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단편> 나는 인성에 비해 잘 풀린 걸까?

D-29
공채에 합격했지만 계약 형태는 프리랜서 아나운서였다. 프리랜서 주급은 프로그램 개수대로 매주 입금되었다. 입사하고서야 뉴스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를 하시는 분까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 방송국이란 비정규직이라는 살로 굴러가는 커다랗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수레바퀴였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27, 남궁인 외 지음
앉은자리에서 가난해지는 방법은 너무 쉬웠다. 부동산의 전화에 몇 번 네네, 라고 대답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앉아 사인을 휘갈긴 것만으로 삶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불을 끄기 위해 혜심은 시도 때도 없이 약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42, 남궁인 외 지음
벽과 바닥에 피아노가 그림자를 남기고 간 것처럼 어둡고 음울한 음영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 시선이 갈 때면 혜심은 피아노가 남긴 네모난 그림자가 자신의 마음속 그늘의 크기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53, 남궁인 외 지음
비정규직 이야기가 나오면 가슴이 먼저 답답해집니다. 제가 오래도록 비정규직으로 일했었기 때문일 거예요. 정규직보다 더! 많이! 더! 잘! 해야 그나마 계약직으로 전환되고, 거기서 더! 많이! 더! 열심히! 더! 일찍! 더! 늦게까지! 일해야 정규직으로 전환될까 말까 였으니까요. 방송국만이 아니라 대기업은 대부분 다 그런 거 같아요. 일은 많이 시키고 월급은 적고 아주 사소한 실수가 계약 파기로 연결되고 정규직 전환을 담보로 개인적인 생활조차 없게 만드는 거요. 제가 일을 안 한지 4년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재취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아니 안 하는 이유가 나이 문제도 있겠지만 제가 했던 직군에 다시 들어가려면 또 비정규직으로 들어가야 할텐데, 과연 나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 했습니다. 못 할 것 같아요. 나약한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10년 넘게 당했는데 다시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네요. 아~ 그리고 저도 피아노를 이사하면서 처분했던 적이 있어서 피아노가 있던 자리에 남은 자국이 어떤 건지 너~~~~무 알겠더라고요. ^^ 매 단편마다 저와 연결되는 부분이 하나씩은 꼭 있어서 마음은 아프지만 신나서 읽었습니다.
사람을 안 죽이려고 독이랑 싸우는 거보다 산 사람을 상대하는 게 마음 편하지. 후, 우리가 뭐라고 사람을 살려? 그건 조리장쯤 되니까 할 수 있는 개소리라고. 애초에 저거 안 먹으면 문제될 게 없는데. 뭐, 죽이고 싶은 놈한테 딴맘 먹었다면 모를까.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77p, 남궁인 외 지음
선릉점에서 본 사람을 한 시간 후에 선릉2호점에서 보기도 했는데 정말 그 사람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튜버 꿈나무라고 하든 신사업 구상가라고 하든 어쨌거나 그곳에는 꿈을 좇는 몽상가들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를 인생템을 찾아 그들은 런치 요가와 홈 칵테일, 향수 레이어링, 명상, 마음을 치유하는 싱잉볼 클래스를 들었다. 민지는 여자가 위워크 생태계를 구성하는 주력 인재군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몽상가거나 몽상가들을 상대로 희망을 파는 사람이거나. -한은형의 <식물적 관상> 중에서-
연출이 다르든가. 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가 좋아 보이더라고. 어떤 식으로든 의식 있음을 보여준다면 좋겠죠. 우리는 이런 스탠스다, 이런 거. 난 내가 하는 일이 사회운동이었으면 해요.” ‘의식 있음’ ‘사회운동’ ‘스탠스’. 보이사의 말을 듣다가 민지는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그 말들을 적었다. -한은형의 <식물적 관상> 중에서-
