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

D-29
만일 소설의 기법이라는 것이 살아서 우리 가운데 있다면, 분명 우리에게 자기를 사랑하고 영예롭게 할 뿐 아니라 파괴하고 괴롭혀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의 젊음은 새로워지고 그녀의 주권은 확립될 것이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여기서 소설의 기법이 '그녀'로 지칭되는 이유가 궁금해요.
남녀 관계에서, 당시의 인식으로는 전형적이라 할 수 있는 "여자의 포지션"에 비유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뮤즈(Muse)' 여신을 떠올리며 쓴 것 아닐까 (무책임하게) 추측해봅니다.
오후 외근이 야근으로 이어지는 일정이라 이동 중 밀리로 읽었습니다. 역시 종이책 집중도가.... 저한테 울프에 대한 선입견이 꽤 있었나 봐요. '아니, 이렇게 밀도 높게 소설을 바라본(쓴) 사람이었다고?, 의식의 흐름이란 건 대체 뭔데.' 했어요. 영국 소설과 러시아 소설의 비교가 흥미진진했고, 러시아 소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도(만...) 잠깐 들었네요. '정신'에 한없이 집중한 작가 같아요.
러시아 소설에 대해 좋은 말만 해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대부분 대작들이라 엄두는 잘 안나지만요.
어떤 장르의 문법으로서 '형식'이 현실을 그 '내용'으로 담을 그릇으로서 자리를 잡았다가, 그 '형식'이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면 다양한 형식 실험을 통해 현실을 담기 위한 모색을 하고, 그를 통해 또다른 '형식'이 자리를 잡는 과정의 반복이 문예사조의 역사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요? 삶이란, "규칙적으로 배열된 일련의 마차 등이 아니라 빛무리이며, 의식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반투명한 외피"이기에, 소설이란 장르가 삶이라고 담아 온 것이 저급한 '유물론적' 현실임을 비판하고 삶의 정신적인 면, '의식'과 '심리적 현실'을 담아내야 함을 역설하는 글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조이스의 시도가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혁명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강조점은 너무나 엉뚱한 데 놓여 있어서 처음에는 강조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눈이 어스름에 익숙해져서 방 안의 물건들을 분간하게 되면, 그제야 그 이야기가 얼마나 완벽한가, 얼마나 심오한가, 그의 비전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알게 된다. (...) 단편소설이란 모름지기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고 배운 우리로서는 도대체 이 모호하고 딱히 결말이랄 것도 없는 작품을 단편소설이라 해야 할지도 확신할 수 없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체호프를 예시로 들었지만, 현재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거의 모든 단편소설들에 대한 정확한 특징 묘사인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모호하고 딱히 결말이랄 것도 없는 작품" 이라는 표현이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형태가 얼마나 새로운 것이었을지도 새삼 짐작해 봅니다. 전 장인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읽었던 독서법에 대한 내용도 연관지어서 생각해 보게 되네요.
역시나 체호프를 포함한 러시아 문학을 읽어보고 싶게 만듭니다.
영국이나 일본처럼 왕조시대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국가에서 집권자의 교체시기를 문화의 전환기로 보는 인식이, 사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꽤 낯선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규칙적인 선거를 통한 대통령 교체와는 전혀 다른, ‘언제 시작되고 끝날지 알 수 없는’ 시대의 전환기라니... 예전에 한참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많이 봤었는데, 일상적인 대화에서 “저 친구는 완전히 쇼와(昭和, 1926-1989)야” 같은 흔한 표현이 낯설면서도 흥미로웠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서도 수시로 등장하는 ‘빅토리아 시대’, ‘에드워드 시대’ 같은 언급에 관해 문득 거리감이 느껴져서 몇 마디 적어보았습니다. ㅎㅎ
그럼 일본이 영국(유럽?)을 따라한 걸까요? 그 쪽으로는 영 아는 게 없네요.
메이지(1868-1912)시기부터 시작된 근대 천황제가 일본의 서구화 기획과도 밀접하고, 영국 왕실 제도를 상당 부분 참고했던 면면들도 있는 걸 보면,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게다가 현직 천황 나루히토는 옥스퍼드에 유학하기도 했고요.
그러고보니 일본 근대문학의 첫 세대를 대표하는 나츠메 소세키(1867-1916)는 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국비 장학생으로 1900년대 초 런던에 체류하며 겪었던 여러 좌절감들을 글로 남겼었지요.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시기 런던에 있었군요. ㅎ) 한문학을 공부하던 일본 청년이 시대의 변화로 인해 서구 학문을 접하며 경험한 단절과, 동아시아인으로 영문학을 (영어로든 모국어로든) 공부하고 가르치며 느꼈을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입니다. (런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소세키는 결국 학생들에게 영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일본어로’ 글을 쓰는 전업 소설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문득 식민지 시기 경성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이효석 같은 작가들의 상세한 이력도 궁금해지네요.)
아, 재밌는데요? 나츠메 소세키와 버지니아 울프가 런던에 같은 시기에 있었다는 것도 그렇구요. 나츠메 소세키는 울프의 존재를 알고 있었겠죠? 그에 대해 남긴 글은 없는지 괜한 호기심이 생기네요.
그런데 소세키의 런던 체류 기간(1901-2)에 버지니아 울프는 아직 스무살이 되기 전이고, 이제 막 그리스어 공부를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어쨌거나 이번에 읽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특히 문학 관련) 에세이들을 바탕으로 소세키의 런던 시절 전후의 글들을 다시 살펴보고 싶은 생각도 드네요.
아하, 시기적으로 그렇게 겹치는 군요.
[넷째 날]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 (1924) 이번 편은 이전 편들에 비해 긴 편입니다. 문학론을 읽으며 이렇게 감동 받을 수 있다니, 오랜만의 경험이네요. 〈케임브리지 이단자들〉이라는 모임으로부터 "현대 소설에 대해 말해 달라는" 초청을 받고 발표한 글입니다. 풍부한 내용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 세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입니다. 1. 우리가 소설의 〈인물〉에 대해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2. 베넷 씨가 제기한 리얼리티라는 문제 3. 젊은 소설가들이 정말로 인물을 창조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 문제들은 아널드 베넷이 울프의 〈제이컵의 방Jacob's Room〉을 혹평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들입니다(각주 2 참고). 저는 몇 번 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먼 훗날에, 울프를 더 좋아하게 된다면, 좋아하게 된 계기로 꼽을 만한 글이 될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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