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2>도 혼자 읽어볼게요.

D-29
오늘은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하는 날이다. 험상궃은 눈썹과 사나운 얼굴을 한 코딜리어의 아버지가 식탁 상석에 앉는다. 그리고 육중하고, 신랄하고, 위협적인 매력의 엄청난 힘으로 나를 압도한다. 그는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객하는가가 정확하고 중요하지,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코딜리어의 아버지는 슬픈 척하며 말한다. "나는 노파들한테 시달리고 있어. 여자들만 가득한 집에 유일한 남자라니. 아침에 면도하러 목욕탕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한단다." 조소하는 듯한 태도로 그는 내 동정과 공모를 구한다. 그러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양이 눈 2 p.103,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조소 2 嘲笑 흉을 보듯이 빈정거리거나 업신여기는 일. 또는 그렇게 웃는 웃음. 공모 2 共謀 ‘공동 모의’를 줄여 이르는 말. 모의 5 謀議 1. 명사 어떤 일을 꾀하고 의논함. 2. 명사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범죄를 계획하고 그 실행 방법을 의논함. 또는 그런 일.
너무 익숙한 모습이다...
코딜리어는 우리가 엎지른 물로 탁자에 낙서를 한다. "내가 파던 그 구덩이들 기억나?" 그녀가 묻는다. "무슨 구덩이들?" 나는 되묻는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집 뒤뜰에 있던 구덩이들 말이야. 어휴, 거기다 얼마나 구덩이를 만들고 싶던지. 하나 파기 시작했는데, 땅이 너무 딱딱했어. 바위가 가득 있더라고. 그래서 다른 데를 팠어. 방과 후에 계속해서 했어. 매일매일. 삽질을 하도 해서 손에 물집이 잡혔어." 코딜리어는 생각과 회상에 잠긴 듯한 미소를 짓는다. "구덩이를 뭐에 쓰려고 했는데?" 나는 묻는다. "안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있고 싶었어. 나 혼자서." 나는 웃음을 터뜨린다. "왜?" "모르겠어. 나만의 어떤 장소를 갖고 싶었던 것 같아.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 어렸을 때 나는 앞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곤 했어. 가만히 앉아서 아무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비켜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어." "무엇으로부터 안전한데?" 내가 묻는다. 코딜리어가 말한다. "그냥 안전한 거.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빠에게 말썽을 많이 부렸던 것 같아. 아빠가 화를 낼 때 안전하게 피하려고. 아빠가 언제 화를 낼지 알수 없는 노릇이었거든. "그 아니꼬운 웃음 얼굴에서 당장 없애지 못하겠어." 아빠는 항상 그렇게 말했어. 나는 아빠에게 항상 반항하곤 했어." 그녀는 재떨이에서 연기를 내며 타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끈다." 나는 그 집으로 이사 가기가 싫었어. 퀸 메리 학교 아이들도, 줄넘기처럼 지루한 놀이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 너를 제외하고는 좋은 친구들도 없었어." 코딜리어의 얼굴이 해체되었다가 다시 형성된다. 그 얼굴 아래에서 그녀의 아홉 살 때 얼굴이 형태를 갖추는 것이 보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마치 밖의 어둠 속에 서 있는데, 불 켜진 창문에서 차양이 갑자기 걷히며 그 안에서 진행되던 모든 일들이 선명하고 자세하게 드러난 느낌이다. 그러한 광경이 순간적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이 사라진다. 마치 위험한 무엇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처럼 머리로 피가 몰려들고, 위장이 한꺼번에 수축된다. 도둑질하거나 거짓말하다 들킨 느낌, 나 몰래 내 험담을 하는 것을 엿들은 느낌이다. 그것과 같은 종류의 수치심, 죄책감, 공포감, 그리고 자신에 대한 차가운 역겨움이 밀려온다. 그러나 이런 감정들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거나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이곳, 화요일, 5월에, 서니사이드의 붉은색 탁자에 앉아, 코딜리어가 남은 밀크셰이크를 세련되게 빨대로 빨아들이는 것을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그녀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다. "나 또 하나 생각났어. 목욕을 하지 않은 병아리는 왜 길을 건넜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갔을까?" 내가 말한다. "왜?" 코딜리어가 묻는다. "왜냐하면 그 병아리는 더러운 반역자였거든." 나는 말한다. 코딜리어는 퍼디처럼 눈을 굴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아주 웃긴다." 그녀가 말한다. 나는 눈을 감는다. 머릿속에 정방형 어두움과 자주색 꽃들이 떠오른다.
고양이 눈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차양 2 遮陽 명사 햇볕을 가리거나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처마 끝에 덧붙이는 좁은 지붕.
구덩이. 모른 척 덮어두었던 일레인의 상처를 작동시키는 매개체. <고양이 눈1>에서도 괴롭힘의 시작이 구덩이가 아니었나.
나는 코딜리어를 피하기 시작한다. 왜 그런지 나도 이유를 모른다.
고양이 눈 2 p.11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어떤 날에는 코딜리어가 나를 기다려서,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고, 나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하긴 돌이켜 보면 나는 말을 많이 한 적이 별로 없었다. 한참 후 코딜리어는 지나치게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내 얘기만 계속했네. 너는 어떻게 지내니?" 그러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별일 없어." 때로 그녀는 그것으로 농담을 삼는다. "그러면 나는 충분히 얘기를 했으니까,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봐." 그러면 나는 그 농담에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별 할 말 없어."