그저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었다. 민지는 풀 먹는 호랑이의 관리자였고, 스태프 사이에 분란이 일지 않게 조정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앙투안은 시간당 얼마를 받을까? 만이천원?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달에 백이십만원이었다. 백이십만원을 받아서 오십만원을 월세로 내고, 십오만원으로 식사 구독을 하면 오십만원가량이 남는다. 오십만원이나 남는다는 게 앙투안의 기분을 그토록이나 좋게 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보다 이십만원을 더 받는다는 게 앙투안에게 우월감을 주었을까? 백인과 아시아인보다 우위에 섰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민지는 앙투안에게 돈을 많이 받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네가 특별한 줄 알지? 흑인이라서 많이 받는 거야. 비건 식당의 ‘의식 있음’을 위한 액세서리라고. 인종차별이기도 하고, 이 바보야. 흑인이라는 이유로 특별 대접을 받는 건데 기분이 좋아? 정말 그래? - 한은형의 <식물적 관상> 중에서 -
“입이 있다고 해서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민지씨도 알잖아. 하고 싶은 말 못 해서 민지씨도 아프고, 나도 아파. 나라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까? 혐오 발언도 금지, 차별도 금지인 이 시대에 혐오와 차별을 역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문제가 될까? 법과 제도가 엉망진창인 나라에서 그걸 활용하는 게 문제가 될까? 어디 가서 이런 말 못 하지.” 블루 오션이라서 비건을 한다는 말처럼 명쾌한 답은 없었다. 위선자가 아니라 위선을 이용하는 사업가였다니, 민지는 머리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관점에서 생각하게 하는 사람 곁에서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 뻔했다. -한은형의 <식물적 관상> 중에서-
문제 3) ‘월급사실주의 동인 작가님들 알리는 실없는 퀴즈’ 또 나갑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두 번째 단편은 손원평 작가님의 「피아노」입니다. 손 작가님은 ‘월급사실주의 2024’ 작업에서 가장 마지막에 섭외되었어요. 워낙 바쁘셔서 모실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성사되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재작년인가, 손원평 작가님의 단편을 읽고 ‘엇, 단편도 잘 쓰시네!’ 하고 무척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은 따로 모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작가님 중에 제가 뵈었던 분도 있고 한 번도 못 뵌 분도 계십니다. 다행히 2024 멤버는 그래도 다 한 번 이상 뵈었는데, 손원평 작가님과는 서울이 아닌 곳에서 딱 한 번 짧게 만나 인사를 나눴습니다. 저는 손 작가님을 언제 어디서 뵈었을까요? ① 2023년 파주 심야 북토크 행사에서 만나 함께 무대에 올랐다. 지혜의숲에서 했는데 임성순 작가님도 옆에 계셨다. ② 2019년 대만국제도서전에 각각 초대 받아 타이완에서 언론 인터뷰를 같이 했다. 한국 소설의 특징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같이 곤혹스러워했다. ③ 2020년 인천공항 출국장 스타벅스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했다. 손 작가님은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장강명은 아내와 도쿄로 가는 길이었다. ④ 2017년 제주시에서 열린 제주4.3평화문학상 시상식장에서 만나 점심을 같이 먹었다. 떨어져 앉아서 별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⑤ 2018년 충남대표도서관 개관 기념 손원평 작가님 북토크에 장강명이 가서 사인을 받아 왔다. 그때부터 월급사실주의 포섭을 노렸다.
