환기라니... 예전에 한참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많이 봤었는데, 일상적인 대화에서 “저 친구는 완전히 쇼와(昭和, 1926-1989)야” 같은 흔한 표현이 낯설면서도 흥미로웠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서도 수시로 등장하는 ‘빅토리아 시대’, ‘에드워드 시대’ 같은 언급에 관해 문득 거리감이 느껴져서 몇 마디 적어보았습니다. ㅎㅎ
그럼 일본이 영국(유럽?)을 따라한 걸까요? 그 쪽으로는 영 아는 게 없네요.
메이지(1868-1912)시기부터 시작된 근대 천황제가 일본의 서구화 기획과도 밀접하고, 영국 왕실 제도를 상당 부분 참고했던 면면들도 있는 걸 보면,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게다가 현직 천황 나루히토는 옥스퍼드에 유학하기도 했고요.
그러고보니 일본 근대문학의 첫 세대를 대표하는 나츠메 소세키(1867-1916)는 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국비 장학생으로 1900년대 초 런던에 체류하며 겪었던 여러 좌절감들을 글로 남겼었지요.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시기 런던에 있었군요. ㅎ) 한문학을 공부하던 일본 청년이 시대의 변화로 인해 서구 학문을 접하며 경험한 단절과, 동아시아인으로 영문학을 (영어로든 모국어로든) 공부하고 가르치며 느꼈을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입니다. (런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소세키는 결국 학생들에게 영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일본어로’ 글을 쓰는 전업 소설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문득 식민지 시기 경성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이효석 같은 작가들의 상세한 이력도 궁금해지네요.)
아, 재밌는데요? 나츠메 소세키와 버지니아 울프가 런던에 같은 시기에 있었다는 것도 그렇구요. 나츠메 소세키는 울프의 존재를 알고 있었겠죠? 그에 대해 남긴 글은 없는지 괜한 호기심이 생기네요.
그런데 소세키의 런던 체류 기간(1901-2)에 버지니아 울프는 아직 스무살이 되기 전이고, 이제 막 그리스어 공부를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어쨌거나 이번에 읽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특히 문학 관련) 에세이들을 바탕으로 소세키의 런던 시절 전후의 글들을 다시 살펴보고 싶은 생각도 드네요.
아하, 시기적으로 그렇게 겹치는 군요.
[넷째 날]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 (1924) 이번 편은 이전 편들에 비해 긴 편입니다. 문학론을 읽으며 이렇게 감동 받을 수 있다니, 오랜만의 경험이네요. 〈케임브리지 이단자들〉이라는 모임으로부터 "현대 소설에 대해 말해 달라는" 초청을 받고 발표한 글입니다. 풍부한 내용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 세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입니다. 1. 우리가 소설의 〈인물〉에 대해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2. 베넷 씨가 제기한 리얼리티라는 문제 3. 젊은 소설가들이 정말로 인물을 창조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 문제들은 아널드 베넷이 울프의 〈제이컵의 방Jacob's Room〉을 혹평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들입니다(각주 2 참고). 저는 몇 번 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먼 훗날에, 울프를 더 좋아하게 된다면, 좋아하게 된 계기로 꼽을 만한 글이 될것 같습니다. ㅎㅎ
제게도, 제목으로는 예상할 수 없었던 그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런 작품은 다시 읽고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인가를 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차이는 스턴과 제인 오스틴이 사물 그 자체, 인물 그 자체, 작품 그 자체에 관심을 두었다는 데 있겠지요.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주로 그리스 비극과 19세기 소설에서 '다시 읽고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인가를 하려는 욕망'이 생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문학을 말하는 울프의 언어가 친근하게 다가서서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몇백 년의 시차가 있지만 고전을 대하는 마음은 통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와 작가의 이런 구분, 독자 편에서의 겸손, 작가 편에서의 전문가연하는 태도야말로 작품을 변질시키고 무력하게 만듭니다. 작품이란 독자와 작가 사이의 긴밀하고 대등한 연합의 건강한 산물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9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이런 걸 추구하는 한국 소설이 있다면 당장 읽어보고 싶네요. 혹시 아시는 분은 추천!
가능한 한 아름답게,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실하게 묘사하도록 [...] 그녀는 우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정신이요, 삶 그 자체이기 때문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9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다섯째 날] 〈시, 소설, 그리고 미래〉 (1927) 울프는 이번 글에서 미래의 문학에 대해 예측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삶에 대한 태도"(p.104)라는 키워드입니다. "삶에 대한 태도"에 따라 각 시대 작가들의 작품은 고유한 특질을 가졌다고 분석합니다. 이제 시보다 산문이 "현대 정신의 특성으로 간략히 묘사하는 감정들"에 적합합니다. 앞으로 나타날 문학은 "시적인 특징들을 많이 지닌 산문이 될 것"이고, "그것은 시처럼 고양된 무엇을 지니되 산문의 평범함도 많이 지닐 것"이며, "극적이되 희곡은 아닐 터이니, 상연되는 대신 읽힐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우리는 생각과 꿈과 상상과 시를 원한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시, 소설, 그리고 미래,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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