고양이 눈 2 p.111-11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코딜리어는 마치 그 시절이 황금기였다는 듯이 회상한다. 아니, 그때가 지금보다는 더 나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더 많은 일들을 기억해 내는 것이 달갑지 않다. 그녀의 더 많은, 더 어두운 추억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다. 그리고 곤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점잖게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 그녀는 가식적인 유쾌함의 가장자리에서 균형 잡기를 하고 있으며, 언제든 정반대 쪽인 눈물과 절망 속으로 고꾸라질 수 있는 노릇이다. 그녀가 그런 식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 눈 2 p.11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코딜리어에 대해 마음을 굳게 다잡는다. 그녀는 멍청이같이 행동하고 있다. 그녀는 이곳에, 이 청송맞고 질질 끌어 온 천박한 비참함 속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그녀에게는 온갖 종류의 선택권과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의지 부족,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정신 차려, 다시 시작해 봐."
고양이 눈 2 p.11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가 봐야 할 곳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코딜리어도 낌새를 챈다. 비록 곤경에 처해 있지만 거짓 변명을 알아차리는 그녀의 본능은 더 날카로워졌다. "물론이지. 전적으로 이해할 만한 일이야." 그녀는 말한다. 냉담한, 어른 같은 목소리다.
고양이 눈 2 p.119-12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서두르고 바쁜 척을 하면서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이유 중 하나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아서라는 것을 나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녀의 어머니는 나를 책망하는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마치 코딜리어의 현재 모습이 내 책임이라는 듯이, 마치 코딜리어가 아니라 내 모습에 실망했다는 듯이. 내 실수가 아닌 일로 왜 내가 그런 눈초리를 견뎌야 하는가? "안녕, 코딜리어." 나는 정면 복도에서 인사한다. 코딜리어의 팔을 잠시 붙잡았다가 그녀가 내 뺨에 키스하기 전에 재빨리 돌아선다. 뺨에 키스하는 것은 그 가족의 관습이다. 코딜리어가 나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녀의 옜 생활, 아니면 그녀와 관련된 무엇을. 내가 그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자신에게 스스로의 잔인함과 무관심, 친절함의 부재에 놀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안도감을 느낀다. "곧 전화할게." 내가 말한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코딜리어는 알아차리지 못한 척한다. "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 서로를 예절의 방패로 보호하며 그녀가 말한다. 나는 거리를 향해 오솔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본다. 현관의 창문 뒤에 희미하게 번진 달빛 같은 그녀의 얼굴이 있다.
고양이 눈 2 p.120-12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자신에게 스스로의 잔인함과 무관심, 친절함의 부재에 놀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안도감을 느낀다.
고양이 눈 2 p.12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뭔 줄 안다.
우리는 이제 변변치는 못하지만 기성세대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한때 내가 알던 사람들은 자살이나 오토바이 충돌이나 다른 폭력적인 사고로 죽었다. 이제 사람들은 병으로 죽는다. 심장마비, 암, 몸의 배반. 세계는 내 또래의 사람들, 머리가 빠져 가고 건강을 걱정하는 내 또래의 남자들에 의해 굴러간다. 그리고 그 사실에 나는 경악한다. 지도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을 때는 그들의 지혜를 신뢰했다. 그들이 분노와 악함과 사랑받으려는 욕구를 초월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나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나는 신문과 잡지에 실린 얼굴들을 보며 궁금해한다. 어떤 탐욕, 어떤 분노가 그들을 내몰고 있는 것일까?
고양이 눈 2 p.128-12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얼마나 됐으려나. 중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때까진 더 기대하고 바랐던 거 같다. 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부터 어른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나고 체념했고 오히려 그들을 업신여겼다. 가난하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며, 예쁘지 않은, 어린 여성으로 사는 삶이 어떤 이와는 아예 다른 세상이라는 걸 깨닫고 자주 분노한다.
세계는 내 또래의 사람들, 머리가 빠져 가고 건강을 걱정하는 내 또래의 남자들에 의해 굴러간다. 그리고 그 사실에 나는 경악한다.
고양이 눈 2 p.12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우리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절감하며 침묵에 빠져든다. 한 때 되고자 꿈꾸었던 것들을 이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존은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말을 쉽게 쓸 수 없다. 잠재력이란 오직 한정된 유효 기간을 가진 것이다.
고양이 눈 2 p.12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아픈 사실.
나는 뉘우치는 척하며 말한다. "내 실수야. 인터뷰하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었거든. 나는 고약한 늙은 마녀가 되어 가고 있어." 존이 말한다. "안 그랬다면 나는 오히려 실망했을 거야. 상대방의 진땀을 빼 놓는 것. 당신을 대하는 사람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지." 우리는 함께 웃는다. 그는 나를 안다. 내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고양이 눈 2 p.129-13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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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이 자신 있게 고른 이 시대의 고전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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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그믐연뮤클럽] 8. 우리 지난한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여정, 단테의 "신곡"[그믐연뮤클럽] 7.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성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
[그믐연뮤클럽] X [웰다잉 오디세이 2026]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계속계속 책읽기 by Kiara
2024.01.19.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2024.01.17. <참 괜찮은 눈이 온다 _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2024.01.16. <이 별이 마음에 들어> 김하율2024.01.14. <각자 도사 사회> 송병기2026.01.01. <아무튼, 데모> 정보라2026.01.02. <버드 캐칭>
2026년에도 한강 작가의 책 읽기는 계속됩니다!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작별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2탄)흰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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