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D-29
그런데 아마티아 센은 과연 따뜻한 사람이 맞을까요? 글만 따뜻하게 쓰는 사람인 건 아닐까요? ㅎㅎㅎ
@장맥주 그런데 대체로 좋은 사람이었던 듯해요. 아마르티아 센은 논쟁을 즐기긴 하지만, 논쟁에서 이기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던 아주 드문 캐릭터였던 것으로 보여요. 그 덕분에 많은 사람이 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4부, 5부에서도 자기와 의견이 같지 않은 사람과도 친교를 나눴던 여러 사례가 나오는 걸 보면.
오랜 지인인데도 솔직히 당혹함을 표현한 것도 신뢰가 가지만 무엇보다 미얀마의 로잉야족에 대한 차별적 여론 형성이 얼마나 사회적 파급이 큰지 그리고 이론 여론 조작을 막기 위해 적절한 타이밍의 정치적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지 집어내고 이게 미얀마 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반감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나가는 점도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사적인 내용만 가득할 까봐 개인적으로 그렇게 memoir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걱정했는데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전세계적인 이슈로 접근하는 게 과연 이 분 다운 사고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borumis 님처럼 느꼈어요. 그냥 ‘믿을 만한 지성인이구나’ 하고 느끼는 걸 넘어서서 ‘이 얘기를 이렇게 끌고 나가다니? 이거 혹시 노린 건가? 고수인데?’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학계도 지성계도 (그리고 문학계도 은근히) 내 편 네 편 가르는 최근의 풍토에 염증이 나 있었는데, 신선하기도 하고 호감도 확 생겼습니다.
위층 쪽마루를 너무나 향기롭게 해주었던 커다란 목련 나무는 더 이상 내 삶의 일부가 아니게 되었다. 다카의 옛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지, 이제는 누가 그들과 놀고 있을지, 우리 정원의 망고와 잭프루트는 어떻게 되었을지도 궁금했다. 나는 하나의 세계를 잃어버렸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48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나쁜교육을 아주 재미있게 읽으면서 관련 책들도 부지런히 찾아 읽었는데, 이후 화석자본을 못 읽어서 아쉬웠습니다. 다시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서장,1장부터 재밌고 참 따숩고ㅎㅎㅎ 태어나 지금껏 한 도시에서 한 가지 언어로 살아와 놔서... 이런 코즈모폴리턴의 이야기를 읽으면 간절히 다시 태어나고 싶어집니다^^
당신 집은 어디냐는 질문에 관한 이야기... 며칠 전 어느 영화제 감독과의 대화에서 있었던 일도 생각나요. 자이니치 감독님께 관객석에서 감독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 나와 잠시 어수선해졌었죠. 맥락이나 결이 약간씩 다르지만 결국 무지, 무례, 폭력... 사람들은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금방 가입하고 참여하고 싶습니다. 책을 주문하고 조금 늦게 서둘러 발맞추어 보겠습니다
BBC 진행자가 다시 말했다. "아, 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는 고향, 혹은 집이라는 개념이 없으시군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오히려 반대예요. 고향이 하나보다 많은 거지요. 고향이나 집이 단 하나여야 한다는 진행자님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진행자는 전혀 납득이 안 되는 눈치였다. '나의 단 하나의 무언가'를 끌어내려는 다른 질문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보려는 내 노력은 이제껏 비슷한 패배를 경험했다. (...) 그래도 음식에 대해서는 운이 좋으면 진행자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주기도 했지만, 더 진지한 주제인 '고향'이나 '집'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지 못했다. "정말로 선생님께서 고향이나 집이라고 생각하시는 어떤 특별한 장소가 분명히 있긴 있으시겠지요?"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26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저도 이 부분 재밌었어요. 대체로 저도 BBC 진행자처럼 생각하는 편이라 반성도 했고요;;
저도 집/고향은 하나라는 인식이 확고했는데~ (아이스 브레이킹 단골 질문 "고향이 어디세요?") 앞으로는 삼가려구요 ㅠㅠ
이 분의 특징이 다양한 정체성인 것 같아요. 다른 책에서 읽은 부분을 발췌해보면, '아시아인이자 인도인, 방글라데시에 선조를 둔 벵골인, 미국과 영국 영주권자, 경제학자이자 취미삼아 하는 철학자, 작가, 산스크리트어 학자, 세속주의와 민주주의의 강한 신봉자, 남자, 페미니스트, 이성애자이면서 게이와 레즈비언의 권리를 옹호하며, 비종교적 생활양식을 채택하고, 힌두교 배경을 가졌으며, 비브라만이며,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 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더군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목요일(7월 4일)은 2장 '벵골의 강들'을 읽습니다. 