4번으로 찍겠습니다~^^ 손원평 작가님의 4.3 문학상 수상 이력에 낚시당하는 걸로~장작가님 보기 문제가 너무 구체적이라 이제는 그냥 찍겠습니다^^;;
운을 시험해 보십시오~~! ^^
계속 틀리고 있지만 찍다 보면 언젠가는 맞겠지요? '짧게 만나 인사를 나눌' 상황은 3번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나머지는 행사 전후에 인사 이상의 몇마디를 나눌 기회가 있었을 것 같아서요. 그나저나, 실없는 퀴즈라 하시는데, 선택지 구성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이 시는 것 같아서 갈수록 퀴즈가 어려워지네요~
전 제가 퀴즈 이해도도 떨어지고 답도 전혀 못 맞히는 거 같아서 포기했어요 ㅎㅎㅎ
맞추는 게 이상한 퀴즈들이에요. ㅎㅎㅎ 퀴즈 선택지에 정성이 느껴지신다면... 그게 바로 정답입니다. 제가 지금 써야 할 글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거기에서 도망쳐서 퀴즈를 내고 있습니다. 시험 전날 방 청소를 하면 그렇게 정성스럽게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
오, 후일담 넘 재밌네요. 마지막으로 섭외된 분이 손 작가님이셨군요! 저는 또 틀려도(!) 한번 해보렵니다. 제 답은 4번, 4.3 평화문학상 시상식 뒤풀이. 떨어져 앉아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말씀을 못나누시는 상황요! 제 상상 속에서 이 상황이 가장 재미있었(!) 습니다. 근데 보기가 정말 다 너무 그럴듯해서 틀릴 것을 먼저 예상하고 들어가요 :)
문제 3번 정답은 ④ 제주4.3평화문학상 시상식장이었습니다. 정답률이 50퍼센트나 되는군요(문제가 너무 쉬웠나...?). @거북별85@유안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제 마음을 보내드려요! ㅎㅎㅎ
와!! 신나요. 문제는 아주 어려웠는 걸요! +_+
이 정도 난이도를 유지하며... 월급사실주의 멤버 소개와 맛집 소개를 같이 해보겠습니다! ^^
월급사실주의에서 월급은 일종의 물, 화분속의 화초에게 주는 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맞춰 주는 물을 먹어야 화초는 살아있는 척, 아름다운척, 활기있는 척하지요. 물을 주지 않으면 금세 말라죽는 허약한 존재이면서, 그 물에 뭔가 대단한 실존이 있는 양 의미부여하고 철학있는 양 하는 것도 좀 하찮은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긴 합니다. 표제작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에서 작가가 "사회생활에선 무능해서 비웃음을 사느니 약간의 비열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할 때의 비열함의 참된 표본은 <식물적 관상>의 보이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비열함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죠. 보이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성은 낡은 가치야, 이상주의는 다 망했어.'라고요. 그걸 누가 모릅니까. 그러나 그게 자신이 사람을 도구화하고, 흔히 말하듯 휴먼리소스화 하여 합리적 이용이라는 명목 아래에 축재의 수단으로 함부로 굴려도(심어서 물을 주어도) 된다는 것과는 상관이 없지 않은가요. 보이사는 참으로 대중의 취향과 요구, 호불호 여부를 기민하고 감지하고 현실화해내는 탁월함이 있으니 함부로라는 말이 무책임하긴 합니다. 게다가 보이사의 첨단 취향과 그에 결합하는 식물들도 자신의 이쁜 값을 스스로 알고 그에 합당한 가격을 받아 내려고 애쓰니 손익이 딱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민지는 좀 느린 편이긴 하지만요. 너무 나가는 것 같지만, 보이사와 등장하는 화초들의 관계를 보면서 문득 오셀로와 이아고의 관계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아고의 공작에 놀아나는 오셀로 같지만, 사실 오셀로의 마음이 곧 이아고의 공작을 불러일으키듯이, 보이사의 무도함과 화초들의 비싼 값에 팔려가려는 욕구는 동전의 앞뒤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우리 대다수의 화초들은 각자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이 존재의 근거인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뽐내 봤자 대다수는 보이사가 관리하는 프랜차이즈의 장식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동굴 안벽에 비친 불의 그림자를 보며 환호하는 것들에 불과하다는 말이지요. 어지간한 날카로움없이는 불의 실체를 알 길이 없어 농락당하는 판인데, 요즘 시대에는 그 실체를 알고 싶어하지도 않거니와, 혹 알게되더라도 그 농락하는 실체의 마름이 되는 것을 벼슬로 알고 행세하는 것이 지혜로 대접받기도 합니다. 그러니 보이사의 스탠스는 화초의 세계관 구축과 딱 맞아떨어지는 그 지점에 닿아 있는 게 아닌가 싶었고 그점에서 오셀와와 이아고를 떠올렸습니다. <식물성 관상>은 이 한 편만으로도 이 작품집 한 권 값을 한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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