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2>도 혼자 읽어볼게요.

D-29
... 이거 근데 난데. 내가 이렇게 코딜리어처럼 굴면서 몇몇의 일레인을 만들었을까. 조졌다.
아버지가 수돗물이나 전기도 없는 노바스코샤의 오지에 있는 농장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만들고 도끼질을 할 줄 알았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도끼와 톱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아버지는 부엌 탁자에 앉아서 등유 램프 아래에서 공부하며 고등학교 과정을 통신으로 마쳤다. 제재소 막사에서 일하고 토끼 우리를 청소해서 번 돈으로 대학을 마쳤으며, 너무 가난해서 여름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 텐트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스퀘어 댄스파티장에서 컨트리 피들을 연주했으며, 스물두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어 보았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하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아버지가 내가 알기 이전의, 신화와 같은 자기만의 삶을 가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냥 항상 그랬듯이 똑같은 나의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너무 많이 알면 결국 그 사람들의 손아귀에 굴복하게 되는 법이다. 그들은 자기들에 대한 나의 관심을 요구하고, 자기들 행동의 근원적 동기를 이해하도록 강요하며, 결국 나를 유약하게 만든다.
고양이 눈 2 p.48-4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마지막 문장도 찔리는데... 이걸 어쩌지. 관심을 요구하고 행동의 근원적 동기를 이해하길 갈구하는 행동을 안하고 살 수가 있나...
"너무 지겨워!!!" 코딜리어는 밑줄을 세 겹 그어 가며 이렇게 쓴다. 지겹다는 사실에 매우 열광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녀의 수다스러운 문체는 진실되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때로 내가 자신을 쳐다보는 줄 모를 때 코딜리어를 보곤 한다. 그녀의 얼굴은 잠잠하고 아득하고 무감각하게 보인다. 마치 그녀가 그 안에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이내 코딜리어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웃는다.
고양이 눈 2 p.5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코딜리어와 일레인이 친하게 지내는 게 요상했다. 내가 뻔하게 예상했던(이를 갈며 복수) 그림대로 가지 않는 군. 이 부분 다시 읽으면서도 묘하다. 자신을 쳐다보는 줄 모를 때의 남의 얼굴을 볼 때 재밌고 신기하지. 근데 그 얼굴이 코딜리어의 얼굴이라니. 일레인이 코딜리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행위에서 많은 생각이 스쳐갈 게 느껴진다.
요상하다고 뱉어 놓고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냥 그 친구와 잘 지냈다. 그럼에도 절대 잊지 못했다. 함께 깔깔대면서도 전혀 웃기지 않았다. 일레인도 나와 같았겠지. 그래서 코딜리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그리기 무척 힘들었다. 코딜리어를 한 시점, 어느 나이에 고정시키는 것이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열세살 정도의 그녀를 그리고 싶었다. 반항적인, 전투적으로까지 보이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그녀를. "그래서?" 그러나 그 눈이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 이 작품 속의 눈은 강해 보이지 않는다. 그 눈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자신감 없고 우유부단하며 원망하는 듯한 표정을 담고 있다. 겁에 질린 얼굴. 이 그림 속에서 코딜리어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코딜리어가 두렵다. 코딜리어를 만나는 것은 두렵지 않다. 코딜리어가 되는 것이 두렵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언제였는지 잊어버렸다.
고양이 눈 2 p.63,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이제 곧 나오는 걸까. 코딜리어처럼 된 일레인...
우리가 묘사한 스미스 씨 가족은 매력 없고 인색하며 밀가루 반죽처럼 무겁고 하얀 마가린처럼 지루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하얀 마가린을 디저트로 먹는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들의 신앙심과 적은 수입과 발크기, 그리고 그들 가족을 요약적으로 보여 주는 고무나무를 비웃는다. 마치 아직도 그들을 알고 있는 양, 우리는 모든 것을 현재 시제로 이야기한다. 이 놀이는 내게 충족감을 준다. 나 자신의 잔인성을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이것을 왜 이토록 즐기는지, 아니면 코딜리어가 왜 이런 놀이를 하는지, 왜 이 놀이를 하자고 고집하는지, 왜 놀이가 시들해진다 시으면 다시 활기를 찾도록 몰아 대는지 나는 묻지 않는다. 코딜리어는 나를 곁눈질로 살펴본다. 마치 우리 둘 다 분명히 야비한 배신행위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 짓거리를 내가 얼마나 더 오래, 더 심하게 할지 가늠해 보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그레이스의 모습이 스치듯 다시 떠오른다. 어깨끈 달린 치마와 보풀이 인 스웨터를 입고 앞 현관문을 지나 집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 그녀는 우리 모두의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 코딜리어의 묘사에 따르면, 단 한 번도 우리의 사랑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
고양이 눈 2 p.7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공동묘지가 우리 앞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협곡은 왼쪽에 있고, 새 콘크리트 다리가 살짝 보인다. 나는 옛 다리와 그 아래의 시내를 잠시 떠올린다. 우리 발 아래에서 죽은 자들이 녹아들어 차갑고 맑은 물로 변해 언덕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즉시 잊어버린다. 공동묘지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린다. 이곳은 너무 실용적이고, 너무 꼴사납고, 지나치게 단정하다. 물건을 치워 정리하는 부엌 선반 같다.