벵골 지역(인도 동부 서벵골과 방글라데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깊은 영향을 준 갠지스 강(강가 강)과 그 두 지류(파다 강, 바기라티 강)를 중심으로 벵골 지역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입니다. 1장에 이은 프롤로그 성격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 놀랍도록 커다랗고 장엄한 강변에 처음 섰을 때의 전율과 흥분을 기억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게 정말 강이에요? 이 물 짜지 않아요? 여기 상어 있어요?”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강변에는 마을이 많았다. 어떤 마을은 풍요로워 보였고 어떤 마을은 빈곤해 보였고 어떤 마을은 매우 위태로울 정도로 땅이 내려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 마을들이 정말로 보이는 것처럼 위험한지 물어보았고, 어머니는 그렇다고 알려주셨다. 사실 보이는 것보다 더 위험했다. 강둑 근처의 단단한 땅바닥처럼 보이는 것이 움직이는 강물이 땅을 삼키기 전에 꺼지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벵골의 강들은 이 지역에 번영을 가져다주는 원천이었지만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예측 불가의 위험 요인이기도 했다. 물길이 자주 바뀌는 강 주변에서 살아가는 삶의 어려움이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아름다움과 위험이 긴밀하게 엮인 이 조합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를 매료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일단 강의 물리적인 거대함에 매혹되었고 그곳에 사는 삶의 흥미로움에 압도되었다. 나중에 더 잘 알게 되듯이, 강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는 동벵골의 많은 사람들에게 마치 제2의 천성처럼 깊이 내재되어 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강의 양면적인 속성은 사회 안에서 안정적인 역할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고투에 대한 매력적인 비유로 제격이다. 사회 역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목숨을 쓸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강의 양면적인 속성은 사회 안에서 안정적인 역할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고투에 대한 매력적인 비유로 제격이다. 사회 역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목숨을 쓸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2장을 읽으면서 저의 유년기와 자연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저는 강북구 번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도봉구 쌍문동에서 자랐는데 이 시기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강북구나 도봉구의 자연 환경에 대해서도 어린 시절에 배운 건 전무하다시피 하고요. 자연 환경뿐 아니라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응답하라 1988》 배경이 쌍문동이라지요? 저한테는 그 드라마의 스틸컷이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져요. 제 기억에는 21세기 이전에 서울 주택가의 좁은 골목은 그렇게 보송보송하지 않았어요. 제 뇌리에는 ‘골목길=구정물이 고여 있는 공간’으로 박혀 있어요. 2024년의 서울이 엄청난 찬사를 받을 친환경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유년기를 보낸 1970년대, 1980년대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에서 (강돌고래는커녕) 붕어와 왜가리를 처음으로 본 게 1990년대였어요. 황조롱이와 두꺼비를 처음 본 것은 2000년대 초반, 뱀과 민물 게를 본 것은 2010년대, 고라니와 너구리를 본 것은 2020년대였어요. 아직 멧돼지나 삵을 서울에서 마주친 적은 없네요. 가끔 초등학생 조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아이들이 저보다 나무나 풀의 이름을 더 잘 알더라고요. 저보다 훨씬 더 자연 근처에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장맥주 저는 목포가 고향이고,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댁은 목포 인근의 농촌 마을이라서 방학 때만 되면 무조건 한 달 정도는 혼자서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댁에 가 있었어요. 저는 그렇게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도 방학 내내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댁 창고에 쌓여 있는 아버지, 삼촌들, 고모들이 보다가 남겨 놓은 책들만 뒤적거렸답니다. 그래도 한 가지 기억은 있어요. 혼자서 심심하니까 아침 먹고서 괜히 혼자서 걸어갈 수 있는 한계거리까지 걸었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었어요. 아직도 칼바람 부는 겨울에 추수가 끝나고 횡한, 살얼음이 곳곳에 얼어 있는 들판을 혼자서 걷는 장면이 생각나긴 합니다. 아마 제가 아마르티아 센과 같은 책을 쓴다면 목포 옆 영암의 겨울 들판을 혼자 걷는 모습을 회고할 것 같아요. (그게 지금 저의 정체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게 문제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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