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2>도 혼자 읽어볼게요.

D-29
나는 코딜리어에 대해 마음을 굳게 다잡는다. 그녀는 멍청이같이 행동하고 있다. 그녀는 이곳에, 이 청송맞고 질질 끌어 온 천박한 비참함 속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그녀에게는 온갖 종류의 선택권과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의지 부족,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정신 차려, 다시 시작해 봐."
고양이 눈 2 p.11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가 봐야 할 곳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코딜리어도 낌새를 챈다. 비록 곤경에 처해 있지만 거짓 변명을 알아차리는 그녀의 본능은 더 날카로워졌다. "물론이지. 전적으로 이해할 만한 일이야." 그녀는 말한다. 냉담한, 어른 같은 목소리다.
고양이 눈 2 p.119-12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서두르고 바쁜 척을 하면서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이유 중 하나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아서라는 것을 나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녀의 어머니는 나를 책망하는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마치 코딜리어의 현재 모습이 내 책임이라는 듯이, 마치 코딜리어가 아니라 내 모습에 실망했다는 듯이. 내 실수가 아닌 일로 왜 내가 그런 눈초리를 견뎌야 하는가? "안녕, 코딜리어." 나는 정면 복도에서 인사한다. 코딜리어의 팔을 잠시 붙잡았다가 그녀가 내 뺨에 키스하기 전에 재빨리 돌아선다. 뺨에 키스하는 것은 그 가족의 관습이다. 코딜리어가 나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녀의 옜 생활, 아니면 그녀와 관련된 무엇을. 내가 그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자신에게 스스로의 잔인함과 무관심, 친절함의 부재에 놀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안도감을 느낀다. "곧 전화할게." 내가 말한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코딜리어는 알아차리지 못한 척한다. "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 서로를 예절의 방패로 보호하며 그녀가 말한다. 나는 거리를 향해 오솔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본다. 현관의 창문 뒤에 희미하게 번진 달빛 같은 그녀의 얼굴이 있다.
고양이 눈 2 p.120-12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자신에게 스스로의 잔인함과 무관심, 친절함의 부재에 놀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안도감을 느낀다.
고양이 눈 2 p.12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뭔 줄 안다.
우리는 이제 변변치는 못하지만 기성세대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한때 내가 알던 사람들은 자살이나 오토바이 충돌이나 다른 폭력적인 사고로 죽었다. 이제 사람들은 병으로 죽는다. 심장마비, 암, 몸의 배반. 세계는 내 또래의 사람들, 머리가 빠져 가고 건강을 걱정하는 내 또래의 남자들에 의해 굴러간다. 그리고 그 사실에 나는 경악한다. 지도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을 때는 그들의 지혜를 신뢰했다. 그들이 분노와 악함과 사랑받으려는 욕구를 초월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나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나는 신문과 잡지에 실린 얼굴들을 보며 궁금해한다. 어떤 탐욕, 어떤 분노가 그들을 내몰고 있는 것일까?
고양이 눈 2 p.128-12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얼마나 됐으려나. 중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때까진 더 기대하고 바랐던 거 같다. 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부터 어른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나고 체념했고 오히려 그들을 업신여겼다. 가난하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며, 예쁘지 않은, 어린 여성으로 사는 삶이 어떤 이와는 아예 다른 세상이라는 걸 깨닫고 자주 분노한다.
세계는 내 또래의 사람들, 머리가 빠져 가고 건강을 걱정하는 내 또래의 남자들에 의해 굴러간다. 그리고 그 사실에 나는 경악한다.
고양이 눈 2 p.12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우리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절감하며 침묵에 빠져든다. 한 때 되고자 꿈꾸었던 것들을 이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존은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말을 쉽게 쓸 수 없다. 잠재력이란 오직 한정된 유효 기간을 가진 것이다.
고양이 눈 2 p.12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아픈 사실.
나는 뉘우치는 척하며 말한다. "내 실수야. 인터뷰하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었거든. 나는 고약한 늙은 마녀가 되어 가고 있어." 존이 말한다. "안 그랬다면 나는 오히려 실망했을 거야. 상대방의 진땀을 빼 놓는 것. 당신을 대하는 사람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지." 우리는 함께 웃는다. 그는 나를 안다. 내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고양이 눈 2 p.129-13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우리는 함께 웃는다. 그는 나를 안다. 내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고양이 눈 2 p.13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재밌다. 내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아는 사이라니. 묘하게 좋아 보이는데 이 이유로 <고양이눈 1>에서 메모해둔 글귀가 떠오른다. '존과 내가 공유한 것은 교통사고와 비슷한 것이었는데, 단 우리는 그걸 서로에게 가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었다. 서로에게 상어였으며 동시에 구조선이기도 했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기에 좋아 보이고 조금 부럽기도 하고 곱씹어보면 두렵기도 하네.
내가 던진 것 중 최악의 물건은 작은 휴대용 텔레비전이었다. 침대 위에 올라서서 스프링의 탄력을 빌려 힘껏 던졌다. 그러나 내던지는 순간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오 맙소사, 그가 피해야 할 텐데!' 한때 나는 존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나는 우리가 그때 서로에게 좀 더 고상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에 가벼운 후회를 느낀다. 그 모든 폭발, 그 무모함, 그 모든 선명한 색채의 잔해물은 여전히 놀라운 것이다. 놀랍고 고통스럽고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고양이 눈 2 p.13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내가 그로부터 다소 안전해지고 그 역시 나로부터 안전해진 지금, 나는 그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자세하게 회상할 수 있다. 다른 누구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옛 연인은 오래된 사진과 같은 운명을 걷기 마련이다. 그것은 천천히 산(酸)에 씻기는 것처럼 서서히 바래 버린다. 처음에는 점과 여드름이, 다음에는 색과 명암이, 그다음에는 얼굴 전체가 사라져 버리고, 결국에는 대략의 윤곽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내가 일흔 살이 되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 색다른 광희, 기괴한 강박 같은 것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내면의 허공을 배회하는 한두 마디 단어만이 남을 것이다. 여기 발가락 하나, 저기 콧구멍, 아니면 콧수염, 이렇게 다른 표류물 가운데서 작게 흔들리는 해초처럼 부유할 것이다. 내가 앉은 검은 탁자 맞은 편에서 존은 비록 쇠했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호흡하고 있다. 내 안에는 작은 고통의 파편, 그리움의 파편이 있다. 아직 가지 마! 지금은 때가 아니야! 가지 말아 줘! 언제나 그렇듯이 나 자신의 감상과 약함을 그에게 드러내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다.
고양이 눈 2 p.130-13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광희 1 狂喜 미칠 듯이 기뻐함.
남자를 용서하는 것은 여자를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고양이 눈 2 p.133,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뭔 줄 안다. 나도 그렇다.
"가는 곳까지 바래다줄게." 보도로 나오자 존이 말한다. 나도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좋다. 둘 사이에 얽힌 문제가 없는 지금, 우리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왜 그와 사랑에 빠졌는지 알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는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다.
고양이 눈 2 p.133-13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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