고양이 눈 2 p.7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어리석은 장난 하지 마." 코딜리어가 말한다. 나도 일어선다. "어리석다고?" 내가 말한다. 나는 목소리를 낮춘다. "나는 그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야. 너는 내 친구잖아. 이제 너도 알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 나는 실제로는 죽었어. 몇 년 전에 죽은 사람이라고." "장난 그만해." 코딜리어가 날카롭게 말한다. 그녀가 불안해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큰 힘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놀라울 따름이다.
고양이 눈 2 p.73-7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코딜리어는 뚱뚱보 가족의 차를 찾고 싶어 하지만 나는 이 놀이에 싫증이 났다. 나는 괄목할 만한 보다 농밀하고 보다 사악한 작은 승리를 손에 넣었다. 에너지가 우리 둘 사이에 오갔고, 이제는 내가 강자가 되었다.
고양이 눈 2 p.7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괄목 刮目 눈을 비비고 볼 정도로 매우 놀람.
이제는 내가 강자가 된 걸 오가는 에너지로 느낀 경험. 나도 겪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놀랐다.
책 뒤표지에 '가해자가 희생자가 되고 희생자가 가해자가 된 두 사람.' 이라는 소개글을 보며 상상했을 땐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할 것 같았다(복수, 참교육 등등을 기대하게 됨). 그러나 책 내용을 직접 읽어보니 매우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이런 경험은 나도 있고 다른 이도 있겠지. 피해자와 가해자는 똑 떨어지는 개념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는 게 그걸 다시 한번 인지하는 과정일 듯.
우리 학교 여학생들은 내 험한 입을 조심하고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잠재적인 언어적 위험이라는 영기를 휘감고 복도를 걸어 다니고, 아이들은 나를 조심스럽게 대한다. 그것은 만족감을 준다. 이상하게도 이 야비한 행동 때문에 친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아졌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여학생들은 나를 두려워하지만, 가장 안전한 장소가 어디인지 알고 있다. 바로 내 옆, 아니면 나에게서 반 발짝 뒤로 물러선 곳이다. "일레인은 정말 재밌어." 그들은 이렇게 아무 설득력 없는 말을 한다. 몇몇 아이들은 벌써 도자기와 가정용품을 수집하고 혼수 상자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일에 나는 유쾌한 경멸감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불쾌하다. 내가 가하는 상처가 모두 의도적인 것이기를 원한다.
고양이 눈 2 p.76-7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학교에서 일레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학교에선 못 그러고) 집에 와서 거칠게 굴곤 했다. 일레인을 두려워하는 학생들에게도, 일레인이 의도적으로 상처 주고자 하는 모습도 다 알겠다.
아버지가 말했다. "네 날카로운 혀 때문에 곤경에 처할 날이 올 거야, 작은 숙녀분." 아버지가 작은 숙녀분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가 위험 수위 같은 것에 매우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은 잠시 내 입을 다물게 만드는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내 공격성을 누그러뜨릴 영향력은 결코 없다. 나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경계를 뛰어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살얼음판이나 허공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느껴지는 위험과 현기증을 즐기게 된 것이다.
고양이 눈 2 p.7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코딜리어가 좋아하는 가수들을 비웃는다. 나는 말한다. "사랑, 사랑, 사랑. 그들은 항상 징징대." 나는 지나친 감정 노출을 혹독하게 경멸하게 되었다.
고양이 눈 2 p.78,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도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감정 노출이 많은 편. 매번 마음이 분분하다. 긍정하고 싶을 때도,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 노출이 부담스러울 때도 많고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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